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설과 한 고교 실습생의 죽음
        2014년 02월 13일 01: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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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깨가 뻐근하고, 오른쪽 옆구리도 쑤시고 아프다. 어제(11일) 저녁 퇴근 후 아파트 앞 도로와 주차장에 쌓인 눈을 치우느라 플라스틱 삽을 들고 육체노동을 했더니 생겨난 후유증 같은 통증이다.

    “이제 눈도 지겹다”

    이런 이야기가 울산 사람들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온다. 특히, 회사에 출근해서 이틀 동안 공장 곳곳에 쌓인 눈을 치우느라 생고생을 하셨던 사람들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흰 눈에 대한 저주다. “군대 생활 생각이 절로 난다”는 소리도 들린다.

    과거 울산 사람들은 텔레비젼 뉴스를 보다가 서해안이나 강원도에 폭설이 왔다는 화면을 보면서도 그곳 주민들의 피해나 고통을 살피기보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버린 설경을 먼저 동경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겨울만 되면 시도때도 없이 “울산에도 흰 눈이 펑펑 내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절절(?)했었다.

    어제 만났던 후배 활동가도 “위원장님 저는 아이들이랑 이번 주말에 밤 기차를 타고 강원도에 눈 구경 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울산에 이렇게 많은 눈이 오는 바람에 계획을 취소했습니다”라고 할 정도로 울산은 눈을 보기 어려운 동네였다.

    내가 1980년에 울산에 나와 오늘날까지 살았으나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린 적은 한 두어번 정도로 기억될 뿐이다. 기상청의 발표로는 9일부터 11일까지 3일 동안 울산에 내린 눈의 양이 16센티미터가 좀 넘는다고 했지만 곳곳에 따라서는 이보다 훨씬 많은 눈이 내렸다.

    울산지역의 폭설로 인한 피해 사례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울산-눈

    포터공장 타이어서브장 입구 캐노피가 무너진 장면

    평소 눈이 자주 오는 곳이 아니라 제설장비가 턱없이 부족해 곳곳에서 도로가 통제되고, 수백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고, 비닐하우스 파손 등 농작물 피해가 속출했고, 모듈단지와 농소공단의 공장 지붕 붕괴로 2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다수의 부상자들이 발생한 사고가 생겼다.

    부품 납품이 차질을 빚으면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사태가 빈발했고, 급기야 현대자동차 4공장(내가 근무하는공장) 타이어 서브장 입구에 설치된 캐노피가 쌓인 눈의 무게를 못이기고 붕괴되면서-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몇 시간 동안 공장 가동이 중단되었다.

    이번 폭설로 인한 인명사고 모두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시민들과 국민들의 가슴을 더욱더 아프게 한 사건은 한 고등학교 실습생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10일 저녁 10시19분 북구 농소동 소재 현대차 협력업체인 금영 ETS공장의 지붕이 무너져 실습 나왔던 고등학교 3학년 19세 김모 노동자가 깔려 사망했다. 김군이 이 업체에서 실습을 시작한 것은 지난 해 11월부터다. 친구 3명과 함께 이 공장에 실습을 나갔지만 다른 친구들은 이달 초에 “힘들다”며 그만뒀고, 김군 혼자 계속 다녔다.

    김군이 다니던 고등학교 졸업식은 12일. 김군은 사고 당일 야근만 마치면 12일까지 쉬다가 졸업식을 하고 다시 출근할 계획이었다.

    김군의 어머니는 아들의 시신이 안치된 영안실에 앉아서 “아들이 현장실습을 하면서 월급통장을 나에게 줬다. 가정형편을 생각하는 착한 아들이었는데 모든 게 꿈인 것만 같다. 내일이 졸업식인데…” 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세상은 넓은지 몰라도 인연은 늘 가까운 곳에 있는가 보다.

    “형님 저 형근인데요, 지금 KTX타고 울산가는 중입니다. 제 누님 아들이 자동차 부품회사 실습 나가서 일 하다가 어젯밤 사고로 공장에서 죽었데요. 북구청 앞 장례식장에 있다는데요, 울산 도착하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형이 좀 도와주셔야 겠어요”

    어제 아침 출근전에 울산에서 발생한 고등학교 3학년 실습생의 사망 사건을 뉴스로 보고있는데 내 고등학교 후배인 형근이로부터 이런 문자가 날아왔다.

    울산-실습생

    김군의 3학년4반 급우들이 영안실에 세워둔 조화

    ‘설마’하는 마음으로 출근해서 전화를 걸어보니 뉴스에 나왔던 그 ‘김군’이 내 후배의 조카(누님 아들)가 맞았다. 헐~ 이럴수가?

    오늘(12일)은 죽은 김군의 졸업식 날이다.

    김군의 친구들은 오늘 학교에서 졸업장을 받고, 꽃다발을 받고, 축하의 인사들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김군은 그 자리에 없었다. 김군의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이 졸업장을 가지고 오후에 영안실을 찾아 올 것이라고 한다.

    그 풍경을 상상만해도 가슴이 미어진다. 내 심정이 이럴진데, 김군의 부모님과 형제, 친척들, 그리고 선생님과 친구들의 심정을 내 어찌 헤아릴까.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서 공업고등학교 3학년까지 공부를 하고, 졸업도 하기 전에 실습이라는 제도로 노동현장에 투입되었다가 어이없이 운명을 다한 이 아이의 영혼을 누가 무엇으로 달랠 수 있을까요.

    방금 전 후배랑 통화를 했다. 아직까지 회사 측이랑 공식적인 만남조차 없었다고 한다. 경찰 조사 결과도 명확히 전달받지 못하고 있단다. 학교 측은 문상을 왔단다. 장례일정은 미뤄두고있는 상황이란다.

    회사 측의 책임, 학교 측과 교육청의 책임, 어른들의 책임, 우리 사회의 책임,,,,

    어찌 정리하고 이 아이를 하늘나라로 보낼수 있을지? 퇴근후 영안실을 찾아야 한다. 내가 뭔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필자소개
    전 현대자동차노조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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