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사민주의와 과제
    진보정의당의 유럽 복지국가 초청 연속강연-독일 대사
        2013년 06월 05일 03: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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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정의당이 개최하는 유럽 복지국가 대사 초청 연속강연회 ‘유럽을 통해 본 한국 복지사회의 미래’가 두번째로 롤프 마파엘 주한 독일대사를 강연자로 하여 ‘독일식 사회민주주의와 과제’라는 주제로 진행했다. 4일(화) 오후 3:30 국회 귀빈식당에서 진행되었다. 아래는 그 강연 녹취록과 질의응답이다. <편집자>

    ***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한국어로)

    존경하는 두 분 대표님, 의원 여러분들 오늘 시간을 내서 강의를 들으러 와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 진보정의당 관계자분들과 함께 경쟁력과 사회복지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방법에 대해 말씀드리게 된 것에 대해 영광으로 생각한다. 올해가 한독수교 130주년이 되는 해다. 독일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기쁘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독일 사람들도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얼마나 훌륭하게 경제성장을 했는지 등등에 대해.

    제가 최근에 한국분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두 가지가 있는데, 그 두 가지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글로벌화 된 세계경제 속에서 사회적 경제를 추구하는 독일이 어떻게 경제위기를 그토록 빨리 극복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회복지와 경제 성장을 어떻게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사실 독일은 한 10년 전만 해도 ‘유럽의 병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으나, 10년 사이 유럽 안에서는 실업률도 많이 낮추고 경제성장률도 높아졌고, 수출도 많이 하고 있다. 그런 점에 대해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독일이 유럽의 병자라는 별명을 얻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국가부채가 너무 많았고, 임금비용이 너무 높았다. 그러다보니 글로벌 경쟁력을 많이 잃었다. 하지만 공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비단 정책적인 잘못이 아니라 독일 통일의 후유증과도 맞물려 있었다.

    ‘유럽의 병자’에서 10년 만에 유럽의 경제를 이끄는 국가로 변모한 비결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우선, 독일 사민당의 슈뢰더 전 총리가 2003년에 실행한 ‘어젠다 2010’이라는 것이 있다. 말하자면 독일은 사민당 소속 연방 총리가 사회복지를 개혁해서 독일의 경쟁력을 되살렸다.

    슈뢰더 사민당 총리의 ‘어젠다 2010’의 중요한 내용은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 실업수당이라든가 하는 부담을 줄이고 실업자의 입장에서는 의무를 보다 엄격하게 적용했다.

    ‘어젠다 2010’의 또 다른 개혁 내용은 노동법의 유연화였다. 중소기업은 직원들의 해고를 좀 더 쉽게 할 수 있었고, 시간제 근로라든가 비정규직을 늘리는 내용이었다.

    경제상황이 지금은 좀 나아졌기 때문에, 한국처럼 독일에서도 노조와 정치가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외치고 있다. 그래서 최근 경제적인 여러 변화를 보면 노동법상의 여러 규정들을 얼마나 유연하게, 또는 엄격하게 적용할 것인가는 그때그때의 경제상황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독일이 경쟁력 회복을 위해 했던 두 번째 개혁은 국가지출을 계속 줄여나가는 일이었다. 급기야 헌법에 2016년부터는 독일연방정부가 신규 부채를 지지 않음으로써 균형예산을 실현한다는 것을 명시했다.

    이렇게 독일 정부가 극단적 긴축정책을 쓰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그럼에도 글로벌화 된 경제를 지키고 독일의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필요한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독일이 했던 조치는 임금비용을 지속적으로 낮추는 것이었다. 그래서 2003~2012까지 9년 동안 실질적으로 임금인상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 사이 다른 유럽 국가들은 노동자들의 단위임금비용이 10%정도 올랐으나 독일은 1%밖에 오르지 않아 9% 정도의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유리했던 점은 독일이 유로존에 가입했다는 점이다. 만일 독일이 마르크화를 유지했다면 독일 마르크화의 가치가 가파르게 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로화 덕에 상대적 우위를 얻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독일병을 극복하기 위한 몇 가지 사례를 소개했는데, 한국과 독일의 경제구조가 비슷하기 때문에 시사점이 있을 것이다. 독일도 수출의존형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결국 독일이 이렇게 비교적 10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데는 독일경제의 세계화가 유리하게 작용했던 점과 독일의 사회복지제도가 큰 힘이 되었던 점을 꼽을 수 있다.

    독일 사람들에게 있어 사회복지와 경제성장, 경쟁력 강화는 모순된 가치가 아니고, 두 가지가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의 목표를 위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복지제도의 확충이라는 것이 경쟁력 추구라는 것이 긴장관계에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제대로 된 사회복지제도를 갖춰야 경제성장이 가능하다.

    초청강연회의 모습(사진=진보정의당)

    초청강연회의 모습(사진=진보정의당)

    두 가지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하나 있다. 2008~2009년 세계 금융위기가 발발했을 때, 독일은 단축근무제를 도입했다. 당시 독일 대부분의 기업들은 과잉생산을 하고 있었고 전문가들은 이 위기가 6개월에서 최대 2년이면 끝날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이런 예측을 바탕으로 독일 기업은 노동자들을 해고하지 않았다.

    독일은 사용자가 노동자의 근무시간을 특정한 시기에 1/2~1/3로 줄이는 것을 허용한다. 사용자가 이런 제안을 했을 때 노동자 대표가 그 제안에 동의하면, 또 사회보장제도에서 부담에 동의하면 이른바 단축근무라는 것을 시행할 수 있다.

    그래서 실제로 근로자가 원래 근로시간의 1/2만 근무를 하면 그 1/2에 해당하는 임금을 사용자로부터 받고 1/4에 해당하는 임금은 사회보장제도로부터 받는다. 결국 절반만 일하고 3/4의 임금을 받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재원은 모든 노동자들이 실업보험에 냈던 돈으로 충당이 된다.

    그래서 원래 이 제도는 2~3개월 한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2008~09년 당시에는 6개월 이상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 이후 독일경기가 호전될 조짐이 보이자, 독일기업들은 다시 원래대로 인력을 풀가동 하도록 했다.

    다른 나라 기업들은 경제위기 때 숙련노동자들을 대거 해고했는데 독일은 이 제도 덕에 숙련노동자들을 해고하지 않았다. 경제가 호전된 상황에서 숙련노동자들을 풀가동함으로써 엄청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다시 정리하자면, 독일이 이렇게 빠른 시일 안에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노동자들이 부분적으로 임금인상을 포기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독일이 수출지향적인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세 번재는 국가부채를 극단적으로 줄였다는 것, 그리고 사회복지제도가 발달돼있어 위기대처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조치들이 노조의 저항없이 순전히 합의에 의해 가능했지를 묻는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독일인들이 경제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그 기본 이해에 있다고 본다. 독일 사람들은 독일경제가 민주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노동자들의 경영 참여가 가능하고 합리적인 노사관계가 뒷받침되고 있어서 이런 일들이 가능했다.

    독일의 노동자 경영참여는 국제적으로도 거의 유일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은 대기업을 비롯한 모든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이 기업경영에 참여한다. 물론 이것은 책임도 함께 따르는 일이다.

    독일의 노사관계가 평화롭고, 경제발전이 가능한 이유 중 하나는 독일은 임금협상 자율권이 노-사에게 주어져있는데, 노조도 기업도 모두 산별로 조직이 이루어져있어 협상도 이들 산별 조직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노사의 각 산별조직이 협약을 맺으면 그 산하의 모든 사업장에 적용이 된다. 이것이 성공의 열쇠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가서, 사회복지와 경쟁력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사회복지와 경제성장, 경쟁력 강화를 양립시키는 문제는 독일은 수출주도형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고 또 글로벌화 돼있기 때문에 지난 10~15년 사이에 굉장히 큰 이슈가 되었다. 독일뿐 아니라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처럼 사회복지가 발달한 북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독일과 여러 북유럽 국가들은 글로벌화 된 경제 구조 안에서 사회복지제도를 수정하는 작업들을 진행했다. 사회복지제도를 글로벌화 된 세계 경제에 맞춰서 조정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세 가지다.

    국가 재정의 건정성, 경쟁력있는 경제구조와 낮은 단위임금비용, 그리고 국가를 통한 연대성과 사회급부의 제공 등이다.

    독일은 10년보다 더 오래 전부터 사회복지제도를 수정해왔다. 인구구조의 변화와 글로벌화라는 커다란 도전이 있었다. 사회복지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그때그때 바뀌는 것이다.

    스웨덴과 독일의 복지제도를 비교하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울 것이다. 스웨덴과 독일은 사회나 사회복지란 개념에 대해 기본적으로 같은 이해를 하고 있지만 구체적 제도는 많이 다르다. 사실 사회복지제도는 국민이 국가를 얼마나 신뢰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런데 북유럽 국가만큼 국민의 신뢰가 높은 나라는 없다. 그래서 북유럽 국가들은 전적으로 사회복지제도가 조세에 의해 콘트롤 된다.

    반면 독일은 가장 핵심적 사회보장제도 요소는 보험이다. 실업보험 의료보험이 모두 의무보험이다. 독일은 한국식으로 하자면 최저생계비 보장과 같은 아주 절대적인 요소만 세금으로 운영한다. 독일에서는 사보험 가입률이 꾸준히 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와 같은 인구변화 때문에 의무가입되어 있는 보험에서 제공되는 비용이 계속 부족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비교를 해보자면 독일의 경우는 GNP 대비 26%를 사회복지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9%다. 독일은 1인당 만 달러를 사회복지비용으로 지출한다면 한국은 2700달러를 지출한다. 한국은 아직 국가의 사회복지지출이 낮기 때문에 경제성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독일은 최근 몇 년간 단위임금비용과 보험을 비롯해 사용자가 지출하는 각종 비용에 대한 논란이 많다. 독일은 각종 부대비용이 총임금의 21%를 넘어서면 안 된다고 여겨왔다. 그것을 넘어서면 생산에 드는 비용이 너무 높아져 경쟁력을 잃기 때문이다.

    국민소득 대비 조세부담률은 독일은 22%, 스웨덴은 34%, 덴마크는 46%나 된다. 독일은 조세부담율의 마지노선이 소득의 22%이고, 그것을 넘어가면 국민도, 기업도 용납을 못한다. 하지만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는 국민들이 국가에 대한 신뢰가 크기 때문에 수익의 1/3 이상을 세금으로 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러한 비교에서도 드러나듯이 한 국가의 사회보장제도는 국민이 국가와 정부에 대해 어느 정도 신뢰를 가졌는가가 중요하다. 세수를 기본으로 한 사회복지제도를 구축하려면 이 두 가지 신뢰가 대단히 중요하다.

    독일의 사회보장제도가 직면한 도전은 한국과 매우 유사하다. 첫째는 인구변화, 두 번째는 세계화와 경쟁력 문제다.

    독일은 인구변화에 발맞춰 노령연금을 많이 손질했다. 연금의 수령연령이 65세에서 67세로 높아졌고 연금에 대한 과세도 강화돼 실수령액은 줄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인구변화뿐 아니라 여성취업률을 어떻게 늘릴 것인가도 고민거리다.

    한국에는 이런 문제가 없지만 독일은 학교를 중퇴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기 때문에 독일 정부는 이들의 취업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질의 응답 ——————-

    질문1. 한국은 이른바 주주자본주의적 기업경영으로 인해 기업들이 단기수익창출에만 치우친 나머지 노동자들의 조기퇴직을 강요한다던가 신규고용을 하지 않는 일들이 많다. 독일은 이런 것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 기본적으로 모든 기업은 이윤극대화를 추구한다. 다만 국가의 제도와 사회 시스템이 기업가가 일방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결정을 하도록 허용을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중요하다.

    독일의 경우는 임금협약이라는 게 있는데 여기서 임금인상률뿐 아니라 다양한 근무조건을 합의한다. 앞서 설명 드렸다시피 협상은 산별로 진행되고, 이렇게 협상을 하면 해당 모든 기업에 이 협상내용이 적용된다. 이것이 한국과 달리 독일의 노사관계가 가진 장점이다.

    그리고 매번 협상 때 노-사 중 어느 쪽이 더 우세한 위치를 점하는가는 그 시기 산업의 상황이 많이 좌우한다.

    그리고 2003년 이후 몇 년 간은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포기해야만 독일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는 데에 노동계도 인식을 같이 했고 이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임금인상이 억제될 수 있었다.

    지난 2년 동안은 경제가 뚜렷하게 회복되었기 때문에 노동계가 2~3%의 임금인상을 요구했고, 그것은 정당한 요구였다. 원래 노사간의 임금협상에는 정치가 간섭하지 않도록 돼있지만 당시에는 정치가들도 노동계에 힘을 실어주었다.

    한국과 독일의 노사관계는 많이 다른 것 같다. 독일은 직원 1000명 이상의 대기업에 대해 노동자의 경영참여가 법으로 보장돼있고, 또 노동자-사용자가 각각 반반씩 참여하는 감독위원회도 구성하도록 돼있다. 독일에서 노동자들의 경영참여권을 가장 많이 보장한 기업은 가장 성공한 기업 중 하나인 폴크스바겐이다.

     질문2. 1996년 헬무트 콜 전 수상이 독일의 무상교육제도를 폐지하고 유상으로 전환한다고 했을 때 많은 노조의 저항이 있었지만, 16개 주 중에서 8개 주에서 무상교육제도가 폐지된 것으로 안다. 그러다 최근에 다시 무상교육제도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 그것은 독일의 아주 특별한 케이스다. 독일은 18세기에 프리드리히 대제가 무상교육을 도입했고, 그 이후 이것을 꾸준히 유지해왔다.

    1990년대에 대학을 유상으로 전환하자는 발상이 나온 배경은, 미국과 영국의 유수 대학들이 넉넉한 재정으로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는 반면, 독일의 대학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독일의 대학 재정을 늘리기 위한 방편으로 유상교육으로의 전환이 추진된 것이다.

    당시 규정은 학생당 한 학기에 500유로, 즉 1년에 총 1000유로(1300달러)를 넘지 않도록 하는 수준이었다. 한국 대학등록금의 10% 밖에 안 된다. 게다가 두 자녀 이상의 가구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상교육이 지속되었다.

    그런데 국민들이 대학의 유상교육이라는 것을 수용하지 못했다. 또한 무상교육을 유지했거나, 유상교육으로 전환했다가 금방 폐지한 연방주의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많은 지지를 받았다.

    그래서 현재 16개 주 가운데 바이에른 주만이 유일하게 유상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제가 알기론 내년에 폐지할 계획이다.

    독일이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하는 것은 독일의 역사와 교육 철학과 관련이 깊다. 독일 국민은 교육은 언제나 무료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유상교육이라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다.

    또 가난한 사람도 고등교육을 받을 권리를 제한 받아서는 안 된다는 기본 철학이 있다.

    이런 생각이 꼭 논리적인 것은 아니지만, 독일이라는 한 사회가 그렇게 이해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독일대사2

    질문3. 이렇게 유럽 대사님들을 모시고 공부를 하는 것은 한국적 복지국가 모델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취약성을 잘 이해하고 계신데, 그런 점들을 염두에 둘 때, 스웨덴과 독일 모델 중에서 어떤 모델이 더 우리에게 참고가 될 수 있다고 보시는가?

    – 조금 바꿔서 대답을 하자면, 독일은 스웨덴식 사회복지모델을 수용할 수 없다. 독일인들은 스웨덴인들 만큼 국가 역량과 정부에 대한 신뢰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은 스웨덴처럼 전적으로 세금에 의존하는 사회복지가 가능할 만큼 국민이 많은 세금을 부담하지 못한다.

    제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사회복지’라는 얘기를 꺼내면 사람들이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으로 오해하더라. 어떤 사람들은 농담으로 그런 제도는 북한에나 어울리지 한국에는 필요없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제가 받은 전반적인 인상은 한국은 아직 사회복지를 구현할 만큼 정부에 대한 신뢰가 없지 않은가 하는 것이었다.

    스웨덴은 하나의 분명한 솔루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흥미로운 모델이고, 독일은 세 가지의 모든 솔루션을 조금씩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관심을 가져볼만 한다. 복지는 보험으로 유지되고, 기본생계는 국가의 세금으로 뒷받침하며, 민간영역인 사보험이 존재한다.

    둘 다 연구해 볼만한 모델이다.

    또 다른 측면이 중요한데, 사회복지제도라는 것을 어떻게 조직하느냐가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누가 보험을 운영하는가의 문제다. 독일은 의료보험, 실업보험 등 모든 보험을 독립적 법인이 운영한다.

    독일에서 중요한 보험들은 모두 의무보험이지만 그 운영주체는 국가가 아닌 독립된 법인이다. 그렇게 운영되는 보험에 노동자와 사용자가 똑같이 보험료를 납부함으로써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사실 의료보험의 경우는 여러 법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의무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선택권이 많다. 어떤 면에서는 이러한 경쟁관계 덕에 질 좋은 보험제도가 유지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너무 제도가 복잡해서 오히려 가입자들이 악용 당하기도 한다는 지적이 있다.

    사실 한 국가가 그 구성원들의 기본 생계를 위해 어느 정도의 연대성을 발휘할 것인가는 굉장히 복잡한 문제이므로 국가 내에서 결정해야 하는 문제다. 외부에서 뭐라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독일은 지난 10년 동안 사회복지와 경제성장의 문제에 대해 많은 일들을 겪고 고민을 거듭하면서 세 가지 교훈을 얻었다. 국가재정의 건전하게 유지해야 되고, 국가 경쟁력을 살려야 하고, 마지막으로 사회연대ㆍ사회복지가 제대로 기능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소홀함이 없이 상황에 맞게 항상 최적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것은 어느 나라건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덧붙여 한 국가가 어느 정도까지 재정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가는 그 나라의 생산성이 얼마나 높은가와 관계가 있다고 본다.

    질문4. 우리나라에서 사회복지, 또는 사회민주주의라는 말조차 사회주의하자는 거냐고 오해를 하는 것은 분단이라는 상황과 관련이 깊다. 독일도 분단의 경험이 있는데, 혹시 사회주의와의 경쟁과 냉전 이데올로기 때문에 사회복지 모델을 실현해가는 데 있어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 독일은 그렇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독일에서 사회복지라는 것은 사회주의나 냉전과는 별로 관계가 없었다. 왜냐하면 비스마르크가 1860년대 초에 사회 개혁을 하면서 시작을 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국가가 위에서부터 실시한 개혁이었다.

    독일의 사회복지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사회주의와는 전혀 무관하다. 당시 황제와 제국의 수상으로 이어지는 위에서부터의 개혁이었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사회복지제도를 확충하는 것이 우리 체제가 사회주의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전략이었다. 그래서 70~80년대 동서독 간에 사회주와 자본주의의 갈등이 있던 시기에도, 사회복지를 국가가 주로 담당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민간에 넘기는 것이 옳은가 하는 논쟁은 있었지만 사회복지 그 자체에 대한 갈등은 없었다.

    독일이 가진 사회복지의 개념은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는) 북유럽과는 조금 다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에게 일자리를 찾게 해주고 다시 사회로 통합될 수 있도록 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덴마크가 가진 개념과는 다르다. 덴마크는 기업이 노동자를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이 많이 유연화돼 있지만 그 대신 국가가 1년 안에 일자리를 찾도록 보장한다. 그것은 사회주의 이념 때문이 아니라 국가경쟁력을 제고하고, 노동력이 취약한 사람이 다시 노동력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오히려 노동자의 경영참여제도가 사회주의적이라고 문제를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생산요소의 하나인 자본에 노동자가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제도 역시 보수당이 도입한 제도로서 사회주의와는 전혀 무관하다.

    질문5. 영미식 자본주의 환경에서는 기업들이 주로 자본시장에서 직접 자본을 공급받는데 반해, 독일의 경우는 주로 대출을 통해 자본을 공급 받고, 또 은행들 역시 이를 통해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것으로 안다. EU체제 이후로도 그런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는지, 또 그것의 사회역사적 배경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 독일 은행들이 다른 유럽 은행들, 특히 영미식 은행들과 다른 점은 국영은행이 많다는 점이다. 독일은 16개의 연방주가 있는 각 주마다 주립은행이 있다. 이 은행들은 각 주정부가 추진하는 경제발전 프로젝트를 지원한다.

    독일에는 민영은행과 국영은행이 공존한다. 지난 10~15년 사이에 각 주립은행들이 경영을 잘못해서 위기를 맞았고, 그래서 병합이 많이 이루어졌다.

    독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연방체제에 익숙하다. 또 각 주에 주립은행이 있어야 자기 주의 기업이 해외에서 사업을 하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양성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독일의 금융부문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지역금고, 즉 작은 도시에 있는 작은 은행들이다. 30~40년 전만 해도 큰 갑부가 아니면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사람들은 지역금고에 저금을 했다. 또 한국에서 중소기업 육성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독일의 중소기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지역금고의 역할이 컸다. 현지 기업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주립은행들의 역할을 줄이려 하지만 아주 오랜 시간을 두고 서서히 추진할 것이다.

    은행의 기업 참여 문제는 한국에서 논의되는 경제민주화와도 관계가 있는 아주 흥미로운 분야다.

    90년대까지 ‘독일주식회사’라는 것이 있었다. 독일주식회사는 독일 경제에 영향력이 큰 20명의 매니저들로 구성돼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은행 매니저들이었고, 이들은 독일 대부분 기업들의 감독위원회에 관여했다.

    한국은 재벌이 주도하는 경제성장을 이뤘다면, 독일은 2차 세계대전 후에 은행과 보험회사와 제조업체들이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경제성장의 시기에는 이러한 구조가 굉장히 큰 장점이었으나, 그 시기가 지나자 단점이 되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눈에는 독일의 은행과 보험회사와 기업들의 얽히고설킨 관계가 불투명하고 복잡하게 보여 투자를 꺼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90년대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들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끊었고, 각 기업의 감독위원회에 참여하는 독일주식회사 매니저들의 수를 많이 줄였다. 그런 식으로 각 기업에 대한 은행의 영향력을 많이 줄였다. 자본시장도 많이 개방해서 현재는 독일 대기업의 절반 이상에 외국자본이 들어와 있다. 지난 30년 동안 독일 경제구조에서 가장 큰 변화는 은행과 기업의 관계를 끊은 것이다.

    또 유럽연합 차원에서는 독일의 노동자 경영참여권을 유럽연합 소속 다른 국가의 기업들도 지키도록 하는 것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지금은 독일 기업도 유럽 주식회사나 유럽 유한회사를 설립할 수 있는데, 독일 기업이지만 유럽 주식회사나 유한회사를 세우면 독일의 엄격한 경영참여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독일 기업 중에는 유럽 법인으로 바꾸면서 이러한 규정을 피하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의 끝이 좋지 않을 것으로 본다.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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