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만볼트 송전탑,
    사람 몸 만신창이로 만들었는데
    [현장편지]11.30~12.1 밀양 희망버스에 함께 타요
        2013년 11월 18일 09: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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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에서 송전탑 건설에 맞서 싸우고 계신 할머니들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는 저는 1년 전 평택에 있는 15만4000 볼트 송전탑에 올라 장기간 농성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송전탑에 오르면 농성장이 침탈당하지 않고, 충분히 저희들의 요구사항을 전국에 잘 알려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해고자 복직과 비정규직 정규직화, 쌍용차 국정조사라는 우리의 요구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수백 명의 경찰들이 몰려 왔지만 송전탑 20미터 중간에 까치집을 틀고 앉아있는 저희들을 끌어 내리지는 못했습니다. 고압이 흐르고 추락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침탈을 당하지 않고 171일이란 장기간 농성을 진행했으니, 애당초 목적한 대로 농성 그 자체는 원 없이(?) 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송전탑 농성에 대해 하나만 생각했지, 둘은 몰랐습니다. 쌍용차 투쟁 5년 동안의 한맺힘이 너무나 절박했고 간절했기에, 앞뒤 가릴 것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171일간의 송전탑 농성이 지난 후, 몸은 망신창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애당초 목적대로 원 없이(?) 한 농성

    저를 포함하여 문기주, 한상균 3인이 쌍용차 평택공장 앞 송전탑에 오른 것은 겨울이 막 시작되는 2012년 11월 20일 새벽이었습니다. 철탑에 오르던 당일 바람이 정말 거세게 불어 닥쳤습니다.

    임시 천막을 설치하지 못하고 밤을 새었더라면 동태로 꽁꽁 얼어붙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늦가을부터 시작한 농성은 몇 십 년 만에 가장 추웠다는 한겨울 맹추위와 흐린 날이면 머리위에서 윙윙거리며 울어대는 고압선과 사투하며 봄이 되어서야 끝낼 수 있었습니다.

    아니, 끝내고 싶어 끝낸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농성을 지탱할 수 없는 몸이 되어 눈물을 머금고 내려왔던 것입니다. 살인적인 추위로 인한 고통,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삼겹살을 굽는 듯 윙윙거리며 위협적인 고압선, 쌍용차 사태 해결의 의지를 밝혔던 박근혜 정부의 약속 뒤집기는 농성을 지속시키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갇힌 공간에서 인간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지를 시험받는 양 하루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 때문이었습니다. 송전탑 농성은 그렇게 육체적으로 피를 말렸습니다. 제 아무리 인터넷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했어도, 고립된 공간에서의 무력감과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15만4000볼트 송전탑 171일 농성, 만신창이가 된 몸

    고립과 무기력을 일으켜 세우고 깨운 것은 매일같이 새롭게 찾아오는 연대 동지들 이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먼 곳에서 찾아와 들려주는 반가운 목소리와 몸짓, 출퇴근을 하면서 흔들어 주었던 공장안 동료들의 호응, 고공 농성자들의 뒷바라지를 해주었던 든든한 가족과 동지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습니다.

    송전탑에서 농성하는 동안 밀양 투쟁을 들었습니다.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하신 이후였던 터라 공사가 중단되었을 뿐, 76만5000볼트 송전탑 공사는 밀어 붙인다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수개월이 흐른 현재 밀양은 말 그대로 전쟁터로 변해 있습니다. 밀양 송전탑을 목숨 걸고 막아내고 있는 중심에는 대부분 현지 주민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입니다.

    청도송전탑4

    사진=apsan.tistory.com/645

    사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 분들은 무엇 때문에 죽기를 각오하고 투쟁하고 있는 것일까요? 한 평생을 가난하게 흙에서 농사를 지어오셨을 노인들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청도와 밀양 등 긴 구간에 수백 개가 들어선다고 했고, 많은 마을에서는 한전과 주민 보상 등에 합의를 하면서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된다고도 합니다.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는 합의란 대부분 밀실에서 지역 유지 등 몇 사람이 꿍짝해 놓고는 ‘주민 대부분이 동의하는 합의’로 둔갑하는 것이지만요. 송전탑이 지나가는 마을 대부분이 찬반으로 갈라져서 이웃끼리 서로 쳐다도 안 볼 정도로 분열되었다 합니다. 인심 좋은 시골마을은 옛말이 되었다 합니다.

    무엇이 순박하고 때로는 보수적이었던 시골의 할머니들을 투사로 변하게 했을까요? 정부와 한전이 야당과 진보진영의 움직임보다 밀양 주민들의 투쟁을 더 경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인간으로서 도저히 용납 할 수 없었고, 당신들이 나서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정부와 한전이 밀양 주민들을 경계하는 이유

    밀양의 오늘은 아마도 수년간 대립해 왔던 과정의 결과물일 겁니다. 새로운 핵발전소를 세우고, 전기를 도시로 보내기 위해 고압선이 계획되고, 지도를 놓고 이리 저리 선을 긋고, 측량을 하고, 땅 주인들과 마을에 한전 관계자들이 드나들었을 겁니다.

    한전과 정책 당국자, 정치인과 지방 행정부, 지역 유지, 마을 이장 등 대부분 힘 있고 빽 있는 자들에 의해 설계되고 선이 그어졌습니다. 대부분의 해당 주민들은 몰랐고, 반대했고, 안 뒤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반대 대책위는 종종 한전과 지역 유지의 밀실 협잡, 회유와 매수에 의해 뒤집혀 찬성을 표하고 분열되고 박살나기 일쑤였다고 들었습니다.

    정작 대부분의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에서 배제되었고 주변인이었습니다. 권력 있는 소수가 떡 주무르듯 선을 긋고 사전에 손을 썼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송전탑 건설, 아니 핵발전을 포함한 에너지 전력사업의 맨 꼭대기에는 엄청난 사고를 치고도 뻔뻔스런 ‘도쿄전력’처럼 소수 자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수년 동안 이 과정을 지켜보았던 주민들이 어떻게 투쟁에 나서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핵발전과 송전탑에 꼭대기에 있는 자들

    게다가 신고리 3호기가 불량이고 시대에도 맞지 않고, 76만5000볼트 송전탑이 불필요하고 급할 게 없다는 사실이 투쟁의 과정에서 속속 밝혀졌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의 대폭발과 재앙은 남의 일이 아님도 보았습니다. 특히, 한전과 권력 있는 자들에 의해 자행된 이웃 간의 분열책, 인간성을 파괴하는 매수와 회유, 협잡과 배신은 도저히 용서 할 수 없었겠지요.

    그러니까 소수의 자본가들이 다수의 노동자들을 지배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구조와 더러운 행태가 밀양에서는 노골적으로 자행된 것에 대한 저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밀양으로 달려가자고 제안 드립니다. 밀양이 고립되는 것은 이 땅의 저항운동이 고립되는 것입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눈을 들어 산을 보면 송전탑 투성이입니다. 수 만 개에 달하는 송전탑으로 인해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흉물스런 모습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송전탑 고압선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입니다. 핵발전의 위협입니다.

    저는 15만4000볼트 고압선 송전탑 아래서 지글지글 삼겹살 굽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은 사람을 빨아들일 듯했습니다. 76만5000볼트의 위험성은 어떻겠습니까?

    무엇보다 밀양의 주인이면서 배제당하고 주변으로 내 몰렸던 주민들의 저항에 함께 해야 합니다. 한전을 비롯한 소수 권력자들의 횡포에 맞선 밀양 주민들의 투쟁은, 자본과 권력의 억압과 착취에 맞선 우리 노동자들의 투쟁과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밀양의 할머니들은 바로 우리 노동자들의 어머니의 삶과 모습입니다. 11월의 마지막 날 밀양으로 같이 달려갑시다. 노동자들의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함께 마음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땅 노동자 민중의 저항운동을 확대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필자소개
    쌍용차 비정규직지회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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