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치안과학원’ 반대하는 이유
[프로파일러의 범죄이야기] 그래도, 그래서 나는 반대한다.
    2014년 04월 17일 12: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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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쓸 정보 역량이 있으면 진짜 간첩한테나 써라.

내가 경찰 출신으로는 드물게 국립치안과학원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한 지 거의 한 달이 넘어간다. 그 동안 몇 가지 흥미 있는 일이 내 주변에 생겼다.

그 중 하나가 별로 안면도 없는 무려 3개 경찰서의 정보과 형사들이 나의 안부를 물었다는 것이다. 글쎄 왜 그랬을까? 뭐 그냥 애교 정도로 생각하자. 그리고 그 다음 일로는 나와 별 친분도 없는 경찰청 고위 간부가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안부를 묻고 다녔다는 점이다. 이것도 뭐 그냥 나에 대한 관심 정도로 생각하자.

내가 국립치안과학원 설립에 반대한 이유는 분명하고 명확하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내 가 잘 아는 사람이 있는데, 별 다른 이유 없이 일선 경찰서 과학수사팀장에서 하루아침에 다른 경찰서의 형사과 팀원으로 인사발령이 난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과학수사요원들에 대한 이런 말도 안 되는 인사발령이 이전에도 비일비재했고 현재도 그러하다는 점이다. 적어도 최근 1년 사이 내가 직접 목격한 사례만 해도 3건이 넘는다.

과학수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학수사 요원 하나를 제대로 만들어 낸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지난한 일이다. 그냥 발령 내고 관련 업무를 하라고 해서 제대로 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다.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업무로서 그런 전문가 양성에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는 일이다. 그래서 다른 업무 못지않게 더욱 과학수사요원의 전문성은 인정해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우리 경찰은 무엇인가 거꾸로 간다. 한참 써 먹어야 할 과학수사팀장을 아무런 관련성도 없는 형사팀 일반 팀원으로 처박아버렸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봐도 15년 동안 그 사람을 키워내기 위해 들어간 비싼 세금은 그냥 허공에 뿌려졌다.

그렇다면 이 정도까지 할 정도면 새로 오는 팀장에게 그만한 능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더욱 웃긴 것은 새로 그 자리에 온 팀장이라는 사람이 과학수사에 대한 전문성이나 경력이 전임자에 비해 일천하다는 점이다.

과학수사팀장이라는 자리가 업무를 하면서 대충 만들어지는 자리가 아니다. 그만큼 전문성이 충분한 사람이 있어야 하는 자리이다. 그가 분석하는 증거 하나하나가 시민의 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오류 하나가 발생하면 범인이 바뀔 수도 있고 억울한 사람이 살인범이 될 수도 있고 사건 하나가 미제 사건이 될 수 있고 그로 인한 비용은 엄청난 것이다. 그런 자리에 전임자에 비해 경험이 일천한 사람을 앉혔다는 점은 최적의 치안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 그 자체로 직무유기가 될 수 있다.

물론 인력의 운용에는 다른 요인들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원칙은 가장 잘하는 사람을 그 자리에 쓰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주장하는 바는 무슨 조직이나 기구를 만들기 전에 실제 현장 과학수사 인력의 운영과 시스템을 적확하게 개선하는 것이 먼저라는 점이다.

아무리 무슨 조직이나 기구를 만든들 뭐하겠는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만약 특권을 가진 소수에 의해 마음대로 전횡된다면 그것이 시민을 위한 과학수사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현장 과학수사의 실상이 이러한대 기본적인 과학수사 인력 운영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은 상태에서 논의되는 국립치안과학원 설립은 사상누각에 다름 아닐 것이다.

경찰청

경찰청 모습

그 다음으로 내가 문제제기를 한 것이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관련 문제이다. 현재 예산이 30억 내외라고 하는데, 솔직히 지금까지 이 예산을 가지고 제대로 된 어떤 치안정책을 만들어 냈는지 의문이다.

1년에 2번 발행되는 치안정책연구라는 학술지 발행이 그 성과의 중심이라고 알고 있는데 아무리 잘 만들어도 1년 예산 1억 정도면 쓰고도 남을 것이다. 나도 치안정책연구를 다운받아 가끔 읽어보지만 석사과정 학생들의 레포트 수준이거나 외국에 파견된 사람들이 의무적으로 제출하는 탐방문, 기행문 정도를 넘어서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럼 나머지는 어디에 누구에게 사용되었는가? 일각에서 지적하듯이 자리를 찾지 못한 총경, 경정들이 잠시 쉬러 가는 곳이라는 비판이 있다는 점을 지금의 경찰 수뇌부나 치안정책연구소 관계자들이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정작 필요한 전문 연구인력에게 지원되는 연구비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 된다.

실상이 이러할진대 이런 사항에 대한 철저한 검토 없이 치안 싱크탱크로서 국립치안과학원 설립을 논의 한다는 것 자체가 고위급 몇 자리 만드는 것 이외에 시민들의 치안 서비스 제공에 무슨 도움이 될 것인지 궁금하다.

일부 경찰 고위인사들은 자신들이 마치 검찰이라는 골리앗에 맞서는 의로운 다윗으로 착각하는 듯하다. 그래서 경찰과 관련된 사람들 특히 경찰 관련 학과 교수들이 똘똘 뭉쳐, 수사권 조정에도 적극 협조하고, 법무부 검찰이 주도하는 형사정책연구원에 필적하고 국과수에도 필적하는 경찰청 산하 국립치안과학원 설립에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수사권 조정 문제의 경우에도, 현재와 같은 상명하복의 명령체계에 따라 수사권의 주체가 일선 수사/형사팀장이 아니라 청장/서장이라고 한다면 검사에서 청장/서장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기존에 검사들이 수사권을 독점해온 폐해를 극복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단지 검사에서 경찰 고위 간부로 그 권력만 이동했을 뿐이다.

실제 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에 맞는 기소와 수사의 분리, 적절한 권한 분산 등으로 충실하고 인권추구에 맞는 수사/사법서비스의 제공일 것이다. 그럼에도 진지하고 치밀한 토론을 통한 대안의 추구가 아니라 미리 정해진 어떤 것에 무조건 동참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배신자로 만드는 것은 상황의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번 국립치안과학원 설립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이것은 단지 조직과 기구를 하나 만드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의 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인 것이다. 그러기에 밀실에서 대충대충 설렁설렁해서 우르르 몰려가듯이 만들어서는 안 되고 관련된 사람들 모두 치열하고 진지한 토론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방편의 하나로 인터넷 신문에 칼럼도 썼고 일간신문(서울신문)에 인터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치열하고 진지한 토론을 바란 경찰학과 교수에게 돌아온 것이 정보 형사들의 안부전화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나도 대한민국의 경찰로 프로파일러로서 일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이런 대접을 하니 일반 시민들에게는 어떠할 것인가? 이 나라 경찰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참으로 답답하다.

필자소개
배상훈
2000년대 중후반 경찰청 범죄심리수사관(프로파일러)과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행동과학팀(프로파일링 부서) 재직했다. 현재는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 교수이며, 국립중앙경찰학교 (수사) 프로파일링 과목 담당 외래교수이다.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진보정치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임상병리사와 사회복지사를 거쳐 프로파일러의 삶을 살아온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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