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차의 언니들
[끝나고 쓰는 노점일기] 꽃들에게 희망을!
    2014년 05월 08일 11: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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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 언니

매일 저녁 퇴근길에 순대를 사러 오는 여성이 있다. 정말 매일 오다시피 하는 그 언니는 말이 별로 없다. 늘 마차 모서리쪽으로 조용히 다가와서 ‘순대 하나 포장이요’가 끝이다.

좋은 인상을 가진 그녀에게 호기심이 생긴다.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데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순대를 정말 좋아하나보다. 그렇지만 매일 순대라니.

그녀의 퇴근은 꽤 늦은 시간이다. 저녁이 순대는 아니겠지. 나를 동정이라도 하는 걸까. 그래도 매일 순대라니. 술안주인가. 별로 술 마실 것처럼 안 보이는데. 그래도 매일 순대라니…….

그저 나의 상상일 뿐이었지만 나는 그녀가 혼자 살고 있으며 순대는 하루를 마감하는 술 안주일 거란 생각을 했다. 떡볶이나 튀김은 밤에 먹기 부담스러울뿐더러 술 안주로 적합하지도 않다. 오뎅도 있지만 국물포장을 옮기거나 데우는 것이 귀찮은 일이다. 무엇보다 2인분을 사기엔 양이 부담스럽다.

보통 떡볶이와 튀김과 오뎅은 하나의 세트다. 떡볶이 1인분에 튀김 두 개를 묻혀 먹고 오뎅 하나와 국물. 튀김이 더 좋을 때는 튀김 1인분을 떡볶이 국물에 묻혀 먹으며 오뎅 하나와 국물이 일반적이다. 문제는 순대다. 여럿이야 상관없지만 혼자 먹을 때 다 시키기엔 양이 많다. 그래서 늘 떡볶이냐 순대냐는 선택의 문제이다. 혼자 먹을 때는 말이다.

그래서 노점엔 간혹 섞어 1인분, 섞어 5천원 같은 메뉴가 있다. 혼자서 이것저것 먹고 싶은 사람을 위한 메뉴이지만, 대부분 장사가 잘 되는 노점은 이런 메뉴를 두지 않는다. 귀찮고 포장도 어렵고 재료도 단품보다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나는 넌지시 말했다. “다른 거랑 섞어서 1인분도 드려요”

“괜찮아요. 순대도 많이 주지 마세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조용히 미소 짓고 만다. 그 언니가 마차에 들어오면 주변 공기가 차분해진다. 나는 순대가 다 떨어질 것 같은 날에도 그 언니 몫은 남겨두었고, 간혹 들리지 않는 날이면 장사를 접는 걸 조금 미루고 기다리기도 했다.

나도 더 이상 그 언니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나는 그녀가 마차에 들어오는 것이 기분이 좋고, 그녀가 가고 주변 공기가 원래대로 돌아오면 나는 생각한다. 그래도 매일 순대라니…….

우리 건물 청소 아주머니

우리 건물을 청소하는 아주머니는 새벽 4시에 나와서 오전 11시쯤 퇴근하신다. 가끔 오후까지 계시는 날도 있다. 출근 시간은 5시인데, 부지런한 아주머니는 더 일찍 나와서 건물을 청소하신다. 8시 이전에 청소를 마쳐야 하는 사무실이 있기 때문인데, 대부분 9시 이전에 사무실과 계단 청소까지 마치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닦으며 11시까지 건물에 계신다.

아주머니는 늘 내가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젊은 사람이 다른 일을 하지 왜 그렇게 거칠고 힘든 일을 하냐는 얘기이다.

나는 아주머니가 좋았다. 흔히 이 계통(?)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레파토리인 ‘내가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니라 운동 삼아 하는 거다’ ‘내가 왕년에…’ ‘우리 자식들은…’으로 이어지는 미담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아주머니가 내게 건네는 시선이 따뜻해서이기도 하다.

어느 날 아주머니가 내 마차로 오시더니 당신의 사정 이야기를 하신다. 딸이 둘째를 출산하는데, 산후조리 기간 동안 첫째 손자를 돌보는 일과 출산한 딸의 산후조리를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달 정도 건물 청소일을 못하게 되어 건물주에게 그만두겠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한 달만 대신 할 사람을 구하고 아주머니가 돌아와서 계속 했으면 한다고 했단다.

결론은 나보고 한 달 동안 건물청소를 맡아주면 안되겠냐는 것이었다. 월급은 35만원이었다.

할까. 혹했다. 건물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내가 우리 건물을 우리 건물이라고 부르듯이 건물 사람들이 내 마차를 우리 마차라고 부르지는 않더라도 왠지 나도 그 건물의 일원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냐. 새벽일인 걸. 자정 가까이에 집에 들어가서 새벽 3시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잉어빵에서 떡볶이 장사로 바꾼 이후 노동의 강도는 노점만 하기에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35만원이라. 내 생활비에 보태진다면 큰돈이겠지만, 계산을 해보자. 4시부터 9시까지만 한다고 치면 하루 5시간, 한 달 25일. 시급 2800원이군. 최저임금 반 토막이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잠시 멍 때렸다.

나는 얼마간 정부의 한 위원회의 위원으로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회의비 7만원과 자료비 15만원을 받았다. 워낙 읽어가야 할 자료가 책자 몇 권 수준이었지만, 회의가 익숙해지면서 위원들끼리 분량을 나눠 맡았고 회의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시간에 22만원. 125시간에 35만원. 이 차이는 뭐지…….

나는 결국 아주머니에게 노점도 벅차서 건물 청소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씀드렸고, 아주머니는 조금 더 일찍 나와 청소를 하고 조금 일찍 들어가시는 것으로 건물주와 타협을 봤다. 아주머니는 한 달뿐 아니라 그 이후로도 손주를 봐줘야 했지만, 힘들다는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 건물 사람들에게는 아주머니나 나나 있어도 없는 것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또 공통점이 있다. 서로를 보며 ‘왜 그리 힘들고 돈 안 되는 일을 하냐’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노점 풍경

필자의 노점이 아닌 어느 한 노점의 풍경

그밖의 언니들

언제나 흰 블라우스에 마스카라까지 꼼꼼하게 화장을 하고 영업을 하는 보험언니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마차에 들린다. 처음에는 아이 보험에 대한 기사가 적힌 종이를 내게 건네며, 아이에게 보험드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한다. 나름 언니의 내 나이에 대한 가늠과 계산이었을 게다.

그날 보험언니는 바로 후퇴. 그 다음 주엔 연금에 대한 기사를 출력해서 들고 왔다. 지금 먹고 살 것도 없는데 무슨 연금은… 이라는 내 말에 언니는 30분 넘게 나에게 일장연설을 했다.

보험언니는 두꺼운 화운데이션에 마스카라까지 꼼꼼하게 화장을 한 얼굴로 여전히 내 마차에 들어선다. 마차에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얹으며 작은 한숨을 한번 쉬고, 가방에서 종이를 꺼낸다. 그리고 고개를 들며 웃는 얼굴로 내게 종이를 건넨다. 이제는 ‘심심할 때 보세요’가 끝이다. 그러면 나는 시원한 물을 내놓는다. 날이 더워지고 있었다.

상조회사 상조 도우미를 모집하는 언니는 쾌활한 편이다. 바로 앞에 상조회사 건물이 있어서 주로 일을 나가며 마차에 들르기 때문이다. 언니의 방문 목적은 내 마차에 붙여둔 상조도우미 모집 광고물을 점검하기 위함이고, 그 다음은 나를 꼬시기 위함이다.

“언니, 8만원이야 8만원. 8만원인데…”를 늘 강조하는 상조회사 언니다. 이 언니는 늘 뭔가를 주고 간다. 판촉물로 나온 랩백이며, 물티슈 같은 것들이다. 내게 풀어놓는 물품들도 다 영업하는 사람이 사야 하는 것임을 나는 안다. 그 언니는 내가 상조도우미를 안할 거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뭔가 주고가고, 더 편하게 일하라고 권한다. 고마운 일이다.

여성이 혼자서 노점을 하는 상황은, 나와 비슷한 여성들에게 경계심을 풀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신호 대기를 기다리면서 햇빛을 피해 살짝 마차 처마로 들어온 학습지 선생님은 다음 집까지 시간이 남는다며 마차에서 잠시 쉬었다.

길 건너 뷔페의 여성 직원들은 가끔 내 마차에 와서 수다를 떤다. 우리 건물 2층의 피자집의 갓 스무 살 서빙아가씨는 내 마차에서 연애 작업을 한다. 다양한 비정규직 여성들의 집합소랄까. 그 중 가장 자주, 당당하게 내 마차를 지정 휴게소로 사용하는 사람은 녹즙 배달 언니이다.

녹즙 언니

녹즙 배달 언니는 어느 날 불쑥 내 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크고 씩씩한 목소리로 “어머! 못보던 게 생겼네요. 저는 금천에서 녹즙 배달해요”하더니, 어깨에 둘러맨 연두색 녹즙 가방에서 샘플 하나를 꺼내어 능숙하게 가위로 자르고 작은 빨대를 꽂아 나에게 건네며 웃는다. 그녀가 웃을 때는 덧니가 예쁘게 드러난다.

이렇게 시작된 그녀의 방문은 꽤 잦은 편이었다. 새벽에는 사무실 단지 쪽에 돌리고, 오후가 다 되어서 시흥동 쪽으로 차를 가지고 나온다고 한다. 이쪽에는 홈플러스랑 몇 군데밖에 돌릴 곳이 없다고. 사람이 있으면 영업을 뛰어 이쪽을 맡길 생각인데, 광고 보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얼마 못 버틴다고 한다.

녹즙 언니는 꾸준히 내 마차로 방문해 수다도 떨고, 사람을 소개시켜 달라고도 하고, 나보고 하라고 설득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갔다.

그녀는 새벽 3시에 일어난다. 집이 인천이어서 금천까지 오면 4시. 그때부터 그날의 물량을 정리한다. 배달하는 언니들(웰디라고 부른다)별로 생즙과 과채즙 등을 챙겨서 각 웰디별 가방에 넣어주고, 그날의 배달목록을 넣어 차로 각 웰디들이 배달할 공간에 옮겨놓는다.

그리고 나면 본인의 배달을 할 순서. 배달은 보통 6시부터 11시 30분까지 계속된다. 문에 걸어두어도 되는 곳은 일찍 돌고, 책상에 올려주어야 하는 곳은 사무실 문이 열렸을 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단한 점심을 지사 사무실에서 해먹고 짧은 낮잠을 차에서 자고난 후 남은 시흥동 물량을 돌리러 나오는 것이다.

배달을 마치고 나면 오후에는 영업을 하러 돌아다닌다고 한다. 오후 4~5시쯤 일을 마치고 집에 가서 아들과 저녁을 먹고 9시에는 취침. 중학생인 아들이 자신이 잠들기만 기다렸다가 밤새 오락을 하는 것이 신경 쓰이지만 그대로 잠들고 마는 것이 그녀의 하루 일과였다.

그녀는 돌싱이었다. 나이가 많았던 남편이 완전 부도가 난 뒤 이혼을 했고, 아들을 그녀가 키우며 녹즙 배달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서 그녀는 결혼하기를 바랐고, 남자는 최소한 집 한 채는 있어야 한다는 게 그녀의 기준이었지만, 그녀는 어려서 결혼했기에 남편 이외에는 이성을 사귀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던 그녀가 얼마 전부터 점찍어둔 고객이 있다며 나에게 연애 상담을 해왔다. 그 고객에게 관심이 있고, 그도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뭔가 더 이상 진척이 없다는 것이다.

나보다 한 살 어린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강인한 생활력으로 새벽부터 고된 일들을 해야 했지만, 16살 소녀처럼 재잘거렸다. 그 고객의 얼굴만 쳐다봐도 얼굴이 빨개지고, 데이트 신청은 무조건 남자가 먼저 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그녀에게 나의 상담은 별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그녀도 그저 설렘과 수다로 만족하는 듯 했다.

그녀는 내게 웰디를 하라고 끊임없이 권하면서 전단지도 주고, 각종 녹즙 샘플들을 주며 나를 교육시켰다. 당연히 나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내가 전단지의 녹즙가격을 보고 “와~ 비싸네요”라고 말했더니, 녹즙언니는 바로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자신이 파는 것을 비싸다고 생각해서는 절대 장사 못해요. 자신의 물건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야지요.”

녹즙언니의 이 말에 나는 왜 뜨끔했을까. 나는 내내 이 말을 되씹어보았다. 나는 내 음식에 대해서 자신이 있나. 나는 나에 대해서 자신이 있나.

꽃들에게 희망을

생각해보면 내 마차를 오가는 언니들은 모두 자신의 일에 대해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일들을 내게 권했다. 누구 하나 고된 노동에서 예외가 없었지만 당차게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그녀들이었다. 그녀들에게는 그저 시원한 물 한잔이나 작은 그늘이나 잠시의 말동무가 필요할 뿐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지켜본 그녀들은(그녀들이 지켜본 나는) 조금씩 숨 막히고, 고독하고, 버거운 생활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우리는 서로가 그 얼굴을 발견하고 조금씩 위로를 보태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들이 모두 모여 앉은 모습을 상상해본다. 아마 녹즙 언니랑 상조 언니가 제일 시끄러울 것이고, 보험 언니는 예의 모범적인 얼굴을 쉽게 풀지 않을 것이며, 젤 어른인 청소아주머니와 말이 없는 순대 언니는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 짓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녀들이 모여 앉은 모습만으로 마차가 환해지고 공기가 가벼워질 것 같은 기분 좋은 상상이다.

자, 언니들.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다 같이 앞을 보세요. 아, 모두 웃으니 좋네요. 이제 건배를 하자구요.

우리의 아름다운 날들을 위하여!

필자소개
유의선
전직 잉어빵 노점상. 반빈곤 사회단체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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