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 한국사회의 낙후함 가장 강조
[NL 30년-②]'민주화'와 '정보화' 두 조류 중 후자에 주목
    2012년 06월 07일 05: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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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초반 대학사회는 상반된 두가지 조류가 공존하고 있었다. 하나는 광주사건에 대한 분노와 전두환 정권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 다른 하나는 286 컴퓨터로 대변되는 최첨단 정보통신 문화가 그것이다.

광주 사건 이후 전두환 정권과 학생운동 진영 사이의 갈등은 극한 대립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광주 사건이 발생한 이유와 근거를 찾아 사회과학 이론을 탐구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점차 다양한 혁명이론으로 수렴되었다.

여기에는 과학적인 탐구의 결과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반전두환의 이념적 정당성을 찾으려는 주관적인 정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덕분에 당시 혁명론은 한국의 자본주의가 기형적, 천민적, 봉건적, 종속적 잔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외세를 축출하거나 전두환 정권을 타도해야만 비로소 정상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고 섣불리 결론지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틀린 것이다. 70년대 중반을 넘어 서면서 한국 자본주의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전두환 정권 시기 물가상승률이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저축률이 빠르게 늘었다. 84년에 투자재원 자립도가 100%를 넘어 섰고 86년 이후에는 경상수지도 흑자로 돌아섰다.

특히 “전 직종 평균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전문기술직은 179.9에서 203.2, 행정관리직은 270.9에서 328.7로 증가했다”(같은 기간 생산직은 78.1에서 67.9로 감소, 김대모, ‘고용 및 임금구조의 변화와 소득 분배’, “한국의 소득분배와 결정요인”에서)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 사회는 기형적, 천민적 색채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첨예화되고 이를 토대로 한 노동자 농민이 궐기하는 ‘혁명’이 아니라 기형적 천민적 색채가 완화되고 인텔리와 중산층이 확대되면서 그에 조응하지 못하는 민주주의를 ‘개혁’하는 양상을 띠었다.

따라서 80년 광주를 배경으로 85~86년 정점에 이르렀던 각종 혁명론은 점차 소멸해 갈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것이 CA(제헌의회 그룹)과 사노맹이었다. 이들은 87년 6월항쟁의 결과 탄생한 직선제를 혁명을 파산시킨 개량의 완성으로 보았고 이에 저항했다. 그리고 사노맹 사건을 끝으로 소멸했다.

반면 NL은 다소 복잡한 과정을 겪는다. NL 진영은 86년 건대 사건 이후 대중노선을 전면적으로 채택하며 6월항쟁을 주도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다분히 전술적인 변화였다. 즉 근본적으로는 반미와 통일을 지향하되 당면해서는 반독재운동을 견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덕분에 86년 정권의 무단적인 탄압에 의해 위축되었던 NL 진영은 87년 이후 민주화 국면을 타고 극적으로 성장했다. 90년대 초반 NL 운동이 전성기를 구사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러나 NL의 사회인식은 기본적으로 한국사회를 혁명적인 수준의 변화가 없이는 자생적인 발전이 불가능한 사회로 인식하고 있었다. 당시 다기한 혁명론의 견지에서 보면 한국사회의 낙후함을 가장 강조하는 조류였다. 따라서 한국사회가 발전하는 속도와 폭에 따라 NL은 서서히 현실과 괴리되었다.

모든 정치세력은 공과가 있기 마련이다. 필자는 80년대 중반 학생운동진영의 과도한 상황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넓은 의미의 민주화 운동의 일환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NL 또한 87년 6월항쟁의 견인차로써 90년대 초중반 유사 독재체제를 청산하는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NL 이론이 갖고 있었던 내재적인 한계로 인해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촛불문화제 참석한 시민들(사진=미디어오늘)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한국사회는 새로운 변화를 띠게 된다. 인구구성(고출산에서 저출산 고령화), 중공업과 IT 하드웨어 산업의 약진, 도시화(수도권 인구 집중), 정보통신 문명의 발전 등에서 새로운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변화들은 순차적으로 역사의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02년 노무현 당선과 노사모, 08년 촛불시위, 11년 8.24~10.26 정치혁명 등이 그것이다.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면 그것의 시원이 되는 뿌리를 찾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역사 전체를 재구성하기 마련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80년대 초반 학생들은 두가지 조류에 천착했다. 전자의 조류는 87년 6월항쟁에서 꽃을 피우고 한국사회에 민주화와 386이라는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의 변화와 그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변화들을 염두에 둔다면 이제는 80년대 초반 두가지 조류 중 다른 하나에 주목할 때가 되었다.

그것은 현대화, 정보화이다. 컴퓨터가 군사기관과 연구소를 벗어나 대중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한 것이 80년대 초반이다. 80년대 초반 청계천 상가를 뒤지며 286 컴퓨터에 탐닉했던 이른바 ‘8비트 키드’들은 90년대 초반 성인이 되어 PC 통신, 인터넷, IT 붐을 이끌었다. 그리고 그 적자라고 할 수 있는 안철수가 대권 후보로 운위되고 있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이다. 민주화 세대와 386들이 안철수에 대해 생각보다 호의적이지 않은 것은 그들이 간직했던 역사관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관 자체가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 현재적 관점에서 재구성되는 실천적 문제이다. 그런 면에서 현재의 관점에서 굳건히 서서 우리가 간직했던 역사관 자체를 현재적 관점에 기초하여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필자소개
민경우
전 범민련 사무처장이었고, 현재는 의견공동체 ‘대안과 미래’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서울 금천지역에서 ‘교육생협’을 지향하면서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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