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랑은 힘이 쎄다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 노숙인을 위한 민들레 문학교실
        2013년 10월 14일 10: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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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묻고 싶다. 노숙인에게 읽을거리를 권한다면 어떤 작품을 권하시겠는가. 요즘 쉼터에 도서실이 있는 곳이 있어 최인호, 무라카미 하루키, 조정래, 이문열 등 장편소설이나 여러 시집을 독파하신 노숙인도 있다. 어떤 작품을 권하시겠는가.

    나는 백석(1912~1995)의 시를 권한다. 백석은 일본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지만, 1938년 이후에 사직하여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1941년 만주 신경에 가서 경제국 관리를 1년도 안 돼 때려치우고, 거의 빈궁한 노숙인으로 지내다가 해방을 맞는다.

    모시조개

    노숙인을 위한 민들레 교실은 10주에 걸쳐 진행된다.

    첫째주는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강의하고 서로 인사한다. 마음을 열기 위해 내가 쓴 글을 나누기도 한다.

    둘째주부터 무조건 쓰기 시작한다. 다른 작가 글 안 읽고 그냥 쓰냐고? 그렇다. 그냥 쓴다. 그냥 자기 이야기를 자기 상처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쓰는 것부터 시작한다. 유명작가 글을 읽으면 지레 포기할 수도 있고 모방하기 시작하니까. 일단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써보자고 한다.

    셋째주부터는 1교시에는 작가가 쓴 작품이나 다른 이들의 좋은 작품을 읽고, 2교시에 자기 글을 계속 쓰고 합평회를 한다. 10주 과정에서 최소한 3개의 글을 완성하도록 함께 글을 다듬는다. 이 과정에서 셋째주에 함께 읽는 시는 백석 시인의 「가무래기의 낙(樂)」이다.

    가무락조개 난 뒷간거리에
    빚을 얻으려 나는 왔다
    빚이 안 되어 가는 탓에
    가무래기도 나도 모도 춥다
    추운 거리의 그도 추운 능당 쪽을 걸어가며
    내 마음은 웃즐댄다 그 무슨 기쁨에 웃즐댄다
    이 추운 세상의 한구석에
    맑고 가난한 친구가 하나 있어서
    내가 이렇게 추운 거리를 지나온 걸
    얼마나 기뻐하며 낙단하고
    그즈런히 손깍지베개 하고 누어서
    이 못된 놈의 세상을 크게 크게 욕할 것이다
    ㅡ「가무래기의 樂」, 『女性』 3권 10호(1938.10)

     먼저 시를 한 줄 씩 돌아가면서 읽는다. 한번만 읽으면 안 된다. 좋은 시는 두 번 이상 읽어야 명작에 대한 예의다. 그리고 첫 번째 질문을 올린다.

    “이 시 엄청 재밌는 신데요, 먼저 가무래기가 뭔지 아세요?”

    “가무래기?”

    모두 갸우뚱한다. 얼른 핸드폰으로 이미지 검색해서 보여준다.

    “이거예요.”

    “오오, 모시조개네요.”

    “네, 큰 대합조개나 홍합조개가 아니라, 국 끓여먹는 바지락조개가 아니라, 까맣고 테두리가 하얀 조개를 가무래기 혹은 가무락조래라고도 해요.”

    노숙인들이 끄덕인다.

    두번째 질문을 드린다.

    “빚에 쪼들리신 적 있으세요? … 이 시는 돈이 궁했던 백석 시인 자신의 이야기인데요. 골 때리게 웃겨요. 친구에게 돈을 빌리려 갔다가 못 빌리고, 가무래기라는 ‘맑고 가난한’ 새친구를 만난다는 환타지를 시로 만든 거예요.

    가난한 백석이 뒷거리(뒷간거리)에 빚을 얻으러 갔다가 빚을 얻지 못하고 추운 거리를 배회하다가 응달(그늘, ‘능달’은 응달의 오자)에 있는 가무래기(가무락조개)를 발견해요. 응달진 그늘에 있다는 것은 벌써 외로운 처지를 상상케 하지요. 응달에 누워있던 가무락조개들도 아마 갯벌에서 떠나왔으니 외롭고 추웠겠죠. 맑고 가난한 친구들인 조개들이 이 세상을 대신 비웃어 주며 세상을 욕한다는 환타지 시예요. ”

    “백석 시인은 왜 저 때 가난했어요?”

    “백석 시인이 이 시를 발표했던 때는 1937년 12월 영생고보 교사직을 사임하고 서울로 돌아왔던 27살 때였어요. 다시 직장을 갖게 된 것은 1939년 3월『여성』지의 편집주간을 맡게 되면서부터예요. 그러니까 교사직을 사임하고 거의 1년간 돈벌이가 없었던 게죠. 이후 백석은 정말 궁했어요. 그리고 1941년 만주국 수도 신경에 가서는 경제국 관리로 취직했다가 1년도 안 넘겨 사직해서 해방되기까지 거의 노숙인으로 지내요. 그때 진짜 노숙인 문학이라 할 수 있는 「남신의주 유동 박씨봉방」(관련 글 링크 )처럼 빈궁한 시를 쓰죠. 그럼, 여러분은 혹시 빚을 얻어보신 적 있으세요? 빚 때문에 고생했던 적 있으세요?”

    질문이 끝나자마자 여성노숙인 박진아(가명) 씨가 입을 열었다. 지난주에「거슬러」( 관련 글 링크 )를 쓰셨던 분이다. 가방에서 몇 장 사진을 꺼내 보여주며 말한다.

    “제 사진이예요. 이때 참 예뻤었는데…”

    몇 장의 사진을 보니 정말 모델급이었다. 어떻게 이런 모델급 여자가 뚱뚱한 노숙인으로 변했을까.

    “경영하던 레스토랑 망하고 빚에 찌들기 시작했어요. 파출부로 전전하다가 빚쟁이들이 몰려와서 주소를 없애고, 더 이상 할 수 없어 거리로 나왔는데, 여자니까 잘 데가 없는 거예요. 서울역 지하에서 그 많은 남자들이 바닥에서 자는 걸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여자니까 어디서 잘 수도 없고, 그래서 낮에는 역에서 자고 밤에 정처없이 걷기도 했어요. 그렇게 노숙인이 되어 돌아다니다가 이렇게 몸이 부어 버렸어요. 이제 서부역에 있는 여성노숙인 쉼터에서 쉬고 있지만 돈 없어 빚쟁이에게 쪼달렸다는 저 시인의 마음 잘 알지요.”

    이 말을 듣는지 뭐 하는지 다른 노숙인 한 분은 방 천정만 쳐다보며 멀쭝히 앉아 있다. 말은 안 하지만 비슷한 신세들이다.

    세번째 질문을 올린다.

    이 시에서 가무락조개와 시인은 환유적 관계를 띄고 있다는 말은 너무 어렵다. 일단 백석이 왜 빚을 얻어야 했을까 설명한다.

    “이 시를 읽고 난 뒤 어떤 느낌이셨을까 하는 질문이예요….그럼, 이 시를 읽고 어떤 느낌을 나눠보죠. 어떠셨어요?”

    올해 환갑이 되신 할아버지 노숙인은 간단하게 말하셨다. 늘 노트에 가득 필기하시는 분이시다。

    “동병상련이랄까요.”

    간단한 평가지만, 깊은 공감을 나타내고 있는 표정이시다.

    왕년의 레스토랑 대표였던 모델급 박진아씨가 차분하게 말했다.

    “모든 것을 다 놓으신 분의 말씀 같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위안이 되네요. 위로가 되요.”

    나는 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왜 위로가 되셨어요? 저에게도 위로가 되었었거든요.”

    그때 별로 말하지 않는 48세의 김유득(가명) 씨가 입을 열었다.

    “뭔가 가볍고 쾌활해요.”

    답이 나왔다. 명랑성(明朗性)이다.

    “맞아요. 4행까지 우울한 현실을 노래하던 시인의 태도는 5행에서 엉뚱한 얘기를 하죠. 가무래기도 나도 모두 춥다. 엉뚱하지 않아요? 가무락조개가 나와 함께 춥다는 겁니다. 약간 이상하다 싶은데 그 다음에 그늘 쪽으로 걸어가다가 느닷없이 ‘내 마음은 우쭐댄다 그 무슨 기쁨에 우쭐댄다’라고 말해요. 돈을 꾸지도 못했는데 비극적 상황에서 갑자기 가무락조개를 보고 마음자세가 달라진 거죠. 그리고 이런 비참한 기분을 조성하는 세상을 오히려 배척해야 한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있어요. 이런 자세가 옳은 자세일까요? 조금 어려운 얘기인데요. 발터 벤야민이라는 사람은 당시 나치의 독일 자본주의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수치의 구조’를 세뇌시킨다고 『일방통행로』라는 책에서 말했어요. ”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수치의 구조’라는 표현을 어떻게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당시 독일자본주의는 가난한 자들에게 ‘수치의 구조’를 세뇌시켰죠. ‘내가 노숙인이 된 것은 더럽고 게으르기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모든 잘못을 내 자신에게 몰아 붙였던 것이죠. 물론 내 잘못이나 가족이 가난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발터 벤야민은 당시 유럽의 노숙인들이나 프롤레타리아가 모두 스스로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어요.

    가령 여러분 중에 IMF 때 밀려나 지금까지 노숙인으로 살아가시는 분들이 계시듯이, 구조조정에 의해 느닷없이 밀려난 경우도 있는 겁니다. 전쟁이나 물난리나 지진으로 거지가 되듯이 천재지변 같은 구조조정으로 빈자가 형성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쌍용 해직자 문제 같은 것도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죠. 그런데 가난한 것은 모두 실력이 없고 게을러서 그렇다고 자본주의는 ‘수치의 구조’를 암기시키는 겁니다.”

    일반인들에겐 관심 없는 말일 수 있으나 노숙인들은 눈을 반짝이며 들으셨다.

    “그런데 그 ‘수치의 구조’를 깨부수는 것은 바로 명랑성이고 연대성입니다. 안으로 스스로 명랑해야 하고, 밖으로 좋은 친구들을 만나야 하겠죠. 명랑성은 가무락조개를 친구로 볼 수 있게 하고요. 연대성은요, ‘맑고 가난한 친구’를 만나게 해요. 그래서 ‘맑고 가난한 친구가 하나 있어서/ 내가 이렇게 추운 거리를 지나온 걸/ 얼마나 기뻐하며 락단하고/ 그즈런히 손깍지벼개하고 누워서/ 이 못된 놈의 세상을 크게크게 욕할 것이다’라고 말하게 하죠.”

    ‘내가 이렇게 추운거리를 지나온 걸 / 얼마나 기뻐하며 락단하고’

    “이 구절이 명랑해요. 우리가 지금 노숙인으로 가난하게 사는 거 그거야말로 ‘추운 거리를 지난다’고 말할 수 있겠죠. 이럴 때 손깍지 베개를 하고 느긋하게 누워 있는 가무락조개를 보는 겁니다. 가무락조개를 자세히 보세요, 손깍지베개 하고 있는 모습이죠. 청빈의 즐거움을 넘어서는 어떤 명랑성이 있지요.

    백석 시인은 시 「선우사」에서도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 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선우사」(膳友辭),『조광』 3권 10호, 1937.10.) 라고 했어요.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라는 말, 일종의 단독자(單獨者, singularity) 선언이지요.

    시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에서는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여성』 1938.3)이라고 하기까지 하죠. 세상 같은 건 더러워서 버리는 것이다. 얼마나 웃기고 통쾌한 표현이예요.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수치의 구조’에 굴복하지 않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겠다’라고 당찬 의지를 보여주죠. 게다가 백석 시인이 살던 당시의 일본 자본주의는 창씨개명과 천황 중심의 교육칙어를 강요하는 거부할 수 없는 초자아였어요.

    물론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가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일단 백석은 외부적 가난에 대한 문제도 냉소하면서, 반대로 영적인 풍요를 명랑성으로 극복하려고 하는 거죠. 백석은 밖으로는 냉소하고, 안으로는 명랑성으로 영적 풍요를 누리고 있어요.”

    사실 이번 수업에서 ‘명랑성’에 대해 깊이 있게 대화 나누고 싶었다. 명랑성이라는 단어가 미학의 관념으로 추앙받은 것은 니체가 28살 때 쓴 『비극의 탄생』 덕분이다. 비극을 많이 써낸 그리스인들이지만 늘 즐거운 명랑성을 갖고 있었다. 비극 속에서 웃으며 살 수 있는 힘, 이 명랑성은 우리 판소리 마당극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익살스런 해학[諧謔]이기도 하다.

    명랑성이란 이유 없이 깔깔대는 방정맞은 개그가 아니다. 비극을 체험한 이들이 그 비극을 관통해서 자아내는 익살이며 유머다. 필리핀 결혼이주자인 어머니와 난장이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꼴통 아들의 이야기 『완득이』(창비)는 정말 눈물 배꼽 다 빠지도록, 울다가 웃다가 어디가 어떻게 될 정도로 명랑하지 않던가.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명랑성에 대해 여러 번 언급했고, 명랑성은 그의 평생을 관통하는 중요 개념이기도 하다.

    “지금 ‘그리스의 명랑성’에 대해 말해도 좋다면, 그것은 어려운 것을 책임지지 않고 원대한 꿈을 추구하지 않으며, 지나간 것이나 미리에 올 것을 현재 있는 것보다 높이 평가하지 않는 노예들의 명랑성인 것이다.”(니체, 『비극의 탄생』, 책세상, 92면)

    “이 명랑성은 과거 그리스인들의 멋진 ‘소박성’과는 정반대다. 이 소박성은 앞에서 교정했듯이 어두운 심연으로부터 자라나온 아폴론적 문화의 꽃이며, 그리스적 의지가 미의 거울을 가지고 고통과 고통에서 얻은 지혜와 대적하며 거둔 승리다. ‘그리스적 명랑성’과는 다른 형태의 명랑성 가운데 가장 고귀한 형태는 알렉산드리아적 명랑성인데, 이 명랑성은 이론적 인간의 명랑성이다.”(니에, 『비극의 탄생』, 133~134면)

    “영원한 재발견의 명랑성, 적어도 그 순간에는 현실적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목가적 현실에 대한 쾌적한 즐거움이 그 모습에 서려 있다. 그러나 언젠가 한번은 이 상상의 현실이 환상적이고 어리석은 노닥거림이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니체, 『비극의 탄생』, 145면)

    니체가 초인으로 본 것은 ‘놀이할 수 있는 창조적 아이’였다. 그리고 니체는 그가 거의 마지막에 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4부 87면)에 이렇게까지 썼다.

    “나는 웃음이 신성하다고 말했다. 그대들 보다 놓은 인간들이여, 내게 배워라 ㅡ웃음을!”

    사실 백석 시「가무래기의 樂」의 알짬은 명랑성일 것이다. 명랑한 글을 쓰는 것도 저 빈곤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힘들 때 춤을 추었던 탈춤의 해학, 비극 속에서 웃었던 그리스인들.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노숙인들이 명랑한 글을 쓸 수 있을까.

    이제 이 글을 읽은 분에게 다시 묻는다. 이 분들에게 위안이 되고, 웃음의 위력을 줄만한 글은 무엇이 있을까. 실패하고 절망한 사람에게, 노숙인에게, 막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될만한 문학 작품은 무엇이 있을까.

    필자소개
    시인,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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