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에겐 큰 아들이 최고
    [어머니 이야기-12] 김밥, 계란 후라이, 가죽장갑 이야기
        2013년 05월 08일 02: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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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여름날 내가 대여섯살 때 갑자기 장화를 신고 삽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는 말했다. “얘, 종복아! 어딜 가냐?” “나 문숙이 엄마 죽이러 가!” “왜!” “문숙이 엄마가 나한테 빵 사준다고 하고선 안 사주잖아!” 하면서 그 집 대문에 가서 마구 두드렸다.

    문숙이 어머니는 우리 옆집에 살던 사람이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다음에 꼭 빵을 사 주겠다고 했지만 결국 사 주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아무튼 종복이 너는 한 번 한다면 하는 성격이야. 의협심이 강했지. 그래서 대학 다닐 때 데모도 많이 했잖아.”

    그때 내 별명은 ‘김일’이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레스링 선수인 김일은 인기가 좋았다. 난 김일처럼 머리를 빡빡 깎았고 몸도 통통했다. 거기다 약속을 했으면 꼭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나 보다. 어머니는 그때 내 모습을 보면서 쪼그마한 게 당차고 든든해 보였다고 한다.

    나는 어머니와 둘이 걸으면서 이런 말을 들을 때 제일 기분이 좋다. “어떻게 내 뱃속에서 이런 아들이 나왔을까. 난 종복이랑 이렇게 손잡고 가면 든든하고 믿음직하다.” 어머니는 내 나이가 오십 가까이 되고 어머니 나이가 팔십 가까이 되었는데도 길에 나서면 내 손을 꼭 잡고 아는 사람을 만나면 “내 셋째 아들이에요.”하면서 자랑을 한다.

    어머니는 우리 사형제를 부를 때 꼭 위에서부터 이름을 차례로 다 부른다. 내 이름을 부를 땐, “종하야, 영수야, 종복아” 하고 불렀다. 내 동생이 태어나선 “종하야, 영수야, 종복아, 영일아” 하고 불렀다. 내가 어머니에게 왜 그렇게 이름을 다 부르냐고 물었다. “내 귀한 아들 이름을 잊어버릴까봐 부른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어머니는 우리 사형제 모두에게 정부 요직에 앉혀 놓았다. 큰형은 시계가 있으면 뜯어고치는 것을 좋아하고 잘해서 ‘과학자’라 불렀고 둘째형은 얌전하지만 판단력이 좋아서 ‘대법원장’이라고 했고 나는 무슨 일이든지 물어보고 나서기를 좋아해서 ‘대통령’이라 불렀고 내 동생은 꼼꼼하게 잘 따지고 다른 사람들 일을 잘 처리해서 ‘국무총리’라고 했다. 어머니는 우리 아들들이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그런 말을 해서 그런지 큰형은 노동자 열 사람 가까이 함께 하면서 공장 사장이 되었고 막내 동생은 그 공장에서 공장장을 하고 있다. 난 작은 책방을 이끄는 사람이 되었고 둘째형은 법대를 나와서 나랑 책방을 같이 꾸리고 있다. 어머니가 보시기에 아들들이 높은 자리에 있진 않지만 모두들 제 밥벌이를 하고 몸 마음 튼튼하게 살고 있으니 기뻐한다.

    어머니는 말로는 다섯 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어디 있냐고 하지만 그래도 큰형을 제일 귀중하게 여긴다.

    큰형이 학교 다닐 때 얘기를 하겠다. 어머니는 큰형이 초등학교를 들어가자 없는 살림에 늘 김밥 도시락을 싸 주었다. 그때 김밥은 소풍이라도 가야지 먹을 수 있는 귀한 밥이었다. 하루는 큰형이 집에 오더니 “엄마, 이제 김밥 싸 주지 마. 난 먹지도 못해. 친구들이 다 뺏어 먹고 난 먹지도 못해!”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바로 다음 날 학교로 가서 선생을 만났다. 큰형 담임선생은 아이들에게 은종하 김밥 먹은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니 두 세 사람 빼고 모두 손을 들었다. 그 선생은 아이들에게 호통을 쳤다.

    “엄마, 왜 학교에 와서 내 김밥 뺏어 먹은 거 선생님한테 얘기했어. 친구들이 혼났잖아.” 그 뒤론 큰형 김밥을 뺏어 먹은 사람은 없었지만 어머니는 학교에 가서 얘기한 것을 좀 후회하는 눈치였다. 큰형 담임선생이 생각이 있다면 아이들에게 대 놓고 큰형 김밥 뺏어 먹은 것을 다그치지 않고 다르게 처리할 수도 있을 텐데 싶었다.

    어머니는 그 얘기를 하면서 큰형 어릴 때를 떠올렸다. 큰형이 대여섯 살 때다. 하루는 어머니가 하숙하는 사람에게 계란 프라이를 해 주었다. 그것을 본 큰형이 “엄마, 나도 계란 후라이 해 주라!” “애는 그건 하숙생한테만 주는 거야.” “그럼 나도 하숙생 될래.” 하면서 떼를 썼다. “지금이야, 계란이 몇 푼 안하지만 그땐 계란 하나 먹기도 힘들었어. 큰애가 그렇게 그때 계란 후라이를 먹고 싶어 했는데 그것 하나 못 해주는 에미 마음이 어땠겠니. 그래서 아들만 집에 오면 계란 두 개는 꼭 후라이 해 준다. 너희들 사형제 키운 거 생각하면 뼈가 녹고 눈물이 나서 마음이 아프단다.”

    큰 형이 좋아했던 계란 후라이

    큰 형이 좋아했던 계란 후라이

    큰형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전농중학교에 들어갔다. 걸어가면 1시간 가까이 걸렸다. 큰형은 집 앞에 있는 배봉산을 타고 학교에 갔다.

    어느 겨울에 큰형이 그 산에서 깡패를 만났다.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 큰형에게 가죽장갑을 사 주고 시계도 사 주었다. “그때 시계는 지금 텔레비전 사는 것만큼 할 걸.” 어머니는 시계가 아주 비쌌다고 했다.

    큰형은 산으로 걸어가면서 어머니가 주신 돈 700원은 주머니 깊숙한 곳에 넣고 시계도 끌러서 가방에 숨겨 놓았다.

    깡패 서너 명이 형에게 오더니 가죽장갑을 뺏고 가방을 뒤져 시계도 뺏었다. “야, 너 아까 보니까 주머니에 뭔가 넣던데 있는 돈 다 내놔.” 결국은 돈도 다 빼앗겼다. “형, 나 오늘 시험인데 학교 가면 안 돼.” “그래, 이 새끼 이제 가 봐.” 큰형은 가진 거 다 뺏기고 무릎까지 꿇다가 깡패 손에서 벗어났다.

    큰형은 시험을 보러 가지도 않고 집에 왔다. “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지. 하지만 잡을 수 있겠어. 난 다음 날 당장 자전거를 한 대 사서 니 형에게 주었어. 니 형은 자전거를 타고 큰길로 학교를 다녔지.”

    어머니는 큰형이 바라는 것은 뭐든지 다 해주었다. 큰형이 공부를 못 해서 초등학교부터 과외도 시켰다. 큰형은 중학교 때도 과외를 했다. 그땐 과외 하는 것이 불법이었다. 하지만 큰형 중학교 담임선생은 반 아이들 가운데 몰래 세 명에게 과외 공부를 시켰다. “큰애 담임선생은 참 좋았어. 니 형이 과외 가는데 배고프면 빵도 사주고 우유도 사주고 그랬지.”

    큰형은 중3이 되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갈지, 실업계 고등학교를 갈지 결정해야 했다. 인문계 들어가기에는 실력이 모자랐다. “선생님, 그냥 인문계 써요. 그러다 지 운이 좋아 대학이라도 갈지 알아요.”

    그러다 어느 날 어머니는 당신 아버지 제사를 지내러 둑길을 걷고 있었다. 어느 나이든 분이 큰 가방을 들고 갔다. “제가 그 가방 들어 드릴게요.” “아니, 왜 내 가방을 들어준다고 그래요.” “그냥 가방이 무거워 보여서요. 어르신은 내 뒤에 따라 오세요.”

    그 어른신은 어머니를 기특하게 생각했다. “근데, 제 아이가 지금 중3인데요. 내일 모레 인문계 고등학교에 시험을 봤는데 떨어질 것 같아 걱정이에요.” “그래, 어디 아들 태어난 날과 시를 대 보아라.” 그 어른신은 갑자기 반말을 하며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 사람은 사주를 보는 사람이었고 그 가방은 사주보는 책들이 잔뜩 들었다고 했다. 잠시 생각을 하더니 “야야, 그 아이 시험에 붙었다. 모레쯤 붙었다고 연락이 올 거다. 큰아들이지. 그 애 걱정은 마라. 그 애는 천운을 타고 나서 앞으로 효자가 될 거고 사업도 크게 할 것이니 걱정을 하지 마라.” 했다.

    큰형 고등학교 시험 발표는 3일이나 남았는데 다음 날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종하 어머님, 종하가 경동고등학교에 합격을 했어요. 어머니도 기쁘시겠지만 저도 무척 기뻐요.” 어머니는 그 전화를 받고 “진짜 내가 날개는 없지만 날아갈 것 같이 기뻤다.” 고. 큰형은 고등학교는 인문계를 갔지만 결국 대학은 못 들어갔다. 고등학교 가서도 과외를 했지만 나중에 전문대학을 겨우 들어가고 그것도 1년을 다니고 그만두었다.

    하지만 둘째형은 대학원까지 공부를 했고 나도 대학을 들어갔으니 어머니가 못 배운 한을 나머지 두 아들이 풀어주었다.

    “난 너희들을 키우면서 늘 기뻤다. 근데 막내가 태어나고 나선 이렇게~” 하면서 그 얘기는 나중에 하자고 말을 끊었다. 어머니는 막내 얘기를 하면 목소리가 어두워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2013년 5월 4일 제천간디학교에 사는 아들과 아내가 와서 기쁜 날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씀.

    필자소개
    서울 명륜동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 일꾼. 93년부터 일하고 있다. 두가지 꿈을 꾸며 산다.온 세상 아이들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는 날과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는 날을 맞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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