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급은 교육으로 작동한다
    [책소개] 『교육은 혁명의 미래다』(스탠리 아로노위츠/ 이매진)
        2014년 02월 08일 12: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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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교육은 노동을 혐오한다. 2014년 2학기부터 시간선택제 교사 600여 명이 학교에 배치된다. 학교 비정규직의 평균 급여는 4인 가족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134만 원이고, 서울 주요 대학 10곳의 계약직 교수 비율은 35퍼센트를 넘는다.

    조합원이 6만 명인 잔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노조 아님’ 통보를 받았다. 대학생은 학교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파업 중인 청소 노동자를 내쫓으려 하고, 대학 교수는 비정규직 교육 노동자의 모순이 응축된 프롤레타리아, 곧 ‘프로페서리아트’로 전락했다. 대학과 기업은 학문 성과와 지원금을 맞바꾸는 ‘산학 복합체’로 변신했다.

    이 책은 계급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노동 계급과 육체노동을 적대시하는 미국의 교육을 노동 계급의 관점으로 진단한 교육 비평서다.

    30년 동안 대학과 교육 문제를 연구한 뉴욕 시립 대학교 대학원 교수인 스탠리 아로노위츠는 노동자도 철학과 예술을 즐긴 아버지 세대 ‘노동 귀족’ 시절에 관한 기억, ‘뉴욕 자유 대학’과 스태튼 아일랜드의 ‘실험 학교’ 등 직접 대안 학교를 만들고 운영한 경험, ‘지식인’이 아니라 ‘행동인’을 말한 안토니오 그람시와 ‘해방의 교육’을 추구한 파울루 프레이리의 교육 철학을 통해 세계와 자신의 관계를 인식하고 공공을 위한 공적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노동자 시민을 키우는 교육 혁명의 길을 찾는다.

    교육 미래

    한국은 지금 선진화라는 미명 아래 신자유주의의 모범 국가인 미국을 바짝 뒤쫓는다. 대학 순위를 매기고, 좋은 대학에 가려고 에세이를 대필하며, 취업을 위해 자기계발과 자격증 수집에 올인해야 한다.

    학교 교육과 대학이 황폐해지고 학교의 주체인 교수와 학생과 학교 노동자가 주변화되는 미국의 오늘을 보면 지금 한국의 학교를 휩싸고 있는 ‘비정상’의 내일을 ‘미리 보기’ 할 수 있다.

    죽은 학교의 사회

    1부 ‘죽은 학교’는 학교 교육이 노동자 사이의 위계와 사회의 계급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노동 귀족’과 대안 학교의 경험을 통해 변화의 가능성을 찾는다.

    1장 ‘계급은 교육으로 작동한다 ― 어느 노동 귀족의 이야기’는 학교 교육 없이도 마르크스와 바쿠닌의 저작을 읽고 셰익스피어의 문학과 클래식 공연을 즐긴 아버지 세대 노동 귀족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로노위츠는 ‘뉴욕 자유 대학’과 스태튼 아일랜드 대학의 ‘실험 학교’ 등 대안 학교를 만들고 운영한 경험을 나누려 했지만, 이제 학위는 상급 학교와 기업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자격증 노릇을 할 뿐이다.

    2장 ‘학교 교육에 반대한다 ― 불평등이 규범이 된 오늘의 학교’에서는 교양 있는 시민을 양성하고 노동의 가치를 공유해야 할 학교가 계급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구조를 짚는다.

    듀이의 교육적 휴머니즘이 왜곡돼 적용된 ‘표준 운동’은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기 전에 문화 자본과 사회 자본을 이미 소유했다고 가정한다. 따라서 학교에 갈 기회가 평등하면 그 뒤에 따르는 계급 불평등은 개인의 책임이며 현실적으로 타당하다는 인식을 낳았다.

    3장 ‘세계는 다시 뒤집혔다 ― 적응이 아닌 대안을 향해’는 전세계 사람들 수억 명이 일자리를 찾아 떠도는 새로운 인클로저 사태를 폭로한다. 호황 시대의 끝에 나타난 워킹 푸어와 심각한 고용 불안, 필수가 된 평생 학습은 우리가 ‘적응’해야 할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아니라 비판적 모색을 통해 극복해야 할 난관이다.

    2부 ‘삶의 교육’은 2차 대전, 냉전 종식, 주식 시장 붕괴 등 역사적 국면에 따라 대학 체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살펴본다. 또한 대학의 하위 주체가 놓인 상황과 대학 안의 노동조합 운동을 보여준다.

    4장 ‘대학 교육은 공공재다 ― 자원과 윤리 사이에서 비틀거리는 대학’에서는 1960년대 공립 대학의 성장과 공립 대학을 포함한 공공재를 향한 보수 세력의 공격을 정리한다.

    공립 대학은 2차 대전이 끝난 뒤 모릴 법, 재향군인재적응법, 냉전 덕분에 지원금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지만, 버클리 대학교 총장 클라크 커의 ‘대규모 종합 대학’ 계획으로 기업화와 서열화, 지식 상품화라는 삼각 파고를 겪게 됐다.

    5장 ‘잃어버린 낙원을 찾아서 ― 자유의 부재에서 혁명은 시작된다’에서는 전문직 노동자가 노동 시장의 새로운 하위 주체로 등장한 현실, 비정규직 교수 문제, 교수진과 경영진의 ‘지배권 공유’ 문제를 살펴본다.

    대학과 기업이 제휴한 ‘대학-기업 복합체’가 나타난 뒤 학계에는 비밀주의가 팽배해졌고 공유 문화도 사라졌다. 대학은 비시민권자 교수를 박해하고, 정치적 이유로 종신 재직권을 박탈하며, 노동 시장에서 인기 없는 인문학 관련 학과를 통폐합하는 등 학문과 교수의 독립성을 크게 훼손했다.

    6장 ‘안녕들 하십니까, 프롤레타리아 교수님 ― 상상력의 연대와 대안의 가능성’에서는 프롤레타리아가 된 교수, 곧 ‘프로페서리아트’의 등장과 교수와 조교가 노동조합 운동을 하게 된 원인과 과정, 한계와 비판을 살핀다. 사립 대학의 교수는 노동자가 아니라 경영자라는 법원의 ‘예시바 판결’의 문제도 지적한다.

    7장 ‘대학을 지배하는 노조, 대학을 지키는 노조 ― 새로운 세계를 위한 대학 공동체’에서는 예산 통제권을 쥐고 임금을 이용해 대학 교수 사회를 위계적으로 구분하려는 대학 당국에 맞서 1970년대 크게 성장한 교수 노동조합이 대학의 지배권을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8장 ‘배움은 노동자의 권리다 ― 노동조합과 노동자 교육’은 최근 어려움을 겪는 노동 운동과 노동자 교육을 말한다.

    지난날 노동조합은 조합원과 지역 사회를 위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실행했고, 노동자 교육을 맡은 활동가는 현장에 실제로 필요한 법적 자문과 운동의 정당성을 제공하는 ‘무자격 변호사’ 구실을 했다. 그러나 1950년대 조합원 수가 늘면서 노동자 교육은 그저 서비스나 부가 혜택이 되고, 조합원은 일을 맡기는 의뢰인으로 전락했다.

    3부 ‘교육 혁명’은 안토니오 그람시와 파울루 프레이리의 교육 철학에서 교육 혁명의 길을 찾는다.

    9장 ‘행동하는 사람이 세계를 이해한다 ― 그람시의 교육 철학과 유기적 지식인’에서는 직업 교육과 전문 교육보다 전통 인문학 교육인 ‘형성적’ 교육을 해야 한다는 그람시의 교육 철학을 다룬다. 그람시는 교육이 아이들의 운명을 미리 결정하면 안 된다고 봤다. 또한 평등주의 사회 질서를 형성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엘리트 지식인을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0장 ‘교육은 혁명의 미래다 ― 다시 읽는 프레이리와 해방의 교육학’에서 다루는 프레이리는 진정한 배움은 실천에서 발생한다고 보고, 학습자가 교육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급 투쟁은 ‘문제 제기 교육’과 ‘대화식 교육’을 통해 모든 인류의 해방이라는 보편적 이익을 실천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와 마르크스 ― 미래의 교육 혁명을 위한 종이 짱돌

    486 출신 강남 ‘돼지 엄마’가 바로 우리다. 아이의 성적과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패거리를 형성하고 따돌림을 조장하는 돼지 엄마는 한국의 교육 문제가 단순히 정권이나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중산층 계급 동맹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 졸업생 중 4분의 1은 실업자가 되고 나머지는 대개 비정규직이 된다. 불안정한 일자리와 경제적 불평등은 더 좋은 대학 졸업장을 따지 못한 사람한테 마땅한 몫으로 여겨진다.

    부모는 아이의 손에 마르크스와 셰익스피어가 쓴 고전 대신 ‘수학의 정석’과 ‘맨투맨 종합영어’를 쥐어주며 노동을 혐오하는 체제를 더 튼튼하게 만든다. 어쩌다 486세대처럼 ‘우연히 지식인이 된 사람들’이 나타난다 해도 잠시 저항하다 사라질 뿐이다.

    아로노위츠는 반노동적 교육 환경과 학교 황폐화의 선진국인 미국의 교육 현장을 향해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일자리, 일자리만 외쳐대는 직업 중심적이고 기업 문화적인 관행을 버리고 새로운 지향점을 창출할 수 있을까?’, ‘더 큰 세계와 자신의 관계를 인식할 수 있게 자신을 돕는 교육 체계를 만들 수 있을까?’

    깊이 있는 인문학 교양과 폭넓은 사회적 연대에서 질문의 답을 찾는 《교육은 혁명의 미래다》는 교육 공동체 운동과 대안 대학 운동 등 진정한 교육을 향한 열망이 꿈틀거리는 한국에 삶의 교육을 여는 교육 혁명으로 나아갈 하나의 길을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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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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