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산부에 휴일근로 강요, 폭언도
    모성보호 위반에 솜방망이 처벌
        2013년 04월 30일 06:43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한 대형유통마트에서 일하고 있는 김설움씨(가명)는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이지만 하루에 12시간씩 꼬박 일한다. 점심 시간을 제외하고 초과 근무하는 시간은 하루에 3시간. 이마저도 그나마 임산부라는 이유로 일찍 퇴근하는 실정이다.

    휴가일은 따로 정해지지 않았다. 사전에 휴무 날을 신청하는 시스템인데 법정 휴일에 쉰다고 하면 바로 폭언이 되돌아온다.

    “미쳤냐? 일요일에 쉬게?”

    김설움씨는 모든 일요일이 아니라 한 달에 딱 한 번 일요일에 쉬겠다고 신청했다. 그러자 바로 직속 상사에게 폭언을 들었다. 평소에도 “야”라고 반말하던 상사는 휴일에 쉬겠다는 임산부에게 미안함은 커녕 욕설로 응수한다.

    김씨는 <레디앙>과의 통화에서 “휴일에 휴가 자체를 쓸 수 없게 하니 가족 행사나 결혼식 등에 참석하기 위해 정말 눈치를 많이 본다.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때도 한 달전부터 눈치를 보지만 휴가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있어 못 만나는 일도 비일비재 하다”고 말했다.

    임산부는 법으로 시간외 근로와 야간, 휴일 근무 할 수 없어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임산부에게 시간외 근로를 시킬 수 없다. 만약 임산부인 근로자가 요구하는 경우라도 쉬운 종류의 근로로 전환해야 한다.

    산후 1년이 지난 여성에 대해서도 단체협약이 있더라도 1일에 2시간, 1주일에 6시간, 1년에 150시간을 초과하는 시간외 근로를 시키지 못한다.

    김씨의 경우 만삭인데도 불구하고 하루에 꼬박 3시간씩 시간외 근로를 하고 있어 사업주가 명백하게 법을 위반하고 있는 셈이다.

    야간 근로와 휴일근로 또한 제한되어있다. 임산부나 18세 미만의 연소자를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의 야근 근로나 휴일 근로를 시키지 못하게 되어 있다.

    임산부가 명시적으로 휴일이나 야근 근로를 신청했다 하더라도 사용자는 노동부장관에게 신청 이유와 사유 발생일, 인가 기간, 대상 근로자 수 등을 명시해 인가 신청서를 내고 다시 인가서를 통보받아야만 야간이나 휴일 근로를 시킬 수 있다.

    이를 위반하는 경우 사업주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때문에 강제근로에 항의 한 번 제대로 못해

    김씨는 명시적으로 휴일 근로를 원하지 않았는데도 어찌된 영문인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 없이 강제로 휴일근무와 시간외 근로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김씨는 “첫째 때는 한 달에 쓸 수 있는 법정 휴가일마저 무급으로 일을 시켜 고됐지만 현재 사업장은 그나마 유급으로 해주니 다행일 뿐”이라고 그나마 위안하고 있다.

    임산부

    임산부, 여성노동자, 비정규직 권리 퍼포먼스 (사진=부산여성회)

    그가 이러한 부당노동행위에도 불구하고 참고 일하는 이유는 오로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휴가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고, 널리 알려진 법 제도여서인지 이 부분은 잘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업체명과 내 이름을 익명으로 해달라.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전까지는 이 회사에 다녀야 한다”며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해당 유통업체 본사의 한 담당자는 매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강제 휴일 근로에 실태에 대해 “알아보겠다”고 답변했다. 그는 임산부에 대한 야간, 휴일 근로에 대한 법적 근거를 잘 알고 있지 못했다.

    담당 노동지청은 이러한 실태에 대해 “제보가 들어온 만큼 근로감독을 실시해 법 위반 행태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임산부여, 강제 근로 하지 말고 쉬어라!

    너무나도 당연시 여겨지고 있는 임산부에 대한 강제 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당사자가 법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강제 근로를 주장하더라도 그것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휴일 근로나 시간외 근로 등을 강제할 경우 반드시 서면이나 이메일, 문자, 녹취 등으로 거부 의사를 밝혀 증거로 남겨야 한다.

    노무법인 기린의 황규수 노무사는 <레디앙>과의 통화에서 “강제 근로에 대해 당사자가 충분한 증거가 없다면 근로감독관이 시정조치나 검찰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기 부담스럽기 때문에 증거 수집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황 노무사는 “임신출산으로 불이익 조치를 받는다면 서면, 문자, 녹취, 제3자의 증언 등을 반드시 남겨 사측이 발뺌할 수 없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산부가 명시적으로 야간, 휴일 근로를 원하지 않았는데도 노동부에 인가 받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강제, 야간 근로의 거부의사나 사업주로부터 강제 근로를 강요하는 것을 증거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황 노무사의 조언대로 휴가일을 잡을 때마다, 잠시 앉아서 쉴 때마다 직장 상사로부터 휴일 근로를 강요하는 것과 폭언 문제를 바로 잡기위해 앞으로 휴대폰으로 녹취할 참이며, 무급으로 강제로 일하는 휴가일에 대해서도 기록을 남기겠다고 밝혔다.

    노동부, 모성보호 위반 업체에 솜방망이 처벌

    노동부는 2008년 <여성과 취업>이라는 발간보고서를 통해 임산부의 모성보호 제도의 이행실태를 점검했다.

    2007년 지방노동관서의 실정에 따라 점검 대상 사업장을 선정해 1,359개소에 대해 지도점검을 실시해 모성보호 위반사례 395건을 적발했다.

    위반 유형별로 임산부의 야간, 휴일근로 제한 위반 건수가 230건, 산전후휴가 미부여 34건, 생리휴가 미부여 37건으로 김씨의 사례처럼 야간, 휴일근로 제한을 위반한 경우가 제일 많았다.

    하지만 394건의 위반 사례 중 사법처리 된 곳은 단 1곳, 생리휴가 미부여 건이다. 야간, 휴일근로에 대해서는 인가를 신청하지 않은 곳을 인가 받도록 하는 시정 조치가 전부이다. 여기서 노동자들이 명시적으로 야간이나 휴일 근로를 원했는지의 여부는 조사 대상에서 빠졌다.

    2001년부터 2007년 사이 모성보호 위반으로 적발된 건수는 모두 3,037이지만 사법처리 된 건수는 48건에 불과하다. 2001년 시간외근로 위반 1건, 2002년에 야간, 휴일근로 미인가 건으로 27건을 사법처리 한 이후로 단 한건도 이 부분에 대한 사법처리는 없었다. 모두 시정조치만 됐을 뿐이다.

    이같은 노동부의 솜방망이 처벌과 단순한 행정지도로는 만연한 사업주의 임산부에 대한 강제 근로를 막을 수 없다는 점에서 보다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다른 어떤 사업장보다 유산율과 출산률이 높은 병원사업장의 경우에도 지속적인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사태 해결에 진전이 없자 지난 29일 병원사업장 여성노동자들의 임신출산 권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이들에 따르면 제주의료원의 경우 자연유산율이 2007년과 2010년 사이 평균 38.5%로 전국 자연유산율보다 19%정도 높은 실정이다.

    공동대책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의 성화 차장은 모성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이유에 대해 “법제도 자체는 어느정도 구비가 되어있지만 시행이 안되고 있는 문제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여성노동자의 조건이 너무 열악하기 때문에 실제로 위반 사업주에게 항의는 커녕 동료의 눈치만 보면서 스스로 움츠려든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국 해고 당하지 않기 위해 야간이나 휴일 근무, 과중한 업무를 떠맡게 되어도 항의할 수 없는 조건을 해결하기 위해 기본적인 노동환경을 개선해야한다”며 정부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법 위반 사업장을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