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 '배우'로 산다는 것
    [타인의 삶]열번째, 7년째 신인배우 이학원씨
        2014년 04월 15일 09:3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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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매체 등에서 보여지는 영화배우의 삶은 무척 화려하다. 늘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해외여행도 자주 다니고, 작품은 뜸하게 해도 CF 등으로 거액의 수입을 올리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사는 배우는 상위 0.1%에 지나지 않는 단면일 뿐, 그 뒤에는 수많은 무명배우들이 높은 진입장벽 앞에서 오디션이라도 볼 기회를 찾기 위해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타인의 삶 10번째 주인공 이학원씨가 바로 그렇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연기의 꿈을 갖고 대학로 연극판에 뛰어들었다. 든든한 집안 배경도, 좋은 학벌도, 원빈이나 조인성급의 외모를 갖고 있진 않지만 열정만큼은 세상 그 어느 배우와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알려지지 않은 배우지만, 그래도 직업은 ‘배우’가 맞다. 앞으로 10년을 더 고통스럽게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좀 더 연기를 위해 가난한 삶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한다.<장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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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여진: 자기 소개 부탁드린다.

    이학원: 연극판에서서 연기를 시작한 지 이제 7년차이고, 작품은 7~8개 정도 한 것 같다. 이름은 이학원이긴 한데 포털 인물 정보에서는 ‘이원’이다. 어쩌다가 예명을 이원을 하게 됐는데, 앞으로 어떤 이름으로 연기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 먼저 돌아가신 부모님, 살기위해 연기 시작
    가수시켜 준다는 말에 대전 갔다가 ‘립싱크 건반’ 치다 도망

    장여진: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이학원: 고등학교 때 1학년 때 아버지가, 2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IMF 이후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아버지가 당뇨와 합병증으로 돌아가셨고, 그 직후 어머니조차 아버지를 따라가셨다. 아마 금술이 좋아서 사이좋게 가신 듯 하다.

    그런데 슬픔을 잊을 새도 없이 빚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재판도 받아봤다. 형이나 나나 아직 어리고 돈도 없는데 빚이 있는지도 몰랐던지라 그저 ‘몰랐다’, ‘죄송하다’고 하는데 그때 판사가 ‘모르는 게 잘못이죠. 본인들 빚을 모르면 어떻해?’라고 하더라.

    그때 너무 주눅 들기도 했고, 말 한 번 잘못하면 그 빚을 당장 갚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매일 무료 법률 상담소를 찾아다녔다. 그러다 재산상속판정승인신청서인가를 작성하면, 상속도 포기하고 빚도 안 갚아도 된다고 해서 해결했다. 물론 그때 이후로 살던 집도 처분하게 되면서 친구네 집을 전전하게 됐다.

    장여진: 일정한 거취가 없었다는 것인가?

    이학원: 처음에는 작은아버지 댁으로 가서 살았다. 작은아버지는 잘해주는데도 당시 내가 사춘기고 하다 보니 학교도 안 나가고 그랬다. 그러다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할 것 같아서 어느 날 다시 고등학교에 같더니 자퇴처리 됐더라. 작은아버지께 여쭤보니 무단결석이 너무 많아 퇴학이 눈 앞에 와 있어서 아무래도 자퇴가 괜찮을 것 같아 자퇴처리를 했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고등학교는 검정고시로 졸업했다.

    자퇴처리 된 걸 알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친구네 집에서 살았다. 그런데 친구네 집도 눈치가 보이니깐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그때가 고2 나이 때였다. 호주머니에는 3만원밖에 없는데 잘 때가 없으니 계속 걸었다. 걷다보니 허름한 여관에 ‘장기투숙 30만원’이라고 써 있더라. 소위 ‘달방’이라고 부르는 거기 말이다.

    그래서 무작정 들어가서 ‘제가 장기투숙 하고 싶은데 월급은 내일모레 들어온다. 어차피 월 30만원이면 하루 1만원씩이니깐 일단 3일만 살고 이틀 뒤 잔금을 처리하겠다’고 해서 들어갔다. 물론 3일 뒤에 잔금 처리 못하고 나왔다.(웃음)

    그러다 첫 번째 기회가 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허망한 이야기인데, 누가 가수를 시켜주겠다고 했다.(웃음) 일단 대전으로 내려오라길래 그때 전재산 7만원을 들고 있는 짐 없는 짐 다 챙겨서 내려갔다. 내려 갈 때에도 워크맨 하나 사오라고 해서 당시 남대문에서 5만원 주고 워크맨 사고, 나머지 2만원으로 대전에 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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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잘생기지 않은 배우라고 하는가. 충분히 잘 생겼다(사진=장여진)

    장여진: 뭘 믿고 그렇게 무작정 내려갔나?

    이학원: ****의 **라는 노래 아나? 그 사람이 나한테 그 노래 작곡가이자 매니저라고 했었다. 그래서 믿고 내려갔는데 일단 나이트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더라. 가수 조성모도 원래 그렇게 해서 뜬 거라고. 그런데 무슨 립싱크 가수도 아니고 밴드에서 ‘립싱크 건반’을 시키더라.(웃음) 그래서 이렇게 하면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그 분들이 좀 건달 같은 분들이어서 잡히면 큰일 날 것 같아서 그 단촐한 짐이며 돈이며 다 포기하고 몸만 피신해 올라왔다.

    뮤지컬 ‘뽀로로’에서 ‘쓰레기 괴물’ 역할이 연기의 첫 시작

    그때부터 매일 호프집, 룸살롱 같은 데서 일했다. 호프집에서 서빙하고, 룸살롱 같은 데서 발렛 서비스도 하면서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러다 어느 날 알바 사이트에서 연극 무대 스텝 알바 구한다고 공고가 떴다. 시급도 괜찮고 지원하게 됐다. 그게 바로 뮤지컬 <뽀로로>다.

    장여진: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인 그 뽀로로??

    이학원: 그렇다. (웃음) 내가 뽀로로 2기다. 그때가 2005년, 아니면 2006년쯤 됐을 꺼다.

    그런데 거기서 이제 지방투어를 시작할 건데 ‘쓰레기 괴물’이라는 배역 하나 있는데 해보지 않겠냐고 해서 그렇게 시작했다. 첫 연기가 뽀로로의 ‘쓰레기 괴물’이다. (웃음)

    장여진: ‘쓰레기 괴물’은 어떻게 연기하는 건가?

    이학원: 대사는 없고 쓰레기물 탈을 얼굴에 쓰고 ‘어!’, ‘우워!’ 하면서 주인공 뽀로로를 괴롭히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대사가 없으니 첫 등장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멋있게 한답시고 턴을 돌면서 했는데, 탈이 벗겨져서 무대 밖으로 떨어져버리고 얼굴이 그대로 노출되는 사고를 냈다.

    꼬마 관객들은 진짜로 뽀로로인 줄 알고 보러 온 건데, 실망할까봐 어떻하지 고민하다가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위해 잽싸게 옷으로 얼굴 가리고 그대로 퇴장해버렸다. 주인공 뽀로로는 아직 싸우지도 못했는데 ‘와 이겼다!’ 하고 넘어가고. 그래서 감독에게 엄청 혼났었다. (웃음)

    군대에서 모은 40만원 들고 연기학원 등록…세달 째 돈 없어서 포기

    이학원: 그때 당시 출연했던 배우들은 알고 보니 대학로에서 엄청나게 유명한 배우들이었다. 그러나 연극으로 먹고 살기 힘들다보니 나름 돈벌이가 되는 아동물에 출연하면서 쉬쉬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때 출연한 분들 연배들도 대부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역할이었다.

    그리고 무대감독이 알고 보니 영화 <블라인더>에서 살인마 역할을 하던 사람이었고, 그 분이 처음 연기를 알려주셨다. 그러다 내가 형편이 좋지 않을 걸 알고 나서는 단편 영화들도 소개시켜주시고 그랬다.

    그렇게 연기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꿈을 키워가고 있는 와중에 영장이 날라왔고 군대를 가게 됐다.

    장여진: 사는 게 참 쉽지 않다…(한숨)

    이학원: (웃음) 23살에 군대 갔다가 25살에 제대했다. 연기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제대한 다음날 인터넷을 켜니깐 광고 하나가 눈에 딱 들어오더라. ‘연기학원 수강료 35만원’. 그때 내가 군대 다니면서 월급을 꼬박 꼬박 모아서 40만원이 있었다. 그래서 다음 날 바로 연기학원에 등록했다.

    그렇게 연기학원을 첫 달 다녔는데 다음 달 등록비가 없더라. 다행히 학원 자체 오디션이 있는데, 그 오디션에서 1등한 사람은 다음 달 학원비를 면제해주고, 2등한 사람은 프로필을 촬영해주고, 3등은 상품권 주는데 내가 1등을 해서 두번째 달에 공짜로 다니게 됐다. 그런데 석달째 등록해야 할 때에는 오디션에서 2등을 하는 바람에 그만뒀다.

    장여진: 그러고보면 요새 잘 나가는 아이돌들 보면 엄친딸이니 엄친아니 하면서 꼭 부잣집 자녀들 출신이더라. 집안에 돈이 없으면 연기나 가수의 꿈을 꾸기 쉽지 않은 것 같다.

    이학원: 뭐 나야 원래 이렇게 살아서.(웃음) 아무튼 그래서 다시 알바하면서 사는데 그때 연기학원 선생님이 극단을 차렸다고 연락이 왔다.

    내가 군대 가기 전에 뽀로로 조명감독님 권유로 조명일을 좀 배웠었다. 연기로 먹고 살기 힘드니깐 지금부터 조명기술이라도 배우라고해서. 그런데 극단을 차리게 된 선생님이 대학 졸업생들끼리 공연하는데 조명 봐줄 수 있냐고 해서 갔더니 배역 하나를 주시더라. 그 작품이 처음으로 서본 연극무대이다.

    연기학원 선생님의 권유로 처음으로 선 연극무대 <겟팅 아웃>

    장여진: 어떤 작품인가?

    이학원: 마샤 노먼의 <겟팅 아웃 Getting Out>이라는 작품이다. (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하고 애인의 사주로 매춘도 경험한 ‘알리’라는 여성이 임신한 몸으로 교도소에 갇혔다가 감옥에서 낳은 아기를 교도스측에서 데려가자 탈옥을 감행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이야기로, 마샤 노먼의 첫 작품이다.-장여진) 그때 교도소장의 역할을 했다.

    장여진: 교도소장은 어떤 역할인가?

    이학원: 이 역할도 비중이 높지는 않았다. 시작할 때와 한 막이 끝날 때마다 등장해서 객석을 향해 “너희는 죄수다”, “오늘부터 배식을 안 하겠다” 이런 대사도 하고, 극중 교도소나 주인공의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는 역할이었다. 그래도 처음으로 ‘대사’가 있었던 역할이다.

    그 날 이후로 꾸준히 극단 작품을 했다. 극단에 나와서도 외부의 다른 작품도 했다. 지금은 영화를 하기 위해 연극은 그만둔 상태이다.

    정극이 사라지고 있는 연극판, 무조건 관객 웃기는 연기만 해야 해

    장여진: 꼭 연극을 그만둬야 했나?

    이학원: 물론 연극도 연극만의 매력이 있고, 많이 배웠다. 다만 그만두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최근 대학로의 연극판에서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무조건 웃겨야 한다는 주의로 바뀌면서 정극을 하기 힘들어졌다.

    물론 코믹 장르를 가리는 게 아니지만, 이건 블랙코미디도 아닌데 진지해야 할 때 무조건 웃겨야 한다고 지시하니깐 가끔 혼란스럽다. 어떤 작품은 연습하다가 하차한 적도 있다.

    그 작품은 4명이 라면 하나를 나눠 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첫 번째로 먹던 사람이 먹던 걸 라면 그릇에 뱉고, 두 번째로 건네 받은 사람이 다시 또 그걸 먹다가 뱉고, 세 번째도 그렇게 하다가 네 번째인 내가 그걸 또 먹어야 하는 장면이었다. 연출 의도는 관객들 재밌으라고 한 건데, 연기하는 나는 재밌지 않았다. 이걸 왜 해야 하냐고 물어봐도 ‘웃기니깐’이러는 답변만 돌아왔다.

    장여진: 관객 입장에서도 블랙코미디도 아닌데 뜬금없이 웃음을 유발하는 것 때문에 불편했던 적이 있다. 예전에 일본 원작의 한 작품을 보러 갔는데 스토리는 절대 코믹이 아닌데도, 자꾸 관객을 웃기려고 하더라. 나는 원작 생각해서 갔기 때문에 몰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몰입에 성공(?)해서 결국 눈물이 터졌는데 정작 주변 관객들은 재밌다고 웃고 있는 이상한 상황에 처해져진 적이 있다. 그래서 스토리는 좋았는데 연출이 좀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이학원: 연기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곤란하다. 어떤 작품은 4일만에 공연을 올려야 한다고 무작정 연습에 들어갔는데, 무조건 앞 작품을 베껴 올라가라고 하더라.

    장여진: 앞 작품?

    이학원: 그러니깐 어떠한 작품의 1기 공연이 끝나고 배우 교체한 뒤 2기 공연을 시작하는건데, 무조건 1기 배우가 했던 연기를 베끼라는 것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이런 저런 걸 해보고 싶었는데, 더구나 4일만에 무조건 베껴서 올라가라고 하니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보니 점점 더 정극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전히 연극판에서도 정극을 올리는 곳도 있지만, 그런 기회를 갖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연출가들 입장에서는 단가가 싸니깐 신인배우만 쓰고, 그러다보면 또 기성배우는 점점 일거리가 줄어든다. 신인, 기성 배우 모두에게 어려운 구조이다. 그래서 지금 정극을 고집하는 기성 배우들은 대다수 정말로 연극에 대한 확고한 자신의 주관을 지키기 위해 힘들게 버티고 있다. 그러면서 아주 작은 희망처럼 언젠가는 좋은 영화제작자가 자길 발견해주길 기다리기도 한다.

    잘생기지 않은 20대 배우, 연기할 기회 별로 없어
    ‘신인배우’로 이름 알릴 때는 대부분 30대 후반부터 시작

    장여진: 그러고 보면 우리가 이제 흔히 알만한 영화배우들 역시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씩 무명의 연극배우로 지내다가 뒤늦게 40대 전후로 이름이 알려지는 케이스가 많은 것 같다.

    이학원: 친한 형이 있다. 영화, 드라마, CF도 많이 해서 좀 알려진 배우인데, 군대를 다녀와야 했다. 그래서 군대를 다녀와 보니 기획사와의 관계는 이미 끝났고, 아직 일거리는 없는데 얼굴은 알려져서 다른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아 고생하고 있다. 나같은 경우는 아예 무명이니 아무 일이나 하면 되는데, 그 형은 그게 쉽지 않은 거다.

    그런데 어제 그 형한테 전화가 왔다. 죽고 싶다고 하더라. 왜 그러냐고 하니깐, 기획사 있을 때 여러 곳에서 협찬을 받아왔는데, 곧 재기에 성공할 줄 알았던 한 협찬사에서 먼저 협찬을 제의해놓고는 재기가 늦어지자 그 형의 사소한 실수 하나 트집 잡아 비난했다더라. 형으로서는 자괴감이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연기하는 사람들은 다 힘들게 생활한다.

    그저 언젠가는 기회가 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티는데, 요즘은 정말로 잘생기거나 아예 개성있게 생기지 않는 한 20대는 연기를 할 생각을 접어야 한다는 말이 많다. 그래서 더 이상 잘생기지 않아도 역할이 많아지는 30대 후반을 노리고 버티고 있다.(웃음)

    하지만 대부분의 배우는 30~32살쯤에 고비가 오고 대부분 그때 그만둔다. 한국 사회 특성 상 그 나이가 오면 결혼을 해야 하거나 아이를 낳아야 하는 등의 이유로 안정적인 삶을 살지 말지를 정해야 하니깐 말이다.

    그래서 요새 나는 200군데가 넘는 에이전시에 프로필을 넣고 다닌다. 어떻게든 오디션이라도 보려고. 그런데 아직 한 군데도 연락이 안 왔다가 <레디앙>에서 인터뷰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은 지 며칠 뒤 처음으로 연락이 와서 오디션을 보게됐다. 하지만 아직 영화 오디션은 본적이 없다. 앞으로 볼 수 없다.

    그림2

    그래, 잘 생기지 않은 배우일지라도 누구라도 변신할 수 있는 페이스를 가진 배우다

    장여진: 어째서???

    이학원: 프로필도 안 받아주기 때문이다. 내가 영화사 찾아가면 프로필이 이~만큼 쌓여있다. (웃음)

    장여진: 그래도 연극을 계속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학원: 당장 먹고 살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이유이다. (웃음) 평균적으로 극단에서 하는 작품은 돈을 못 받는다고 보는 게 맞다. 차비랑 밦갑 정도 나온다. 요새 상업극 잘 나가면 좀 많이 주는데 월 120정도다. 보통 화, 수, 목, 금에 1회차씩 공연하고 토, 일요일에 2회차씩 해서 한달 120이다. 큰 뮤지컬은 이보다는 더 많이 준다. 하지만 일찌감치 포기했다. 정극이나 뮤지컬은 신인배우가 설 자리가 전혀 없다. 정말 가뭄에 콩 나듯 신인배우가 등장한다.

    작년인가 재작년이가 영화판에서도 조금 떳다 하는 신인배우가 딱 한 명 나왔다더라. 김성균. 그만큼 신인매우가 올라갈 기회가 별로 없다. 지금 드라마 <기황후>에 나오는 배우 한 명도 원래 비중이 작았다가 반응이 좋아서 지금은 하차하면 안 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고 한다. 그런데 그 분 나이도 벌써 40이라 한다. 나도 30대 후반까지는 더 기다려야 한다. 10년 남았다. (웃음)

    그러고 보면 내가 김성균이 배우로 이름을 알리게 된 <범죄와의 전쟁>에 배역을 따기 위해 프로필 들고 3번 찾아갔다. 프로필을 줘도 연락이 없으니 계속 찾아간 것이다. 마지막으로 찾아갔을 때 그저 오디션 한 번만 보게 해달라고 했는데 안 된다고 했다. 아쉽다. 느와르를 참 좋아하는데 말이다. (웃음)

    장여진: 만약 <범죄와의 전쟁>에 캐스팅 됐다면 어떤 역할 해보고 싶었나?

    이학원: 사실 특정 역할을 기대하고 찾아갔던 게 아니라서…(웃음) 하정우 등 출연진들이 단체로 걸어가는 영화 포스터 있지 않나? 그 중의 한 명으로 서있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웃음)

    대사 없던 ‘길수’ 역할, 계속 연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던 연기
    학벌도 학연도 없던 나에게 주인공 고집해준 연기학원 선생님, 고마워

    장여진: 지금까지 했던 연기 중 가장 기억 남는 건 어떤 역할인가?

    이학원: <결혼전야>라는 작품이다. 여자들이 결혼 전날 밤에 파티를 벌이는 이야기인데, 나는 거기서 여자 주인공의 과거 애인 ‘길수’라는 역할이었다. 시대 배경이 6~70년대였고, 여자 주인공이 이태원 바에서 미군을 상대하는 일을 했는데, 어떤 미군이 찝쩍거리는 거 보고 싸우다가 결국 미군을 죽여서 교도소에 갇힌 인물로 설정됐다. 그리고 작품에서는 딱 한 번 등장한다. 그녀가 결혼하기 전날, 그녀가 너무 보고 싶어 탈옥해 나타나는 것이다. 대사도 한 마디도 없었다.

    그때 연출자가 나에게 주문했던 것이 ‘네가 느껴지는 대로 해봐’ 였다. 탈옥까지 해서 찾아갔는데 그녀가 다음 날 다른 남자랑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축하해줄 것인지 화를 낼 것인지 나보고 알아서 하라고 했다. 대신에 한 마디도 하지 말라더라. 그러면서 나한테 ‘축하해주고 싶어? 그러면 머리에 꽃가루를 뿌려줘. 그런데 네가 증오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 꽃가루로 네 감정을 표현해봐’라고 했다.

    그런데 정말 공연 전날까지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리허설 때 무대에 딱 등장했는데 갑자기 가슴이 너무 아프더라. 내가 등장하면 다른 인물들은 퇴장하고 여자 주인공이랑 둘만 남는 상황인데,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5분 동안 그 여자만 봤다.

    내가 대사 없이 계속 쳐다만 보니깐 여자는 자기 역할대로 어쩔 줄 몰라 하면서 고개를 숙이는데 그 순간 너무 슬프긴 하지만 축하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꽃가루를 뿌려졌다. 그러다 나중엔 다시 감정이 격해져서 막 뿌리다가 눈물이 날 것 같은데 그 모습은 보여주기 싫어 눈물을 떨구기 직전에 퇴장했다.

    첫 공연 때도 감정이 너무 북받쳐서 등장하자마자 계속 울었다. 그런데 두번째 공연 때는 눈물은 안 나고 오히려 너무 화난 감정이 북받쳐 오르더라. 그래서 책상에 있던 장미꽃을 여자에게 건넸는데 여자가 안 받아서 내가 손에 쥐어주고 퇴장했다. 극단에서 올린 작품이라 총 4번 했는데 결국 4번 다 다르게 했다. 그래서 제일 기억에 남는다.

    이 작품은 연기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기도 했다. 내가 길수 연기를 한 시간은 전체 장면 중 5분의 비중밖에 안됐지만, 그때 관객들도 내 감정에 따라 같이 울었다. 그때 연기를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히 들기도 했다. 나 때문에 사람들이 같이 울고 웃어주는 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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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에 올라가기 전. 180도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 이학원씨

    윤대성 작품의 <출발>이라는 작품도 기억에 남는게, 아까 말한 그 연기학원 선생님과 둘이 주인공을 했던 작품이다. 내가 존경하던 분과 같이 주인공으로 한달 동안 연습했던 기간은 너무나 행복했다. 당시 선생님은 주변 사람들에게 연극이나 영화계 관행처럼 같은 대학 졸업생을 주인공을 써야지, 왜 나 같은 사람을 쓰냐고 주변에 말도 많았는데 끝까지 날 고집해줬다. 그때가 공연을 1주일 가량 했는데 지금까지 연기했던 것 중에 가장 잘하기도 했던 것 같다.

    장여진: 가장 기억에 남는 관객은?

    학원: 공연 끝나고 집에 가려고 나왔는데 여성 2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너무 잘 봤어요. 연기 정말 잘 하세요’라고 말해주고 가더라. 그 한 마디 말 해주려고 기다려준 사람이 그 분들이 처음이여서 그래서 계속 기억에 남는다.

    첫 장편영화 출연 고사한 이유…돈 벌어야 해서

    장여진: 단편이나 독립영화에도 출연한 적 있나?

    이학원: 사실 최근에 개봉한 독립 작편영화에 4명의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운 좋게 캐스팅됐었다. 그 때도 조연출로 돈 벌러 갔다가 해당 역할 배우가 연기를 잘 못해서 하차하고 내가 캐스팅된 건데, 거절했다.

    장여진: 어째서?!?!

    이학원: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인데, 사실 독립이나 단편을 찍으면 출연료 받는 것보다 내가 사비를 더 많이 써야 한다. 그런데 내 형편이 그럴 수 없지 않나.

    그 영화도 처음에는 차비랑 밥값 정도만 준다고 해서 생활이 안 되니 80만원 정도로 맞춰줄 수 없겠냐고 했는데, 그쪽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해서 다음 작품에 다시 인연을 쌓기로 하고 빠졌다. 그 작품이 촬영 기간이 한 달 반 정도였는데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서이다. 어떻게든 촬영 끝내고 월세니 뭐니 뒷수습하면 되지 않겠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생활비가 없다는 게.

    장여진: 그래도 너무너무 아쉽다. 독립 ‘장편’ 인데…개봉까지 해서 영화관에 걸린 작품인데 참 아쉽다.

    이학원: 그냥 내 상황이 특수하니깐…그래도 그 감독님이랑 연락하고 잘 지내고 있다. 언젠가는 다시 좋은 기회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다른 배우들은 당장 돈이 없어도 부모님댁에서 살면서 잠도 자고 밥도 먹을 수 있지만 나는 그런 게 안되니깐. 비빌 언덕이 있는 것도 아니고.(웃음) 아무 것도 안하고 숨만 쉬고 살아도 한 달에 방세, 휴대폰비, 보험료 이런 게 나가다보니깐 엄두가 안 났다. 지금도 조명 알바나 이런 저런 일로 생활비 벌면서 연기 연습하고 있는 상태이다.

    누구라도 내 연기를 알아주는 사람 있으면 어떤 역할이라도 하고 싶어

    장여진: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나?

    이학원: 나는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은 게 아니라 어떤 역할이라’도’ 하고 싶다. 정말 어떤 역할이라도, 대사 한 마디라도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장여진: 같이 일해보고 싶은 감독은?

    이학원: 역시 누구라’도’ 좋다.(웃음) 정말 누구라도 내 연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누구라도 불러주면 어디든 가겠다.

    장여진: 마지막으로, 이학원에게 연기란 무엇일까?

    이학원: 나도 나에게 연기가 무엇일가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해봤지만 그 정의가 잘 안 내려진다. 연기는 내 인생이다? 행복이다? 이런 진부한 대답 말고는 연기에 대한 정의가 무엇인지 잘 안내려진다.

    하지만 명백한 것은 연기를 안 하면 내가 어떻게 될지는 안다.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 연기를 안 하면 우울증에 걸린다. 아무 의욕도 없어진다. 지금도 주변에서 연기 그만두고 직장 알아보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연기를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기 때문이다.

    18살 때부터 정말 쉬지 않고 온갖 일을 해왔는데, 그런데도 연기는 다른 일로는 해소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연기할 때 정말 행복하다.

    이번에 오디션 봤을 때, 3시간30분을 기다렸다. 5시30분까지 오라고 해서 갔는데, 사람이 많다보니 미성년자 먼저 본다고 해서 9시까지 기다렸다. 오디션이 지정대본 4개 중 하나를 외워서 하는 지정연기랑, 자유연기가 있는데 대부분 지정대본은 짧은 걸 외워서 하지만 나는 가장 긴 걸 외웠다. 그래야 내가 더 많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으니깐.

    그런데 시간이 길어지니 중간에 성인 배우들은 지정연기 하나만 본다고 말해주더라. 너무 아쉬웠다. 자유연기도 정말 오래 준비한 거니깐. 아쉬운 게 아니라 그냥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기다리는 동안 더 지정연기 연습에 열중했다.

    그렇게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와 열심히 연기를 다 끝내고 나니깐 눈물이 나더라. 너무 고마워서. 연극은 그래도 프로필 보내면 연락은 오는데 에이젼시 오디션은 내가 200군데를 넘게 보내서 처음으로 연락이 와서 오디션을 본 거지 않나. 더구나 지정연기를 끝내고 나니 ‘연기가 좋다’는 말을 들으니 더 좋았다.

    에이전시측에서 이미지 맞는 역할 있으면 연락준다고 프로필 등록하라고 했는데, 나는 거기다가 ‘다른 연기 더 보고 싶지 않냐’고 졸랐다. (웃음) 지정연기로 충분하다고 괜찮다고 하는데 나는 정말 아쉬워서 그냥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연기를 하는 것 같다. 비록 오디션이었지만 내가 그렇게 연기 한 번 할 수 있었다는 게 너무 좋았다.

    그래서 나에게 연기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무엇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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