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하는 것이 역사가 되는 길
    홀로코스트로의 시간여행
    [책소개] 『악마의 덧셈』(제인 욜런/ 양철북)
        2013년 05월 04일 12:5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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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세 살 유대인 소녀의 홀로코스트로 향한 시간 여행

    우리가 기억하는 모든 역사는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삶의 총합과도 같을 것이다. 그래서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악마의 덧셈≫은 비극적인 역사와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에 대해 진중하고도 흥미롭게 접근한 역사 판타지 소설이다.

    제목 ‘악마의 덧셈’은 수용소 안에서 쓰이던 단어이자, 그곳에서 통용되었던 광기 어린 규칙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루가 무사히 지나면 누군가 나를 대신해서 죽었음을 아는, 다시 말해 그의 죽음으로 인해 난 하루 더 살게 되었음을 생각하게 하는 계산이 바로 ‘악마의 덧셈’인 것이다.

    ‘미국의 안데르센’ ‘20세기 이솝’이라 불릴 만큼 대담한 문체, 풍부한 상상력으로 사랑받는 작가이자, 칼데콧 상에 빛나는 제인 욜런의 작품인 이 책은 1942년 홀로코스트 당시로 시간 여행을 떠난 열세 살 소녀 한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청소년 소설에서는 흔히 시도하지 않는 ‘시간 여행’이라는 독특한 소재와 홀로코스트라는 슬프고도 묵직한 역사적 사건을 잘 버무려 놓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인 홀로코스트를 다룬 이 책의 장점은 광기로 가득했던 역사의 한 장면이 나와 동떨어진 사건으로만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데 있다.

    더불어 내가 그 상황에 있었다면 할 수 있는 질문들을 던져 박제된 역사가 아닌, 그 시대 사람들과 나를 동일시해 보고 고민해 볼 수 있는 거리들을 마련해 준다. 다스리는 사람들의 기록이 아닌, 그 시간을 생생하게 살아낸 사람들이 전해 주는 것이 바로 ‘역사’임을, 그것이 다음 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큰 좌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악마의 덧셈

    1942년으로 떠난 시간여행을 통해 재현해 낸 홀로코스트의 비극.

    요즘 한반도는 남북의 극단적 대치 상태로 당장이라도 전쟁이 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이라면 교과서 속 역사로만 알던 우리 아이들이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떠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전쟁이 날지 말지가 아닌, ‘전쟁이 나면 나는 어떤 판단을 하고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 아닐까? 그리고 그에 대한 해답은 먼저 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는 데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13년은 히틀러가 집권한 해로부터 80년이 되는 해로, 독일에서는 올해를 ‘나치 잊지 않기의 해’로 삼았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진행된 공식 통계에 따르면 최소한 4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고, 6백만 명의 유대인이 이유도 없이 죽어가야 했던 이 설명하기 힘든 광기의 역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느껴야 할까?

    작가 제인 욜런이 쓴 소설 ≪악마의 덧셈≫은 비극의 역사에 희생될 수밖에 없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재현해 낸 독특한 역사 판타지 소설이다.

    주인공 한나는 주말이면 친구와 쇼핑하기를 즐기고, 입에 끼고 있는 치아 교정기나 얼른 빼길 바라는 평범한 열세 살 유대인 소녀다. 가족들이 모두 모이면 늘 과거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지긋지긋한 일이라고만 여겨진다.

    한나에게 홀로코스트란, 흑백 사진처럼 빛바랜 옛날이야기 같을 뿐이다. 그러던 중 가족들과 함께 유대인 만찬을 준비하던 한나가 예언자를 맞이하기 위해 아파트 현관문을 열었을 때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바로 1942년, 폴란드의 한 유대인 마을로 시간 이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당시 사람들을, 그들이 했던 생생한 고민들을 지금, 여기로 불러 내기 위해 ‘시간 여행’이라는 장치를 빌려 왔다.

    과거를 기억하는 어른들을 지루하게만 생각하던 한 소녀를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역사의 한 장면인 홀로코스트 현장으로 뛰어들게 만든 것이다. 홀로코스트에 관한 청소년 소설이 여러 권 나와 있지만 그중에서도 ≪악마의 덧셈≫이 돋보이는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역사에 ‘if’를 대입해 역사를 새로운 눈으로 해석하게 만드는 것이다. 역사책은 아니나 역사에 대해 새로운 감수성을 부여해, 역사를 체험하게 만드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의 고난이나 어려움, 나와는 상관없는 장소에서 일어난 비참하고도 끔찍한 사건에 감정이입을 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홀로코스트란 그런 사건의 하나로 인식될지도 모른다. 홀로코스트로의 시간 여행이라는 설정은 오래된, 그래서 저 멀리 멈춰 있는 역사적 사건을 현실의 시간으로 불러내는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비극의 역사를 향해 엄중한 질문을 던지다!

    폴란드로 간 한나는 이스마엘과 지틀이라는 사람의 집에 와 있다. 그들은 한나를 차야라 부르는 고모와 삼촌이다. 원래 한나의 히브리어 이름이 ‘차야’였다. 한나가 돌아간 그곳에서는 차야의 삼촌인 이스마엘의 결혼식 준비가 한창이다.

    결혼식이 열리는 유대인 교회로 마을 사람 모두가 몰려갔을 때 그곳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나치들이었다. 결혼식은 치러지지 못했고, 다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떠밀리듯 화물 기차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때 한나만은 알고 있었다. 이 기차는 단순한 기차가 아니라는 것을. 이 기차를 타는 순간, 모두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말이다. 말려야 한다. 나는 미래에서 왔고, 당신들이 모두 죽을 것이니 모두 도망쳐야 한다, 저항해야 한다고 말을 하지만, 그 말로 사람들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이 과거로 가서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될까?

    작가의 문제의식은 바로 거기에서 출발한다. 알고 있다는 것과 모르고 있다는 것이 뭐가 다른 것일까? 당시 사람들은 몰라서 그 비극의 희생양이 된 것일까? 이 소설은 한나의 입을 빌어 끊임없이 역사에 대해 직설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역사를 조금씩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홀로코스트만이 아닌 우리의 역사에도 하나의 고민을 던져 줄 것이다. 식민 지배를 겪고 분단의 아픔으로 겪은 것이 불과 60여 년 전의 일이다. 광주 사람들에게 씻기 힘든 트라우마를 남긴 5.18은 30여 년 전의 일이다.

    역사는 지나간 사람들의 흔적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에게 좌표가 되어 주는 일이기도 하다. ‘당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그런 비극이 또다시 일어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작가는 조심스럽게 묻고 있다.

    또한 한나는 과거로 가서 비극적인 역사를 눈앞에서 경험하고 나서야 깨닫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무엇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처참한 상황을 기억하고 후대에 전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었음을.

    한나는 이제 자기가 던진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다. 기억하는 것은 지겨운 일이 아닌,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역사가 되는 일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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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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