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 주고 약 파는 사회
    [책소개] 『건강할 권리』(김창엽/ 후마니타스)
        2013년 06월 22일 04: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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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의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 사회 의료 현실 보고서

    어린이의 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고소득층 초등학생들의 80퍼센트가 행복하거나 매우 행복하다고 응답했지만, 저소득층은 50퍼센트가 행복하지 않거나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한국은 8년째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경제 위기로 실직한 가장, 부당 해고를 당한 노동자,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 어느 농촌 마을의 가난한 독거노인이 있다.

    유아사망률에서, 암 발병률, 흡연율, 우울증 발병률, 자살률, 심지어 산재 발생률과 교통사고 사망률까지 모든 질병과 사고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차별한다.

    건강권의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 사회

    한여름이면 간신히 몸만 뉘일 수 있는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위와 사투를 벌여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영양 결핍이라는 ‘보이지 않는 굶주림’에 시달리는 빈곤층 아이들과 점심을 굶는 초등학생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복지 포퓰리즘과 무상급식을 둘러싼 정치적 혈투가 벌어지고, 의료 상업화 경향 속에 성적 부진이 학습 ‘장애’가 되며, 부부관계의 개선까지도 ‘치료’의 영역으로 취급되는 과잉 의료화 현상이 존재한다.

    생명은 다 같은 값을 가지고 질병의 고통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지만, 그 고통을 다루는 의료 기술과 제도는 돈이 되는 병과 사람을 차별하고, 결국은 질병의 고통조차 사람을 차별하게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사회 건강 불평등의 현주소다.

    이 책은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창엽 교수가 이와 같은 현실을 사회의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진단한 글을 모은 책이다.

    건강할 권리

    저자는 건강 문제를 생물학적 현상으로만 바라보고 기술과학적 문제로 치부해 버린 채 예방과 관리, 치료를 환자 개인과 전문가 의사의 일로만 돌리던 기존의 생의학적 모형을 비판하면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관점에서 한국 사회 건강 불평등의 현실을 분석한다.

    이는 진주의료원 폐쇄, 포괄수가제 논쟁, 4대 중증질환 논쟁 등 최근의 보건의료 이슈뿐만 아니라 이주여성, 빈곤층 아이들, 독거노인 등 사회적 약자의 건강권, 경제 위기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 사회참여와 건강의 관계 등 건강과 사회가 맺고 있는 근본적 관계를 보여 주는 현상들을 포괄한다.

    또 시장 원리가 의료 서비스의 공급을 지배하게 됨으로써 나타나는 병폐를 파헤치면서, 건강권을 ‘정의’와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대안적 관점을 제시하고, 결국 좋은 사회를 만들지 않는다면 건강 불평등 역시 해결하기 어렵다는 교훈을 이야기한다.

    #1 더위에 목숨을 잃는 사람들

    서울 종로구 쪽방촌을 조사해 본 결과 주민 20명의 연령은 평균 73.4세, 쪽방의 평균 크기는 1.5평이었다. 절반은 선풍기가 없었고, 3분의 1은 창문조차 없었다. 그 결과 쪽방 사람들은 여름철 권고치보다 대략 5도 정도 높은 실내 기온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대부분은 관절염, 고혈압,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이런 여러 가지 악조건들을 동시에 가진 사람들에게 더위는 생명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2 가난이 병이다

    2009년 이루어진 한 연구에 따르면, 가구 소득을 다섯 단계로 나눌 때 최저 소득 가구에 속하는 사람들의 사망률이 최고 소득 가구에 비해 1.56배 더 높았으며, 다른 조건을 같게 하고도 소득수준과 사망률은 정확하게 반비례했다.

    #3 한국 노동계급의 건강 상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 이윤정씨는 18세 때부터 6년간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2010년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두 아이의 어머니였던 그녀는 2012년 결국 사망했다. 그녀의 죽음은 당시까지 삼성전자 반도체의 직업병 의심 제보자 90명 중 서른두 번째이고, 삼성전기 공장까지 합하면 140명 중 쉰다섯 번째였다.

    1979년, 영국의 사회의학자 토머스 매큐언이 발표한 <의학의 역할: 꿈과 신기루 혹은 인과응보>는 의료계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건강 수준의 향상이 의료 때문이 아니라 영양 공급의 증가를 비롯한 다른 요인들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학의 발전과 더불어 현대인의 건강 상태 역시 향상되었을 것이라는 일반의 믿음과 달리, 보건의료 기술의 발달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확실한 점이 많다. 다만 확실한 것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료기술이 발달한다고 해서 모든 이들의 건강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책의 1부에서 저자는 현대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적 질병과 죽음’의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건강을 결정하는 사회적 요인들을 분석하고, 건강 문제를 사사화(私事化)하는 경향을 비판한다.

    이에 따르면 이주여성, 독거노인, 결식아동, 비정규직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질병은 ‘소득수준 및 주거 환경, 학력, 직업 및 노동환경’과 같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발생하며, 이는 다시 이들의 처지를 악화시켜 건강을 해치는 악순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게다가 이런 가난과 건강의 악순환은 다음 세대에까지 사회적으로 유전된다는 특성을 지닌다. 이와 같은 분석을 통해 저자는 “모든 질병은 생각보다 훨씬 더 사회적”이며, “영양, 주거, 환경, 더 나아가 빈곤이라는 사회적 요인을 개선하지 않고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을 역설한다.

    건강을 팝니다 : 병 주고 약 파는 사회

    #1. 성형수술은 말할 것도 없고, 공부가 부진한 것이 학습 ‘장애’가 되고, 부부관계의 회복이 부부‘치료’의 영역으로 취급되는 세상이 되었지만 정작 의학 기술과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결핵 문제나 만성 정신 질환은 오히려 오랜 기간 방치되고 있다. 상품성이 약하고 돈벌이가 시원찮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 OECD 국가 중 결핵 발생률과 사망률이 가장 높은데다 그 발생 양상 역시 20~30대가 제일 높은 후진국형 양상을 보인다.

    #2. 2012년 말 현재, 한국의 공공 의료 비중은 기관 수 기준 5.8퍼센트, 병상 수 기준 10.0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예외적이고 기형적이다. 병상 수를 기준으로 할 때, 영국 100퍼센트, 오스트레일리아 69.5퍼센트, 프랑스 62.5퍼센트, 독일 40.6퍼센트를 차지하며, 민간 부문이 우세하기로 유명한 일본과 미국조차 26.4퍼센트, 24.9퍼센트에 이를 정도다.

    2부에서 저자는 이와 같은 사회적 현실의 변화를 저지하는 사영화된 의료 현실과 철저한 시장 원리에 따른 의료서비스 공급 구조의 병폐를 분석한다.

    시장형 서비스 공급 구조를 따르는 의료 현실에서 의료서비스는 모든 측면에서 양극화되어 있다.

    돈이 되는 것은 병이 아닌 것도 병이 되지만, 정작 많은 이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질병 가운데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치료법이 개선되지 않는 소외된 질병이 많다.

    또 의료 기관의 양극화도 심각하다. 모든 서비스가 수도권의 대학 병원에 집중되어 있는 탓에 이들 병원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지만 지방에는 환자가 없어 문을 닫는 의원이 적지 않다. 2012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건강보험이 지출한 재정 가운데 상급 종합병원이 가져간 돈은 7조 원에 달하며 이중 35퍼센트가 소위 빅5 병원 차지였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상업화된 의료 현실에서 만들어진 의사와 병원, 보험회사, 제약 기업, 의료 기기 업체의 이해관계 네트워크, 즉 의산(醫産) 복합체의 부작용이다.

    이들은 공공 보건 정책과 제도를 자신들의 사익에 따라 통제하면서 한 사회의 건강과 의료가 흘러가는 방향을 좌지우지한다.

    고가 의료 장비인 CT, MRI, 유방암 진단기 등이 사실상 제한 없이 도입된 결과 인구당 장비 수를 기준으로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고, 돈벌이가 된다고 생각되는 요양 병원이 2007년 591개에서 2011년 988개로 늘어나 4년 만에 67.2퍼센트나 증가한 것 등이 이런 의산 복합체의 부작용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다.

    저자는 이와 같은 문제가 거의 전적으로 민간 부문에 의존하는 한국 의료의 기본 구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한국의 의료 기관 대부분은 사적 소유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공식적으로는 공공 병원이라 하더라도 사실상 공공이라 할 수 없는 병원이 많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극소수의 국립 병원을 빼고는 정부가 운영 주체가 아닌데다가, 별도의 직접적인 재정 지원도 거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름만 공공 병원이지 민간 병원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건강한 사회와 개인 건강의 함수관계

    #1 로제토 효과가 주는 교훈

    이탈리아 이주민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가난한 동네인 로제토는 1961년 당시 심장병 청정 지역으로 알려지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심장병 위험도가 높은 연령대인 55세에서 64세 사이에 로제토 사람들이 심장병으로 사망한 비율이 0에 가까웠던 것이다.

    65세가 넘는 노인들의 심장병 사망률은 전국 평균의 절반도 되지 않았고, 전체 사망률 역시 3분의 1 정도로 낮았다.

    이에 대한 심층 조사 결과는 더욱 놀라웠다. 로제토 사람들의 건강 습관이나 환경조건은 기존의 의학 상식을 뒤집는 것이었다. 주민들은 매일 소시지나 미트볼 같은 기름진 음식을 먹었고 술도 엄청나게 마셨다. 지나친 흡연에 매우 열악한 노동조건까지, 심장에 좋지 않은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연구진을 고민에 빠트렸던 수수께끼의 실마리는 공동체에서 풀렸다. 원인은 의학의 범위를 넘는 사회 그 자체였고, 상호 존중과 협동을 기초로 하는 공동체가 사람들을 건강하게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로제토 효과다.

    병리학자로 사회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돌프 피르호는 발진티푸스 유행을 막기 위해서는 소득재분배와 토지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세균이 일으키는 병조차 사회적 요인을 고치지 않고서는 뿌리 뽑을 수 없다고 역설했다.

    사회의학적 관점에 선 저자는 3, 4부를 통해 바로 이와 같은 사회구조와 질병의 연관성에 입각한 통합적 접근법을 제시한다.

    보건이나 의료 서비스의 차원을 넘어서 주거 복지, 지역사회 복지사업, 일자리 등에 초점을 맞추어야 건강 불평등의 상황이 개선될 수 있으며, 결국 “건강해지려면 건강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중증질환의 보장성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어 큰 호응을 얻었지만 사실 현재 중증질환 위주의 보장성 확대는 치료 중심의 한국의료시스템을 더욱 강화할 것이 명확하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문제는 이를 교정할 수 있는 일차의료가 거의 배제되어 있다는 것. 의료 기관의 상업적 행태를 교정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수단인 지불제도 개편은 7대 질병군 포괄수가제(DRG) 확대 외에는 장기적 전망이 없고 그 외에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한 상업적 의료행위를 컨트롤할 수 있는 규제내용은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암 보장성 확대로 대표되는 부분 보장성 확대정책과 의료산업화 정책이 노무현 정부 이후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며, 의료 보장성을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시장의 횡포를 통제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람직한 상태는 민주주의에 기초한 사회적 통제가 국가와 시장 권력을 적절하게 통제하고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는 전제 아래 시민의 사회참여와 건강의 관계를 살핀다.

    국가의 관료적 통제, 의료 전문가의 전문 직업주의, 시장 메커니즘이라는 세 가지 요소의 통제를 받고 있는 의료 현실을 시민의 참여로 제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 대안으로 저자는 사회와 국가, 지역공동체의 건강관리와 시민의 통제에 기초한 ‘건강 레짐’과 지역을 기반으로 한 보건의료의 대안적 생산체제―협동조합적 생산방식에 기초한 종합병원이나 장기 요양 서비스의 공급―를 제시한다.

    건강한 사회에 살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사회를 좋게 만들고 민주주의를 그 이상에 맞게 실현하는 것이 먼저다. 저자가 핵심으로 제시하는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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