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읽어보셨나요? 읽어 보실래요?
    [책소개]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이현우/ 현암사)
        2014년 01월 18일 01:31 오후

    Print Friendly

    “러시아인이 누구인가, 할 때 푸슈킨 공동체, 톨스토이 공동체, 도스토예프스키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작품을 읽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으니까요. 그 작품에 대한 기억, 그게 교양입니다. 다 잊어버려도 같은 작품을 잊어버리는 게 되지 않아요?”

    “2007년 영어권의 현역 작가 125명에게 가장 좋아하는 최고의 작품을 10편씩 골라달라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1위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였고, 2위가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3위가 다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4위가 나보코프의 <롤리타>였습니다.”

    러시아의 어떤 작가도 인간적으로 ‘평범한’ 이가 없고, 그들의 작품 속에 ‘멀쩡한’ 인물도 없다. 모두가 입을 모아 칭송하는 푸슈킨이 원고지 매수를 세어가며 글을 썼다. 레르몬토프가 독자들에게 화가 나 참다못해 서문을 덧붙인 사연,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고(불가코프) 하는데, 고골은 <죽은 혼>을 태우고 다시 태웠다. 젠틀하고도 ‘이상한’ 투르게네프, 울다가 만세를 부르고 만세 부르다가 울고…. 도스토예프스키의 병든 인간들, 러시아 작가들 모두와 사이가 안 좋았던 톨스토이, 코미디로 연출해달라고 고집하다가 공연에 실패한 체호프….

    그들은 ‘러시아’에서만 나올 수 있는 작가이며, 삶 그대로가 문학이다. 드넓고 황량한 대지에서 태어난 광활한 영혼의 문학! 이상하고 웃기지만 눈물 나는, 그게 바로 러시아다.

    “러시아는 이성으로 이해하기 어려워서 오직 믿을 수밖에 없다.”(튜체프) 가만히 러시아 문학을 들여다보면 그 부조리에, 그 ‘알 수 없음’에 빠져든다. 일반적인 잣대로 절대 잴 수 없는 인간 군상, 수많은 ‘인간’을 탐구하고 소설로 그려내서 고전으로 길이 남은 거장과 명작들의 세계에서 ‘나의 작가’를 만난다.

    이 책은 1강에서 러시아의 역사와 지리적 특성, 문학사 전반의 특징을 설명하고, 이어지는 일곱 차례의 강의에서 거장들의 삶과 작품 세계 그리고 주요 작품을 뽑아 차근차근 해설한다.

    각 장에서 핵심을 짚고 독서에 대한 흥미를 일으키는 로쟈의 강의는 충실한 내용을 담보한다. 때로는 잔잔한 웃음이, 때로는 모진 비평이 있으며 책 전체에 로쟈의 러시아 문학에 대한 애정이 은근하게 묻어나 그야말로 ‘러시아적’이다. 입말 그대로를 생생하게 살려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하루 한 강씩 강의를 읽다 보면 ‘죽기 전에 읽어야 할 고전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안나 카레니나> 등 그동안 벼르기만 했던 길고 긴 작품들이 ‘정말 읽고 싶어져서’ 읽게 될 것이다.

    러시아 국민문학의 시작에서 자의식의 탄생까지

    “러시아 작가들은 ‘나의 푸슈킨’이라고 얘기해요. 각자가 생각하는 자기만의 푸슈킨이 있어요. 자기의 경험, 내가 읽었던 푸슈킨을 시인, 작가들이 다 한 편씩 씁니다. 재미있는 건 러시아 작가의 경우 ‘나와 푸슈킨의 관계’를 입증해야 인정을 받는다는 겁니다. 나와 푸슈킨의 커넥션, 이게 바로 자기 존재 증명입니다.”

    2강은 러시아 근대문학의 시작이자 정수, ‘국민시인’ 푸슈킨과 <예브게니 오네긴>을 살펴본다. 푸슈킨은 글을 팔아 생계를 이어간 러시아 최초의 전업 작가이기도 하다. 키가 작아 요즘이라면 ‘루저’에 해당하지만 재담꾼에 글재주가 뛰어났고 유머가 풍부해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당시 유행한 ‘돈 후안 리스트’ 푸슈킨 편에는 100여 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푸슈킨의 문학은 기본적으로 슬픔을 다루지만 밝고 경쾌하다. 특유의 ‘밝은 슬픔’이 관통하는 <예브게니 오네긴>이 푸슈킨 이후의 작가들에게 준 영감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주인공 ‘오네긴’에서 뻗어나간 러시아 문학 커넥션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3강은 절대 고독의 작가, 영원한 젊음의 시인, 가장 순수한 낭만주의의 전형을 보여주는 레르몬토프와 <우리 시대의 영웅>이다. 레르몬토프는 27세에 결투로 죽은 요절 시인이어서 천재라는 선입견을 갖기 쉽지만, 실제로는 노력파다. 유작이 공개될 때마다 습작 수준의 작품이 많아 전공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준다고 한다.

    그렇지만 다른 작가들이 27세까지만 살았다고 한다면? 푸슈킨은 <예브게니 오네긴>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고, 고골은 〈검찰관〉 공연에 상심해서 「외투」도 쓰지 못했으며, 톨스토이는 자전 3부작을 끼적거리다 죽었을 것이고 도스토예프스키는 데뷔작을 발표하고 페트라셰프스키 사건으로 죽었을 테니 고골의 아류 작가로 남았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영웅>에는 ‘오네긴’을 겨냥한 러시아 최초로 자의식을 가진 주인공 ‘페초린’이 등장한다. 레르몬토프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인물 페초린으로 지금까지도 유효한 ‘한 시대의 초상’을 그렸다. 이러한 페초린의 의식을 계승하는 작가가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다.

    로쟈

    삶 자체가 문학이 되어버린 고골과 투르게네프

    “고골 생각에 러시아 문단에는 두 작가가 존재합니다. 푸슈킨과 고골. 푸슈킨이 긍정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자기는 부정적인 군상을 묘사하고. 그런데 푸슈킨이 죽은 겁니다. ‘이제는 나밖에 없구나!’ 러시아 문학을 책임져야 할뿐더러 러시아의 미래까지 구원해야 합니다. 정말로 심각하고 진지한 소명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4강에서는 가장 절망에 찬 인간이자 작가로서 정말 불행한 고골과 <페테르부르크 이야기>를 만난다. 고골의 뛰어난 풍자적 재능은 자신이 생각한 작가의 소명과 충돌하는 것이었다. 속물적 인간들에 대한 풍자는 대상을 부정적으로 비판하고 꼬집는 것으로 충분히 목적을 달성할 수 있지만 고골은 작가의 진정한 역할이 사회를 교화하고 긍정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후기로 갈수록 강해지는데, 그러면서 창작이 꼬이기 시작한다. 웃음과 욕망의 삼중주 <페테르부르크 이야기>에는 고골의 삶이 형상화되어 있는데, 유쾌한 풍자적인 세계와 어둡고 음울하고 무서운 세계가 공존한다. 흥미로우면서도 미스터리한 작가다.

    다음으로 5강에서는 러시아 작가의 평균으로 볼 때 ‘멀쩡한’ 축에 드는 ‘표면의 작가’이자 ‘스케치의 대가’ 투르게네프 읽기다. 자전적 소설 <첫사랑>과 대표작 <아버지와 아들>에 담긴 투르게네프의 의식을 살펴본다.

    고골,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에 견주면 투르게네프는 균형 감각을 갖춘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러시아에서 나온 어느 연구서의 제목은 <이상한 투르게네프>다(결혼한 오페라 가수 비아르도와 그의 남편, 투르게네프 셋이 한 집에서 잘 살았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의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실물 크기로 보여주는 작가로 평가되며 ‘인간에 대한 에티켓’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자신이 다루는 인물을 깊이 파헤치지 않는다.

    “뭔가 세상을 바꿔보려는 모든 인간적인 노력, 의식적이고 이성적인 노력이 있지만 결국엔 다 패배한다.” 이는 <아버지와 아들>에 투영된 투르게네프의 비관적 염세주의다. 다만 그가 최선을 다해 그리고자 한 것은 근본적 허무주의 앞에서 의연하게 죽음을 맞는 것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병든 인간’, 톨스토이의 ‘신적 존재’, ‘체호프의 등신들’

    “셰익스피어가 인간성을 발명했다면 도스토예프스키는 ‘병든 인간’을 발명합니다. ‘정신병동의 셰익스피어’라고도 불립니다. 도스토예프스키적 세계라는 정신병동은 속 좁은 인간들이 아닌 속 넓은 인간들을 모아놓은 곳입니다. 그리고 그의 세계에 빠져든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자기 안에서 그러한 넓이와 심연을 보는 겁니다.”

    러시아 문학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비극과 톨스토이의 서사시, 두 작가에 의해서 양분된다. 먼저 6강에서 기존의 소설을 뛰어넘는 소설, 그동안 없던 ‘세계’를 그린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살펴본다. 그의 필력은 아버지에게 돈을 타기 위해 쓴 편지에서 길러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항상 돈을 ‘필요’로 했다. 잡계급 출신이었던 그는 귀족 출신 투르게네프나 톨스토이와 원고료를 차이가 많이 날 정도로 적게 받았고, 끊임없이 쓰고 또 쓰고 또 썼다.

    ‘러시아적 수난과 구원의 변증법’을 그린 도스토예프스키는 철학적 논박을 직접 제시하는 대신 소설이라는 공간 속에서 시험해본다. 고통에서 쾌감을 느끼는 인간, 규정되지 않는 인물을 등장시켜서 대체 현실에서는 어떻게 구현되는지 지켜본다.

    관찰 방식은 작품 속 인물들을 압도하지 않고 똑같은 지분을 주고 등장인물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중간에 주인공이 바뀌기도 하고(<악령>), ‘악에 문드러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아직 본론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길기도 하거니와 그의 장광설에 놀란 독자들이 선뜻 책장을 열지 못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은 실제로 범죄 소설의 구성을 따른 흥미진진한 스토리다. “생각보다 다가가기 어렵지 않다.”

    “톨스토이는 자기 자신을 혐오하고 비하하면서도 거의 신적인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우울해 할 때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신으로서 부족해보였거든요. 도스토예프스키도 프로이트 이후 정신분석학자들의 관심 대상이지만 톨스토이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7강에서는 러시아를 넘어서 세계적인 대문호로 평가받는 거장 톨스토이와 <안나 카레니나>를 살펴본다. 거짓과 기만을 아주 싫어한 톨스토이는 20대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60여 년 동안 일기를 썼다. 부부가 각자 쓴 일기는 부부간의 불화와 전쟁에 대한 하나의 인류학적 자료로 남게 되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 민족의식에 대한 주제를 강조했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나’의 세계에 관심이 더 많았다. 도스토예프스키가 평생 니힐리즘과 대결했다면, 톨스토이는 ‘자기 이야기’에서 확장시켜 러시아의 정체성을 생각했고 끊임없이 에고이즘과 싸웠다.

    자신의 욕망과 도덕률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그에 대한 전환점이 <안나 카레니나>다. 이 작품 이후에 모든 예술로서의 소설은 물론 자신이 소설가임을 부정하고, 설교가로서 선의 이념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찾으려는 교훈만을 담은 작품을 쓰게 된다.

    마지막 8강에서는 세계적인 단편 작가,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로 평가받는 극작가 체호프와 「갈매기」를 만난다. 체호프는 잘난 놈들의 이념이나 행동이 아니라 못난 놈들의 무능과 불가피한 회한을 그렸다.

    세상을 관찰하고 보고 느낀 것을 정확하게 기록해 그야말로 ‘삶의 코미디’를 만든 작가. 그의 작품에는 ‘체호프의 등신들’이라고 불리는 맥 빠지는 인물들이 총 2,355명 등장하는데 이는 러시아인 전체를 상징한다. 체호프를 읽고 감상하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과 회한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이다. 「갈매기」 속에는 특히 더 심각한, 체호프마저도 버린 주인공 ‘트레플료프’가 있다.

    체호프에서 러시아 문학의 19세기는 끝나고 막심 고리키가 20세기의 바통을 이어받는다. 황량한 북쪽나라에 우거진 문학의 숲, 러시아. 궁핍하지만 풍요로운, 어둡고도 환하게 빛나는 문학의 세계가 로쟈의 친절한 안내로 펼쳐진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