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비에트에 대한 진실 혹은 오해
    '소련은 지옥이었는가' … 이리나 말렌코씨와의 간담회
        2013년 08월 04일 04:27 오후

    Print Friendly

    이리나 말렌코는 구 소련 붕괴 이후 자본주의 체제가 러시아에 등장하면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게 되자 전 세계를 돌며 이주노동자로서,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전전하던 중, 서방세계에 만연한 구 소련에 대한 심각한 오해와 왜곡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자본주의 체제가 비판하고 비방하던 구 소련체제가 실은 그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오히려 자본주의가 가질 수 없는 어떠한 특장점이 있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몇 권의 책을 썼으며 이 중 일부는 영문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지난 해 딸을 잃은 후, 남은 생을 노동자들의 국제적 연대를 위한 활동에 보내기로 결심했고, 전 세계의 투쟁 현장을 찾아 노동자의 우애와 연대를 설파하면서, 특히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여 울산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투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물품을 지원하기도 하는 등 실천 활동을 하고 있다.

    구 소련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교정할 수 있는 논의가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하며, 이번 기회에 한국 진보정당 및 각계의 활동가들과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여 이 날의 간담회가 만들어졌다.

    이리나의 발언과 답변을 보면 소련의 과거에 대한 어떤 보수적인 옹호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이리나가 소련의 과거에 대한 서방 사회의 왜곡, 비난, 무시 등에 대해 반박하는 과정에서 강조된 측면이 있으며, 자신도 소련의 과거가 완벽하거나 결점이 없는 사회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명확히 했다. 단 언어와 시간의 장벽으로 인해 그 이해의 간극이 쉽게 해소되는 것은 어려웠다. 다소 거칠고 단순화되었지만 간담회 발제와 질의 응답을 그대로 옮겨 게재한다. 사회는 이광호 레디앙 대표가, 통역은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부장이 맡았다. 간담회 발언과 질의응답 정리는 장여진 기자가 담당했다. <편집자>
    ————————

    이광호: 현대차 투쟁에 이리나가 물품 보내준 적 있다. 7월 30일 한국에 왔다. 어떤 종류의 공식 사업이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왔다. 레디앙과 인터뷰를 하려고 하다가 인터뷰를 할 바에는 노동당 당원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드는 게 어떨까 생각이 되어 노동당에 제안한 것이다. 따라서 오늘 간담회는 레디앙이나 노동당의 공식 사업은 아니다. 이리나는 모스크바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다. 책도 썼는데 소련 해체 이후 정규적인 직장이 없어 유럽연합의 각 나라를 돌아다니며 비정규직으로 살아왔고, 현재 북아일랜드에서 번역 일을 하며 살고 있다.

     이리나: 저는 소련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1967년 태어나서 1984년 소련을 떠났다. 제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렇게 멀리 떨어진 서울에 와서 제가 태어난 나라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꺼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책도 몇 권 썼는데 쓴 이유는, 그 소련이 붕괴한 20년 동안 소련에 대해 알려진 게 거짓말 밖에 없기 때문이다. 거짓말 이면에 있는 진실에 대해 소련인들도 침묵하고 있다. 제 가족은 수년동안 공장노동자로 일을 해왔고, 어머니는 엔지니어였다. 아버지는 2차 대전에 참전한 바 있다. 처음 이 모임에 대해 제안을 받았을 때 제목을 듣고 좀 웃었다. ‘소비에트에 대한 오해와 진실’인데 영어로는 ‘지옥이었는가?’ 라고 되어있는데 지옥이 아닌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웃음)

    이리나2

    다른 나라에서 만난 소련에 대한 오해 또는 편견

    네덜란드의 대학 도서관 가서 책을 읽었는데 소련이 우스꽝스럽게 묘사되어있다. 노조도 없고 여성들은 남편이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해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모욕감을 느꼈다. 소련에서의 생활을 돌이켜 보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안전, 평화, 조용함이다. 왜냐면 소련에서는 범죄가 없었고 걱정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범죄도 없고 실업이라는 것도 모든 사람들이 완전하게 고용될 수 있어서 없고, 홈리스도 없다. 주택 보조가 다 되기 때문이다. 소련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이런 것이었는데 네덜란드에서는 반대로 쓰여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밤에 돌아다니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소련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일이다.

    소련의 교육체계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소련에서는 공부를 하는 동안 학생들간의 경쟁이 없다. 왜냐면 자기 능력에 따라 자기가 되고 싶은 게 되니깐. 교육시스템은 10년간 무상이고, 대학교를 가더라도 대학 교육도 무상이고 대학 다니는 동안에 일종의 수당같은 것을 국가로부터 지급 받는데 한 달에 40루블씩 지원받는다. 이 금액이 얼마냐면 대학 기숙사 비용이 1년에 24루블이다. 24루블만 내면 모두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데, 그만큼 많은 돈을 수당으로 지급받았다. 대학이나 직업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무조건 모두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졸업 후 3년 동안은 같은 직장에서 일해야 하고 3년 지나면 자유롭게 원하는 직장으로 이동할 수 있다.

    소련의 노동과 복지

    노동에 대해서 어떤 개념을 가지고 있었냐면 노동은 의무이자 권리였다. 누구나 일을 해야 하고 또 누릴 수 있는 권리이기도 했다. 연금 수급 연령은 여성 55세 남성 60세, 주5일 주40시간이었고. 모성보호도 있어서 임신 여성은 야간 노동이 안되고. 아파서 일을 못하게 되는 경우도 유급이었다. 광산노동 등 힘든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퇴직을 좀 더 일찍 할 수 있었다.

    출산휴가도 보장되어 있는데 유급으로 18개월 보장돼 있다. 출산휴가 끝나면 당연히 원래 하던 일로 복귀가 가능했다. 임금도 노동자, 관리직, 기술직의 구별 없이 비슷하게 지급받았다. 야간, 휴일노동은 강제로 하는 경우가 없고, 하겠냐고 요청 받고 동의해야만 하고, 할 경우에는 정당한 댓가를 받게 된다. 야간은 50%, 휴일노동은 2배 임금을 받는 시스템이었다.

    노동조합도 있었다. 근데 자본주의 사회의 노조랑 차이가 있는데. 노조의 기능이나 역할이 뭐였나고 하면, 현장에서 노동조건을 감시하거나 아니면 의료공제라는 걸 자체적으로 하거나 아이들을 모아서 여름캠프 보내거나 상조조합을 운영하거나 하는 형태였다.

    가장 중요한 건 사회적 구분이 없었다는 점이다. 어떤 공장에 관리자나 청소노동자나 똑같이 존중 받고, 똑같은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형태였다. 큰 회사의 경우 사택 같은 걸 지어서 모든 노동자들에게 주택을 제공하는데, 노동자들은 임금의 3~4%를 지불하고 모든 것들을 공짜로 이용했다. 중요한 건 회사에 일하는 동안 거주를 할 수 있는 곳이지 주택을 팔거나 타인에게 양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회사 안에는 스포츠시설도 있어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고 자체적으로 농장을 운영해서 구내식당 식재료로 공급했다.

    일이 끝나면 노동자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이 가능한데 엔지니어가 관리자가 되고 싶다면 그룹을 지어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노동자들이 새로운 걸 발명하도록 장려 받았는데 카피라이트 시스템과 다르게 여러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새 기술을 발명하면 각 공장끼리 교류하고 공유하면서 더 발전해 가는 시스템이었다.

    보건의료도 무상이었고 약도 국가보조금이 나와서 매우 쌌고, 약국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에 대해서도 지급됐는데. 아이들 의복에 대한 보조, 대중교통에 대한 보조도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린아이 의복비가 어른들 만큼 나가는 거 보고 매우 놀랐다.

    소련은 왜 망했나

    그래서 이렇게 굉장히 훌륭한 사회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럼 왜 소련이 붕괴됐냐고 하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소련 붕괴 과정은 복잡한 과정이고 아직까지도 그 원인을 분석하는 중이다.

    내 생각에는 첫번째, 세대교체가 되면서 부모님 세대에서는 전쟁을 겪으면서 어려운 삶을 살았고, 아이들에게(이리나 세대)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주려고 하면서 아이들을 오히려 망쳐놓았던 과정이 있던 것 같기도 하다. 둘째는 모든 게 무상으로 제공되기 때문에 기대치가 커지고, 다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게 무상으로 제공되다 보니 모든 사람들이 점점 요구하는 게 커지면서 개인주의가 확대됐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래서 부모님 세대랑 제 세대랑 비교해보면 부모님 세대는 사회, 정치적 문제에 대해 활동적이었는데 우리 세대는 수동적이었다. 아무도 학교에서 리더로 선출되길 원하지 않았고, 수동적이었다. 가장 어려운 게 뭐냐고 한다면, 이런 과정에서 공동체가 힘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힘과 권한을 제공하는 게 어려웠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자본주의로의 변화, 어떤 결과를 낳았나

    1980년대 이후 결과적으로 자본주의로 변화하는 과정이었는데 그 과정에서도 그걸 주도하는 사람들도 ‘사회주의를 발전시키는 과정이다, 레닌주의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런 아름다운 언어를 많이 사용했다. 인권, 민주주의 등 좋은 것처럼 포장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혼란에 빠졌고, 어떤 사람들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결합하는 사회로 가는 것으로 여기기도 했다.

    더 나아지고 있는 증거로 소련 의사가 자본주의 의사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번다는 걸 증거로 댔는데, 하지만 그동안 무상으로 공급되던 약을 우리는 많은 돈을 주고 사야만 했다. 좋은 것이고 좋은 현상이라고 했던 것이 알고 보니 다 우리 시민들이 개별적으로 댓가와 비용을 치러야 했던 것이다.

    교육도 마찬가지인데 예전에 무상이었다면 지금은 다 돈을 내야 한다. 특히 중등교육에 대해. 질은 훨씬 더 떨어진다. 예전에는 과학도 가르쳤다면 지금은 단순히 읽고 쓰는 수준이다. 산업화가 되었지만 공장은 거의 문을 닫았고 예전에는 소도시에도 공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노동자들이 일을 하려면 대도시로 이주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범죄율도 높아졌다. 내가 살던 동네가 인구 50만명인데 20년 동안 살인사건이 2건이었다. 지금은 거의 매일 살인이 일어나고 있고 밖에 나가는 걸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다. 마을 공동묘지를 둘러보면 20세가 되기 전에 사망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리고 소련 인구가 거의 100만명씩 줄어들고 있는데 다른 나라로 이주하거나 범죄 때문에 사망하기 때문에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는 상황이다.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사람들이 우리가 소련 사회가 이룩했던 것을 얼마나 잃었는지에 대해 점점 깨닫고 있다. 그리고 젊은 세대 가운데서는 소련 붕괴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직접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현 사회의 문제 해법으로 사회주의를 찾는 사람들 많아졌다. 하지만 공산당도 여러 개로 나뉘어져 서로 싸우는데 바빠, 사람들이 변화를 원하지만 그걸 주도할 정치세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지금 돌이켜보니깐 내가 20대 때 얼마나 수동적이었는지 깨달았다. 지금은 많이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지금 무언인가를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이전과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활동하려고 한다. 이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나라에 있는 진보세력의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회주의가 무엇이고,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해 각자 생각은 다르지만 자본주의라는 공통의 적과 싸우고 있기 때문에 공동의 적 앞에 단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1년에 한번 벨기에 브뤼셀에서 공산주의 대회가 8~9년째 개최하고 있는데 여기서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 단결해야 한다는 것. 문제는 단결해야 한다는 말만 너무 오래하고 있다는 것이다(웃음). 중요한 건 정보를 교류하는 것이고 각 나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보를 공유할 네트워트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1일) 울산 방문한 것이고 현대차 투쟁 보고 감동했다. 이 투쟁을 전 세계가 알아야 한다. 제가 소련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내일까지 해도 모자라겠지만 짧게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는데 여기까지 간단한 발제를 마치고 질문이 있으면 답변하는 식으로 진행했으면 한다.

    이리나1

    <질의 응답>

    질문: 지향해야 할 사회가 사회주의라 하고 러시아 공산당 이야기를 잠깐 이야기했는데. 분열해 싸우고 있다고. 제가 러시아 공산당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러는데 겉보기에는 지난 20여년간 (공산당 대표) 한 사람이 계속 대선 후보로 나왔다. 러시아 공산당이 과거 공산당과 뭐가 다르냐. 사회주의로 이끄는데 대안 세력이 될 수 있다고 보는지.

    이리나: 1996년 러시아 공산당의 주가노프 대표가 옐친에 맞서 나섰고 그를 찍었다. 하지만 옐친이 당선됐다. 러시아 국민들의 실망이 많았다. 근데 작년에 러시아 당국에서 고백하기를 사실상 주가노프의 승리였다고 한다. 선거부정이 있었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후 이 당은 지지자를 잃어갔는데 그 이유는 온건하고 모호한 성향 때문이었다. 또 이름과는 달리 공산주의보다는 민족주의 정당에 가까웠다. 그들 스스로 러시아 정교를 믿으면서 종교적 성격도 있었다. 이보다 더 급진적인 당들이 많은데 그중 하나는 러시아 공산주의 노동자당이라 할 수 있고. 또 소련 공산당도 있다. 이 두 당이 나름 급진적이고 좌파적인데 작년에 두 당이 통합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주 소규모이고 재정도 열악하다. 그런데 이들은 주가노프당을 의회에 의석 차지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민중들의 삶에 관심이 없다고 그들을 비판하는 것 이외에는 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리고 이런 정당들의 문제점은 뭐냐면 평범한 노동자를 위해 하는 일은 전혀 없고 오히려 그 노동자들이 지지하도록 하면서 노동자들을 분할하는 일을 하고 있다. 주가노프의 러시아 공산당은 의회에서 의석수가 2번째로 많은 큰 정당인데, 의원 중에 노동자 출신은 단 한 명밖에 없다. 한편 좌파 지식인들이 노동자계급은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며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항상 이야기를 하는데, 그들 말을 들어보면 평생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상황인 꼴이다.

    내가 생각하는 대안적인 당은 노동자 농민 등 기층 대중에 뿌리를 둔 조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방향은 사회주의가 유일한 대안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는 모든 걸 파괴하기 때문이다.

    소련 사람들은 과거의 소련을 독재체제라고 생각할까?

    질문: 두 가지 정도만 질문하겠다. 옛날 회고록들 보니깐 소련인들이 북조선에 대해 독재국가, 개인숭배가 강하다고 혐오한다고 되어 있던데, 소련 사람들은 자신들의 체제를 독재체제로 생각했는지 궁금하고, 또 소련 사람들은 민주화와 경제발전의 연관관계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이리나: 며칠 전에 인도네시아에서 두 사람이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 아니라고 했다. 왜냐면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해서도 그렇고 대다수의 소비에트 민중들은 소련을 독재국가라고 여기지 않았다. 자유롭게 정치적 농담 등 어떤 농담도 할 수 있었다. 어떤 억압도 받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독재국가에서 살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둘째 질문도 마찬가지로 경제발전 먼저냐 민주주의가 먼저냐고 질문하는 것이라면 그 질문이 우스운 게 그 때 당시 우리는 이미 민주주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뭐가 먼저냐고 묻는 게 좀 이상하다. 선거권, 피선거권도 다 갖고 있었고 종교의 자유도 보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자본주의랑 비교해보면 자본주의에서는 민주주의를 정치적 권리로만 이야기하지만, 소련에서는 정치적 권리 이외에도 경제적 권리도 보장됐다. 소련사회의 단점을 이야기하자면 어제와 오늘 생활이 늘 똑같기 때문에 좀 지루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1980년대에는 공장의 노동자들이 직접 선거를 통해 공장 관리인을 선출하기도 했었다.

    질문: 60년대부터 80년대 사이에서 소련에서 학생이었는데. 그때 레닌주의에 대해 고민을 했다고 들었다. 그 당시에 그 세대가 레닌주의, 스탈린주의가 아닌 레닌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듣고 싶다. 다른 질문은, 당신 세대면 소련의 체코 침공 등에 대해 들었을 것인데, 소련 내의 사회주의 반체제운동이나 동유럽의 민주화 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는지, 영향을 받았는지 등에 대해 듣고 싶다.

    이리나: 레닌주의가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그 당시에 소련 사람들을 둘러싼 생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스탈린에 대해서는 사실 레닌주의처럼 많이 토론하거나 하지 않았는데 왜냐면 고르바초프가 스탈린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것으로 많이 묘사했고, 그 외에 토론을 하거나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할머니의 남자 형제가 있는데, 스탈린 시대에 어디 다른 지방으로 추방되었다. 그 이유를 물었을 때 그 대답이, 당내 분파끼리 권력투쟁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졌다고 했다. 스탈린에 반대했던 사람들이 소련의 권력을 잡았는데, 그 사람들의 결과와 행보를 보면 왜 반대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소련의 체코 개입 사태는 내가 1살 때 일어난 일이다. 네덜란드에 처음 갔을 때 사람들이 저한테 ‘자유를 얻었구나’라고 했는데, 왜냐고 물으니, 네덜란드에서는 “여왕은 바보다!” 라고 말할 수 있는데 너네 나라에서는 불가능하지 않았냐고 말했다.

    예를 들어 소련에서는 정부에 대해 비판할 수 없지 않느냐고 하는데, 저는 왜 비판해야 하냐 라는 역질문을 던졌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민주주의가 다른데, 부르주아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정부에 대해 좋다, 싫다고 말할 자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질문과 발언 자체가 사회의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는다고 본다.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수가 그 사회의 방향과 미래에 대해 결정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결정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은 소수였다.

    질문: 두 가지로 나누어서 질문한다. 하나는 지금 말씀하시는 걸 들으면 사실상 과거 소련의 체제를 방어하는 입장에서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럼 이리나씨가 생각하는 소련 시기의 어두웠던 점들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제가 듣기로는 과거 소련에서는 성소수자의 탄압이 지금 러시아처럼 있었고,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권위주의가 소련사회를 덮고 있었다고 들었다. 5~60년대 미국으로 치면 히피 같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소련에서 재즈는 자본주의적 문화라며 그걸 추종하는 젊은이들에게 당과 당국이 많이 탄압했다고 들었다. 그게 서방에서 부풀린 것인지, 이리나씨가 소련에 계실 때 그런 권위주의적인 면에 대해 느낀 적이 있는지, 전체적으로 과거 소련 사회에서는 어떤 단점과 문제점이 있었는지 듣고 싶다.

    또 하나는 현재의 시점에서 2년전부터 모스크바 등 대도시에서 반푸틴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 진영에는 사회주의자들도 있고 그냥 일반 민주주의자들도 있고, 자본주의를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그 사람들 속에서 사회주의자들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이고 그들의 역할은 어땠는지 듣고 싶다. 말씀하셨던 주가노프가 이끄는 러시아 공산당 말고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급진적 좌파전선, 이런 조직들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들이 현실에 개입하고 있는지, 또 그 중에 젊은 리더가 있다고 하던데 그에 대한 평가도 부탁한다.

    이리나: 제가 소련이 완벽한 사회였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제가 강조했던 건 소련사회의 긍정적인 측면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걸 강조하는 것이지 소련이 무결점 사회였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지적한 것처럼 과거 소련 사회에서 성소수자 문제는 계속 있었다. 재즈 음악 관련해서는 70년대에 디스코 듣고 라디오에서 외국 음악을 듣고 녹음하기도 했다. 여러분들이 알고 있겠지만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미국등 서방국가가 보이콧을 했는데, 미-소 대립이 심해졌을 때 재즈 등의 문화에 대해 탄압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외의 단점들 기억해보자면, 어렸을 때 공식적으로 소련에서는 인종주의가 없다고 말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소련 내에서의 인종주의를 굉장히 심각하게 느낀 경험이 있다. 어려서 학교 다닐 때 남자친구가 이디오피아 출신이었는데 이 친구랑 길거리를 다니면 특히 나이 많은 사람들이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하기도 했다. 당시 경찰에 신고를 해야 했지만 너무 당황해서 못했다.

    또 당시 소련에도 부정부패가 있었다. 어떤 서류를 처리하거나 할 때 직접적으로 돈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일 처리를 굉장히 느리게 하면서 돈을 요구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저희 가족들은 그런 상황에서 돈을 주지 않았다. 늦게 처리되더라도 언제가는 처리될 꺼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러시아 상황과 비교하면 그 규모가 적다고 하더라도 부정부패가 소련에서도 존재한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정도가 지금과 다르지만 관료주의도 있었다.

    두번째 질문에 대해 말하면. 반푸틴운동은 2년 동안 성장하고 있고 그 안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주도세력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중산층들이다. 중산층 운동에 대해 좌파진영은 같이 협력해야 한다, 아니다 선을 그어야 한다는 입장 차이를 가지고 논쟁 중이다.

    좌파전선은 인터넷, SNS, 블로그 중심으로 활동한다. 그래서 대도시에서는 영향력이 있지만 도시를 벗어난 지역에서는 영향력이 없다. 젊은 리더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제가 현재 러시아 사회 내에서 정착해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하게 판단을 내리지는 못하겠다.

    질문: 소련에서는 자본주의에 없는 직접 민주주의적 권리라는 게 어떤 게 있었나. 일반 노동자가 참여하는 메커니즘은 어떤가? 완벽한 사회가 아니라면 불만도 있고 문제를 제기할 것도 있었을 텐데 그게 어떤 방식으로 제기되고  또 그 요구가 수용이 안되었을 때는 어떻게 투쟁하는지, 대중운동은 어떤 형태였는지 궁금하다.

    이리나: 공장이나 각자 속한 단위가 있지 않겠나. 작년에 어느 만큼 생산했고 올해 생산은 어떻게 할지 계획을 단위별로 평가하고 수립한다. 그래서 이게 쭉 위로 올라가서 한 공장단위가 되고 그 공장들이 모이면 정부 부서단위가 되고 또 그게 모여 국가단위가 되는 시스템이다. 그것이 얼만큼 현실적이었는지 등에 대해 평가하는 과정도 그 시스템에서 이루어진 것 같다. 둘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불만이 생겼을 때 보통은 자기가 속한 공동체, 예를 들어 가족이나 친구한테 말했는데 거리에 나가서 공공연하게 했으면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보안 요원들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의 원래 역할은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체포하는 게 아니라 불만들을 청취해서 당 간부한테 보고하는 역할이었다. 이런 시스템이 있었고 그런데 만약에 불만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그 불만이 체제에 반하는 규모였다면 체포됐을 것이다.

    둘째 질문에 대한 시스템을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대학 다닐 때 기숙사를 짓고 있었고 완성 직전 단계여서 해가 바뀌면 완성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아직 다 완공되지 않았는데도 학생들에게 입주를 하라고 했다. 그래서 학생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학생이 보안 요원을 통해서 문제를 제기했고 그날 바로 당에서 사람을 파견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등에 대해 학생들의 불만을 청취하고, 하루만에 ‘아니다’ 라고 판단해서 완공된 다음에 이사할 수 있도록 조치가 취해졌다. 이 시스템에서는 누군가 보고를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언론의 역할도 자본주의 사회와는 매우 다르다. 언론에 문제점을 고발하는 글을 기고하면 그건 공식적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언론에 알리면 30일 내에 조치해야 하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질문: 물품 구매할 때 신청하고 배분 받는 걸로 알고 있는데 자본주의화 되면서 곤란했을 것 같다. 과거와 달리 좀 적응이 안됐을 것 같은데 에피소드가 어떤 게 있었는지?

    이리나: 소련사회에서도 물건이 필요하면 가게에 가서 샀다. 다만 고르바초프 정권 때는 물자가 부족해서 쿠폰을 발행했다. 가끔 줄을 길게 서야 했을 때도 있지만 사기는 했다. 차이가 있다면 자본주의에서는 엄청나게 비쌌는데 사회주의는 싼값에 샀다. 가격이 싼 이유는 국가에서 보조하기 때문인데 빵 같은 식료품이나 우유 등은 20년 동안 가격이 오르지 않았다. 가끔 오를 때는 수요가 너무 많아서 그랬다. 소련에서 살 때 물건이 부족했던 건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구매하려 했기 때문이다. 생필품은 별로 없었고 바나나같은 거 사려고 줄을 많이 섰다. 아니면 외국에서 수입한 옷이나 신발 이런 것이 그랬다.

    1990년대 옐친 집권 당시 일을 하고도 임금 못 받는 경우도 많았고 6개월 체불된 적도 많아서 가게에는 물건이 넘쳐났지만 구입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할머니의 연금으로 구입하는 그런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질문: 사회주의에서 어떤 사람이 되라고 교육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이리나: 사회주의에서는 자신보다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라고 한다. 주변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하려는 행동을 하라고 한다. 20년 동안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도 이걸 마음 속에 간직하며 살고 있다.

    질문: 스탈린에 대해 질문하고 싶은데 소련연방 해체 이후 스탈린 격하 사업이 진행되어 스탈린에 대한 지지도가 높지 않은 걸로 아는데 최근 여론조사를 보니깐 과반 이상으로 지지도가 높아졌다는 말을 들었다.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이리나: 스탈린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되어 왔는데 그 과정에서 스탈린 시대에 소련 사회가 성취한 것이 무엇인지, 스탈린과 소련사회가 성취한 것을 연관지어 분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1920~30년대 문맹률, 실업률이 많이 낮아졌고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 바뀌었고 집단농장도 만들어졌고 나치에 맞서 싸워 승리한 성과도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스탈린에 대한 역할을 재조명하는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또 둘째는 현재 정부 관료들과 스탈린 시대를 비교하면서 스탈린의 긍정적인 측면이 조명되었는데 이런 것들이 그런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배경이 아닐까 생각한다. 스탈린이 나름 이룬 업적도 적지 않은데 많은 사람들은 스탈린의 정치적 숙청과 박해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질문: 자본주의의 장점은 없었나?

    이리나: 생각을 많이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에서도 똑같은 질문을 받았는데, 지금 사회주의로 돌아갈 수 있으면 돌아갈 꺼냐고 물어서 당장이라도 사회주의로 돌아가고 싶다고 답변했다.

    * 간담회를 마치면서 느낀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리나는 “한국문화에 대해 많이 배웠지만 그것은 대부분이 북한에 대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북한과 가까웠고 남한과는 교류가 없어서 잘 몰랐는데 오늘 굉장히 새로운 경험을 했고, 한국에 머무르면서 한국사람들의 인간미를 많이 봤다. 따뜻하고 친절하면서도 강인한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독재정권하에서 살아가면서 그 두가지 측면을 가지게 된 게 아닐까 한다. 이번 방문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됐고 또 한국에 올 수 있는 기회 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