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계는 선인가 악인가?
    [책소개] 『기술과 문명』 (루이스 멈퍼드/ 책세상)
        2013년 09월 01일 11: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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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계시대에 대한 성찰을 담은 우리 시대의 고전을 읽다

    지금 우리는 수많은 기계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새로운 과학적 지식과 연계된 기술혁신은 스마트폰 같은, 불과 10년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기계제품들로 우리 삶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기계가 삶의 모든 국면에 영향을 미치며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20세기에 이미 수많은 문제와 함께 그 한계를 드러냈던 기계문명의 자장은 여전히 강력하다. 우리는 지금 기계와 어떤 관계 속에 있는가? 기계는 선인가 악인가?

    루이스 멈퍼드의《기술과 문명》(1934)은 오늘날 우리가 기계에 대해 가지는 이 같은 물음에 훌륭한 통찰을 제공하는 책으로 기술의 역사를 문명사적 관점에서 고찰한 우리 시대의 고전이다.

    기술, 과학, 철학, 금융, 상업 등의 다양한 전통에서 생겨난 기술 진보의 사회적 실천의 장을 종횡무진 누비는 이 책에서 멈퍼드는 “난마처럼 얽혀 있는 근대 기술 문화”를 제너럴리스트로서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풀어낸다.

    균형, 붕괴, 재생이라는 테마를 통해 원기술 시기, 구기술 시기, 신기술 시기라는 ‘기계의 드라마’로 재구성된 천 년의 역사는 기계가 물리적 환경 속에서 빚어낸 물질적 변화보다 문화에 미친 정신적 영향이 더 중요함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루이스 멈퍼드(1895∼1990)는 미국의 사회학자, 도시학자, 건축사가, 철학자, 문명비평가, 사회운동가로서 제도권의 시스템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연구와 28권의 방대한 저작을 통해 독창적인 사상의 지도를 그린 인물이다.

    이 책은 특히 그가 천착했던 기술 문제를 다룬 주저 중 하나로, 거대 기술 시스템이 지배하는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친 그의 사상의 핵심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

    인간을 노동의 고역에서 해방시켜 더 창조적이고 가치 있는 활동에 투신할 수 있도록 도왔던 기계는 어떻게 삶을 체계적으로 파괴하는 거대 기계로 거듭나게 되었는가. 기술혁신과 과학의 발전, 사회의 조직화와 자본주의를 만난 기계의 변신을 주도면밀하게 따라간 멈퍼드는 삶의 질과는 무관한 이윤과 효율성으로 기계문명을 타락의 길로 이끈 권력의 실체를 폭로한다.

    후에 ‘거대 기계’, ‘권력 복합체’ 등으로 명명된 근대 권력에 대한 이러한 통찰은 선구적 혜안으로 평가받으며 이후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여전히 기계의 신화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오늘날 이 책은 우리 삶을 조종하는 거대 권력을 재점검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밝혀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수도원과 탄광, 회계사무실에서 탄생한 기계시대

    대부분의 근대 역사가들에게 잊힌 기계시대 여명기, 즉 10세기부터 17세기까지, 800년에 걸쳐 산업혁명을 예비한 원기술 시기에 대한 멈퍼드의 통찰은 그의 독창적 시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근대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기술혁신이 맹렬하게 일어났던 1780년대를 ‘산업혁명’이라는 말로 정의했다. 자신들의 시대를 흔히 ‘기계시대’라 불렀던 20세기 초의 학자들이 기계시대의 기원을 이 특정 시기에서 찾게 된 것은 토인비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계문명은 18세기라는 특정 시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적어도 10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근대적 기술의 여명기로부터 서로 상반되는 특징을 갖는 연속된 세 시기가 덧씌워지고 상호 침투하면서 지금의 기계문명을 이끌었다.

    기술과 문명

    기계문명에 대한 이러한 구분은 부분적으로 스코틀랜드 사회학자 패트릭 게디스에게 빚지고 있으나 보다 폭넓은 역사적 범위 속에서 기술로 인한 세계상의 변화에 주목한 사람은 루이스 멈퍼드다.

    그는 기계문명의 세 시기를 기계를 움직이는 동력과 특징적으로 사용하는 물질에 따라 나누었는데 이 둘은 독특한 기술 복합체를 형성한다. 원기술 기시는 수력-나무 복합체, 구기술 시기는 석탄-철 복합체, 신기술 시기는 전기-합금 복합체로 정의된다.

    전체 8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멈퍼드는 앞의 세 장을 원기술 시기 분석에 할애하고 있다. 근대 기술의 여명기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 비로소 인력을 대체하는 동력원(편자 도입으로 증가된 실마력과 수력과 풍력을 이용한 동력)이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나무를 이용한 선박의 건조로 물길을 장악해 공간을 정복하고 상업 교류를 확대했다.

    하지만 멈퍼드가 원기술 시기를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계의 방대한 영향력을 지원하고 그 이용을 확대하는 복잡한 사회적·이념적 연결망들이 이 시기에 완성됐기 때문이다.

    엄격한 수도원의 일과를 관장할 목적으로 발명된 시계는 시간에 대한 인간의 사유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으며 규칙적이고 집단적인 인간 경영의 싹을 키웠다.

    14세기 금융의 발달로 출현한 화폐 경제는 추상과 계산이라는 사유 습관을 인간 삶에 새기며 “장부에 쓰인 이윤과 손실이라는 계정 속으로” 다양한 삶의 가치들을 빨아들였다.

    광업은 산업에 필수적인 자본재 획득에 혈안이 된 15세기 상업 기업의 투기 대상이 되면서 자본주의적 착취 패턴을 확립했다. 또한 육체노동의 양과 생산물의 희귀성으로 경제적 가치를 매기는 광업의 특징은 근대 기계의 지배적 특징이 됐다.

    이 밖에도 자연철학의 등장이나 사회 조직화에 군대가 미친 영향, 전쟁 기술의 발달이 불러온 기술 발전 등에 대한 탁월한 분석은 멈퍼드의 저작들과 그가 발전시킨 ‘거대 기계’와 같은 개념들이 이후의 학자들에게 계속해서 회자되는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기계시대의 ‘재앙’은 어떻게 극복될 수 있나

    기계화와 사회의 조직화는 역사에서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 지배적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기계적 효율과 진보라는 관념에 맹목적으로 매달린 구기술 시기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원기술 시기에 제기된 모든 이념적 전제를 수용하고 와트와 아크라이트가 제시한 기계 원리의 보편화와 실용에 힘입은 구기술 시기의 권력자들은 이윤 추구라는 목적 아래 기계의 배타적 발전을 독려함으로써 사회의 다양한 도덕적,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야기했다.

    4장 구기술 시기에서는 구기술 시기 핵심 동력원인 석탄 채굴을 위한 탄광 개발이 야기한 개발의 열병과 문제점들을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19세기 내내 세상은 골드 러시, 아이언 러시, 다이아몬드 러시 등으로 들썩거렸고 무모함, 한탕주의, 승자독식주의라는 광업의 습관은 사회 모든 곳으로 맹렬하게 퍼져나갔다. 무질서한 착취와 무분별한 낭비가 인류 문명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것이다.

    구기술 시기가 자랑하는 증기기관은 낮은 열효율로 대기오염과 에너지 낭비의 주범이 됐고 제철업의 혁신으로 주요 산업 물질이 된 철은 신기술 시기의 합금 기술이 등장하기 전까지 산화와 열에 약한 점으로 인해 오히려 무거운 짐이 됐다.

    구기술 시기의 끊임없는 권력 이데올로기와 갈등은 1차 대전으로 귀결됐다.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삶의 균형과 풍요로움을 지향하던 기계가 인간을 착취하는 거대 기계로 변모함으로써 전쟁이라는 공멸의 길을 열었던 것이다.

    “막간의 재앙”이라고 구기술 시기를 일갈하는 멈퍼드는 하지만 이에 대한 반작용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삶의 목적과 유기적 삶에 대해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다고 평가한다.

    5장에서 그는 그의 시대에 맹아를 보이고 있던 신기술 시대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이야기한다.

    멈퍼드는 유기적인 것을 기계적인 것으로 대체하기 위해 유기적인 것을 단순화하는 것이 원기술 시기와 구기술 시기 발명의 필수적 목표였다면 신기술 시기는 기계를 더 유기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이로써 기계의 실제적 목표인 효율적 생산, 균형 있는 소비, 사회화된 창조를 통한 에너지의 사회적 이득 증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 유보적이다. 하지만 그 희망의 가능성에 주목한 멈퍼드의 사유는 여전히 기계문명의 자장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획득의 경제에서 필요의 경제로

    멈퍼드는 세 단계에 걸친 기계문명에 대한 긴 분석 후 이윤 추구에 집중한 획득의 경제가 필요의 경제를 대체했던 기계시대를 진단하고 기계시대가 사회에 남긴 흔적과 사회적 반응, 그리고 이에 따른 보상들을 6장 ‘보상과 회귀’를 통해 살펴본다.

    그는 기계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난 기계 파괴 운동이나 낭만주의 운동에 대해 인간 삶의 본질적 활동성을 회복시키려 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과학과 기술 그리고 새로운 기계 노동자들이 뿜어내는 힘을 철저히 외면했다는 점에서 퇴보적이라고 평가한다. 이는 기계의 긍정적 가능성과 새로운 기계 미학에 대한 멈퍼드의 기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계의 문화적 가능성을 다루는 7장 ‘기계에 대한 인간의 동화’에서 멈퍼드는 기계시대가 이전의 기술 체계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상상과 도전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긍정적 평가를 내린다.

    그는 기계 형식의 미적 탁월함, 물질과 힘의 정교한 논리의 이해, 그리고 무엇보다 새롭게 등장한 기계와의 상호 작용이 인간의 예민한 감각과 이해력을 증진시키면서 자연스럽게 개성의 탄생에 기여했다고 말한다.

    기계들이 인간 신체 기관의 힘과 범위를 확장하고 신선한 미적 볼거리와 새로운 세계를 눈앞에 펼쳐 보이며 인간 정신에 특별한 만족감과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것이다.

    입체파 미술가들의 작품과 뒤샹의 레디메이드,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사진, 영화와 같은 새로운 기계 미학들이 멈퍼드가 꼽는 성과들이다.

    객관성, 비인격성, 중립성이라는 기계의 특성을 이해하고 기계의 오용에서 비롯된 지난 세기의 과오를 교훈으로 삼는다면 더 풍부하고 유기적 사회를 실현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깊이 있는 인격을 형성할 수도 있다는 것이 멈퍼드의 희망적 판단이다.

    8장 ‘지향’은 기술의 방향을 전환하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문화적, 지역적, 사회적, 개인적 차원의 해결책들을 조목조목 제시하고 있다.

    변화에 필요한 모든 영역들을 오케스트라에 비유하는 멈퍼드는 19세기 내내 억눌리고 침묵을 강요당했던 인간의 목소리가 오케스트라의 중심에 다시 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 “불가능한가?” 근대 과학과 기술에 내재하는 가능성을 믿는 멈퍼드는 자문자답의 형식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불가능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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