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리카, 구연적 상상력과
    문자적 상상력의 회통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 몸으로 시와 내통하는 비의성 체험
        2013년 05월 27일 10:24 오전

    Print Friendly

    여기,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아프리카에서 울려퍼지는 시 한편이 있다.

    둥 딩 딩 둥 둥
    내 적이자 동지여 나 그대를 부르노라
    딩 둥 둥 딩 딩
    신탁의 신성한 관리자여 나 그대를 부르노라
    둥 딩 딩 둥 둥
    고랫적 아사포(1) 가문의 죽어가는 구성원이여
    나 그대를 부르노라
    딩 둥 둥 딩 딩
    존경스런 오만크라도(2)와
    신비스런 그의 집회를 주관하는 자여 나 그대를 부르노라
    둥 딩 딩 둥 둥
    타플라체(3)여 나 그대를 부르노라
    나 그대를 부르고 부르고 또 부르노라 세 차례나
    모든 행동을 멈추고 들으시오
    귀를 열고 들으시오

    친절한 내 혀가 허락하사
    무한자인 마우소그볼리사(4)가
    성스럽게 허락하사

    나 말하노라
    당신들에게 좋지 않은 소식이 있다고

    이제 죽을 준비를 하시라
    나 태어날 준비를 마쳤기에

    당신들의 세계는 이제 끝나야 한다
    내 세계가 시작될 것이기에
    당신들이 태어날 때 누군가 죽었듯
    나 태어날 때 당신들이 죽기를
    이것이 거역할 수 없는 우주의 법칙임을
    생과 사, 사와 생의 무한반복임을

    하나의 세계는 둘에겐 너무 좁다
    타플라체 내 말하노라
    하나의 세계는 둘에겐 너무 좁다고
    당신들의 세계는 오래 전에 죽었다
    애오라지 당신들만이 알고 싶어하지 않을 뿐
    당신들의 삶은 기억과 꿈뿐이다
    향수만이 당신들을 살아있게 할 뿐
    죽는 걸 거부하지 마시라
    때가 되면 가는 것이 상책

    충돌하는 두 개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정글의 법칙
    나 당신들을 야자 술통 속에 밀어 넣으려오
    타플라체 내 말하노라
    죽는 걸 거부하지 마시라
    죽을 때가 오면 죽는 것이 상책
    하나의 세계는 둘에겐 너무 좁기에

    내 세계에서 당신들은 숨을 쉴 수가 없소
    낡아빠진 폐로 숨을 쉬기엔 공기가 너무 강하기에
    내 세계에서 당신들은 잠을 잘 수가 없소
    일천일개의 망치들이 두드리는
    천둥 같은 소음들이 당신들의 마음을 휘저을 것이기에
    당신들의 집을 수백만의 작은 파편들로 두드리며
    내 세계에서 당신들은 꿈을 꿀 수가 없소
    꿈을 꿀 미래가 없기에
    내 세계에서 당신들은 말을 할 수가 없소
    희망의 축제들을 감싸는
    거친 웃음들이 당신들의 목소리를 삼킬 것이기에

    나는 팽창하고 팽창하고 또 팽창할 것이오
    하여 당신들은 내 세계에서 살 수가 없소
    당신들은 카우리 껍데기나 가지고 가시오
    난 구리와 종이를 쓰겠소
    당신들은 구슬 꾸러미나 가지고 가시오
    난 보석과 진주로 치장을 하겠소
    제발, 빨리. 사라지시오.
    허나 내 필요한 것이니 그건 가지고 가지 마시오
    당신들의 노래요
    현재를 과거로 이어주는 노래 말이오

    그러나 과거의 슬픈 노래들은 몽땅 가지고 가시오
    죽은 자들을 애도할 시간이 내겐 없으니까
    당신들의 의자와 왕관은 놓고 가시오
    기념비 같은 집을 장식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당신들이 심은 작물들을 수확하시어 모두 먹어버리시오
    난 특별한 음식을 먹을 테니까
    야자술 뚜껑을 열어 모두 마셔버리시오
    허나 내 세계에서 취하는 일은 범죄가 될 것이오
    당신들의 물건을 가지고 가시오. 허나 땅은 남겨두시오
    당신들이 두드리던 북도 남겨두시오
    그 북으로 나 흥겨워 할테니
    낡은 당신들의 북이 울려대는 음조에 맞춰
    나 새로 짠 춤을 추겠소
    당신들의 폰톰프롬(5) 박자에 맞춰
    나 팬더곰의 스텝을 밟을 것이오
    허나 당신들은 그 춤을 보지 못할 것이오

    둥 딩 딩 둥 둥
    나 말하노라
    시간의 자궁 속에서 자라는
    날 말하노라
    이제 내가 태어날 때가 되었다고
    하나의 세계는 둘에겐 너무 좁다고
    딩 둥 둥 딩 딩
    ― 코피 아니도호, 「피할 수 없는 일-할아버지와 그의 동료들에게」(이석호 역, <아프리카여, 슬픈 열대여>, 도서출판 아프리카, 2012) 전문

    “둥 딩 딩 둥 둥”으로 시작하여 “딩 둥 둥 딩 딩”으로 끝나는 이 시는 인류의 원향(原鄕)인 아프리카를, 아니, 인류의 과거-현재-미래를 ‘노래’한다.

    문자의 표기 수단을 통해 재현된 이 소리들은 아프리카의 북 소리이되, 이것은 대지의 심장이 펄떡이는 박동 소리이며, 뭇존재들이 한데 어울리며 자아내는 우주의 율동이자 우주 전체를 공명해내는 파열음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이 시를 접하는 순간 종래 낯익은 시들의 사위에 옴쭉달싹할 수 없었던 내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아주 거칠게 말해, 나는 리얼리즘이든지 모더니즘이든지, 심지어 포스트모더니즘이든지 그동안 조우한 시들의 문자적 상상력에 나포돼 있었음을 시인해야겠다. 그렇다면, 그 문자적 상상력이란 어떤 것인가.

    무엇보다 근대 이후의 시에서 문자적 상상력은 유럽중심주의에 기반한 정전(正典) 교육의 제도에 충실했다는 사실을 쉽게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새삼 환기할 필요도 없듯이, 근대 이전의 시들은 노래와 관련한 구술성과 연행성에 친연성을 맺으면서 향유되었다. 문자적 상상력과 구연적(口演的) 상상력은 상호침투적 관계 속에서 시 특유의 활력을 보증하였다. 그러다가 근대로 접어들면서 구연적 상상력은 전근대적 문화 유산이라는, 근대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에 떠밀린 채 시대 퇴행적인 것으로 치부되더니, 문학박물관에 간직된 채 문학의 현장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

    구연적 상상력은 이른바 현대시에서 퇴출되어야 할 천덕꾸러기로 전락하였다. 하여, 현대시는 좋은 시를 판별해내는 데 문자적 상상력 위주의 현대성을 척도로 삼는 다양한 첨단의 시학에 몰두하지 않았는가.

    정녕, 구연적 상상력은 시의 현대성과 무관한 낡고 구태의연한 묵수(墨守)에 불과할 뿐인가. 혹시, 우리가 자명하다고 간주하는 시의 현대성이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것은 아닐까.

    나는 앞서 우리에게 낯익은 근대 이후의 시들이 유럽중심주의를 내면화하였다는 것을 강조한 바, 유럽중심주의를 창조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일환으로 그동안 우리에게 관성화됐고 자명한 것으로 간주해온 문자적 상상력 위주의 시, 즉 문자중심주의에 기반한 상상력의 시에 매몰될 게 아니라 구연적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소환함으로써 문자적 상상력과의 상호침투적 관계 회복, 다시 말해 이 둘의 상상력의 회통을 통한 시의 현대성을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피 아니도호의 시집

    코피 아니도호의 시집 <아프리카여, 슬픈 열대여>

    이런 점을 염두에 둘 때, 내가 우연히 만난 아프리카 시인 코피 아니도호(Kofi Anyidoh)의 시 「피할 수 없는 일」은 새롭게 모색되어야 할 시의 현대성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해준다.

    우선, 이 시는 아프리카 고유의 구연적 상상력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시적 화자인 ‘나’는 북 장단에 맞춰 ‘나’의 적과 동지 그리고 아프리카의 숱한 타자들을 아프리카의 신 앞으로 호명한다.

    이 호명의 과정에서 독자는 시인과 함께 모종의 시적 퍼포먼스에 절로 동참하게 된다. 그 시적 퍼포먼스에 독자가 얼마나 익숙한가 하는 문제는 이 시를 향유하는 데 전혀 중요하지 않다.

    독자는 말 그대로 아프리카의 북 소리와 그 소리들 사이로 퍼져나가는 호명 소리가 어울리는 우주의 율동 속에 자신의 율동을 슬며시 얹어 놓으면 그만이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이 시는 제 몫을 다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동안 독자는 시를 머리로 또는 마음으로 이해하였다면, 이 시를 접하면서 독자는 온몸으로 시와 내통하는 비의성을 몸소 체험한다. 독자와 ‘나’는 함께 “팬더곰의 스텝을 밟”으면서, 독자와 시는 분리되지 않은 채 서로 스며들어, 이제 독자가 시이고 시가 곧 독자가 되는, 미적 빙의(憑依)에 이른다. 이럴 때, 독자는 시인이 타전하는 시적 진실을 시인과 함께 만난다.

    코피 아니도호 시인은 “현재를 과거로 이어주는 노래” 속에서, “내 세계에서 살 수가 없”는 ‘당신’에게 어떤 주문을 걸고 있다.

    ‘당신’으로 호명되는 세계는 좁게는 아프리카의 삶을 위협하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세계이며, 넓게는(혹은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삶을 파괴함으로써 우주의 생의 율동에 치명적 균열을 내는 세계이기 때문에 마땅히 추방되어야 할 세계다.

    그런데, 이 시에서 흥미로운 것은 ‘나’의 이 추방의 주문에 귀를 기울여보면, ‘나’는 ‘당신’이 문명의 미명 아래 이미 누렸거나 소유했거나 행사했던 모든 것을 다시 이용함으로써 ‘당신’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나’는 ‘당신’으로 표상하는 부정(不正)한 것을 ‘나’의 것으로 다음과 같이 전도시킴으로써 ‘당신’의 세계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그래서 ‘당신’의 부재를 정당화하는 주문을 걸고 있다.

    내 세계에서 당신들은 숨을 쉴 수가 없소
    낡아빠진 폐로 숨을 쉬기엔 공기가 너무 강하기에
    내 세계에서 당신들은 잠을 잘 수가 없소
    일천일개의 망치들이 두드리는
    천둥 같은 소음들이 당신들의 마음을 휘저을 것이기에
    당신들의 집을 수백만의 작은 파편들로 두드리며
    내 세계에서 당신들은 꿈을 꿀 수가 없소
    꿈을 꿀 미래가 없기에
    내 세계에서 당신들은 말을 할 수가 없소
    희망의 축제들을 감싸는
    거친 웃음들이 당신들의 목소리를 삼킬 것이기에

    이렇게 ‘당신’을 추방함으로써 ‘나’는 마침내 희구한다. ‘나’는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우리는 다시 태어날 ‘나’가 어떤 존재인지 그려볼 수 있다. ‘당신’으로 표상하는 문명의 탈을 쓴 야만의 세계가 아닌,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수세기 동안 전 세계를 지배한 유럽중심주의를 창조적으로 극복하고자 욕망하는 새로운 주체로서 ‘나’의 세계이리라.
    여기서, 쉽게 간과해서 안 될 것은 이 새로운 ‘나’의 출현 가능성을, 시인은 구연적 상상력과 문자적 상상력과의 회통을 통해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이 시의 마지막 연에서 불리우는 노래가 그토록 우리가 희구해온 대안적 세계의 출현이 멀지 않았다는 시적 계시로 다가온다.

    둥 딩 딩 둥 둥
    나 말하노라
    시간의 자궁 속에서 자라는
    날 말하노라
    이제 내가 태어날 때가 되었다고
    하나의 세계는 둘에겐 너무 좁다고
    딩 둥 둥 딩

    쾨피시집2

    1) 가나 아칸인 출신의 젊은 전사들을 뜻한다.
    2) 추장의 직함 중 하나이다.
    3) 충격적인 소식을 전하기 전에 청중의 놀람을 경감시키기 위해 던지는 말이다.
    4) 신중의 신, 즉 최고의 신을 뜻한다.
    5) 전통음악 중의 하나이다.

    필자소개
    문학평론가, 광운대 교수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