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베, 혐오한다고 없어지지 않아
    [책소개]『일베의 사상』(박가분/ 오월의봄)
        2013년 11월 01일 05: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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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일베 프레임’의 정체

    최근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가 논란이다. 일베는 끊임없이 한국 사회를 자극한다. 특정 지역 비하, 여성 혐오,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조롱, 인종차별, 패륜과 엽기, 게다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홍어 택배’ 운운하면서 단순한 무장폭동이라고 주장한다. 전두환·박정희 전 대통령을 당당하게 미화하기도 한다.

    이런 일베의 활약은 인터넷이 진보세력에게 친화적이라는 그동안의 통념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그리고 이런 일베 프레임이 인터넷을 넘어 현실에도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야말로 ‘새로운 젊은 우파의 탄생’ ‘한국형 넷우익의 탄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지금 한국은 일베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어떤 이는 일베가 ‘쓰레기 폐기장’일 뿐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관심을 줘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을 ‘일베충’이라는 경멸적인 단어를 사용하며 단순히 무시하고 반감을 표할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무시하고 경멸한다고 해서 일베와 같은 존재가 사라질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일베가 없어진다고 해도 다른 곳에 또 다른 일베가 만들어질 것이다. 게다가 ‘일베 프레임’은 이미 한국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고,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다. 특히 젊은 층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일베 용어가 일상에서 쓰이고 있고, 일베식 유머가 유행하고 있다. 한 연예인은 무의식적으로 일베 용어를 써서 큰 논란이 된 적도 있다. 무엇보다 한국 정치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블로그 ‘붉은서재’를 운영하고 있는 이 책의 저자이자 청년논객 중 한 명인 박가분은 일베에게도 나름의 사상이 있으며 ‘일베의 사상’이 무엇이고 어디에서 유래하는지를 봐야만 일베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몇 달 동안 일베에 상주하며 ‘일베의 사상’을 추적했다. 일베에게도 나름의 사상적 의제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컬트문화로 그치지 않고 이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비슷한 행동이 ‘반복’되는 현상은 사회적 논란과 처벌을 감수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사상적 의지’가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사상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에서 사상성의 존재를 포착해야만 비로소 그것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일베 유저들에게 윤리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그들 자신을 자유로운 존재로, 즉 자율적인 사상에 입각한 존재로 간주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박가분은 또 일베가 ‘촛불시위의 쌍생아’라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일베는 진보좌파들의 거울쌍이라는 것이다. 일베는 인터넷을 그들만의 자율적인 공론장으로 전유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진보좌파에 대한 반동에서 시작되었으며, 진보좌파가 스스로의 정치적 상상력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일베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국의 진보진영은 그동안 자신의 이상을 유기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사회 없이 자신의 이상을 국가에 의해 곧바로 실현시키려는 기획에 과도하게 의존해왔다고 지적한다. 그런 까닭에 진보좌파가 일상에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어야만 일베의 사상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결론 내리고 있다.

    <일베의 사상>은 ‘일간베스트저장소’라는 사이트를 내재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책이며,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새로운 젊은 우파를 분석한 책이다. 또한 진보좌파의 반작용으로 일베가 탄생했으며, 진보좌파가 어떻게 해야 일베를 마주할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는 책이다.

    일베에서 유행하는 ‘세 줄 요약’식으로 이 책을 요약하면 이렇다. (1) 일베는 2002년부터 시작된 촛불의 사상(여기 인터넷=광장에 모인 우리가 곧 국가이다)을 계승한다. (2) 일베는 현실의 국가, 현실의 시민사회에 대한 요구를 단념하고 인터넷 내에서의 인정투쟁 방식을 현실로 끌고 오는 새로운 유형의 젊은 우파들이다. (3) 이러한 일베의 사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광장=인터넷에 모인 사람들이 이후에도 각자의 일상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이상을 작게나마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일베의 사상

    일베의 사상은 무엇인가

    지난 2010년 개설된 일베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유머 사이트이자 뚜렷한 보수우파의 정치 성향을 띤 인터넷 커뮤니티이다. 일베는 본래 디시인사이드의 ‘야구갤러리’(야갤), ‘코미디 프로그램 갤러리’(코갤), ‘정치사회 갤러리’(정사갤) 등지에서 만들어진 유머 자료들을 보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가입자 수만 해도 백만 명에 육박하고 동시 접속자 수는 평균 1~2만 명이다. 이런 일베가 화제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새로운 인터넷 집단행동의 진앙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베의 사상은 무엇인가? 그들에게도 사상이 있을지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분명 일베에는 사상이 존재하고 있다. 그것이 잘 보이지 않는 까닭은 그들의 사상적 입장이 아이러니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외면적인 진지함을 경멸함으로써 역으로 자신의 내적인 진지함과 인정욕구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아이러니를 통해 농담으로밖에 볼 수 없는 과격한 언행과 행동으로 자신의 사상을 전달하고 있다.

    · 모든 것에는 팩트가 있어야 한다

    “팩트 저격은 무조건 일베. 조중동도 예외일 수는 없다. 일베 정신!”

    일베 유저들은 자신이 검색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타인의 말에 섣불리 동의하지 않겠다는 사상으로 무장되어 있다. 그들이 정치 논쟁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팩트’다.

    검색을 통해서 자신의 방식으로 팩트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어떠한 정치적 주장과 이념도 의심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상대의 과거 발언에서 현재 행동의 모순점을 지적한다. 팩트에 어긋나거나, 검증 불가능한 선전/선동들은 일베 유저들에게 이른바 ‘감성팔이’로 공격당한다.

    일베 유저들이 참을 수 없는 것은 대중들이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어떤 명확한 이상과 이념을 내세우며 행동에 나서는 것이다. 일베의 사상은 팩트에 대한 검증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서 팩트를 초월한 이념과 이상이 사람들의 행동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겠다는 결의에 더 가깝다.

    · 모두가 평등한 병신이라는 사상-“나는 너를 혐오할 권리가 있다”

    일베는 혐오 문화를 기반으로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정체성, 세계관, 상호인정의 질서를 만들어낸 인터넷 커뮤니티다. 일베는 ‘누군가를 혐오할 권리’ 위에서 유저들 간의 고유한 상호인정의 질서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상호 비존중의 상호인정 속에서 자신들만의 형제애의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일베를 유심히 관찰하다보면 그곳에서 유저들 간의 심각한 분쟁이 의외로 드물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들도 있다. 당장 오늘의 유머와 비교해도 일베에서는 서로의 싸움이 법정 소송을 거론하는 심각한 수준으로 비화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렇듯 상대 간의 시비와 다툼이 오프라인상의 분쟁으로 빈번히 번져나가는 곳은 오히려 상대에게 존댓말을 원칙으로 하고 혐오발언이 금기시되는 게시판이다.

    어쩌면 일베 유저들은 자신들의 게시판 문화가 오히려 더 인간적이라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상대의 태도와 어조로부터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에서 비롯된 분란은 애초에 ‘너도 병신, 나도 병신’이라는 기묘한 상호인정의 질서 속에서 발을 들일 여지가 없다. 만일 유저 간의 다툼이 심각하게 전개된다면 모두로부터 ‘어차피 똑같은 놈들인데’라는 식으로 경원시되기 때문이다.

    · 몰이상의 이상-촛불의 이상을 나름의 방식으로 계승하다

    일베 유저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다시는 속지 않겠다’는 의지와도 같은 것이다. 결국 ‘다시 속아서는 안 된다’, ‘감성적인 이상주의에 또 한 번 휘둘리느니 철저하게 몰이상성을 유지하겠다’라는 것이 일베의 핵심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베의 그러한 몰이상주의가 정치적 이상에 의해서 스스로 좌절하거나 상처받아본 인간들에게 공명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일베 유저들 중에서는 자신이 과거 노무현의 지지자였거나 촛불시위에 나가본 경험이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물론 그들이 일베의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겠지만 그들의 경험이 일베의 집단 무의식의 중핵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결국 ‘다시 속아서는 안 된다’, ‘감성적인 이상주의에 또 한 번 휘둘리느니 철저하게 몰이상성을 유지하겠다’라는 것이 일베의 핵심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위악적이고 공격적인 행태는 그들의 몰이상, 아니 몰이상의 이상을 어떻게든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과도 같은 것이다.

    그들과의 논쟁은 항상 불모로 끝나는데 그들의 정치적 이상 자체가 몰이상적인 형태로 추락해 있고, 또한 역으로 그러한 몰이상성이 일베만의 자율적인 공동의 이상으로 ‘육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들과 논쟁을 해도 같은 레벨에서 정치적 이상을 둘러싼 논쟁이 성립하지 않는다.

    애초에 일베 유저들에게 ‘그렇다면 너의 이상은 무엇이냐?’라고 물어도 명확한 대답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논쟁을 해봤자 상대는 당신의 이상을 반박하기보다는 당신의 지역 출신, 과거의 발언과 행적, 노무현과 김대중에 대한 견해를 우선 시비조로 탐색하고 거기서 웃음거리를 찾아내려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어긋남 속에서도 일베 유저들은 묘하게 달뜬 분위기 속에서 상대와 ‘정치적 이상’을 둘러싼 시비와 논쟁을 여전히 지속하려 할 것이다.

    · 일베의 미학은 아이러니

    노벨문학상 후보로 수차례 거명되었던 일본의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는 돌연 1960년대 중반 우익으로 전향하고 천황을 중심으로 자위대가 궐기해야 한다고 외치다가 1970년에 할복자살을 하며 일본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미시마 유키오는 전후 일본의 사상/담론 공간 속에서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아무리 싸워도 사회는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동시에 그 사실을 극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드러냄으로써 역으로 그러한 현실의 담론 공간과 ‘결별’하고 싶었던 것이다.

    미시마 유키오의 사상은 ‘자기 경멸’에 근거한, 철저히 아이러니컬한 것이었다. 또한 천황제의 실현을 주장하면서도 역으로 현실의 천황을 얕잡아보는 식이었다. 무엇보다 미시마 유키오는 자신의 대의를 이렇게 철저히 아이러니한 형태로 제시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우스꽝스럽게 만들지 않고서는 도무지 자신의 대의를 실현할 길이 없었기에 할복자살로 생을 마감해버린 것이다.

    미시마 유키오의 아이러니한 태도는 일베 유저들이 자신들을 ‘일베충’이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하다. 일베 유저들도 매일같이 사상적으로 자살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을 현실의 우파나 보수적인 이념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그들의 사상 배후에 있는 미학적 태도를 봐야 한다.

    그들 나름대로 자신의 언행이 시대착오적이고 주류 담론에 섞일 수 없다는 것, 더 나아가 스스로가 우파의 이념을 희화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 이러한 일베 유저들의 포지션은 철저히 아이러니컬하기 때문에 현실의 진보와 보수의 구분에 의해 재단될 수만은 없다. 무엇보다 제도권의 보수파에게도 일베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 더 이상 국가에 뭘 요구할 필요가 없다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오늘날 일베와 같은 우익 성향의 유머 커뮤니티가 성장하리라는 걸 예상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은 보수정치의 아성에 맞선 구원자였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일베와 같은 ‘괴물’이 튀어나왔을까? 게다가 인터넷의 혐오 문화가 왜 일베로 집약되었고 그것이 네티즌들의 보수 성향과 맞물리게 되었을까?

    2002년 촛불시위 당시 인터넷 문화는 자유로운 욕망의 주체인 나 자신을 국가가 인정해주고 나아가 그 욕망을 몸소 실현해주길 원했다. 그리고 이것은 곧 ‘정상국가’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촛불시위의 현상으로 정권을 잡은 노무현 대통령이 제대로 된 정치를 하지 못하자 이것이 실망과 환멸로 표출되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 일베는 더 이상 국가로부터 결정적인 변화나 개혁을 기대하지 않는다. 국가는 안보와 외교를 잘하는 것만으로 족하다. 안보에 기반을 두고 대외적인 국격을 향상시키는 것이야말로 과거 진보정권들에 의해 부정당했던 국가의 기본 목적이자 존재이유다.

    인터넷에서 국가와 사회를 향해 무언가를 위선적으로 요구하는 대신 자신들끼리 평등한 ‘병맛’이 되는 것에 의해 현실의 국가와 사회를 넘어선 자율적인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그리고 인터넷 내에서의 인정투쟁 방식을 현실로 끌고 오는 새로운 유형의 젊은 우파들이다.

    “일베 유저들은 ‘강한 국가’를 실현하기 위해 무언가를 요구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일베 유저들의 자존감은 이미 그 자신이 타인을 재치 있게 조롱하고 공격하는 집단적인 문화적 능력에 의해 실현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능력 자체가 이미 ‘강한 대한민국’을 실현하고 있다.”

    일베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확실히 2002년과 2008년의 촛불시위는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일베 유저들이 뭐라 비웃든 그것은 정치 참여의 문턱을 낮추고 많은 사람들과 이상을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 시대는 끝났다. 2012년 대선은 아무리 광장과 인터넷에서 사람들을 모아도 이들과 같은 상상력을 공유하지 않은 타인들, 그러나 일상에서는 그리 낯설지 않은 52%의 집단이 건재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일부 인사들은 과거의 기억과 정치적 상상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끊임없이 또 다른 ‘축제의 광장’를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축제는 끝났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축제가 끝난 뒤 무엇을 할 것인가’, 혹은 더 정확히 말해서 ‘지금 당장 국가를 변화시킬 수 없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이상을 국가에 의탁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이상에 대한 열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공간들이 필요하다. 사회에 대한 고민이 한때의 ‘낭만’으로 그치지 않고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는 공간과 장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런 곳이 많아질 때에야 비로소 축제 속의 마법적인 연대의 순간이 끝난 후에도 사회를 바꿔나가는 실천들이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다음에야 ‘강요된 비폭력’을 넘어서, 국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명확하고 구체적인 요구들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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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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