• 맨손의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클래식 음악 이야기] 청중과의 '소통' 위한 '재창조'
        2014년 05월 28일 03: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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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정격음악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그것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박물관 음악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바흐나 루이 14세를 방문하기 위한 안내에는 관심이 없다.”

    일반적으로 중세부터 바로크까지의 음악을 일컬어 ‘고음악Early Music’이라고 부른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소위 ‘고음악’도 손쉽게 들을 수 있는 음악으로 자리 잡아 나갔는데 그 선두적인 역할을 한 데이비드 먼로우(David Munrow 1942-1976)는 1967년에 옛 음악만을 연주하는 런던 고음악 연주단 (The Early Music Consort of London)을 결성하였다.

    이들의 연주가 영국의 레코드사인 EMI를 통해 발표되면서 일반 음악 애호가들은 처음으로 중세와 르네상스의 음악을 직접 귀로 들을 수 있었다.

    1968년 지휘자 아르농쿠르는 독일의 한 레코드사를 통해 바흐의 <B단조 미사>를 바흐 당시에 사용되었던 악기들과 그 당시의 연주 관습에 따라 새롭게 해석한 음반을 내놓았고, 그의 이름은 곧 “고음악 연주,” 혹은 “고 악기 연주”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Nikolaus Harnoncourt, 1929~ )는 귀족 집안 출신으로 오스트리아 첼리스트이자 지휘자로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고음악 전문가이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나오는 독일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푸르트뱅글러(Wilhelm Furtwängler)가 지휘하는 베토벤 교향곡 7번을 들은 계기로 젊은 아르농쿠르는 음악가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으며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첼로주자인 엠마누엘 브라벡(Emanuel Brabec)에게 사사한다.

    음악 아카데미에서 원전 연주실습 과목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어 옛 음악에 대한 열정을 키워나갔다. 1952년 그는 당시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자였던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에게 인정받아 1969년까지 첼로 주자로도 활동하였다.

    아르농쿠르는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내 알리스 호펠르너(Alice Hoffelner)와 그의 동료, 에두아르트 멜쿠스(Eduard Melkus), 알프레드 알텐부르거(Alfred Altenburger)와 함께 비엔나 심포니에서 고음악연구를 위해 빈 감바 4중주단(Wiener Gamben-Quartetts)을 창립하기에 이른다.

    1950년 아르농쿠르는 역사적 악기들을 수집하기에 이르렀고 그로 인한 재정적인 문제도 야기되었지만 그의 고음악에 대한 정열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아르농쿠르에게 “고음악”은 바로크 시대의 이전 음악(르네상스(몬테베르디), 바로크(바흐, 라모, 텔레만, 헨델)뿐 아니라 그 이후의 음악 즉 고전(모차르트, 베토벤), 낭만음악(베버, 오펜바흐, 베르디, 멘델스존, 슈만, 브람스, 브루크너), 20세기 음악(베르크, 스트라빈스키, 거쉰)까지 모두 포함시키고 있다.(헨델의 <예프타 서곡>, 라모의 <카스토르와 폴록스>, 텔레만의 <최후의 심판>,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티토왕의 자비>, <피가로의 결혼>, 베토벤의 <피델리오>, 베버의 <마탄의 사수>, 베르디의 <아이다>,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 거쉰의 <포기와 베스>등)

    아르농쿠르가 언급하는 ‘정격연주'(authentic performance)는 작품의 ‘충실함’ ‘진정성’ 그리고 표현되는 내용물에 대한 ‘신뢰성’에 관한 것이다. 더 나아가 당대의 악기와 연주법을 되살려 연주하는 연주스타일을 말한다.

    한 음악의 연주 방식을 그 음악의 탄생 시대와 당시의 연주 관습의 문맥 안에서 이해하고 오늘날 실제로 청취 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연주 관행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작곡가의 음악, 연주자의 음악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과연 작곡가에 대한 연주자의 의무가 존재하는가이다. 사람들은 해석방식을 토대로 하여 작품을 재현함으로써 과거의 작품들을 표현할 수 있다. 정격연주라 함은 바흐의 음악은 바흐가 실제로 알고 있었던 악기와 당대 연주자들의 연주방식을 최대한으로 살려 ‘옳은’ 해석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반면에 음악에는 ‘옳은’해석이란 있을 수 없다는 반대 입장도 있다. 그러나 어떤 한 작품의 ‘정격적인 해석’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작곡가가 직접 제시해 주는 해석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작품을 쓴 작곡가가 직접 자신의 작품을 연주하면서 우리에게 설명해주는 바로 그것이야말로 그 특정 작품에 대한 ‘정격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르농쿠르는 자신이 ‘정격 연주가’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 자신은 고음악에 대한 단순한 복원이 아닌 당대 정신을 복원시킴과 동시에 새로운 재해석을 내어 놓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가 연주하는 옛 작품을 ‘재창조’해 내고 있다.

    그가 말하는 ‘정격 연주’는 재창조와 함께 음악과의 ‘소통’이다. 과거의 음악을 제대로 연주하기 위한 방법으로 당대의 미학으로 재현하려는 노력이다. “음악이 소통에 실패한다면 나는 더 이상 그 음악에 관심이 없다.”고 아르농쿠르는 말한다.

    아르농쿠르

    아르농쿠르의 지휘 모습

    음악은 늘 ‘재창조’이며 ‘소통’

    음악을 소통의 하나로 본 그는 과거의 청중들에게 주어졌던 효과를 지금의 청중에게 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즉 그것은 과거 음악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현대 청중들과 ‘소통’을 위한 ‘재창조’ 바로 그것이다.

    아르농쿠르의 옛 작품에 대한 재해석은 참신하다. 1962년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전곡, 1970년 바흐의 <마태수난곡>,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오르페오>, <포페아의 대관식>, <율리시스 귀환>을 오리지널 악기로 녹음하였고 아르농쿠르 자신이 교정본을 만들어서 지휘했다.

    그는 알려진 오류들을 수정하고 자신의 해석이 표기된 악보자료를 나누어주면 세부적인 내용까지 관여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에는 그리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모차르트 작품해석 또한 높이 평가되고 있는데 한 예로 짧은 라틴어 합창곡인 <아베 베룸Ave Verum>에서 모차르트가 표기한 ‘소토보체(Sotto Voce, 부드럽고 여린 소리로)에도 불구하고 아르농쿠르는 조금은 거친 듯한 음색을 가미함으로써 소박한 뉴앙스로 부각시킨다.

    아르농쿠르 해석의 절대적 근원은 작곡가의 악보에 있다. 작곡가의 의도가 그대로 스며있는 악보에서 소리를 끌어내고자 한 것이다. 특히 그는 베토벤의 자필본을 연구하면서 기존의 표준화된 악보를 과감히 고쳤으며 다른 지휘자들이 수정한 개정본을 정정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했다.

    특히 바로크 시대에는 음악이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다고 믿었다. 다양한 감정의 상태, 시적 이미지, 단어의 리듬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면서 이론가나 작곡가들은 인간의 감정을 모방하여 그것을 음악에 표현하려는 시도인 감정이론 (doctrine of the affections)이라고 불리는 객관화된 감정을 만들었다.

    음악의 내적인 능력과 감정적인 표현을 이성적인 예술로 표현하려는 열정이 결합되면서 귀족계급과 중산층 모두에게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가장 알맞은 바이올린의 인기가 더욱 높아지고 건반악기 쳄발로(cembalo)도 관심을 끌게 되었다.

    이 시대에는 맨 위 성부를 강조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으며 아래성부가 약해지기 마련이었다. 바로크 시대에는 곡의 화성적 기반인 통주저음(basso continuo)위에 내성을 단순히 숫자나 기호로만 표시하는 숫자저음(figured bass)을 사용하였다. 그래서 사용된 양식이 ‘통주저음’ 곧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와 같은 낮은 음 현악기나 쳄발로 등으로 저음 성부를 받쳐주는 것이었다. ‘통주’란 독주 파트가 쉴 때도 저음은 연주를 계속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었다. ‘통주저음’은 바로크만의 독자적인 음악 형식이었다.

    특히 바로크 음악의 악보에는 연주에 대한 지시(운지법, 다이내믹, 프레이징, 템포, 아티큘레이션 등)가 부족한 관계로 다른 시대에 비해 각 출판사마다 서로 다양하고 다른 해석들을 내어 놓고 있다.

    이에 작곡가가 원래 작곡한 그대로의 전통적 권위를 가지는 원전악보 (Urtext, original text) 를 연구하고 연주하는 것이 작곡가에 대한 진정한 의도성과 충실함과 함께 연주자의 개성 있는 작품에 대한 재해석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바로크 음악에 대한 수많은 원전 연구와 해석은 바로크 음악의 즉흥성과 작곡가들의 필사본으로 인한 자연발생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연주자의 능력과 기호에 따라 선율에 풍요로운 장식도 허용한 점은 바로크 음악이 현대 재즈와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재즈의 즉흥성 바로크 음악의 계속저음으로 인한 반주의 즉흥성과 장식음 처리 등은 비슷한 면이 있다.

    작곡가는 자신이 백지에 까만 오선을 긋고 음표를 완성하여 내어 놓는 동시에 더 이상 자기 것이 될 수 없음을 상기할 것이다. 즉 그 어떤 연주자도 작곡가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소리를 재현할 수 없다는 말이다. (여기서 컴퓨터 음악은 제외될 것이다)

    그 때부터는 누군가가 자신의 작품을 분석하고 연주하고 해석해 주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악보란 연주를 위한 지시사항들을 기보한 것이지만, 해석과 관련된 모든 양상을 완전히 구체화할 수 없으므로 특성상 불완전하다. 이러한 불완전성이 음악해석의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악보란 해석을 결정짓지 못하며 해석 또한 연주를 결정짓지 못한다.

    아르농쿠르는 이러한 고음악에 대한 해석을 통한 ‘재창조’를 위해 의식적으로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 자리를 회피하였다고 한다. 그는 지휘봉을 잡지 않는 맨손 지휘자로서 악장과 악장 사이에 의도적으로 긴 휴지를 두어 고요한 정적상태를 부각시키기도 했다.

    1970년대부터 그는 지휘자로서 유명 오케스트라(빈 심포니, 빈 필하모닉,유럽 쳄머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닉)를 이끌었다. 지휘봉 없이 지휘하는 지휘자로는 스토코프스키, 스트라빈스키, 불레즈 등이 있다. 맨손 지휘자의 탄생은 러시아 지휘자 바실리 사포노프(Vassily Safonoff)가 어느 날 지휘봉을 놓고 오는 바람에 맨손으로 지휘하던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아르농쿠르는 연주와 병행하여 옛 음악과 옛 음악 연주에 관한 음악 철학적 저서들도 집필했다. 대표저서로 <언어로서의 음악> (Musik als Klangrede)(“바로크음악은 ‘말’한다” 강해근 역)으로 당대 연주에 대한 고전적 저서로 꼽히고 있다.

    취리히 오페라하우스의 무대감독인 장 피에르 포넬레와 공동으로 <공연역사 (Aufführungsgeschichte)를 저술하였으며 고음악의 이론과 실제(Theorie und Praxis der Alten Musik)에 관한 세미나로 원전악기의 역사와 연주법 강의도 했다. 또한 1900년까지의 음악을 포괄하는 내용에 관한 <고음악 Alte Musik>이라는 걸작도 남겼다.

    아르농쿠르는 원전연주 음악단체인 <빈 콘센투스 무지쿠스>(Wien Concentus Musicus)와 함께 내한하여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가 2005년부터 격년제로 주최하는 서울 국제 바흐 페스티벌에 참여한 바 있다. 그의 고음악에 대한 기여도는 그가 수상한 상의 리스트(에라스무스 상, 황금명예바늘상, 그라모폰상, 그래미상,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 에코상, 교토상)만 열거해보더라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폭 넓은 레퍼토리와 장르를 오가며 당대의 음악을 얼마나 충실히 해석하여 과거의 음악을 일깨워 21세기에 사는 우리들과 교감을 나눌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전령사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만약 몬테베르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과 같은 거장들이 다시 깨어나 소위 자신들의 음악이라고 소개되어 듣게 된다면 과연 어떠한 반응들이 나올까.

    아마 그들의 반응은 다양할 것이다. 아마도 자신들의 음악이 아니라고 고함을 칠지도, 자신들의 음악이 이렇게도 아름답게 들리는 지 탄성을 지를지도, 또는 자신들은 그러한 음악을 작곡하지 않았다고, 더 나아가 자신들이 그러한 음악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등등.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개의치 않는다. 물리적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옛 시대의 음악을 아르농쿠르와 같은 음악인이 없었던들 우리가 감히 어떻게 그 시대의 정취를 느낄 수 있을까. 우리는 그저 아르농쿠르에게 감사할 뿐이다.

    고음악의 레퍼토리를 계속 발굴해 오고 있는 주요 연주단체는 토마스 빙클리(Thomas Binkley)가 이끄는 Studio der Frühen Musik, 폴 힐리어(Paul Hilier)의 The Hilliard Ensemble, 윌리암 크리스티(William Christie)의 Les Arts Florissants 등이 있다.

    고음악 연구자이자 음악가들로는 아르농쿠르 이외에도 크리스토퍼 호그우드(Christopher Hogwood), 하프시코드 연주자로서 바로크 음악에만 몰두한 트레보 피녹(Trevor Pinnock), 바르톨드 쿠이켄(Barthold Kukjken, 바흐의 원전 플루트전집 출간, 지휘자), 크리스토프 볼프(Christoph Wolff, 바흐음악과 생애에 관한 연구로 알려진 음악학자), 구스타프 레온하르트(Gustav Leonhardt, 네덜란드 쳄발리스트, 오르가니스트, 지휘자), 막스 자이페르트 (Max Seiffert, 독일 바로크 음악전문가, 바로크시대 음악작품 편집), 조슈아 리프킨(Joshua Rifkin, 미국음악학자, 건반악기 연주자, 지휘자), 조르디 사발 (Jordi Savall, 스페인 비올연주자, 지휘자이자 작곡가)등이 있다.

    2005년 5월 한 인터뷰에서 비올라 다 감바의 거장인 로렌스 드레이퍼스(Laurence Dreyfus)는 바흐에 대한 그의 이해를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 바흐에 있어서 음악이란 . . . 단지 읽고 주석을 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닌 해석자(Interpreter)의 입장에서 이를 응용하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렇게 ‘음악 안에서 사고하는 것 (thinking in music)” 이것이야말로 바흐에게 있어서 신성한 영역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필연적인 귀결이자 신념이었다고 생각한다.,,”

    필자소개
    한양대 음악대학 기악과와 동대학원 졸업. 미국 이스턴일리노이대 피아노석사, 아이오와대 음악학석사, 위스콘신대 음악이론 철학박사. 한양대 음악연구소 연구원, 청담러닝 뉴미디어 콘테츠 페르소나 연구개발 연구원 역임, 현재 서울대 출강. ‘20세기 작곡가 연구’(공저), ‘음악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번역), ‘클래식의 격렬한 이해’(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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