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알잖아요"
    [기고] 8월 24일, 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는 사람이 이긴다는 걸 보여주자
        2013년 08월 20일 09: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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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감기>를 보고 기억에 남는 장면 하나.

    구조대원 지구(장혁)는 비번인 날 우연히 재난에 휩쓸리게 되고 그는 자기 역할을 다하기 위해 재난지역에 남기로 한다. 당신이 구조대원인지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다고, 여기서 탈출할 방법을 찾았다며 같이 나가자고 하는 인해(수애)에게 지구는 웃으면서 말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알잖아요. 내가”

    영화 속 인물의 선택은 사실 당연한 행동이다. 그런데 당연하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미련하고 유별나 보이기까지 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위험하기까지 한 일인데 자기 역할이라는 이유로 최선을 다할 이유가 없는 세상이니까.

    그런데 그 주인공을 자꾸 보고 있자니 아는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누가 알아주지 않지만 자기 역할을 다하는 사람들, 기다림에 응답할 줄 아는 사람들, 그래서 때로는 미련해 보이기까지 하는 사람들 말이다.

    대한문에 가면 구조대원 ‘지구’같은 이들을 만날 수 있다. 회계조작으로 인한 부당한 해고의 진실을 밝히는 국정조사를 실시하라고, 해고로 인한 죽음의 행렬이 멈추길 바라며 1년이 넘는 시간을 노숙하며 지내는 쌍용차 해고자들이 있고, 이들의 싸움에 함께하려고 자신의 시간을 쪼개 마음을 나누며 함께 부대끼는 사람들이 있다.

    대한문 분향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쌍용차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고, 일터에서 쫓겨나는 것이 단순히 월급을 못 받는 문제만이 아니란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지난해 4월, 내가 찾았던 분향소는 지금의 대한문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닥에 놓인 영정사진과 작은 향로만이 놓인 분향소는 참 초라해보였다. 그 마저도 수십 명이 다치고 연행되는 과정을 겪으며 확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고 비오는 날 상복을 입은 채 하염없이 비를 맞고 나서야 비 피할 작은 천막 하나를 설치했다. 22번째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설치한 대한문 분향소는 이런 미련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지난해 봄부터 이 미련해 보이는 사람들을 카메라 렌즈로 담고 있다.

    사진은 레프트21

    사진은 레프트21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터에서 쫓겨나고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의 목숨이 사라진 이유가 회계조작과 기획 부도 때문이라 밝혀졌지만 국정조사를 통해 책임자를 처벌하고 쫓겨난 노동자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길은 너무도 멀게만 느껴진다.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고,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서야 하는 이들은 모른 척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해 대한문 분향소에는 수많은 정치인들이 다녀갔다. 살면서 그렇게 많은 정치인을 가까이서 본 것도 처음이었고 그렇게 많은 말을 직접 들은 것도 낯설었다.

    모두들 자기네들이 해결하겠다, 자신에게 맡겨달라고들 말했다. 그러니 건강을 생각해서 단식을 멈추라고. 그러니 철탑에서 내려오라고. 이제 화려한 말잔치는 끝났다. 말잔치가 끝나고 남은 것이라곤 없다.

    그 누구도 자기가 뱉은 말을 책임지지 않는다. 국정조사는커녕 죽음을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 천막마저 철거해 버리는 현실이다. 한동안은 타임머신을 타고 지난해 봄으로 다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작년에 촬영해둔 촬영본을 확인할 때마다 마음이 시큰거렸다. 지금은 화단이 만들어져버린 그 장소에서 참 많은 이들과 함께 울고 웃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다시 일터로 삶터로 돌아가겠다는 희망을 품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라디오를 듣다가 몸과 마음이 일시정지 됐던 적이 있다.

    “…반성했어요. 사람 마음이 그렇게 쉽게 움직이는 게 아닌데 몸을 움직이는 수고 없이 어떻게 가능할거라 생각했던 걸까요….”

    요즘 대한문 상황도 그렇고 여러 벌어지는 사건ㅇㅇㅇ들을 보면서 내내 속상하고 짜증이 났다. 날씨 탓도 있겠지만 조금은 무기력해지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우연히 듣게 된 라디오 멘트가 다시금 주먹을 꽉 쥐도록 했다. 그래, 사람 마음이 그렇게 쉽게 움직이는게 아니니까.

    작년에 수많은 이들이 대한문을 찾아서 손잡아 주었던 것은 미련하리만치 몸을 움직이고 견딘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지만 몸을 움직이는 수고가 있다면, 그래서 그 진심이 전해진다면 분명 다른 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될거라 믿고 있다. 우리에게 8월 24일 쌍용차 범국민대회가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가 먼저 움직인다면 마음이 꿈틀대고 있는 누군가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그래서 그 마음들이 모이고 움직인다면 쌍용차 문제 해결에 책임이 있는 이들이 나설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번 범국민대회를 통해 증명해 냈으면 좋겠다.

    말로 세상을 움직이려는 사람은 결코 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한여름 땡볕아래 함께 서겠다는 미련한 다짐이 결국 쌍용차 해고자들을 일터로 삶터로 돌려놓게 될 것이다.

    필자소개
    ‘대한문에서 만나’ 영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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