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대중문화의 키워드 '가와이이'
    [책소개] 『가와이이 제국 일본』(오모타 이누히코/ 펜타그램)
        2013년 12월 01일 03:48 오후

    Print Friendly

    <가와이이 제국 일본>은 한마디로 일본 대중문화 전반에 공통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품 미학을 ‘가와이이’(귀엽다)란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는 문화 비평서이다.

    그동안 국내에 저패니메이션, 오타쿠, 게임, 라이트 노블 등 일본의 팝컬처 혹은 서브컬처를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책들이 출간되어 왔지만 어딘지 충분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못내 떨칠 수 없었다. 이 다채로운 문화의 이면을 관통하는 이론적 분석이 빠져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대 일본 대중문화를 총체적으로 포착하는 미학 ‘가와이이’

    ‘가와이이’라는 말은 이미, 오늘의 일본과 일본 문화를 읽어내는 데에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대중소비문화의 중요한 속성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가와이이 제국 일본>은 저자 요모타 이누히코가 말했듯이 “그토록 중요한 주제인데도 아직까지 본격적인 분석의 대상이 된 적이 없는 ‘가와이이’ 현상을 최초로 다룬 책”이다.

    이 책은 1990년대의 소녀 문화 연구 단계에서 한 걸음 나아가, ‘가와이이’를 학술적 연구 대상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연구사적 의의도 갖고 있는 것이다.

    <가와이이 제국 일본>이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물론, 일본 팝컬처 전반이 품고 있는 근원적인 어떤 것을 파악하는 데에 중요한 힌트를 던져 줄 것이라 기대한다.

    이 책이 출간된 이후 일본 사회 전반에 봇물처럼 ‘가와이이’ 논쟁을 촉발하였으며 본문이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고 매년 대학 입시 문제의 예문으로 출제되는 등 화제의 중심에 놓였다고 한다.

    서구의 문화 이론을 직수입해 고답적인 문제로 생경한 문화 논쟁에 빠지는 것에서 벗어나 대중소비문화라는 현실적인 주제를 연구해 하나의 미학적 원리로까지 포착했다는 점에서 우리 문화계에 던져주는 시사점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겉핥기식 인상비평에 머물거나, 산업적 콘텐츠 전략만을 고민해서는 우리의 문화가 나아갈 수 있는 한계치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한류의 미학, 한국 대중문화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 필요

    한류는 이제 다양한 모습으로 세계와 접촉하고 있다.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무너진 글로벌한 문화 환경에서 우리 사회의 의지와 무관하게 융합과 변용을 거쳐 세계와 경쟁해 나갈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지금 여기 우리의 문화를 어떠한 이론과 미학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혹은 따라하기를 벗어난 독창적이고 수준 높은 한류의 생성은 가능할까?

    한류를 설명할 수 있는 미학적 담론, 우리 대중문화의 독자성과 근원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과 개념들이 필요하다. 현장의 생산과 해석의 노력이 결합할 때 한국 대중문화의 다음 단계를 고민할 수 있는 비전과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류만의 문화적 특질을 개발하고 제시하지 못할 때 그것은 국적 없는 일시적 문화 현상으로 끝날 것이다. 이 책 <가와이이 제국 일본>은 그런 점에서 대중문화 비평의 모범을 보여주며 우리가 참조할 수 있는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5만 가지의 관련 상품으로 무장하고 60여 개 국가에서 팔리고 있는 ‘헬로키티’ 캐릭터! 대미 수출액이 철강 산업의 네 배 가까이 많으며 전 세계 시장의 60%를 장악한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 과연 그 경쟁력의 비밀은 무엇일까?

    일본 대중문화의 성공 신화를 설명하는 상품 미학 ‘가와이이’(귀엽다)

    현대 일본 대중문화의 가장 중요한 특질은 무엇일까? 현상적으로 보자면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미소녀 문화, 라이트 노블, 각종 캐릭터 상품 등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해져 있는, 그리고 세계 어디를 가든 온갖 매체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일본 대중문화를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인의 꼼꼼함, 장인 정신, 오타쿠적 특징, 산업적 전략, 정부의 정책 등을 언급하며 그 성공 신화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산업적 규모에 놀라기도 할 것이다.

    일본발 캐릭터 상품은 20세기에 이어 21세기에도 세계를 여전히 석권하고 있으며 그 시장 규모는 무려 2조 엔을 넘는다. 전 세계 곳곳에서 판매되고 있는 키티 관련 상품은 5만 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산업의 경우 2000년대에 이미 전 세계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생산량의 60%를 담당하는 규모에 이르렀다. 일본 국내에서 소비되는 것은 겨우 10%에 불과하고, 나머지 90%는 수출용이다. 애니메이션의 대미 수출액은 철강 산업의 네 배 가까이 많다고 한다.

    가와이이

    <가와이이 제국 일본>은 일본 소비사회를 밑에서 떠받치고 있는 대중문화의 근저에는 기존의 장르적, 산업적 분석으로 설명할 수 없는 더 본질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본다. 즉 일본 대중문화의 세계적 성공과 그 산업적 생산 과정의 기저에 흐르고 있는 공통적인 중요한 미학적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그 미학적 특질이야말로 현대 일본 대중문화의 성공과 신화를 설명할 수 있는 본질적인 것이라고 본다. 바로 ‘가와이이’(귀엽다) 미학이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Kawaii’라는 표제어로 등재

    ‘가와이이’란 우리말로 대략 ‘귀엽다’라는 뜻의 형용사로 일본에서는 “가와이∼이!”라고 하며 감탄할 때 내뱉는 어구로 흔히 쓰인다. 그런데 한국말 ‘귀엽다’ 보다 일본의 ‘가와이이’가 포괄하는 영역과 그 의미의 폭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다. 실제로 일본 문화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문제의 이 형용사 ‘가와이이’란 말을 무의식 속에 저장하고 있을 것이다.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사랑받는 헬로키티, 도라에몽, 포켓몬스터, 피카츄, 세일러문, 토토로 같은 캐릭터들, 전 세계 어디와도 비교 불가능한 독특한 소녀 만화들, 스티커 사진, 봉제 인형, 모형, 피규어 등이 지닌 가장 큰 특징 역시 하나같이 ‘가와이이(귀엽다)’라는 점이다.

    ‘가와이이’는 그 언어적 기원을 따지자면 헤이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연원이 깊은 일본의 역사와 문화적 속성을 품고 있는 단어이다. 이 ‘가와이이’를 중요 미학으로 한 일본 소비문화 상품이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과 타이완, 중국 등 아시아를 넘어 구미에까지 폭넓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실례로 ‘가와이이’란 형용사는 이미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kawaii’라는 표제어로 등재될 정도로 일본의 미의식을 대표하는 단어로 인정받고 있다.

    일본의 저명한 영화 평론가이자 문화 비평가인 요모타 이누히코 교수가 쓴 이 책은 ‘가와이이’라는 형용사가 어떻게 일본의 대중소비문화를 구성하는 대표적인 ‘미학적 개념’으로 군림하였으며, 현실과 역사를 억압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다룬 독특한 문화 비평서이다.

    미성숙, 작은 것, 그리움을 기반으로 한 미학

    저자에 의하면 ‘가와이이’는 작은 것(미니어처), 그리움(노스탤지어), 아이스러움, 미성숙 등을 그 미학적 구성 요소로 하고 있다.

    전방위적 문화 비평가 요모타 이누히코는 일본 소녀문학의 신기원을 연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 일본의 고대 문학,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 등 문학 작품과 헬로키티, 포켓몬스터 등의 캐릭터, 세일러문 같은 미소녀 문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같은 대중문화, 대학생 대상 설문조사, 각종 미디어 분석, ‘모에’의 성지라 불리는 아키하바라(오타쿠라 불리는 남성들의 거리), 이케부쿠로(소녀 문화의 메카), 신주쿠니초메(세계적인 게이존)의 현장 탐방 등을 통해 ‘가와이이’라는 단어의 기원에서부터 시작하여 다양하게 표출되는 ‘가와이이’ 현상의 본질에 다각도로 접근한다.

    ‘가와이이’가 일본 문화의 어디에 기원을 두고 있는지, 다양한 변천을 거쳐 오늘의 일본을 뒤덮는 거대한 신화로 군림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가와이이’ 미학이 어떠한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가와이이’는 미학적으로 미(美)와 그로테스크 사이에 있는 광대한 영역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작동하고 있다. 작은 것, 어딘지 그리움을 자아내는 것, 지켜주지 않으면 금세 부서질지 모를 정도로 취약하고 덧없는 것, 어딘지 로맨틱하여 사람을 정처 없는 몽상의 세계로 이끄는 힘을 가진 것,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것이 ‘가와이이’의 현상적 미학이다.

    이 미학적 향신료가 일본 대중문화 상품의 곳곳에 듬뿍 뿌려져 일본 소비문화 상품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결정적인 경쟁력을 만들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가와이이’ 미학은 현실의 노동을 지워내는 몰역사적인 퇴행적 미학

    하지만 ‘가와이이’ 미학은 대상에 실재하는 본질이 아니다. 그것은 문화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만들어낸 신화이며 관념이다. 본질적으로 몰역사성과 무시간성, 비정치성, 타자성을 이면에 감추고 있으며 퇴행적이다.

    이 미학은 역사라는 관념의 희생을 통해 달성되고, 현실의 문제는 이 속에서 억압되고 부정된다. ‘가와이이’ 미학이 유포하는 행복감과 쾌락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소비자는 유토피아적 몽상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독립된 자아를 거부하는 미성숙,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비역사적 노스탤지어(그리움), 완벽한 세계에 대한 갈망을 허구의 바탕 위에 무시간성을 특징으로 구축한 작은 것(미니어처)에 대한 집착 등이 ‘가와이이’ 미학이다.

    이러한 ‘가와이이’는 현실에서 충족될 수 없기에 끊임없이 소비되어야 하고 현대 소비사회의 신화로, 대중소비문화 상품 생산의 이데올로기로 군림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적 퇴행과 젊은이들의 탈정치성을 초래한 소비 미학 ‘가와이이’

    저자는 현재 일본의 정치적 퇴행이 ‘가와이이’ 미학이 점령한 일본 대중문화의 영향이라고 본다. 실제로 일본의 젊은이들은 더 이상 천황을 정치적 존재로 보지 않는다. 그 역사성을 지워버리고 ‘천황은 귀엽다(가와이이)!’란 말을 서슴지 않는다.

    도쿄 젊은이들의 거리 패션에서는 런던의 펑크룩 같은 대항문화가 깃들인 정치성을 전혀 느낄 수 없다. 그들은 그저 귀여우니까 즉 ‘가와이이’를 이유로 그러한 복장을 선택한다.

    ‘가와이이’ 미학의 향신료가 듬뿍 뿌려진 80년대의 마루문자, 90년대의 ‘오타쿠’, 2000년대의 ‘모에’ 붐까지 일본 ‘가와이이’ 문화는 세계의 서브컬처 중에서도 철저하게 탈정치성을 표방한다는 점에서 독자적이라 할 수 있다.

    ‘가와이이’는 패전 이후 약하고 해롭지 않은 존재라는 일본인의 자기 인식 결과

    ‘가와이이’를 그저 21세기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현상으로 이해하고 만다면 그것이 하필 일본에서 발신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일본인들은 왜 모든 것에 ‘가와이이’라는 향신료를 뿌리게 되었을까? 일본 사회는 어쩌다 ‘가와이이’라는 거대한 신화로 뒤덮이게 되었을까?

    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일본을 점령한 연합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가 “일본인은 열두 살짜리 국민이다”라는 발언을 하였다.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저자는 이 발언이 일본인의 행동 양식을 관찰한 결과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본다.

    외부에서 보았을 때 일본인은 유치해서 스스로 결정하기를 회피하고 타협적 태도를 보인다(혹은 그렇게 연기한다). 이러한 인식의 근저에는 패전 이후 일본인 스스로가 우리는 아이처럼 약하고 해롭지 않은 존재라고 여기는 자기 인식을 통해 이웃의 경계를 풀게 하고 서로가 그 유치함을 공유하면서 통합된 집단을 조직해 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가능하게 한 것이 또한 ‘가와이이’ 미학이다. 완성된 것을 외려 멀리하고, 서툴더라도 미완성인 것을 소중히 여기는 미학. 일본인은 이러한 미학을 오랜 세월 동안 대중적으로 향유해 왔음을 저자는 일본의 일상생활과 ‘가부키’ 문화를 통해 설명한다.

    글로벌한 문화 환경, 서구 문화와의 적극적인 하이브리드(융합)의 결과

    ‘가와이이’ 미학의 정립은 또한 20세기 글로벌한 문화 환경과 세계화를 배경으로 한다. 일본의 대중문화 즉 신파극, 영화, 만화 등의 장르는 구미 문화와의 접촉에 의해 근대에 생성된 것이다.

    가부키, 우키요에, 도자기, 기모노 등의 전통적인 문화와는 달리 오랫동안 일본을 표상하는 문화로 인정받지 못했고 지식인들이 언급하는 일도 드물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이들 대중문화 장르는 구미 문화와 적극적으로 융합하여 ‘하이브리드’ 화를 진행할 수 있었고 ‘전통적’ 제약에 속박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스타일’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글로벌라이제이션에 의해 일본 사회의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수많은 사물과 이미지가 그 사이를 마음껏 오가며 변용과 증식을 거듭하였다. 이렇게 정립된 ‘가와이이’ 문화가 미국 문화 패권의 상대화와 문화의 세계화란 계기를 타고 해외로 나가게 된 것이다. 만화, 애니메이션, 컴퓨터 게임, 대중음악(j-pop) 등 다양한 장르의 일본 대중문화는 멈출 줄 모르고 해외로 침투했고 시장에 보급되었다. 그것을 통합하는 밑바탕에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가와이이’ 미학이다.

    일본 문화 문외한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문화 교양서

    왜 일본에서 만들어진 거의 모든 캐릭터와 상품들은 죄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건지, 한국인이라면 누구든 한번쯤 의문을 가져보았을 것이다. <가와이이 제국 일본>은 그런 의문을 차근차근 풀어주었고, 나아가 그런 사랑스러운 것들이 지닌 위험성을 날카롭게 짚어냈다. 이미 일본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소비 상품의 미학 원리로 등극한 이 현상의 이면에 깔린 성적·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 책은 ‘가와이이’를 21세기 일본 소비사회, 대중문화의 주요한 미학으로서 자리매김하고, 그 구조를 통시적·공시적으로 분석하는 첫 시도이다.

    매우 재치있게 글을 풀어가면서도 반짝이는 지적 성찰이 곳곳에서 드러나 일본 문화의 문외한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문화 교양서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