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림 삼분지 일은 내가 키워"
    [이기순의 생애 이야기-1]아홉살부터 살림 도맡다시피
        2014년 02월 04일 05: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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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디앙에 게재한 바 있는 ‘평양출신 할머니의 생애사’ 연재에 이어 최현숙 선생이 ‘이기순의 생애 이야기’를 이어서 연재한다. 최현숙 선생께 감사드린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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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순 선배님과 나의 만남은 2011년경부터였다. 내가 전국요양보호사협회 부협회장으로 근무할 때, 모임이나 교육 자리에 협회 회원으로 참여한 선배님을 가끔 만났었다. 선배님은 늘 일부러 오셔서, “고생이 많으셔서 어쩌유~”하며 먼저 인사를 주셨었다.

    “최선생이 허자믄 혀~. 근디 말 주변이 없어서….”, 피차간에 유일한 염려였다. 그런데 밥 먹자는 것도 물드시라는 것도 마다하며, ‘말’을 풀었다.

    여걸 같은 어무이, 새각시 같은 아부지

    (이기순) 본 나이는 올해(2013년)로 육십팔이여. 사십육년생이제. 호적에는 사십구년생잉게 삼년이 잘못된 거여. 고향은 충남 연기군 금남면이구. 딸 아들 아들 딸 아들 아들 딸, 사남삼녀의 젤 위 장녀여. 어려서부터 일을 무지 많이 혔지. 그려도 힘들어라 안하고, 재밌~어라 혔어.

    나 태어날 때는 가난혔지만, 자라면서는 살림이 많이 폈댜. 시집갈 때는 논 열여덟 마지기에 밭이 천 평이 넘는 부농이 되았지. 어무이 아부지 땜에 어려서 먹는 고생은 덜혔지만, 일을 죽쌀나게 많이 허면서 큰 거여.

    아부지가 어려서 고생이 많았다더러구. 큰아부지랑 둘이 형제고, 그 밑으로 여동상이 하나 있었제. 하도 가난하게 자라서, 죽이라면 진저리가 난다고 죽을 못하게 혔어. 그라니 나는 어디 가서 죽 한 그릇을 얻어먹으면, 그게 그르케 꿀맛이였어. 당시는 독사풀도 훑어다가 볶아서 곡식이랑 죽쒀 먹구, 피밥에 보리두 갈아서 호박잎 넣구 죽들을 쒀먹었거든. 자식들게는 고생 안 시킬라구, 두 냥반이 열심히 장사하고 번 거제.

    건어물이니 옷감이며를 주로 행상을 혀셨어. 그 돈으로 논 사고 밭 사고 재산 늘리면, 형네가 머슴들이랑 동네 놉 사서 그 농사를 다 지어주었제. 형네 집이 가차이 살면서 반찬이구 머구를 끼니마다 나놔먹고, 아그들은 서로 제 집처럼 드나들며 한테 자고 그럈제.

    부모님 다 충남 연기가 고향이여. 아부지가 술도 안 잡숫고 새각시 모냥 얌전하다고, 온 동네 사람들이 칭찬들을 혔어. 게다가 형제간에 을~매나 동기간 정이 좋은가 몰러.

    아부지가 왜정 때 보국대(일제가 1938년 조선인 학생, 여성과 농촌 노동력을 동원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를 다녀왔는디, 형 대신으로 한 번을 더 갔다 왔댜~. 맏아들 잘못 되면 안 된다고 대신 또 간 거제. 근디 두 번째 간 일본 탄광서 굴이 무너지는 바람에 아부지 눈 하나가 실명을 혔어. 그려도 원망 한마디를 안허셨어.

    그렇게 우의가 좋으니 우리 농사를 다 맡기고 그런 거제. 보국대 가서 벌어온 거랑 품삯일 한 거를 모아서, 큰아부지 앞으로 밭을 사줬댜, 내가 백일이나 됐을 땐 논도 사줬고. 자기 땅 한 쪼가리 읎을 때고, 자기 자식도 낳는디 말여~. 어무이도 암말도 안혔대.

    할아부지는 아부지 일곱 살에 일찍 돌아가셨댜. 그랴니 할무이가 고생이 많았제. 더구나 왜정 때니 오죽혔겄어. 아부지도 혼인 전에는 남의 논밭 일 해줘서 먹구 살다가, 결혼하구는 주로 어무이랑 장사를 다닌거제. 어무이가 도토리 주워다가 묵 쒀서 행상도 하고 그렸대. 나 낳고 집 하나를 얻어 세간(결혼을 통한 분가)을 냈댜~.

    이기순1

    할머니와 어머니가 물려주신 밥사발

    분가할 때 할무이가 준 밥사발 두 개를 어무이가 나헌티 물려줘서, 내가 여직 간직하고 있어.  이 거 두 개(위 사진 왼쪽)는 할무이가 어무이 세간 내줄 때 해 준 거구, 이거 네 개(위 오른쪽)는 내가 결혼해서 살림날 때 친정 어무이가 해 준 거여. 이 거를 내 여동상들하구 딸들헌티 줄라구 안 버리고 있는 거여. ‘어무이 보듯이 이걸 봐라.’ 그랄려구. 나헌티는 신주단지랑 같어~.

    울 어무이는 치마를 둘러서 여자지, 남자 승질이여. 자식들 일곱을 모두 혼차 낳은 양반이여. 동상들 낳을 때 나도 못 들어오게 혔어. 그르니께 여걸이래지~. 아그를 숩게 낳는 사람도 아니었어. 어떨 때는 메칠을 배를 틀며 아프다고 혔제.

    애를 낳을 때가 되면 아부지만 장사를 나가게 혀고, 어무이는 집에 계셔. 아그 낳을 준비를 하는 거여. 가세니 무명이니 배내옷들이랑 아그 이불도 챙기구 맨들구. 그르다가 배가 틀기 시작허면, 물 끓여서 뜨거운 물이랑 찬물을 따로 떠서 들여놓고, 암도 못 들어오게 혀~. 나더러는 방 멀찌감치 있음서 누구 못 오게 지키다, 부르면 그 때 오래는 거여.

    안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나다가 난중에 소리를 막 몇 번 지르고는, 응아~ 응아~ 하구 아그 울음소리가 나. 그러고도 한참을 혼차 혀. 난중에 물어봉게 아그 배꼽자리서 무르팍까지로 탯줄 자를 자리를 잡아 손으로 꾹 눌러서는, 속을 아그 쪽으로 두 번 밀어올리고, 그 자리를 바람 안들어가게 무명실로 묶는 거제. 그라구 가세로 자르면 배꼽이 되는 거여.

    피묻은 이불이랑 옷이랑 걸레랑도 꽁꽁 싸두었다가, 난중에 혼차서 빨아. 큰 엄니나 할무이도 어무이가 원체 고집을 허고 또 별일없이 잘 낳응게, 그려러니 혀드라구. 낳고 나면 미역국도 끓여오고 불도 때주고 허며, 산간을 해주제.

    나도 자식들 낳을 때마다 그 생각이 나기는 혀드만, 엄두를 못내겄드라고. 어무이 말로는 무르팍 꿇고 궁둥이부터 머리까지를 비스름히 세우고 똥누드끼 힘을 주면 숩게 난다고 허드만, 아파죽겄는디 그게 돼? 하하~

    살림이고 장사고도 어무이가 거시기를 혀. 어무이가 장사로 눈이 트이고 요령이 생기면서 ‘이거 하자, 저거 하자’ 먼저 궁리를 내고, 아부지는 협조를 혀서 일을 만드는 거제. 처음에는 같이 다님서 새우젓이니 건어물 행상을 허다가, 난중에는 따로 장사를 나가고 그럈어.

    그때는 주로 곡식으로 값을 받제. 그러면 그걸 또 장에 내다 팔아서 돈을 만드는 거여. 동생들 아그 때는 업고도 다니고, 좌판 함서는 옆에 땅에다가 뉘어놓구두 혔어. 아부지는 과자도 갖구 댕겼구. 장 안에 가게 하나에다 물건이랑 값으로 받은 곡식이랑을 맡겨 놓기도 혔댜.

    아부지는 세상 부처랑게~. 어무이 말고 다른 여자 보는 것도 읎었제. 돈을 어무이가 다 관리하고 머든 어무이가 먼저 나서도, 같이 거들면서 재산을 불린 거제. 그려니 해년마다 다르게 땅이 늘어난 거여.

    나는 아홉 살버텀 살림을 도맡다시피 혔어. 그때는 사내동상이 둘 생겼을 때여. 그 전에는 큰엄니랑 할무이도 도와주고 혔지만 그때부터는 주로 내가 혔어. 집에 머슴도 하나 있었는디, 남잔게 농삿일을 주로 하고 집안일은 안 혔지. 그 때는 큰 가마솥에 불을 때서 밥을 혀잖여~. 밥을 풀려면, 부뚜막에 촐싹 올라 앉아서 푸는 거여, 키가 안 당게.

    우리 집터가 수근혔어(습기가 많고 물이 스며나옴). 집 바로 옆에 시얌이 있었거든. 물이 아주 좋아서 동네 사람들이 모다 그 물을 먹는 물로 혔어. 근디 그 시얌 때문에 집이 수근한 거여. 그르니 뚝 허면 고쿠락(‘아궁이‘의 충청도 방언) 한 쪽이 주저앉는 거여. 그 거를 흙을 게서 발라서 부뚜막을 고쳐, 그 조막막한 손으로. 여자 종은 읎었제. 남자 머슴만 처음엔 하나, 난중엔 농사 커지니께 하나 더 해서 둘, 농사지으라고 둔 거제. 큰딸이 있으니 나 믿고 살림은 다 나헌티 맡긴 거여.

    우리 어무이는 살림을 몰러. 어무이가 집에 있을 때도, 의례 내가 허고, 어무이는 정지[부엌]에도 별라 안들어왔어. 살림 배운 것도 할무이나 큰엄니헌티 주로 배왔어. 빨래를 양잿물에 담갔다가 냇가에 가서 빠는 건데, 그 어린 고사리 같은 손이 겨울기면 오리발모냥 되제. 빨~게 가지구.

    게다가 우리 집이 팔풍받이여. 앞 뒤 옆으로 사방팔방이 모두 바람이 드는 집이라 그거여. 그랴니 겨울기면 을~매나 추워. 빨래를 혀서 널어두, 꽁꽁 얼기만 허고 마르지를 않는 거여. 방도 우풍이 너무 쎄놔서, 바닥은 불을 때서 뜨거워도 웃공기는 추분 거여. 물을 떠다 놓으면 아침녁에는 얼어 있어. 그랴니 나구 동상들이구 노상 콧물을 누렇게 달구 살았제. 내가 동상들 본다고 해봤자, 그 어린 게 을매나 잘 혔겄어~? 동상들 애기 때, 아부지랑 어무이가 번가라가매 배우에 올려놓고 자고 혔제.

    나가 어려서부터 어무이를 닮았는가 극성시러웠어. 가시나라구 산에 낭구하러 다니는 걸 어무이가 못하게 혀도, 나보다 큰 칭구들이랑 사내애덜 따라 나서서 낭구를 하러 다녔어. 좋은 소리 못 들어도, 욕심이 많아서 먼처 따라나서는 거여.

    그랴고 동네 감이라는 감은 다 주스러 댕겼어. 안직 안익어서 요망큼할 때, 바람 불면 떨어지는 그거를 줍는 거제. 시방들이야 먹지도 않여, 그런 거는. 새파란 걸 주워다가 놔두면 삭어서 익제. 그럼 그거를 동상들을 멕이고~. 엄니 아부지는 좋아라 안 허셔도, 동네사람들은 싹수있다구 칭찬을 많이 혔제.

    그 때 배추가 시방같이 좋기나 혀? 나승귀[푸성귀]같이 작고 속도 안차서, 김장 한 접을 혀도 많지가 않혀. 진잎(날것이나 절인 푸성귀 잎) 무청에 소금을 뿌려뒀다가 다음 날이나 물을 부어, 배추도 같이 절이고. 담날 아침 일찌거니 속을 만들어서 배추짐치를 담제. 어무이는 의례 안 혀고, 할무이도 일가면 못 하니께, 내가 혼차서 많이 담갔어. 김장은 진잎짐치 배추짐치 동치미 알타리 그런 거를 담괐제. 배추니 무니 모두 지지겁지(떨어져 나오는 부스러기나 잔 조각. 동의어=지지깨비) 같지. 시방 같으면 그런 거는 버릴 거여. 그런 거 몇 단지를 담아서 광에다가도 놓구 땅에다도 묻고 혀서, 져우내~ 꺼내다 먹제.

    보리쌀 껍데기를 일일이 갈아서 딱아서 밥을 혀. 엄니 아부지는 보리밥을 잘 안 먹었제. 그르니 두 양반 걸루 쌀을 따로 씻어서 손으로 살짝 떠서는, 보리쌀 앉힐 때 가운데에다 구녁을 내서 가만히 앉히는 거여. 그래야 안흐크러지고 쌀밥 두 그릇이 나오니께. 아그들이니 머슴이니는 쌀알 귀경이 힘든 꽁보리밥을 먹는 거여. 고구마밥도 우리 어무이는 안 좋아혀. 다른 엄니들 허고 많이 달랐제. 지금 생각허면 현명헌 분이여.

    미뚜기 깨구리 돼야지… 살림 삼분지 일을 내가 키웠다고들 혔어.

    그 때는 미뚜기가 그르~케 많았어. 내가 하도 극성시러워서 자다말고 깜깜할 때 깨서는, 보릿쌀이랑 쌀을 씻어 밥을 해놓고는, 혼차 새벽에 논을 나가는 거여. 서리 마르기 전에 가야 미뚜기가 도망을 못가, 무거워서. 가을기면 미뚜기가 많거든.

    그걸 한 주전자 가득 잡아다 가마솥에 부어 놓고는, 식구들 아침밥을 챙겨 멕이고는 또 빈 주전자 들고 잡으러 가는 거여. 일단 주전자에 가득 넣고는 한바탕 흔들어, 그랴도 아직 살아있어. 그르니 가마솥에 쏟아놓고는 뚜껑을 덮어놔야제. 그르케 서너 주전자를 잡아다가 쏟아넣고는, 처음에는 불을 약하게 때. 그러면 그 안에서 미뚜기들이 한바탕 난리를 치면서 탁탁탁탁 튀다가는 어느 새 조용해져. 뜨거워서 다 죽은 거제. 그때버텀은 불을 씨게 하고 뚜껑을 열고 뒤적거리면서 뽁는 거여. 그걸 어무니가 대전으루 옷감 떼러갈 때 가져가서 팔아. 그 돈으루 돼야지를 사달랬어.

    그럼 또 그 돼야지를 너무 잘 키우는 거여. 방법이 머겄어? 잘~ 멕이는 거제. 깨구리를 삶아 멕였어. 내가 살림 살려면 비누 산다 머한다 혀서 돈을 타잖아. 그러면 쓰고 남은 돈을 모으는 거여. 그라구는 동네 칭구들을 모아서 깨구리를 잡아오라 그려. 얼만큼에 얼마, 그럼서 또래들을 모으는 거여. 깨구리도 음청 많았거든.

    그려~, 어무이 장사 요령에서 배운 거제. 많이 잡아온 아는 돈을 더 주구 해서 깨구리를 모아서는, 그걸 가마솥에 쌂아서 돼야지를 멕여. 그럼 돼야지가 피둥~피둥 살이 찌고, 너무너무 잘 커. 깨구리 다리두 많이 먹었제. 그걸 구워먹으면 살도 많고 고소하거든. 그라구 어무이 몰래 너물도 캐다가 많이 퍼주었제. 어무이는 돌아댕기면서 집 비우고 동상들 못챙기고 할까봐, 너물캐는 걸 별라 안 좋아혔거든, 너물반찬도 안좋아혔고. 아부지가 너물반찬을 좋아하시니, 아부지 드실 만큼만 반찬을 혀고 나머지는 모두 돼야지를 멕이는 거여. 그르니 그 돼야지가 을매나 잘 컸겄어? 내가 그르케 욕심이 많았어.

    그 돼야지가 새끼를 나면 열한 마리 열두 마리를 낳아. 그걸 팔아다 돈을 맨들면 을매니 재미진 지 몰러~. 개도 잘 멕여서는 새끼를 많이 쳐서 돈 만들고. 소도 키웠지. 소는 일도 많이 혔지만, 나는 새끼 쳐서 파는 재미로 키운 거여. 짐승들이 모두 잘 컸어. 동네 사람들이 모두 짐승 잘 되는 손이라고 칭찬들이 자자혔어.

    수놈은 일찌거니 팔고, 암놈은 키우다가 새끼 낳을 때 되면 이우제 숫놈헌티 가서 접을 붙이는 거제. 튼튼하고 커다란 숫놈으로만 골라서. 돈을 좀 주는 거여, 새끼루 달라는 집은 새끼루두 주구. 소 멕이는 거는 여물두 끓여주지만, 하루 한번 씩 들판에 내놔서 풀을 뜯게 혀지. 너물 뜯어서 쌂아다가 어무이 몰래 동네사람들도 많이 나놔줬어. ‘저 집 큰딸 누가 데려갈지 복뎅이를 데려가는 거다. 부자될 거다.’ 허는 소리들을 많이 혔제.

    근디 난중에 농약 생기믄서는 미뚜기가 읎어진 거여. 새마을 운동이니 통일벼(1971년 개발에 성공하여 전국적으로 확산된 벼 품종. 이전에 품종에 비해 40%가량 생산물량이 확대되었다고 함)니 거시기를 하매 화학비료랑 쓰면서, 벼에 나락은 많이 열렸지만 미뚜기는 영판 다르게 줄더라고.

    여름이면 미뚜기를 잡으러 십리 너머 ‘시거리’라는 데를 가서, 한 말씩을 잡아오기도 혔어. 칭구들허고도 가지만 혼차도 많이 대녔제. 좋은 자리를 알아뒀다 칭구들헌티도 안알켜주고, 혼차 몰래 가는 거여. 그 ‘시거리’가 금강 줄기여~. 그르니 그 강가 풀에 미뚜기가 무지하게 많은 거여. 그거를 한 말짜리 자루에다 눌러가면서, 그 한 말을 다 채워야 집으로 오는 거여. 시암이 많았어. 댕댕이라고 산에 넝굴져서 쭈욱 뻗는 풀, 그걸 끊어다가 자루도 만들고 시루 밑도 만들구. 아그 업구두 끊으러 댕기는 거여. 그럼 어무이헌티 또 직~살나게 혼나는 겨, 하하~. 그려도 엄마가 장사 나가느라 집에 잘 없응게, 내 맘대로지 머~.

    댕댕이덩굴 사진

    댕댕이덩굴 사진

    근데 내가 어려서 잔주렵(원인이 불명확한 병치레)을 많이 해쌌어. 난중에야 그 이유를 알았지만, 그 때는 몰랐지. 행상으로 댕기는 의사헌티 주사도 많이 맞고 약도 쓰고 혔는디, 낫지를 않고 자주 아팠어. 횟배를 많이 앓았어. 같은 거를 먹어두 식구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읎는데, 나만 그르케 횟배를 많이 앓은 거여.

    그르니 이삼일에 한번 꼴로 마른 오징어를 안먹으면, 회가 목으로 곧 넘어올 것처럼 아프고 속이 뒤집어지는 거여. 그르니 건어물 장사를 혀기도 혔지만, 할무이가 어디 귀경을 가며는 마른 오징어를 많이 사다 광이니 이불 밑에 감춰두고는, 나만 주는 거여. 회충약을 먹어도 안가라 앉아. 회가 목으로 넘어온 적도 있어. 마른 오징어가 많이 비쌌는데, 나는 그걸 질리도록 먹었던 거여.

    아부지가 염소 장사도 혔어. 강원도 가서 염소를 뗘서는, 새끼줄로 목줄을 해서 서울루 아랫지방으루 끌고 다니며 파는 거제. 서울에 여관방 하나에 하숙을 함서, 장사를 하는 거여. 맞어~, 까만 염소~. 최 선생도 어려서 봤구먼. 난중에는 아예 도매도 혔어.

    강원도 산골로도 가고, 남쪽 섬에도 가고, 거제도두 가구. 염소 키우는 데는 다 댕김서 뗘다가, 전국을 댕기며 파는거여. 염소들 끌고, 배도 타고 기차도 타고 추럭도 타고. 한 때는 염소 농장도 하셨제. 그르케서 만든 몫돈으로, 어무이는 돈놀이도 혔어. 장사하는 사람들이나 농사짓는 사람들헌티 이잣 돈을 빌려주는 거제.

    한번은 아부지가 강원도서 꿀을 한 말들이 큰 통으루 두 개를 사다, 안방 다락에 올려놓으셨어. 장사할려고 진짜 토종꿀을 사왔던 거제. 그걸 내가 베개를 놓구 어쩌구 해서 올라가서는, 숟가락으로 퍼먹은 거여. 한두 번 먹고 말랬는데 자꾸자꾸 퍼먹게 된 거제. 그르다보니 속이 달아오르지 않겄어? 난 그럴 줄을 몰라제, 어릴 땡게~. 속이 활활 뜨겁구 물이 그르케 쓰일 수가 읎어. 츰에는 속이 달아오르는 걸 참으면서 퍼먹다보니, 도저히 견디지를 못허게 속이 뜨겁고, 환장하게 목이 마르고 물이 쓰여 미치겠는 거여.

    그려서 물 마시러 갈려구 다락을 나려올려는데, 아부지가 그걸 본거여. 츰에는 팔려고 사다놓은 걸 먹었다고 야단을 쳤지. 근디 들은 채도 안쿠 속 뜨겁다고 물먹어야 한다구, 윗도리를 걷어 부치구 훌떡거림서, 나 좀 나려달라고 난리를 치는 거제.

    그제사 울 아부지가 ‘옳다꾸나~’ 하구는, 나를 다락에서 나려 방 안에다 가두고는, 문을 바깥으루 걸어버렸어. 속이 달아야 약이 된다는 거여. 꿀 먹구 속이 달아오를 때 물을 먹으면 약기가 다 읎어진다는 거제. 그 속닳는 거를 그대로 참구 가라앉히면, 그거보다 더 좋은 보약이 읎대는 거여. 그르니 나는 못 견디겄으니께, 문 창호지를 다 뜯고 난리를 치며 울고 불고를 혀도, 절대로 문을 안 열어준 거여.

    쌩쌩혀니 기억나는 걸 보니 아홉살이나 되았겄지. 그 쌩고생을 허며 난리를 치구 지칠대로 지쳐서야 난중에 가라앉았는데, 그러구 나니께 증말루 그 횟배가 싹~ 읎어지더랑게~. 아주 오간데 읎이 읎어졌어. 엄니 아부지가 좋아혔제. 장사는 낭중이구 딸 횟배가 싹 나아버렸으니께. 그라구는 마른 오징어를 안 먹어두 괜찮드라구. 그르니 나는 시방도 마른 거든 젖은 거든 오징어를 별라 안 좋아혀.

    동상들 업구 너물 뜯으러도 많이 다녔어. 어무이는 쉬는 날이면 고단헌 게, 노상 늦잠을 잤어. 그럼 자고 있는 어무이 몰래 옆에 있는 아그를 쿡쿡 찔러 깨워갔고, 갸를 들쳐업고 몰래 너물 뜯으러 가는 거여. 아침 일~찌감치 나가서 한~ 소쿠리를 뜯어가꼬 오면, 어무이는 그때는 일어났을 거 아녀. 그러면 어무이헌티 마악 혼나는 거여. 이놈의 지지배, 그르다가 비얌헌티 물리면 어쩔려구, 어린 동상까지 데꾸 풀 속을 돌아댕기냐고. 봄에는 산이구 들이구 비얌도 많았거든. 그라니 어무이 집에 기실 때는 혼날까베, 뜯어온 너물을 어무이 몰래 돼야지 우리에다 쏟아 주는 거여.

    큰딸은 살림밑천이라잖여, 내가 딱 그거였제. 어무이 아부지도 내가 재산 삼분지 일을 불렸다고 늘 말혔어. 동네 사람들도 다 그러고. 나는 시암바리(샘바리. 샘이 많은 사람)여서 누가 머 하는 걸 보면, 그걸 하고야 마는 거여. 근디 밭은 안 매봤어~. 할 새가 읎었제. 모심는 거랑 나락 베는 거는 재미로 좀 해봤어. 베도 짜봤구. 큰엄니가 하는 거를 하겠다고 나서서, 베도 짜고 가마니랑 새끼도 짜봤어. 짚신을 큰아부지가 잘 만들었제. 짚신을 만들어 줄줄이 엮어서 장에 내다 팔기도 혀고, 집 식구들이 신기도 혔제. 자리도 메서 썼어. 그 때야 장판이 어딨어? 왕골을 쪼개서 그걸로 자리를 짜서 까는 거제.

    옛날에는 장사를 다니면 곡식으로들 많이 주고 그렸자녀. 그르니 그걸 장에다 내다 팔고 오면 모를까, 안 그러면 나갈 때 짐보다 들어올 때 짐이 더 크고 무거울 때가 많을 거 아녀. 그러면 큰아부지가 우리 엄니 짐을 멀리까지 나가서 받아오고 그렸어. 미리 약조를 하는 거제, 언제 어디로 가겠다고. 아부지는 알아서 가져오는디 어무이는 힘이 부치니께 큰아부지가 받으러 간 거제.

    그니께는 엄니도 시아주버니를 아주 시아부지같이 생각을 하는 거여. 명일 때면 큰동서 내외간 옷도 해드리고, 그 집 아그들 옷도 우리랑 똑같이 해주고. 더구나 그 집에 아들이 읎으니께, 난중에는 우리 큰아들을 그 집에 양자로 주고 그렸어. <계속>

    필자소개
    1957년생 / 학생운동은 없이 결혼/출산 후 신앙적 고민 속에 1987년 천주교사회운동을 시작으로 “운동권”이 됨. 2000년부터 진보정치 활동을 하며 여성위원장, 성정치위원장 등을 거쳐, 공공노조에서 중고령여성노동자 조직활동. 현재 서울 마포에서의 지역 활동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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