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구 관점의 고전이 아닌
    한국인 시선으로 ‘지성의 지도’를
    [책소개] 『사상의 번역』(윤여일/ 현암사)
        2014년 04월 13일 11: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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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가 기획한 인문교양 총서인 ‘우리시대 고전읽기/질문총서’ 2차분이 출간되었다. 2차분 목록에는 사회학자 윤여일이 시도한 동아시아 연구자 쑨거의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에 대한 비평 작업 그리고 영문학자 조현준이 재구성한 페미니즘 이론가·철학자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 해제 작업이 포함되었다.

    우리시대 고전읽기/질문총서는 사람의 삶과 문명의 행로를 밝히는 ‘우리시대 고전’ 50선을 선정해, 국내 소장 학자가 해당 저작과 사상가의 핵심 전언을 질문하고 해제한다.

    구체적으로는, 1950년대 이후 출간된 오늘의 인문사회 고전을 읽고 쓰며 지금의 현실과 고전과의 접점을 찾아낸다. 이 총서는 특히 영미권 주류의 지배문화를 의심하고 저항하는 주변부의 사유를 보여주는 고전,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균열과 전환을 읽어내는 경계의 이론을 발굴·소개하는 데에 중요한 의미를 두고 있다.

    ‘우리시대 고전읽기/질문총서’는 고전 읽기 자체만큼이나 중요한 질문으로,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먼저 점검한다. 우리가 탐구하는 고전이 서구 중심적 관점에서 선정된 고전은 아닌가, 고전을 읽는 일이 지성을 깨우치는 실천이 아닌 지식을 수입하는 행위에 그치지는 않는가, 고전 읽기가 고전과 현실과의 접점을 발견하는 데 제대로 성공하고 있는가.

    사상의 번역

    다케우치 요시미와 쑨거가 펼치는 방황, 좌절 그리고 희망

    “사상의 번역이란 힘을 다해 상대에게 다가가려고 애쓰지만, 동시에 상대와 동화될 수 없다는 자각을 품고, 상대에게 동일시하기보다 자신의 환경 속에서 스스로 길을 개척하는 노정이다. (…) 다케우치가 루쉰을 사상적 거점으로 삼아 문자로 남겨진 루쉰의 글에 다시 생의 호흡을 주입하고 루쉰의 중국을 끌어안으며 자신의 고뇌를 형상화했다고 한다면, 쑨거는 다케우치의 내재적 모순으로 파고들어 그를 되살리려고 노력하며 일본의 현실로 진입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상의 번역>은 시대를 움직인 텍스트를 어떻게 우리말로 적절히 옮길 것인지 알려주는 가이드북이 아니다. 여기서 번역은 역사, 국적, 세대를 가로지르는 역사적 인물 간의 만남을 어떻게 조망할 것인지에 관한 태도에 가깝다.

    한국 지식장 안에 동아시아의 사상이 갖는 고유의 질감을 해석해 꾸준히 선보였던 저자 윤여일은 쑨거가 읽은 다케우치 요시미, 그 사상적 만남을 그들이 처한 역사적 맥락과 하나하나 세심히 엮어 풀어나간다.

    이 작업을 통해 저자는 사상의 운명을 돌아보고 자기부정과 모순을 깨우치지 못하는 사상은 평면화된 시선으로 내려가 소비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점에서 쑨거-다케우치 요시미의 조우는 상찬 가득한 업적의 되새김이 아니라, 모순과 좌절을 읽고 그것이 발생할 수밖에 없던 현실 속 복잡함을 복잡함 그대로 읽어가는 과정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쪽에선 “일본의 대표적 지성”이라 칭송받았지만 다른 한쪽에선 “학자에 이르지 못한 평면가”란 비판을 동시에 받았던 인간 다케우치 요시미의 사상적 경로를 추적하는 데 집중한다.

    요시카와 고지로와 벌인 번역에 대한 태도 논쟁을 비롯해, 다케우치의 중요한 참조점이었던 루쉰이란 인물에 가닿기 위한 여정과 거기서 피어난 좌절과 모순의 연대기를 재정리했다. 이는 곧 역사상 인물이 드러낸 사고의 한계, 역사상 인물을 통해 극복해보려는 지적인 한계를 깊이 헤아려보려 했던 쑨거의 안목과 감각을 추적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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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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