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비정규직 문제,
극복해야 할 노동계 양대 과제
[진짜사장을 찾아①] 새해 첫날 하청업체 폭언과 첫 파업
    2014년 01월 17일 10:11 오전

Print Friendly

2014년 갑오년 새해가 밝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은 가난과 차별의 깊은 수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정규직 전환을 피하기 위해 사내하청, 파견, 용역, 외주위탁이라는 이름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는 점점 늘어가고 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처럼 사장을 사장이라 부르지 못하는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은 때로는 바지사장의 손아귀에서, 때로는 정규직의 벽 앞에서 좌절한다. 하지만 진짜 사장을 찾아 싸우는 투쟁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된다. 2014년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몇 차례 나눠 짚어봤다. <편집자 주>
—————–

갑오년 새해 첫 근무일이었던 1월 2일 남도 끝 작은 마을의 번화가에 있는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에서 충격적인 폭언과 협박 사건이 벌어졌다. 저녁 7시 자재팀장은 출장 수리를 마치고 서비스센터로 돌아온 두 명의 서비스기사를 불러놓고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과 욕설을 쏟아낸다.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게 이유였다. 언론에 공개된 녹취록에는 두 명의 기사를 불러놓고 10분 넘게 윽박지르면서 쏟아낸 말들과 서비스센터의 대기번호표를 알리는 소리까지 생생하게 녹음되어 있다.

삼성전자서비스가 108개 서비스센터에 공문을 통해 “부당노동행위를 하지 않도록 당부 드리며, 원청사의 요구와 이해에 반하는 행위시 제재 등 불이익처리 될 수 있”다고 통보한 지 열흘도 되지 않아 벌이진 일이다. 시정잡배보다 못한 쌍욕보다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대놓고 자르겠다고 협박하는 ‘담대함’이 충격이다.

새해 첫 근무날 충격적인 협박과 욕설

“내가 그만두면 니네들 세 명도 분명히 그만 둘 거야. 니그 사장 그만 두면 나도 그만 둬야 되거든. 니그 세 명도 뭐야 나한테 부대낌 당해서라도 니그들 세 명도 그만둘 거야. 내가 그만 두게 되면 니그들도 다니게 해놓고 갈 거 같냐?”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로 노동법 위반이다. 게다가 하청업체 사장을 거론하며 ‘단체의 위력을 보여 협박의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특수협박죄’를 적용하면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범죄다.

누군가 뒤에서 봐주지 않는다면 조직폭력배들도 쉽사리 하지 않는 짓인데 한낱 하청업체 관리자가 이토록 주저함도 없이 욕설을 퍼부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가? 이 녹취록의 맨 마지막 협박에 정답이 있다.

“노조에 가입함으로써 본사에서 얼마나 사장이나 간부계약들이 전화해대는지 알아? 그때마다 사장 스트레스 받아 갖고 해임 해불면 되지야 그런 소리나 해쌌고, 내가 옆에서 듣기 좋겠냐?”

“노조 가입해 본사에서 얼마나 전화해대는지 알아?”

지난 12월 20일 금속노조와 삼성전자서비스 하청업체의 교섭권 위임을 받은 경총이 노조활동 보장과 근로조건 개선에 합의했다. 다음날 삼성전자서비스는 하청업체에 공문을 보내 부당노동행위를 하지 말 것을 요청했고, 12월 23일 언론에 보도자료를 배포해 유류비와 업무용 차량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노사 합의서에 채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벌어진 폭언과 협박에 대해 금속노조는 8일 오후 광주지검 순천지청을 방문해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했다. 하지만 폭언과 협박 당사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변명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일개 센터의 자재팀장이 갑자기 노조에 가입한 후배들 때문에 ‘열 받아서’ ‘오버’한 것이라고 발뺌할 지도 모른다. 그나마 변명이라도 하면 다행이다. 아마 삼성은 ‘쌩 까고’ 모르는 척 할 게 뻔하다. 왜냐하면 삼성은 금속노조와 어떤 합의서 한 장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여러 언론들은 금속노조가 삼성전자서비스의 위임을 받은 경총과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잘못된 보도가 잇따르자 경총도 공식 보도자료를 내기까지 했다.

노사 합의서 잉크도 마르기 전에

12월 20일 금속노조가 합의한 상대는 삼성전자서비스도, 삼성전자서비스 하청업체(협력업체) 협의회도, 경총도 아닌 하청업체 삼성TSP(주)였다. 이 업체의 사장은 고 최종범 열사에게 폭언과 욕설을 퍼부었던 당사자다.

합의서를 보면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삼성TSP(주)가 5개 항에 대해 합의를 했고, 삼성TSP(주)의 교섭권을 위임받은 경총 노사대책팀장은 서명만 했을 뿐이다. 이번 합의서는 삼성전자서비스 108개 하청업체 전체에게 적용되는 합의서가 아니다.

금속노조 조합원이 있는 54개 하청업체에게도 적용되지도 않는다. 합의 대상이 금속노조와 천안두정센터를 맡고 있는 삼성TSP이기 때문에 최종범 열사가 근무했던 천안두정센터에만 적용되는 합의서다.

합의할 필요도 없는 “노동법상 노조활동 보장” 조항도 천안센터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이번 해남센터의 노조 가입을 이유로 한 폭언과 협박은 합의사항 위반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리스차량과 유류비 지급도 합의서 상으로는 천안센터에만 적용된다. 전국 108개 센터 중에서 천안센터에만 효력이 있는 합의서인 것이다.

108개 센터 중 천안센터에만 적용되는 합의서

삼성합의서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삼성TSP가 맺은 합의서

더구나 이번 해남센터처럼 천안센터에서 일하던 최종범 열사는 하청업체 바지사장으로부터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들었고, 10월 31일 “배고파서 못살았다.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전태일 열사의 뒤를 따라 목숨을 끊었다.

최종범 열사의 뜻은 삼성이 책임지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죽음으로 위장도급과 불법파견, 건당수수료라는 악질적인 임금체계로 인해 고통받는 삼성서비스 노동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랐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받고 싸워나가길 원했다.

하지만 합의서는 최종범 열사를 죽음으로 내몬 당사자와 체결됐고, 악질 하청업체 사장은 “최종범 사망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하”는 것으로 끝났다. 사장에 대해 걸어놓은 형사고소는 ‘민형사상 상호 면책’ 조항에 따라 고소고발까지 취하하기로 합의했다.

위장도급과 불법파견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최종범을 죽음에 이르게 한 직접 가해자인 하청업체 사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직접 가해자인 하청사장에게 책임도 묻지 못한 합의

삼성전자서비스는 하청업체 노사 간의 합의서를 뒷받침한다는 차원에서 삼성TSP(주)와 하청업체에 공문을 보내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런데 삼성이 천안센터에 보낸 공문이 가관이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삼성TSP(주)에 “귀사의 직원이었던 고 최종범 씨의 사망과 관련해 이번 사태의 발생 원인과 배경에 대해 면밀히 조사하여 귀 사의 귀책이 발견되면 그 결과를 재계약에 반영할 것임을 통보”한다고 썼다.

삼성전자서비스가 하청업체의 귀책을 조사해 계약에 반영한다는 것이고, 최종범 씨 사망이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공문으로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또 삼성전자서비스는 노사합의 직후 다음 공문을 108개 하청업체에 보냈다.

“지난 11.22(금) 공문을 통해 준법경영을 중시하는 당사의 입장을 안내해 드린 바 있습니다. 각 협력사에서 준법경영에 매진하고 있음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만, 조금 더 분발해 주시기를 다시 한 번 요청 드립니다. 특히, 부당노동행위를 하지 않도록 당부 드리며, 원청사의 요구와 이해에 반하는 행위시 제재 등 불이익처리 될 수 있음을 통보합니다.”

요약하자면 지금까지도 준법경영을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해달라는 것이다. 영등포센터에서 벌어진 조합원에 대한 몽둥이 폭력사태, 천안센터 최종범 열사의 죽음, 전국의 센터에서 벌어진 표적 감사와 노조 탄압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지금처럼 준법경영에 매진해달라는 공문이었다.

기가 막힌 삼성전자서비스의 공문

생활임금보장과 관련해 하청업체 노사는 “회사는 생활임금보장과 관련하여 2014년 3월 1일부터 리스차량과 유류비를 실비로 지급한다”고 했고, 삼성전자서비스는 12월 23일 보도자료를 내 “협력사와 협의하여 협력사가 외근 수리기사의 업무용 차량 지원과 유류비 정산방식을 실비로 전환하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나마 이 발표조차 실제로 이루어질 것인지 알 수 없다. 벌써부터 차량은 지원하지만 유류비는 이미 지급하고 있으니 센터별로 알아서 하라고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삼성은 최종범의 죽음으로 사회 문제로 커지고, 연말 ‘안녕들 하십니까’의 열풍을 타고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직 문제를 하청업체 ‘바지사장’을 통해 해결했다.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푼 격이다.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푼 삼성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위영일 지회장은 삼성에 맞선 싸움을 유치원생에게 대학원생 시험문제를 풀라고 하는 것에 비유했다.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25년을 훌쩍 뛰어넘었지만, 이제 6개월도 되지 않은 신생 노조가 한국의 1위 재벌인 삼성과 싸워야 하는 어려움을 설명한 것이다.

지난 7월 14일 전국의 삼성서비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전국에서 서비스 노동자들이 노조로 가입했다. 하지만 성수기를 경과하면서 삼성의 대대적인 탄압과 물량 빼가기로 확산되던 노동자들은 움츠려들기 시작했고, 조합원들의 탈퇴가 잇따랐다. 영등포 폭력사건과 천안 폭언사건이 벌어졌지만 탄압은 멈추지 않았고, 건당 수수료라는 악질적인 임금체계는 노동자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힘들어하던 동료들을 지켜보던 천안센터 최종범 씨가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이를 계기로 삼성서비스 노동자들은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서초동 삼성 본사는 건물을 지어진 이래 최대의 집회와 시위, 농성이 연일 계속됐고, 지역의 서비스센터에서도 투쟁이 계속 이어졌다.

최종범 씨의 유족이 회유와 협박을 이겨내고 자리를 지켜냈고, ‘별이 빛나는 돌잔치’를 비롯해 사회적 양심들이 연대의 손길을 내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금속노조는 거대한 삼성의 벽 앞에서 멈춰서고 말았다. 삼성은 교섭에 나오지 않고, 삼성서비스 조합원들이 지쳐가고 있다는 이유로 금속노조는 하청 ‘바지사장’을 상대로 합의를 하고 말았다.

삼성의 벽 앞에 멈춰선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해남센터 관리자는 “노조 그거이 시들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우리 센터는 불거져불면 되겄어?”라고 협박했다. 그러나 노조는 시들어가고 있지 않았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최종범 열사 투쟁을 통해 단련되고 있었고, 삼성을 상대로 싸우겠다는 결의가 드높다.

 싸움은 시작됐다. 1월 10일 경남지역 3개 센터의 조합원 90명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벌여 총원 90명 85명의 찬성(94%)으로 파업을 결의했다. 이미 찬반투표를 완료한 곳은 울산, 포항, 경기남부 등 27개 센터 700여명에 이른다.

140113-삼성파업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부산양산지역 노동자들이 1월 13일 파업을 벌이고 해운대센터 앞에 모여 파업출정식을 연 뒤 가야센터까지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조직력이 좋은 부산 경남의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파업에 돌입했다. 부산양산권 8개 센터 170여명의 노동자들이 1월 13일 사상 처음으로 하루 전면파업을 벌였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임금과 단체협약 체결 △급여체계 재편을 통한 생황임금 보장 △체불임금(수당 등) 지불 △지역분할 반대 △협력체 장부와 법인통장 공개 △조합활동 보장 △불법 하도급 철폐 및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1월 14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임금과 단체협상 지원투쟁 계획을 확정했다. 2월 초까지 전 센터에서 쟁의권을 확보하고 설 휴가 끝나면 게릴라 파업과 권력별 순환파업을 벌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서비스가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으면 2월 중순부터 전면적인 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노조 그거이 시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타오르고 있다. 하지만 불꽃의 방향은 하청업체 ‘바지사장’이 아니라 진짜 사장을 향해 타올라야 한다. 위장도급과 건당 수수료라는 노예의 사슬은 진짜 사장을 만나야 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전 금속노조 비정규국장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