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덜란드의 시리자, 사회당 돌풍
    네덜란드, 유럽 균형재정정책의나팔수에서 변화할 가능성 높아
        2012년 06월 20일 11:29 오전

    Print Friendly

    일단 축구얘기부터

    네덜란드 축구가 유럽컵 대회에서 예선 3전 3패로 탈락하면서 네덜란드는 집단 멘붕사태에 빠졌습니다. 2010년 월드컵 준우승에 이어 그 때 멤버들이 고스란히 이번 대회에 참가하여 우승까지 넘봤던 네덜란드 축구팬들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 지 묻고 있어요.

    그도 그럴 것이 네덜란드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로빈 빤 페시와, 독일 분데스리가 득점왕 클라스-얀 훈털라,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튼햄 핫스퍼에서 최고 스타가 된 라파엘 판 더 빠르트,유럽 최고의 미들필더로 꼽히는 이탈리아 인터밀란의 웨슬리 스나이더 등 쟁쟁한 선수들을 보유한 팀인데, 덴마크에게 덜미를 잡히더니 숙적 독일에게도 힘 없이 무너지고 포르투갈에게도 전반에 반짝 선전하다가 뒷심 부족으로 패배하면서 역대 최악의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이죠.

    전문가들은 이번 대회에서 선수들이 꼭 이겨야 겠다는 의욕이 부족했고, 또 스타 플레이어들이 즐비하다 보니 선수들 간에 팀 플레이가 잘 안되고 개인 플레이에 의존해서 졸전을 펼쳤다고 평가하더군요. 아마도 2012년 6월 17일은 앞으로 두고 두고 네덜란드 축구 최대의 치욕의 날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날은 네덜란드의 예선 탈락이라는 이변도 있지만, 그리스 총선에서 급진좌파당 시리자가 제 1당이 될 것인지에 대해 유럽 전체가, 아니 세계 금융시장 전체가 초미의 관심을 보였던 날이기도 했습니다. 축구 경기가 끝난 후 뉴스를 보니 시리자는 간발의 차이로 우파인 신민주당에게 패배한 것으로 나오더군요.

    하지만 불과 1년 전만해도 군소정당이던 시리자가 제 2당이 된 것은 놀라운 이변입니다. 그런데 비슷한 현상이 유로존 중심국가인 네덜란드에도 있어서 화제입니다.

    네덜란드의 시리자, 사회당

    한국에는 토마토당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사회당(Socialist Party)가 현재 여론조사에서 집권 자민련과 엎치락 뒤치락하며 1위를 달리고 있어서 9월로 다가온 총선에서 제 1당이 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좌파의 대표정당이었던 백년 전통의 노동당이 점점 우경화 되면서 이에 실망한 지지자들이 좌파의 정체성이 확실한 사회당으로 옮겨가면서 사회당은 처음으로 노동당을 추월하게 된 것이죠. 사회당이 제 1당이 된다면 네덜란드를 넘어 유럽정치 판도에 상당한 변화가 일게 됩니다.

    하원에서 현재 의석수와 여론조사 예상 의석 수 비교한 도표, 현재 제1당인 VVD(자민련)은 6월 17일 여론조사에서 28석을 얻는 것으로 나와 3석이 줄었고, PvdA(노동당)은 10석이 줄었고, PVV(자유당)은 1석이 줄고, 과거 여러차례 제 1당을 지켰던 CDA(기독민주당)는 21석에서 12석으로 더 쪼그라 들었는데, SP(사회당)은 15석에서 31석으로 두배나 지지율이 상승한 것을 볼 수 있다.

    현재 자유주의 우파인 자민련이 제 1당으로서 주도하고 있는 네덜란드 우파 연정은 유럽연합에서 독일이 내세운 강력한 균형재정정책의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독일 총리 안젤라 메르켈과 영국 총리 데이비드 카메론, 네덜란드 총리 마크 루터가 남유럽 나라들의 재정적자 줄이기를 가장 강하게 압력을 행사하는 3인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 네덜란드에 좌파정부가 들어서서 독일에 등을 돌리면 메르켈은 유럽 정상 사이에서 고립되고 내년에 있을 총선에서 자기의 재선도 장담 못할 지경에 처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메르켈로서는 네덜란드 우파가 집권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일 겁니다.

    유로존 위기가 워낙 크기 때문에 네덜란드 총선 역시 그리스처럼 국내 쟁점보다 유럽연합의 진로를 놓고 유럽 자본 대 노동의 힘겨루기가 될 것 같습니다. 네덜란드는 통상국가이고, 자국 대기업에 비해 국내시장이 너무 작아서 유럽통합에 물주 노릇을 하면서 통합을 앞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나라입니다. 그래서 유럽연합내 회원국 분담금이나 그리스 구제금융에도 인구 수 비례로 가장 많은 비용을 부담하고 있습니다. 이런 물주 나라에서 자본 주도의 유럽통합에 딴지를 거는 정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높아지면 유로존의 위기는 훨씬 심화되는 것이죠.

    사회당은 어떤 당인가?

    사회당의 원조는 네덜란드 남부 브라반트 지역의 모택동주의자 정치그룹이었습니다. 이들은 70년대부터 모택동주의의 정수인 ‘인민은 바다고 정당은 그 바다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다’라는 생각을 이어받아 활동가들이 마치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집집마다 돌면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주민들을 정치의 주체로 내세우는 활동을 헌신적으로 펼치면서 지역에 뿌리내렸습니다.

    그런데 1989년부터 시작된 동구권 몰락을 보면서 사회당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론 등 마르크스 레닌주의 강령을 폐기하고, 민주주의적 사회주의로 당의 이념을 바꾸고 대중정당으로 방향을 전환합니다. 사회당은 1999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아탁운동과2001년 제노바 투쟁 이후 유럽에 확산된 반세계화운동에 참여하는 유일한 제도권 정당이었습니다. 이들은 국제투기자본과 공기업 매각, 복지예산 축소, 해외공장 이전 등 자본의 공세에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였고, 9.11 이후 미국이 주도한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이라크 침략에 반대하는 대중운동에 적극적으로 결합하면서 유일한 선명 좌파정당으로서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다른 정당들이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경제성장에 취해에 있을 때 두 명 밖에 안되는 국회의원 수를 가지고 의회에서 ‘철 지난 공산주의자의 계급타령’이라는 조롱을 받으면서도 밑바닥부터 허물어져가는 복지국가시스템의 문제점을 물고 늘어지며 점점 대중의 관심과 지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역대 총선에서 사회당 득표수와 의석수

    역대 선거에서 사회당 지지율의 변화 추세

    사회당은 2008년까지는 선거를 치를 때마다 성장하다가 2010년 지방선거에서 대패하며 위기를 겪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창당 때부터 당을 이끌어온 강력한 카리스마의 지도자 얀 마라이넨스가 건강상의 이유로 당 대표에서 물러나고, 비례대표 2번이었던 여성의원이던 아그네스 칸트가 당권을 이어받았는데, 얀 마라이넨스의 공백을 메우기에는 그녀의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100% 정당명부제를 하는 네덜란드 선거에서는 지역을 도는 운동보다는 미디어에서 당 대표 간의 논쟁이 가장 대표적인 선거운동입니다. 그런데 아그네스 칸트가 논쟁에서 날카롭게 상대에게 날을 세우는 데는 능하지만, 곤란한 문제는 유연하게 넘어가고, 경우에 따라 상대방의 비판을 수용하는 제스처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당에 기대를 걸고 표를 줬던 유권자들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아그네스 칸트

    결국 2010년 지방선거 패배를 책임지고 아그네스 칸트가 당수 자리에서 밀려나고 의원 투표로 새로 에밀 루머르가 당대표로 등장하였는데, 그는 교사 출신에다가 지방정부 장관 경험도 있어서 대중들에게 친근한 인상과 말솜씨를 내세워 인기몰이를 해나가면서 사회당의 인기를 다시 높이고 있습니다.

    왼쪽 턱에 손을 얹은 사회당의 전 당수 얀 마리이네슨, 오른쪽은 현 당수 에밀 루

     사회당 정책 들여다 보기

    사회당은 메르켈이 주장하는 재정적자 3% 지키기에 딴지를 걸고 있습니다. 이미 2분기째 마이너스 성장하고 있는 네덜란드 경제를 살릴려면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재정적자 3% 가이드라인에 구애 받지 않고 일단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돈을 풀고, 경기가 회복되면 그때 재정적자를 줄이자는 것입니다.

    또 지불능력있는 사람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연 소득 15만유로(원화 2억 2천 만원) 이상의 고소득자들의 소득세를 65%로 높이고, 35만 유로 (약 5억원) 이상의 주택융자를 얻은 부자들에게는 융자금에 대한 이자 면세조치를 제한하는 이른바 ‘빌라보조금’을 중단하겠다고 합니다.

    네덜란드 정부는 국민들의 자기 집 마련을 돕기 위해서 30년 상환 주택융자금에 대해서 세금을 면제해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고급 빌라를 구입한 부자들도 이 혜택을 받게 되므로, 주택융자를 많이 얻은 부자들이 보조금을 더 많이 받는 기형적인 보조금 제도를 가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중입니다.

    이에 대해서 우파정당들은 자신들의 지지기반인 부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이 제도는 절대 안 건들인다고 버티고 있는데 사회당은 이 제도를 손보겠다는 거지요. 이런 과감한 부자 증세정책은 특히 저소득 저학력 층의 강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파 측에서는 안 그래도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이 이런 조치까지 맞으면 완전히 붕괴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번 9월 선거에서는 이런 경제이슈가 선거의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가지 눈 여기 볼 점은 한국에서는 저소득 저학력 층이 새누리당을 더 지지하는데, 네덜란드에서는 급진좌파 성향의 사회당을 지지하는 현상이 있습니다. 한국과는 양상이 많이 다르지요. 사회당은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언어를 선택하고 대중과 소통에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선거 구호도 항상 짧고 압축적인 말로 나타내는데, 예를 들면 STEM TEGEN, STEM SP (반대표를 던질려면 사회당에 투표하라), 그 다음 선거에서는 STEM VOOR, STEM SP(사회당에게 찬성표를 주시오), NU SP (바로 지금 사회당을) 같은 선거 구호를 내세워 다른 당들의 메시지에 비해서 눈에 띕니다. 하지만 고학력 중산층들은 사회당이 너무 흑백이 강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고, 포퓰리즘을 쓰고 있다고 비판하는 입장이라서 사회당에 상대적으로 낮은 지지를 보냅니다.

    이제 선거는 세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여름 휴가 시즌이 지나면 선거는 코앞에 있습니다. 사회당이 제 1당이 되어도 과반수인 76석을 얻으려면 노동당과 녹색좌파당 등 사회당 오른 쪽에 있는 당들과 연정을 성사시켜야 하고 기존의 당론에서 많이 양보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럽 은행들과 대기업들을 살리기 위해서 서민들을 쥐어 짜고, 복지국가를 허무는 현재의 메르켈 식의 경제정책은 서민들의 반발을 살 수 밖에 없고, 이와는 정 반대인 사회당의 친 서민정책은 노동자와 서민들의 생존권 사수투쟁의 지지와 엄호를 받을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되면 유럽을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만들고, 복지국가를 무너뜨려 이윤을 높여 세계시장에서 유럽자본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국, 아시아 나라들과 경쟁에서우위를 확보하려는 유럽자본의 계획은 완전히 엉클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네덜란드 9월 총선은 프랑스 대선과 그리스 총선의 뒤를 이어 메르켈의 시장독재에 맞선 유럽 노동자와 시민들의 한판 승부의 장이 될 것입니다.

    이런 자본의 입맛 대로 사회를 요리하려는 자본의 기도에 대한 유럽 노동자, 서민들의 대중적 저항은 한국의 투쟁하는 노동자 시민들의 사기를 높이는 효과도 있고, 초국적 자본에 맞서는 좌파의 정치투쟁의 하나의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필자소개
    레디앙 네덜란드 통신원/ 개인 이메일 jjagal55@hotmail.com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