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시도 네오콘도 없는데,
    미국은 왜 전쟁 멈추지 못하나?
    [책소개] 『워싱턴 룰』(앤드루 바세비치/ 오월의봄)
        2013년 09월 06일 06:20 오후

    Print Friendly

    후보 시절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을 강력히 비판하며 대통령에 당선된 버락 오바마는 2009년 노벨평화상을 받기 위해 오슬로로 떠나기 불과 며칠 전, 아프가니스탄에 3만 명의 추가 병력을 파견한다고 발표했다.

    2011년이 되어서야 겨우 이라크에서 미군을 철수시켰지만 부시도 네오콘도 없는 워싱턴은 여전히 전쟁 중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 책의 저자 앤드루 바세비치는 그 이유를 ‘워싱턴 룰’에서 찾는다. 저자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 미국의 안보 정책은 확고한 초당적 합의에 의해 운영되어 왔으며 해리 트루먼에서 버락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모든 미국 대통령이 이 합의에 충성맹세를 했다는 것이다.

    그 합의의 요체는 바로 미국만이 국제질서를 규정하고 운영할 특권과 책임을 갖고 있다는 신념과 이를 위해 미국은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앤드루 바세비치는 이것을 바로 ‘워싱턴 룰’이라고 부르고 있다.

    워싱턴 룰이 계속되는 한 미국은 영구전쟁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미국 주류, 미국 국가 안보 정책에 관여하는 핵심부가 되기 위해서는 워싱턴 룰에 반드시 합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워싱턴 룰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를 유지하며 이득을 보는 세력은 누구인지를 신랄하게 파헤친 책이다.

    먼저 워싱턴 룰의 관철에는 미 군사력의 세계적 주둔, 이 군사력에 의한 세계적 힘의 투사, 그리고 현존하거나 앞으로 예상되는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세계적 개입주의가 필요하다. 이를 저자는 ‘성 삼위일체’라 부른다. 그렇다면 워싱턴 룰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2차 세계대전을 거친 뒤 미국은 새롭게 등장한 공산주의 세력에 맞서 자유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 세계에 미국의 개입이 지속되어야 하며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군사적 우위를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안보 정책의 기틀을 세운다.

    그 중심에는 음지에서 활동하며 아무런 민주적 통제도 받지 않게 된 CIA(중앙정보국)와 핵과 미사일, 폭격기 등을 내세워 노골적으로 무력을 과시하는 SAC(전략공군사령부)가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기에 방위산업체와 거대 금융기관, 보수적 싱크탱크들이 결합했다. 국방부와 국무부, 국토안전부의 고위 관료뿐만 아니라 로비스트와 전직관료, 예비역 장교 등 권력의 핵심부 인사들도 워싱턴 룰을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다.

    워싱턴 룰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이러한 안보 정책에 큰 변화는 없었다. 곧 저자는 적어도 전쟁에 관한 한 민주당과 공화당은 공범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히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군사 전략이 만들어지고 미국의 전쟁 정책은 더욱 강화되었다.

    베트남전쟁의 패배로 잠시 ‘워싱턴 룰’이 흔들리는 듯 했으나 1980년대 레이건의 보수혁명으로 ‘워싱턴 룰’은 회복됐고 오히려 더 공고해졌다. 그리고 2001년 9·11사태로 부시 정부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전쟁을 일으키면서 미국은 사실상 영구전쟁의 길에 들어섰다. 실제로 미국은 2002년 아프간전쟁 이후 12년째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의 적은 공산주의였다가 냉전이 끝나자 이슬람 세력으로, 테러리즘과 악의 축으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결국 해리 트루먼의 히로시마 원폭 결정이나 케네디의 피그만 침공 결정, 존슨의 미 지상군 베트남 파병 결정, 심지어 부시의 이라크전쟁 결정 모두 대통령은 그저 워싱턴 룰에 따라 이미 결정된 것을 추인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지금도 미국이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안보 정책의 민주적 통제가 필요”

    미국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저자의 상황인식은 심각하다. 미국은 지금 외국의 빚으로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치르며 미국의 부채는 부시 취임 때보다 두 배 넘게 늘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력은 약해졌지만 오바마 정부에서도 미국의 국방비는 계속 늘어만 간다. 워싱턴 룰이 깨지지 않는 이상 미국의 파국은 예고된 것일 수밖에 없다.

    23년간 군장교로 복무하고 예편한 뒤 미국의 외교사와 대외 정책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9·11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네오콘과 비슷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보며 그는 근본적인 물음을 갖게 되었고 미국 안보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그렇지만 스스로 ‘가톨릭 보수파’라고 부르는 저자답게 전 세계 37개국에 있는 35만 명의 해외 주둔 미군을 즉각 철수시키자는 급진적 주장보다는 단계적 철수와 불필요한 전쟁의 중단을 요구한다.

    저자가 말하는 근본적인 해법은 민주주의와 시민들의 자발적인 정치 참여와 희생이다. 군대와 전쟁, 미국의 안보 정책 등 정치적인 문제에 시민들이 더 많은 관심과 참여가 있어야 하며 석유에 의존하는 소비를 줄이려는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

    다시 말해 워싱턴 룰이 존재 가능하도록 만든 미국의 정치사회적인 시스템과 함께 미국인의 삶의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워싱턴 룰》은 미국의 안보 정책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과 함께 한국적 상황에서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주한미군 철수라는 주장을 금기시 여기는 한국사회, 북한 핵위기 앞에 평화적 군축을 입에 올리기도 어려운 남북관계 가운데 끊임없이 신형 전투기 도입 등 군사력 강화가 추진되고 있다. 국가 안보 정책에 대한 국민의 감시와 통제는 제도적으로 볼 때 미국보다도 훨씬 뒤떨어져 있다.

    굳건한 한미공조와 군사력에 의한 안보만이 살 길이라는 냉전적 사고를 어떻게 탈피할 것인지, 국가 안보 정책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이 책을 읽는 우리의 몫이다.

    워싱턴 룰을 만든 사람들, 준전쟁의 전사들

    냉전이 시작될 무렵 초대 국방부 장관이었던 제임스 포레스탈은 미국이 거대한 위협에 직면해 있고 앞으로도 이러한 상황은 무기한 계속될 것이라며, 이에 대비하기 위해 ‘준전쟁’이라는 용어를 고안해냈다.

    이 준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미국은 대대적인 군사비 지출이 필요하고, 잠재적 적대 세력이 언제 어디에서 나올지 모르기에 전 세계적인 경계와 관리가 필요하며, 적대세력이 미국에 도전하지 않게끔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주장이 미국 안보 정책의 초석으로 세워진다. 바로 그 중심에 앨런 덜레스와 커티스 르메이가 있다.

    앨런 덜레스는 1953년부터 1961년까지 CIA(중앙정보국)국장을 역임했다. 이 기간 동안 CIA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이란의 모하메드 정부를 전복시키고 과테말라에 쿠데타를 통한 군부 정권이 들어서게 만드는 등의 활동을 통해 “지구 거의 모든 곳에서 언제라도 우리의 핵심적 이익이 공격받을 수 있으므로” 미국이 “세계 모든 곳에 대해 경계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1948년부터 1957년까지 미국의 핵타격 전력이자 3차 세계대전의 핵심 부대인 SAC(전략공군사령부)의 지휘봉을 잡은 커티스 르메이는 “미국의 유일한 방어책은 우리의 어떤 잠재적 적국보다 강력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규모의 공격력을 키우는 것”이라며 “누구도 미국에게 도전하지 못하도록” 소련에 대한 핵 우위와 군사무기의 현대화, 그리고 이를 위한 천문학적인 군비확충을 이끌었다.

    결국 덜레스의 CIA는 음지에서, 르메이의 SAC는 노골적인 핵전력 과시를 통해 세계적 규모의 행동주의에 대한 맹신, 즉 워싱턴 합의를 국가의 제1원칙으로 만들었다.

    워싱턴 룰을 강화시킨 케네디

    1960년 당선된 미국의 젊은 대통령 케네디는 과연 소련을 상대할 경륜과 배짱이 있나 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덜레스와 르메이 등을 계속 기용함으로써 적절한 응답을 했다.

    또한 케네디는 핵무기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강력한 미국의 개입 능력을 키우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그 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육군의 중요성이 떠올랐다.

    그러나 케네디의 국방 개혁은 육군의 위상을 회복하는 데 그치지 않았으며, 전쟁을 자신의 계획대로 요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새로운 군사 전략인 유연반응과 반란진압작전을 만든다.

    전 세계 육군을 전진 배치하여 통제불능의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것을 최대한 피하면서 제한된 규모의 군사력으로 특정한 제한적 목표를 달성하는 이 계획은 케네디의 측근인 멕나마라 국방부 장관과 르메이의 밀고 당기는 알력 속에서 진통을 겪기도 했지만 결국 미국을 베트남전쟁의 늪으로 이끌었다.

    배트남전쟁의 참혹한 패배는 워싱턴 룰의 신뢰도에 상처를 주었지만 치명적 타격을 가하지는 못했다. 베트남전쟁의 패배로 미국의 징병제는 붕괴되었으나 오히려 직업군인의 군대로 전환되어 국민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소수 정책결정자에게 군사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재량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은 누구도 미국에 도전해서 성공하게 만든 전례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워싱턴 룰의 강박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아무도 이런 근본 문제를 건드리지 못했다.

    물론 맨스필드와 풀브라이트 같은 상원의원의 청문회와 의회 연설을 통한 문제제기는 있었지만 대다수의 주류 미군의 안보 정책 담당자들은 베트남의 실패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보다는 이를 일종의 예외, 특정한 판단 착오나 복합적인 실수의 결과로 간주했다.

    베트남과 뮌헨 아날로지, 올브라이트와 럼스펠드, 네오콘의 등장

    베트남의 유산을 왜곡하고 망각하게 만드는 데 주요 역할을 한 이는 닉슨 행정부의 안보회의 참모였으며 대외관계협의회에서 활동했던 앤서니 레이크와 역시 닉슨 행정부 안보회의 사무국장을 지냈으며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였던 헨리 키신저다.

    이들은 히틀러의 체코 침공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던 결과 2차 세계대전을 불러왔다며 미국이 베트남에 과도하게 대응했을지 몰라도 미국 안보 정책의 방향, 워싱턴 룰은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설파했다.

    이러한 주장 속에서 1980년대 베이루트, 그라나다, 리비아, 중남미와 걸프만 해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개입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냉전 체제가 사라진 1990년대 최초의 여성 국무부 장관으로 임명된 올브라이트는 냉전 이후에도 여전히, 어쩌면 더 더욱 미국의 리더십이 필요해진 이유를 레이크와 키신저의 논리를 차용해 주장하며 전 세계를 상대로 미국의 군사력 사용을 옹호했다.

    한편으로는 베트남에서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새로운 전쟁이 재발명됐다. 전쟁에서 우연과 불확정성이라는 요수를 제거하고 단기간에 적은 비용으로 결정적 승리를 이끌어낼 방안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 결정적 계기는 1991년 사막의 폭풍 작전과 2003년 이라크 자유 작전이다. 전자는 콜린 파월 장군을 중심으로 한 군 장교 그룹이 주도했고 후자는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부 장관과 폴 월포위츠 등을 중심으로 한 민간인 그룹이 주도했다. 그리고 여기에 9.11이라는 방아쇠가 당겨지면서 부시의 예방전쟁, 테러와의 전쟁, 끝나지 않는 영구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누가 워싱턴 룰로 이득을 보는가

    20세기 자유주의를 위협하던 전체주의는 회복 불가능으로 패퇴했다. 21세기 오사마 빈 라덴도, 사담 후세인도 사라졌다. 그러나 워싱턴 룰은 그대로이고 전쟁도 계속된다. 냉전 초기 형성된 워싱턴 룰은 봉쇄전략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워싱턴의 공식 목표는 도미노 효과, 연쇄적 공산화를 막는 것이었다.

    그러나 9.11 이후 새롭게 정의된 워싱턴 룰은 미국식 도미노를 촉진하겠다는 것, 미국식 가치, 미국의 이데올로기를 전 세계에 강요하겠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워싱턴 룰로 이익을 보는 자들은 누구인가. 바로 워싱턴이다. 여기서 워싱턴은 지리적 의미가 아니다. 미국의 행정, 입법, 사법부의 상층부를 비롯해 국가 안보의 주요 구성원인 국방부와 국무부, 국토안보부, 정보기관들과 여러 싱크탱크, 로비스트와 전직관료, 예비역 장교 등 권력의 핵심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거대 금융기관과 방위산업체, 거대 언론, 나아가 하버드 대학 케네디행정대학원 같은 준학술 조직들도 포괄한다.

    결국 해리 트루먼의 히로시마 원폭 결정이나 케네디의 피그만 침공 결정, 존슨의 미 지상군 베트남 파병 결정, 심지어 부시의 이라크전쟁 결정 모두 대통령은 그저 워싱턴이 이미 결정해놓은 것을 추인했을 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오바마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미 아프가니스탄전쟁은 오바마의 전쟁이 되고 있다.

    정치적인 시스템과 삶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워싱턴 룰을 깨고 전쟁을 중단하기 위한 저자의 해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워싱턴 룰로 이득을 보는 세력을 비판하는 동시에 미국 시민에게도 책임을 묻고 있다.

    ‘마음껏 소비하라, 미국의 힘은 무궁하다’라는 레이건의 주장에 동조했던 미국 시민, 세계 최대의 석유 소비로 중동의 장악이 미국 최대의 국익이게끔 만든 시민들, 결국 시민들이 바뀌지 않는 한 워싱턴 룰을 깰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 미국은 외국의 빚으로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치루며 미국의 부채는 부시 취임 때보다 두 배 넘게 늘어났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경제력은 약해졌지만 오바마 정부에서도 미국의 국방비는 계속 늘어난다. 워싱턴 룰이 깨지지 않는 이상 미국의 파국은 예고된 것일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는 군대와 전쟁, 미국의 안보 정책 등 정치적인 문제에 시민들이 더 많은 관심과 참여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워싱턴 룰이 존재 가능하도록 만든 미국의 정치적인 시스템과 함께 미국인의 삶의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