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전 폭발사고 41년 후
    [책소개] 『핵폭발 그후로도 오랫동안』(구드룬 파우제방/ 평사리)
        2013년 11월 16일 12:59 오후

    Print Friendly

    학교, 스쿨버스, 청바지, 우울증, 죽은 친구들의 사진, 먹는 음식, 요오드 알약, 가족, 이웃, 경찰, 목욕 등등. 폭발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 보고 청소년들의 삶과 꿈이 어떻게 변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재가 풍부하다.

    해피엔드로 끝날 기회가 사라져버린 세상!

    원자력 발전소 완전 중단을 2년 앞둔 2020년,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 사고로 독일은 일부 지역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버렸다. 국내 청소년 분야 스테디셀러인 <핵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이 사고 직후의 참상을 다루었다면, 같은 저자인 구드룬 파우제방은 이 소설에서 재해 이후로도 오랫동안 회복되지 않는 삶을 이야기한다.

    책은 사고 이후에 태어난 16세의 여주인공 비다Vida가 남미에서 온 또래 아이들을 데리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결하면서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춘 문장으로 원자력 에너지의 이용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분명하게 경고한다.

    핵폴발

    “나는 이후에 살아야 해. 그것도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14쪽)

    소설의 시점은 사고가 있고나서 41년 뒤이다. 비다는 원자력의 위험을 무시한 채 풍요만 누리고 살던 ‘이전’을 할머니로부터 전해 들으며, 이후의 삶을 이야기한다. “이후라는 말은 병을 뜻”한단다. 오른쪽 어깨에 손가락만 몇 개 붙어 있는 엠마, 갑상선 암으로 교실 자리를 자주 비우는 로니, 학교 현관 흑판에 붙어 있는 죽은 친구 사진들.

    또 ‘이후’는 가난이란다. 비싸서 과일이나 요구르트는 정말 가끔 맛보고, 생선은 구경도 못하고, 고기는 명절음식이 되었다. 도로는 여전이 구멍투성이며 학교는 비가 샌다. 죽은 할아버지의 옷을 수선해서 입어야 한단다. ‘이전’의 풍요가 기억으로 남아 괴롭히고, ‘이후’는 버겁다.

    16세 소녀 비다는 “끊임없이 이전과 이후를 이야기하며 죽음을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벗어나길 꿈꾸지만, 헤피엔드로 끝날 기회가 사라져버린 이곳에서 엄마와 함께 여전히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이후의 삶을 전한다.

    “할머니는 언제나 뒤보다는 앞을 바라보셨어”(112쪽)

    방사능에 오염되어 죽은 이모 로잔나와 아직도 한밤중에 대화를 나누는 우울증 환자인 엄마, 가족을 부양하겠다며 아르헨티나로 떠나버린 아빠, ‘잃어버린 것에 익숙해지자’며 꿋꿋하게 사는 외할머니가 비다의 가족으로 나온다.

    할머니를 통해서 비다 가족의 이후에 삶이 그래도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항상 진지했던 할머니는 방사능 출입금지 구역에 있는 고향 집에서 ‘평화로운’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다.

    연속되는 가족의 불행 앞에서 비다는 ‘왕년의 럭셔리’ 욕조에서 엄마를 목욕시키며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 이처럼 소설은 한 가족이 당하는 병과 죽음과 이별을 주로 그리고 있지만 희망이 가족 안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무척 따뜻하게 읽힌다.

    “쉽고 재미있는 소설들만 어린 독자들에게 선물하고 싶지 않다”(130쪽)

    구드룬 파우제방은 책의 후기에서 ‘왜 나치와 전쟁을 막지 못했나’에 대한 후손들의 질문에 아무 말도 못하고 움찔하는 부모 세대의 태도를 비판하며, 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를 말한다. 후손들이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를 묻는다면, ‘원자력의 저 무시무시한 위험을 막으려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했노라고’당당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단다.

    또한 파우제방은 ‘거룩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쉽고 재미있는 소설들만 어린 독자들에게 선물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청소년 독자들이 많은 생각과 고통스러운 감정을 요구하는 주제들 접하기를 기대하며 이 작품을 집필했다고 한다.

    오랜 교사 생활의 저력을 발휘한, 청소년 눈높이 소설

    대단한 흡입력을 자랑하는 구드룬 파우제방의 문체를 만날 수 있다. 간결하고 정확하며 군더더기가 없이 명쾌하다. 오랜 교사 생활을 한 저자의 경험이 놀라운 저력을 발휘한다. 아이들이 무슨 말을 쓰며, 어떻게 얘기를 풀어나가는지 알고 쓴 글이다.

    전문용어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마치 참사의 현장을 두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한다. 기형으로 태어난 친구들, 방사능 피해로 신음하는 엄마, 늘 힘을 북돋워주는 할머니, 학교생활 등이 사춘기 소녀의 감성으로 호소력 짙게 다가온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보고 영감을 얻어 썼다는 이 소설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게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일깨우면서 가족과 친구의 소중함을 더할 나위 없이 설득력 있게 그렸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