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려인이 알아야 할 불편한 진실
    [타인의 삶]일곱째 -불혹, 늦깎이 수의사 된 김야옹씨①
        2013년 12월 12일 11: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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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마흔에 수의대를 졸업하고 이제 5년차 동물병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야옹(가명)씨의 존재를 알게 된 건 버스정류소 앞이었다.

    버스정류소 앞에 위치한 ‘ㅇ동물병원’은 병원 앞에 길고양이에게 주라며 사료를 소포장해서 진열해놨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렇게 마음씨 좋은 사람도 있네, 라고 생각했다가 영식이와 두식이라는 고양이 2마리를 입양하면서 직접 만나게 됐다.

    병원 이름이나 이쁜 마음씨가 젊은 여성 원장일 꺼라는 편견(?)을 가졌는데, 막상 만나보니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있는 중년 남성이었다.

    고양이 복막염의 위험성을 설명하다 복막염으로 죽은 고양이 생각이 떠올랐다며 울먹거리기던 그의 모습에 반려동물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처음에는 부끄럽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가 겨우 약속을 잡았는데, 역시나 사연 많은 분이다.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지만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속상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는 그는 인터뷰 중간 2번이나 눈물을 보였다. 아픈 동물을 돌보고자했던 초심과 동물병원 원장으로서 감당해야 했던 여러 사연들은 ‘캣맘’이나 ‘반려인’으로서 꼭 알아야 할 불편한 진실들을 마주보게 해준다.

    이번만큼은 동물병원을 이용하는 소비자의 마음에서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반려인으로서 김야옹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인터뷰가 조금 길어 2회로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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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잭. 김야옹씨가 동물단체 보호소에서 데려왔다

    동물용품 쇼핑몰 사장, 늦깎이로 수의대 편입하다

    장여진: 수의사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

    김야옹: 이제 수의사 된 지 5년차다. 군대 다녀와서 겉멋 들어 법대에 입학해 졸업 후 결혼했었다. 이제 사법고시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공부하러 독서실 가는 길에 친구가 “너 뭐하고 사냐?”라는 질문에 좀 난감했었다. 학생 때는 뭐하냐고 물어보면 “법대 다녀” 이 한 마디로 다들 “아~”하고 넘어갔는데, 막상 사시 준비한다고 말할려니 백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혼도 했고 돈 좀 벌어놔야겠다 싶어서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다가 기왕 돈 벌거면 적성에 맞는 걸 하자고 해서 동물용품 인터넷 쇼핑몰을 차렸다.

    어릴 때부터 길 가다가 아픈 동물을 보면 돈 모아서 치료도 해주고 했던 기억들이 강렬했다. 그래서 마음 한 구석에 동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고, 동물용품 쇼핑몰까지 차리고 보니 또 기왕 한 거 수의사가 되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쇼핑몰 하면서도 나름 집 없는 동물들을 주인도 찾아주고 입양도 시켜주다보니 수의사가 되어서 보다 적극적으로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장여진: 그럼 몇 살 때 수의대에 가게 됐나? 집안 반대는 없었나?

    김야옹: 원래 30대 초반에 수의대 갈 생각을 했는데 그때도 집사람이나 다른 가족들이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처음 늦깎이로 법대 간다고 했을 때도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크게 반대하는 사람도 없었고, 수의대 갔을 때도 그랬다.

    (중간에 진료 때문에 인터뷰를 잠시 중단했었는데, 병원에서 실장으로 함께 근무하는 그의 옆지기는 이에 대해 “친정아버지가 배우지 못한 것에 한이 커서 누가 공부하겠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신 분이었다. 그런 집안 분위기 덕에 남편이 공부한다고 했을 때 말리지 않았다. 말린다고 안 할 사람도 아니니깐”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서 수의대를 가겠다고 결심한 지 4~5년 뒤인 30대 중반 무렵에 쇼핑몰은 오프라인 매장만 남겨두고 와이프에게 다 던져줬다. 와이프가 대신 일해줄 때 나는 수의대 편입 준비에 매달렸다. 솔직히 내가 수의대 편입에 합격할지도 몰랐고 설사 합격한다하더라도 졸업해낼 수 있을 꺼라고 생각치도 못했는데, 어떻게든 여기까지 오게 됐다. 만약 길거리에 나앉지 않고 졸업한다면 그건 정말 외줄타고 나이아가라폭포를 건너는 묘기일 꺼라 생각했는데, 정말로 엄청난 묘기를 해낸 기분이었다.

    장여진: 등록금도 한 두 푼이 아니었을텐데 어떻게 감당했나?

    김야옹: 전액 대출받아서 다녔다. 그런데 아직도 등록금 대출 해결 못했는데 내가 조금 ‘장비병’이 있어서 의료 장비 구입 대출도 많은 상황이다.(웃음) 일정 정도의 의료 장비를 갖추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병원 재정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다. 그런데 보호자분들은 잘 모른다. 진료실에 청진기 하나 밖에 없는 줄 안다(웃음) 아무래도 장비는 다 수술실에 있고 진료실에는 보이는게 청진기 이런 거 밖에 없으니깐.

    장여진: 등록금 대출에 의료장비 대출에…여전히 집안의 열렬한 지지와 도움 없이는 병원 운영이 힘들 것 같다.

    김야옹: 집사람의 자기 희생과 노력 덕분이다.

    장여진: 수의대 편입 과정은 어땠나?

    김야옹: 사실 수의대 편입이 쉽지 않았다. 만약 수의대를 다니고 있으면 사람들한테 수의대에서 공부한다고 떳떳하게 말이라도 하는데 수의대 편입을 위해 공부하고 있다는 말 하기는 정말 곤란했기 때문이다.(웃음) 그런데 모든 걸 다 던져놓고 1년 동안 공부하고 시험 당일, 답안지 프레임쉬프트 뮤테이션이 일어났다.

    장여진: 네??

    김야옹: 돌연변이가 딱 한 군데만 잘못된 것을 포인트 뮤테이션(돌연변이)이라고 하고, 틀 자체가 잘못된 걸 프레임쉬프트 뮤테이션이라고 하는데, 답안지 프레임쉬프트 뮤테이션이 일어났다. 답안지를 다 밀려썼다. 그래서 한 번에 가지도 못하고 다시 또 1년을 공부할 때 어디다 하소연도 못하고 정말 힘들었다. 어디가서 수의대 편입 폐인이라고 말도 못하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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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순이. 병원 터줏대감이다

    동물실험의 딜레마…일부러 질병 유발시켜 수술시킨 뒤 안락사

    장여진: 수의대에서 임상실습은 어떻게 하나?

    김야옹: 의대생들은 인체 대상 수술은 못하지만 수의생들은 학과 과정에서 살아있는 동물 대상으로 수술하는 경험을 갖게 된다. 요즘은 임상실험이 많이 없어지는 추세라고는 한다. 지금 집에서 키우고 있는 강아지가 내가 처음 수술한 아이이다. 보통 임상 과정이 끝나면 안락사하는데 그 아이는 학교에서 너무 많은 수술을 당했기에 내가 같은 조 친구들에게 꼭 살려야 한다고 신신당부하고 무사히 수술 마친 뒤 집에 데려왔다.

    장여진: 아픈 동물을 대상으로 수술하는 것인가?

    김야옹: 아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그냥 수술하는 것이다.

    장여진: 그런 동물들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김야옹: 지금까지도 실험동물을 어떻게 구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지금은 실험동물 윤리위원회라는 게 있어서 실험동물을 구하고 관리하는 것이 제도화되어 있지만 보통의 경우, 그리고 제 생각이지만, 정식 루트대로 취득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처음 수술해서 데려온 개도 그냥 가정집에서 자랐을 법한 푸들이었다. 어떤 경로로 오게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외과 그렇고 내과도 그렇지만 일부러 동물에게 질병을 유발한 뒤 수술을 진행토록 한다.

    장여진: 아픈 동물을 돕고자해서 수의사가 되려했던 건데 정작 공부하는 과정에서 일부러 동물들을 아프게 한 뒤 임상경험을 쌓아야 하다니 좀 딜레마인 것 같다.

    김야옹: 그렇다. 하지만 실험동물과 관련해서 나도 아직 결론을 낼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가장 좋은 방법은 컴퓨터 프로그램이라든지 시물레이션이 발달해서 동물 모형을 대체한다든지 그런 게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실물을 대체할 정도로 발달되어 있지 않다. 다행히 지금은 거칠게 질병을 유별하는 일은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것 같다.

    장여진: 화장품 회사에서 동물실험 하는 문제로 애묘인등이 동물실험 금지 운동도 벌였었는데 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야옹: 아마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회사가 더 많을 것이다. 임상테스트쪽 기술은 워낙 발달이 돼있기 때문에 대체가능하다. 안전막 실험도 눈에 직접 넣는 게 아니라 세포 배양해서 시물레이션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정말 동물에게 직접 테스트해야 하는 분야도 있을 것 같다.

    장여진: 의사처럼 인턴제도가 없는건가?

    김야옹: 없다. 본인이 알아서 졸업 후 동물병원에 들어가 인턴생활을 하던가 해야 한다. 나는 그런 시간을 줄이기 위해 학교 다니면서 대학 부속 동물병원에서 유의태 집에 들어간 허준의 심정으로 청소부터 시작해 진료와 수술 참관하고 이후 사체 관리하면서 해부하는 등의 실습 기회를 가져야 했다.

    (김야옹씨는 수의과대에서 진행하는 동물실험이나 실험동물의 관리 문제에 대해 여러 자료 사진과 함께 그 심각성을 전해주었지만 인터뷰 내용에서는 빼달라고 요청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기회가 된다면 직접 이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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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의대 실험견 때의 비누. 현재는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일생일대의 최대의 의료사고, 이후 ‘장비병’ 앓아

    장여진: 처음 동물병원 개업 이후 시행착오는 없었나?

    김야옹: 시행착오는 늘 있다. 어떠한 운영방침이나 장비의 선택, 채용의 실수 등등. 워낙 시행착오를 많이 겪는 편이라 딱 하나만 꼽기는 어렵겠지만 기억에 남는 실수가 있다.

    어느날 아파서 고양이 한 마리가 왔는데 검사해보니 빈혈로 나왔다. 그래서 일단 수혈을 했다. 참고로 그때 내가 쓴 검사장비가 당시 우리나라서 가장 비싼 장비였다. 그래서 보호자분께 빈혈 결과 나왔다고 설명드리고 수혈도 했는데 뭔가 수치가 다르다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따로 외부기관에 의뢰해보니 빈혈이 아니라는 거다. 그때 국내 최고라는 장비의 오류를 내가 국내 최초로 발견한 것이었다.

    장비 실수이긴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보호자분께 말씀드려야 하는지 정말 고민이 많았다. 돈이야 배상해드리면 되지만 원인은 다른 거였는데 엉뚱하게 수혈해서 필요한 치료 시기를 놓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여진: 그래서 말 했나?

    김야옹: 당연히 말씀드렸기 때문에 지금 말 꺼낸 게 아니겠냐.(웃음) 한참 고민 후 보호자분께 말씀드렸더니 대부분은 이해 못할텐데 그 분은 이해해주셨다. 다행히 고양이의 질병 원인도 찾아 치료 후 건강해졌고. 그때 의료사고라면 의료사고였다. 다들 그런 류의 의료사고라면 사과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때 정말 두려웠다. 내가 했던 실수보다 더 큰 책임을 지우게될까봐 말씀드리기 어려웠던 거다.

    장여진: 그날 이후로도 중차대한 실수가 있었나?

    김야옹: 이 사례는 정말로 큰 실수고 사소한 실수는 항상 있다. 중요한 건 내가 용인할 수 있는 것이냐 아니냐인 것이고 대부분은 보호자분께 다 말씀드리려고 한다. 그런데 빈혈 고양이 사건 때 다른 분들은 보호자분도 모르니 다른 원인 찾아 치료하면 그걸로 모두가 해피한 건데 굳이 왜 말하냐고 악마의 속삭임을 해줬지만 이겨냈다.(웃음) 그런데 지나고보면 그때 그 보호자분이 이해해줄만한 분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말씀드렸던 것 같기도 하고.

    장여진 : 병원운영에 다른 어려움은 없나?

    김야옹: 수의테크니션(동물간호사-간호사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을 채용하는 일이 정말 중요한데 아직까지 한국에는 수의테크니션에 관한 국가 자격증이 있는 게 아니어서 채용 시 조금 어려움이 있다.

    나는 다른 걸 다 떠나서 동물을 대하는 마인드가 어느 정도 나와 맞는지 여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실무와 관련해서는 경력이 있건 없건 2달에 걸쳐 새롭게 다 가르친다. 그래서 일하시는 분이 그만두시면 정말 힘들다. (웃음)

    지금 일하는 친구는 **구에서 여기까지 출근한다. (대중교통으로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이 친구도 동물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일하는 거지 그런 거 없으면 일하기 정말 힘들다. 주5일도 아니고. 그래서 임금을 더 드려야 된다고도 생각하지만 병원 규모가 썩 크지 않아서 더 못드리는 게 아쉽다.

    장여진: 재정 상황은 어떠한가?

    김야옹: 기본적으로 병원은 항상 힘들다. 고양이 빈혈 사건 때 장비가 일반적인 동물병원에서 사용하기에 좀 버거운 거였지만 미친 짓 좀 해서 산 거였는데, 그날 이후로 반품시키고 그 보다 더 비싼 걸 구입했다. 장비 구입이 병원 운영이 어려워지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지만 그때 했던 고민을 정말 다시는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정말 드문 일이었지만 나에게 너무 끔찍한 경험이었다. 중요한 건 손님들은 우리 병원에 이런 장비가 있는지 전혀 모른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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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야옹씨가 의료후견하고 있는 메루

    선그라스끼고 아프리카 초원을 달릴 줄 알았던 처음의 꿈
    선행은 기대하면서 마진은 허용하지 않는 보호자들때문에 스트레스 받아

    장여진: 처음 수의사가 되기 전과 수의사가 되고 난 뒤에 바뀐 것이 있다면?

    김야옹: 처음에는 수의대만 들어가면 불쌍한 동물들을 많이 치료해주고 유기견, 길고양이도 많이 도와줄 줄 알았다. 동물병원 이름이 ‘ㅇ동물병원’인 것도 고양이에 대한 의지가 컸었다. 지구상에 인간이 살고 있는 거리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동물이 고양이니깐.

    그런데 막상 병원 운영해보니깐 정말 그건 꿈이었다. 꿈.(웃음) 그때 꿈 꿨던 거는 진짜 꿈이었구나 싶었다. 전혀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하루하루 병원을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불쌍한 동물들을 치료해주고 수의사로서 내 역할을 해야겠다는 지난 세월들이 반성하게 될 만큼.

    물론 개인의 영리를 위해 대부분 병원 운영에 시간을 투자하다가 아주 잠깐 정말 남는 짬에 남은 에너지로 조금만 관심을 보인 결과로 죽을 아이가 살아남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런 가끔 있는 일 때문에 너무 큰 자괴감을 느끼지 않고 그런 일들에 기대어 겨우겨우 나를 미워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특히 선행은 아니지만 나의 작은 관심으로 동물들을 돌봐주는 걸 가끔 주변에서 너무 좋게 말씀해주시니깐 사실 내 마음은 그런게 아닌데도 거기 부합하려고 행동도 하게 된다.(웃음) 그래서 수의사가 되기 전 꿈 꿨던 것들을 아주 놓은 건 아닌 것 같다.

    인터뷰하기 직전에 어느 할아버지께서 길고양이 한 머리를 데려오셨다. 눈을 잘 못 뜨는 것 같다고 약 한번만 넣어달라고 해서 정말 한 방울 넣어줬는데, 아마 그 아이는 그 한 방울이 없었으면 실명됐을 거다. 내가 넣어준 안약은 정말 원가 몇 백원 하지도 않는 약 한 방울인데도 말이다. 그럴 때 직업적으로 정말 큰 보람을 느끼고 이것이 이 직업의 매력이자 장점인 것 같다.

    장여진: 그러한 장점과 보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어려움도 있을 것 같은데.

    김야옹: 사실 주변에서 수의사로서의 희생이나 봉사를 많이 요구한다. 물론 자발적으로 하려하는 것도 있지만. 편입 공부할 때 알게된 학생들과 여전히 만나고 있는데 그들 99%는 대부분 수의사에 대해 이런 상상을 했다. 선그라스끼고 오픈형 지프 타고 아프리카 초원을 달리다가 아픈 동물이 있으면 멋있게 딱 내려서 마취총 한 번 쏴서 주사 한방 놔준 뒤 ‘잘 살아라’ 멋있게 인사하고 커피 한잔 마시며 휙 가는 상상.(웃음)

    그건 정말 말 그대로 꿈이지만, 그 꿈안에는 동물들에 대한 측은지심, 어떤 댓가를 바라지 않고 도와주겠다는 기본 마인드가 있다는 의미이다. 의사들도 숭고한 인류애와 환자에 대한 사랑도 있을테고 수의대 학생들도 상당 비율이 그런 마음으로 들어온다. 보호자분들도 그런 수의사들을 바라기도 하고.

    그래서 정말로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 봉사라던가 이런 걸 할 수 있기는 한데 반면 보호자분들 중 일부는 수의사한테 뿐만 아니라 다른 서비스업종에게도 그렇듯 어떠한 마진을 허용하지 않는 것 같다.

    현명한 소비생활이야 바람직하겠지만 타인이 생활할 수 있는 여유를 인정해야 상대방도 다른 곳에서 그러한 여유를 발휘할 수 있는 건데, 유난히 동물병원에 그러한 선행을 강요하고 이익은 허용하지 않는다. 물론 동물병원에 안 좋은 점도 있었기 때문이었겠지만 동물병원에 대한 피해의식 같은 게 있고 신뢰가 좀 약한 편인 것 같다. 실제로 저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인 분들도 어떤 누군가의 다른 이야기를 듣고 와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신뢰를 깨는 경우를 많이 봤다.

    장여진: 그래도 포털사이트 평가도 다른 곳과 비교해 많이 후하다. 인터뷰하러 오기 전에 병원이름으로 검색을 했더니 각종 고양이 까페에서 길고양이 데려왔다는 이유로 치료를 공짜로 해주더라, 친절하더라는 칭찬도 많고.

    김야옹: 내가 유난히 마음이 약해서 그런지 좀 딱한 처지에 있는 동물들을 우리 병원으로 데려오는 분들이 굉장히 많다. 때문에 우리 병원에는 품종묘가 별로 없다. 압도적으로 코숏이, 그것도 가정묘가 아니라 길 출신 고양이가 많이 온다. 그래서 병원 운영이 더 어렵기도 하다. 이건 내 행동의 결과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감수해야 일이긴 하지만 병원 운영할 때 조금 더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 내가 모든 분들의 사정을 봐드린다면 나중에는 어떠한 분들의 사정도 봐줄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올지도 모르니깐.

    그리고 다른 동물병원 운영에도 지장 있기 때문에 아주 일부 한정적으로 해드린 거지 그렇게 또 많이 해준 건 아니다. 포털사이트 평점도 최근 들어 우연히 평이 좋은 것 뿐이다.

    외려 은근히 우리 병원을 안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다. 길고양이, 불쌍하거나 아픈 고양이가 잘되면 정말 보람도 느끼고 좋긴 한데 오해를 사는 경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정말 보람은 가뭄에 콩 나듯 나고 제가 의도하지 않는 오해로 스트레스 받는 일은 거의 매일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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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외과실습 때 수술했던 아이 샘. 지금도 잘 크고 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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