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경제위기의 주범과 피해자
사익추구 집단이 권력을 장악했을 때의 경제적 광경
    2012년 06월 17일 09: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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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유럽 사람들이 현재 유로존 위기를 보는 생각들을 전해보려고 합니다.

레디앙에 올라온 그리스 급진좌파당 시리자의 대표 치프라스의 인터뷰를 읽고 그리고 그 기사에 대해 페이스북에서 댓글 올라오는 걸 보면서 한국의 진보적 독자들이 그리스 문제를 피부로 느끼지는 못한다는 걸 느낍니다.

또 감당할 수 없는 나라빚을 짊어진 그리스 사람들과 자기가 땀 흘려 번 돈이 휴지조각이 된 독일 등 채권국 사람들의 분노를 이해해야 지금 꼬인 상황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경험은 너무 작아서 커다란 사건의 다양한 측면들을 다 알 수는 없다는 거죠. 아무리 장님이라도 코끼리의 다리, 상아, 코, 귀, 그리고 꼬리 등 여기 저기를 많이 만져 봐야 대강의 윤곽이라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많은 호화요트의 모습들

저는 영국 신문 가디언에 실린 이 인터뷰를 보고서야 시리자가 왜 유로 잔류를 얘기하는 지 비로소 알것 같습니다.

사실 그동안은 그리스 사람들의 마음은 잘 이해를 못했거든요. 제가 사는 네덜란드에서 보면 그리스인들은 ‘닥치고 빚 갚아’야 할 사람들일 뿐입니다. 사람이 원래 자기 주머니 돈 나가는 데는 민감해도 남의 주머니에서 돈 나가는 건 무덤덤한 거지요.

그리스 사람들의 마음은 이런 것 같습니다.

그들은 그리스 경제가 이 모양이 된 건 위정자들과 부자들이 경제를 망쳤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다 하는 거예요.

한 예로 그리스에서는 해안가에 개발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는데, 부자들은 해안가에 별장을 짓기 위해서 몰래 산에 불을 질러요. 직접 하지는 않겠지만 청부방화를 하는 거지요. 산불이 나면 나무들이 없어졌으니 그 지역의 용도 변경이 가능해지고 공무원들에게 로비해서 해안가에 근사한 빌라 짓는 허가를 따내죠. 그러다가 불이 번져서 큰 불이 난 적도 있어요.

또 있습니다. 치프라스의 인터뷰를 보면 ‘선박 소유자’라는 표현이 있죠. 한국 독자들에게는 좀 낯선 표현일 겁니다. 제 생각에는 호화 요트 주인들을 얘기하는 것 같아요.

몇 년 전 그리스 여행을 갔을 때 한 해안도시에서 밤에 고급 호텔 주변을 산책한 적이 있죠. 호텔 안 쪽에 조그만 항구가 있고 거기에는 호화 요트들이 진을 치고 있어요. 삐까번쩍한 요트들의 주인은 다 누구일까 궁금하더군요. 요트 하나에 보통 몇 억 씩 하고, 비싼 건 백만 유로(약 15억)가 넘어요. 그런 거 갖고 있는 그리스 사람들이 수천 수만 명 쯤 있어요. 평범한 그리스 사람들이 묻는 건 그 돈이 다 어디서 나왔냐는 거죠. 결국 그리스 부자들의 탈세와 공금 빼돌리기를 막지 않고서는 유로존 잔류나 탈퇴나 뭘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수혈을 하는데 중간에 구멍이 있어서 피가 중간에 다 빠져 나가면 환자가 수술을 제대로 받을 수 없지요. 치프라스는 바로 그걸 독일과 프랑스 등 인민들에게 얘기해주려는 거예요. 부자 나라들은 자기가 빌려준 돈 돌려 받는 데만 관심이 있어서 정부 긴축을 통해서 일단 돈을 더 빌리지 말아라고 말하고 있지요. 그런데 그리스는 부자들이 세금 안내기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결국 돈 없는 사람들이 부자들 돈을 대신 갚아줘야 하는 거예요. 부자들은 스위스 은행으로 돈을 빼돌릴 수 있지만, 월급장이들은 못하지요. 일단 새는 돈부터 출구를 막고 경제를 살려야 빚도 갚을 수 있다는 게 치프라스의 얘기입니다. 돈을 떼먹으려는 게 아니라 갚을 수 있게 숨돌릴 여유를 달라는 거지요.

채권국 사람들도 손해본 게 많습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연금은 매달 월급에서 몇 십만원을 떼어서 회사마다 혹은 여러개의 회사가 함께 기금 조성해서 주로 국채와 증권에 투자해서 돈을 불리는 시스템인데, 유럽 금융위기로 이자로 돈을 불리는 게 아니라 투자액 회수를 못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연금기금들이 적립금을 까먹고 있고 연금 수령액도 줄이고 있지요. 경제가 어렵다고 복지를 대폭 삭감하면서도 그리스 구제금융으로 나라에서는 한번에 몇 조원씩 팍팍 내놓고 있지요. 그런데 그 돈 나중에 돌려받을 수 있느냐? ‘못 받는다고 보는 게 맞다’는 말을 방송에 나온 경제학자들이 해요. 그럼 받지도 못할 돈은 왜 빌려주냐는 생각이 당연히 들지요. 결국 그 돈은 그리스에 돈이 물려 있는 독일과 프랑스 은행들을 구제하려는 거라는 게 뻔히 보이는 거지요.

호화요트의 한 장면

눈가리고 아웅하는 유럽 정상들의 그리스 왕따 놀이

결국 지금 그리스 사태로 이득을 본 건 그 많은 돈을 빌려서 경제를 살리는 게 아니라 자기 호주머니 불리기에 쓴 그리스 위정자들과 부자들이고, 그리고 이런 사정을 뻔히 알고도 돈을 빌려주고, 그리스 국민들에게 대신 갚으라고 윽박지르는 유럽 채권국들의 정치인들이 이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지금처럼 그리스든 독일이든 돈 없는 시민들이 고스란히 손해를 보는 건 고쳐져야 한다는 거지요.

언론의 그리스의 유로화 탈퇴설 유포의 의도는 무얼까?

시리자는 계속해서 유로화 탈퇴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하지만 언론은 계속 시리자가 제 1당이 되면 유로화에서 탈퇴할 거라고 추측성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그리스가 유로화를 탈퇴하는 게 그리스와 유로존 나라들을 위해서 좋다고 얘기합니다만, 그리스는 우선 꼬인 실타래부터 풀고 나서 유로존 잔류 여부를 얘기하자는 겁니다.

지금 유로존을 탈퇴한다고 해서 채권국들이 모든 부채를 탕감해줄 것도 아니고, 결국 그리스를 버림으로써 유로존의 폭탄 하나를 제거하는 건데, 그리스 경제가 어떤 충격을 받을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최악의 경우 그리스난민들이 유럽 여러 나라로 무작정 떠나는 집단 탈출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그리스 젊은이들 절반은 실업자 상태고, 다들 독일어 영어 배워서 해외 취업할 준비만 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유로화를 탈퇴하더라도 독일 등 유럽연합의 리더들이 그리스의 연착륙을 도와줘야만 하는데, 지금으로선 뼈를 깎는 구조조정만이 해법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정작 그리스 사람들은 이젠 더 이상 깎을 뼈도 없다고 호소하고 있는 데 말이죠.

그리스 사태의 교훈

그리스가 이 지경이 된 데는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유로존 나라들의 재정적자 3% 이내 유지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회계조작으로 국가 재정 적자를 줄인데도 있습니다. 실제 재정적자규모가 GDP의 6-7%인데, 그걸 3-4%로 줄인 거죠. 대우그룹이 망하기 전에 했던 분식회계를 국가 규모에서 했던 겁니다. 그건 2000년대 여당이었던 신민주당(과거 군사독재세력과 보수세력들의 정당)이 했던 짓이었고 사민당이 집권하면서 파판드레우 총리가 밝혔었죠.

결국 그리스는 국가권력을 사익을 위해서 쓰는 집단이 잡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입니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가 안되면 나라와 백성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당한다는 걸 보여주는 거지요. 한번 IMF를 겪어본 한국은 아직도 이에 대한 경각심이 낮은 것 같아 보입니다. 그리스를 보고 한국사회의 모습을 들여다 보고 고칠 곳을 찾기를 바랍니다.

필자소개
레디앙 네덜란드 통신원/ 개인 이메일 jjagal55@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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