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파 햇볕론자의 충고와 분석
    [책소개] 『리얼 노스코리아』(안드레이 란코프/ 개마고원)
        2013년 10월 06일 01: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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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에는 북한 붕괴에 의한 흡수통일밖에 없다거나 조건 없는 대북지원은 김씨 왕조 유지를 도울 뿐이라는 주장, 북한에 대해선 햇볕정책밖엔 대안이 없다거나 가장 수용할 만한 통일체제는 연방제라는 주장. 도무지 양립하기 어려운, 서로 대척점에 있는 두 입장의 충돌 같다.

    그러나 자칭 ‘우파 햇볕론자’인 러시아 출신 북한학자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는 동시에 그 둘을 전혀 충돌시키지 않고 일관성 있게 주장해낸다. 그러면서도 그 주장이 상호 모순에 빠지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힘은 바로 그의 ‘현실주의’에서 나온다.

    이런 시각 아래 저자 란코프 교수는 이 책 『리얼 노스 코리아』에서 북한의 민주화와 개혁개방을 위한 방편으로서의 햇볕정책, 오늘날 북한이 처한 딜레마, 그에 엮인 남한 좌/우파의 맹점을 진단ㆍ처방한다. 나아가 향후 20년의 북한 운명도 전망해본다.

    저마다의 북한관을 가지고 있을 독자들은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동안 종종 혼란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와 보수는 북한문제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으며, 어떤 착각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임도 알게 될 것이다.

    김씨 왕조 체제의 대안으로 70~80년대 남한 개발독재를 상정한 것이나, 이른바 ‘주사파’와 진보진영 일반을 잘 구분하지 않는 시각에서 저자의 우파적 면모는 확연하다. 동시에 “경제와 진보에 이바지하는 ‘우익’은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보수주의’가 결코 아니”라고 말한다. ‘우파 햇볕론자’라는 얼핏 모순처럼 보이는 자리매김이 가능한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북한문제만큼 진영논리의 폐해가 큰 사안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좌/우’ 상호간 편견 깨기와 소통에 기여할 바가 많다는 점은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이 아닐 수 없다.

    노스코리랑

    북한의 딜레마: 개혁, 해도 죽고 안 해도 죽는다?

    저자의 눈에 북한은 “고매한 이상과 지극한 선의로 이룩한 재앙”이다. 그리고 이런 태생적 모순은 종종 이해 불가한 언동을 보이는 북한의 진의를 살피는 거울이기도 하다. 많은 전문가들이 북한이 처한 곤경의 해법으로 중국식 모델을 추천한다.

    그러나 저자는 애초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식의 개혁을 했다면 공산권이 붕괴될 때 함께 무너져 내렸을 것이라 단언한다. 아무리 성공적인 개혁이라도 세계사에 남을 경제적 성취를 거둔 ‘풍요로운 남한’의 존재가 그 빛을 가려버려 북한 주민의 불만을 증폭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개혁은 북한 지도부를 단칼에 죽일 수도 있는 정치적 극약처방이다. 동시에,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건 조금 더 오래 살겠지만, 오히려 확실히 죽는 길이 된다.

    물론 변화의 여지도 있다. 저자는 북한이 고립을 선택함으로써 치른 경제적 몰락이 오히려 체제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자본주의 감염’을 불러왔다고 본다. 경제적 계층의 분화가 일어났고, 야심가일수록 군인이 되거나 조선노동당에 가입하기보다 암시장 상인으로 나서는 게 출세의 지름길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체제의 보루로 통하던 정보와 인적 통제 역시 무역의 중심인 국경에서부터 빠르게 허물어졌다.

    물론 이런 변화는 북한 지도부가 의도한 게 아니었고, 끈질긴 시장통제정책은 이들의 목표가 김일성 시절로의 복고와 반동에 있다는 것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이를 근거로 김정일 시대의 개혁 가능성을 일관되게 부정한 바 있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는 다르다. 저자는 김정은 집권 이후 의전에서 드러나는 파격을 가십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본인을 포함한 권력 핵심이 선대보다 40년 이상 젊은 세대로 채워지고 있다는 점을 들어 김정은이 아버지와는 다른 방식의 통치를 꿈꾸고 있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그리고 앞서 시작된 변화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 전망한다.

    암과 같이 심각한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 젊은 환자라면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수술을 택하는 것이 분명 합리적이다. 그러나 나이 든 환자에게는 보상에 비해 위험이 훨씬 더 크다. 김정은은 젊으며 수년 내로 젊은 측근들에게 둘러싸일 것이다. 이들에게 개혁의 위험은 감수할 만한 것일 수 있다. (9쪽)

    진보의 딜레마: 북한의 개혁개방이 분단 고착화를 부른다?

    저자는 이 책에서, 남한의 진보 정권이 ‘북한의 개혁개방’을 추구했지만 이러한 위로부터의 개혁은 애초 의도한 효과를 내지 못했고, 남한 내 유권자의 지지를 얻는 데도 실패했다고 본다. 물론 저자도 진보 정권의 10년에 걸친 햇볕정책의 공로를 인정한다. 특히 “2000년의 남북정상회담이 남북간 교류를 실로 놀랄 만큼 증대시키는 관문을 열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남한 정부의 헌신적인 지원은 주민생활 개선보다는 체제의 핵심이나 동조자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데 쓰였고, 겉보기와는 달리 핵무장을 비롯한 군사적 긴장을 낮추는 데 실패한 것이 사실이다.

    즉, 진보 진영의 기대와는 달리 대북지원은 북한을 개혁하기보다 체제유지의 용도로 쓰였다는 게 저자의 관점이다. 나아가 설사 이런 방식이 북한의 성공적인 개혁을 이끌더라도 통일보다는 분단 지속의 원심력으로 작용할 것이라 전망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남북간의 감정적 문화적 결속력은 점차 약해질 것이다. (…) 남북간의 경제적 격차가 상당히 줄어들면 남한의 풍요가 그 매력의 상당 부분을 잃게 될 것이므로, 북한의 일반 주민들도 통일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것이다. 세계는 비슷한 경우를 많이 목격한 바 있다. (…) 처음에 중동과 남아메리카가 여러 개의 국가로 분리된 것은 자의적인 정치적 결정의 결과였다. 한두 세대에 걸쳐 두 지역 모두에서 지역을 통일하기 위한 운동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국경은 굳어졌고 새로운 국가 정체성이 나타났다.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의 성공적인 개혁과 뒤이은 장기간의 공존은 통일의 꿈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11~12쪽)

    보수의 착각: 채찍이 화끈할수록 김씨 왕조의 수명이 연장된다?

    그렇다면 ‘상호주의’나 ‘군사ㆍ경제적 제재’ 같은 보수의 해법이 답일까? 저자는 이명박 정부의 ‘비핵ㆍ개방ㆍ3000’ 전략과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가 가져온 결과들을 살피며 고개 젓는다. 경제 제재는 정부 정책에 영향력이 전무한 주민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지언정 권력층에게 큰 압박을 주진 못한다. 사실상 핵보유국이며 서울을 겨냥한 장사정포로 무장한 북한에게 군사적 제재는 무모한 도박이다. 저자는 보수파의 강경책들이 북한에 별 타격을 입히지 못한 대신 연평도 포격 같은 군사적 모험주의를 부추겼다고 본다.

    안타깝게도 지금 이 책을 쓰는 시점에서 전면적으로 햇볕정책이 재개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반대자들은 햇볕정책이 자원의 낭비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잔학한 정권을 도와주는 짓이라고 굳게 믿는다. 이들은 본질적으로 북한을 무시하는 현재의 방식에 더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이러한 노선은 이념적으로 편향된 유권자들에게는 인기 있을지 모르나, 실제 결과는 의도했던 바와 매우 다를 것이다. 그러한 정책은 김씨 가문 정권의 기대수명을 연장시킴과 동시에 한반도에 불필요하게 높은 수준의 긴장상태를 유지시킬 것이다. (301쪽)

    우파 햇볕론자의 조언: 북한 지도부가 아닌 민중에 주목하라!

    저자는 김정은의 개혁 여부나 성패에 관계없이 김씨 왕조의 몰락을 필연으로 여기며 이에 대한 대비를 주문한다. 그러나 보수파의 성급한 기대와 달리 저자는 북한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적어도 김정은이 장년에 이를 때까지는 존속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한국정부에 허락된 유일한 선택지를 햇볕정책이라고 본다.

    차이점이라면 여태껏 햇볕정책의 담지자들이 북한 지도부를 파트너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저자의 관심사는 북한 주민에게 가 있다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북한에서 민중혁명이나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불가능한 근거로 특유의 통제정책을 든다. 그러나 저자는 북한의 통제력이 예전만 못하다고 본다. 다만 주민들로서도 대안이라고 할 만한 세계를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현재로선 목숨 건 탈북이 아니라면 체제에 순응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경제협력과 민간교류야말로 북한 민중에게 양극단의 선택 말고도 더 나은 대안이 있음을 알리는 수단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핵심으로 개성공단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일찍이 개성공단을 “통일이 시작된 곳”이라 표현한 바 있는 저자는 공단이 가진 여러 장점들 가운데 정보파급력을 첫손에 꼽는데, 그에 따르면 소련과 중국의 개혁개방에 고삐를 당긴 것도 다름 아닌 외부세계와의 교류였다.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 개성공단을 승인하고 심지어 장려하기까지 한 김정일의 결정은 커다란 실수였다. 어쩌면 북한의 집권층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일지도 모른다. 이들의 생존은 주민들을 외부 세계에 무지한 상태로 유지시키는 능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은 북한 당국에게 상당한 수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개성공단은 개성에 살거나 가족 또는 친구가 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주민 15만~20만 명의 세계관을 급격하게 바꾸어놓았다. (299쪽)

    이렇듯 저자는 신실한 햇볕론자이지만 이에 대한 진보의 낙관을 늘 경계한다. 다만 햇볕을 한반도 평화와 북한 주민들의 생활 개선에 가장 이로운 방편이라 판단하기에 지지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역설적으로 보수정권이 햇볕정책을 성공시키는 데 더 유리한 여건을 가졌다고 보는데, 이는 박근혜 정부가 마땅히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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