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저 꽃을
철망에 가두지 못하리라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 자연은 경계가 없는데, 사람들이 경계를 만든다
    2013년 04월 30일 11: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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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주 동안 교정(校庭)과 학교 뒤 춘덕산의 봄꽃이 만개하였다. 목련, 벚꽃, 진달래, 개나리 등이 한데 어울려 피었으니 천지가 온통 환해진 듯했다. 지난주에는 가끔 비가 내려서 이내 꽃이 떨어지고 말면 어떡하나 걱정하기도 했으나, 웬걸, 그 환한 풍경은 변함없이 이어져서 내 마음까지 밝게 하였다.

지금 몸담고 있는 학교에 오면서부터 나는 뒷산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다니는데, 둘러보는 코스는 대략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 물론 지난주에도 춘덕산 산책을 하였다. 이번에는 국문학을 전공하는 동료 교수와 함께였다.

가만히 멈춰 먼 곳을 조망하거나 흐드러진 꽃무더기를 핸드폰으로 찍고, 아이 키우는 얘기 혹은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다가 동료 교수가 문득 꺼낸 말이다.

“그런데, 신기하지 않아요? 철망 사이의 문을 통과하기 전까지는 학교 땅이었잖아요. 아까 진달래가 계단 따라 쭉 도열한 곳에서부터 여기 어디까지가 누군가의 사유지고요.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부천시 소유니 공유지가 되겠죠. 자연은 이렇게 경계 없이 꽃을 피웠는데, 인간은 그걸 이렇게 쪼개고 저렇게 쪼개서 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거죠. 멀쩡한 산에 혹은 땅에 말뚝 박아놓고 누가 처음 ‘내 소유다!’ 주장했을 때, 사람들이 미친 놈 취급하지 않고 어떻게 그걸 승인해 주었는지, 거 참 신기한 사건이었단 거죠.”

“그렇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금 그런 말을 들으면 그걸 더 신기하게 생각할 걸요? 저만 해도 그래요. 90년대 초반에 생수를 돈 주고 사먹는 걸 보면서 유난 떤다고 경멸했었죠. 특히 운동권 친구들이 그러면 분노를 느끼기까지 했어요. 남들보다 좀 튀어 보고자 하는, 나중에 읽은 부르디외의 용어로 하면 ‘구별 짓기’ 정도로 판단했던 거죠. 그런데 저 역시 지금은 수돗물을 받아먹는 대신 정수기로 거른 물을 먹고, 그게 아니면 생수를 사먹고 있단 말이에요. 모든 게 상품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이 되는데, 가끔 제 자신의 변화가 신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아무런 의식 없이 그렇게 지내고 있으니, 원.”

“사실 제 얘기는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나오는 내용이죠. 화사하게 핀 꽃을 보면서 계속 걷다 보니 갑자기 그 내용이 생각난 겁니다. 오늘처럼 꽃그늘을 걷고 있으면 루소의 말이 옳은 것 같아요. 따져보면 그렇게 오래 전도 아닐 텐데요, 그렇게 말뚝 박아서 자기 땅이라고 우겨대기 시작한 게요. 그러고 보면 한 번 굳어진 인간의 관념이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실감하게 되네요.”

“다른 나라는 정확히 모르겠고, 우리나라는 토지조사사업이 실시되었을 때부터일 테니 지금으로부터 약 백 년 정도 되었을 거 같네요. 이기영의 『고향』에서 그런 내용을 읽은 적이 있어요. 얼마 전까지 마을 뒷산은 마을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계절마다 혜택을 취할 수 있었는데, 사유재산이 되어버린 지금은 그렇지 못하게 되었다는 걸로 기억합니다만. 물론 그 전에는 다른 형태의 소유 관계가 있었겠지만 말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연구실로 돌아가면 『고향』의 그 부분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오늘 산을 둘러본 기념으로요. 그러고 보면 이기영은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무거운 관념에 포획되지 않고, 오히려 그 기원을 직시하고 있었던 셈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고향』이 1933년 발표되기 시작했으니 아직 그 기원을 까먹기에는 시간이 충분히 흐르지 않았던 측면도 있겠고요.”

“『고향』에 그런 내용이 있었던가요? 가물가물한데, 저도 다시 읽어봐야 하겠는 걸요.”

어느 마을에서 본 뒷산 풍경

어느 마을에서 본 뒷산 풍경

춘덕산 소요(逍遙)를 마치고 연구실로 와서 확인해 보니 내가 떠올렸던 『고향』의 그 대목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다소 길기는 하지만 그대로 옮겨 본다.

지금부터 삼십여 년 전에는 원터 앞내 양편으로 참나무숲이 무성했다. 원터 뒷산에도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서서 대낮에도 하늘이 잘 안 보였다. 그 숲 위로 달이 떠오르고 뒷산 송림 속으로 해가 저물었다. 여름에 일꾼들은 녹음에서 땀을 들이고 젊은 남녀들은 달밤에 으슥한 숲속을 찾아서 청춘의 정열을 하소연하였다.

봄에는 갖가지 새가 이 숲에 와서 울고 뒷산 바위틈에는 진달래꽃이 빨갛게 피어났다. 아지랑이가 낀 먼 산은 푸른 하늘 밑으로 둘러서고 꾹꾹새는 처량히 뒷산에서 울 때 마을의 여자들은 이 숲 안으로 빨래를 오고 사내들은 천렵을 하지 않았던가.

가을이 되어서 낙엽이 풋덕풋덕 떨어질 무렵에 밤송이는 아람이 벌고 물방아감이 되는 참나무에는 가지가 휘도록 상수리가 열렸다. 그러면 아이들과 여자들은 끼리끼리 바구니를 들고 나와서 상수리를 털고 밤을 주웠다. 거기는 몇 주가 안 되는 밤나무와 냇둑으로 늘어선 버드나무를 제하고는 모조리 참나무 숲이 늘어섰다.

그들은 참나무 밑둥을 큰 돌멩이로 후려 때려서 상수리를 털어놓고 제가끔 주웠다. 억척스런 마을여자들은 사내만 못지않게 돌멩이를 참나무에 내붙였다.

나무갓을 베고 나서 추수를 앞두고 잠시 일손을 쉴 동안에 젊은이들은 그들을 따라와서 장난치고 농담을 붙였다. 넓은 들안에 벼이삭은 황금빛으로 익어 가는데 그들은 유쾌하게 청추(淸秋)의 하룻날을 보내었다. 남자들은 상수리를 털어주고 누가 많이 줍나 저르미를 하였다. 그것으로 묵을 쑤고 떡을 해서 그들은 서로 돌려 먹었다. 그때는 그들에게도 생활이 있었다. 그들의 생활에는 시(詩)가 있었다.

그런데 그렇던 숲이 부지중 터무니도 없어지고 따라서 그들에게도 지금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단지 남은 것이라고는 쉴 새 없는 노동이 끝창 없는 가난을 파고들 뿐 지금 그들은 모두 그날 살기에 눈코 뜰 새가 없었다.

― 이기영, 『고향』, 풀빛, 1991, 145~6쪽.

가만히 따져보면 마을 뒷산을 공유했던 기억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닌 것 같다. 안상학 시인의 『오래된 엽서』(천년의 시작, 2003)에 실린 「비나리 윤씨 전하기를」과 같은 시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윤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능청스럽게 옮기고 있는 시인의 태도도 일품이지만, 말뚝 박아놓고 경계를 지어 내 것이라고 우겨대는 세상의 가치­체계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윤 할아버지의 진술 또한 일품이다.

그 영감 그러대.

내 나이 80에 송이 하나 갖고 이 지랄은 처음이여. 내가
이래봬도 50년 전부터 저 산에서 송이를 땄어. 누가 감히
날더러 송이를 따라 마라 해. 제깐 놈이 산을 샀으면 샀
지. 난 판 적 없어. 내가 우리 땅, 우리 산에 그 놈의 송이
한 뿌리 따지 못한다면 인간도 아니지. 아 썩을 놈의, 그
럼, 노루새끼, 토깽이 새끼도 못 들어가게 해야지. 와, 멀
쩡하게 두 발로 걸어다니는 놈, 그깐 버섯 하나 따먹는다
꼬 지랄은 지랄이여. 내가 이래봬도 한 50년 전부터 저
산에서 송이를 따먹은 놈인데 시방 와서 무슨 훼방은 훼
방이야. 50년이 누 아 이름이가. 예끼 놈, 아나 송이 여기
있다!

그 영감, 팔뚝을 내지르는데 거 참 힘있대.
― 안상학, 「비나리 윤씨 전하기를」 전문

상상력이란 아무 것도 없는 데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힘이 아니다. 지각작용을 통해 받아들인 이미지를 변형시키는 힘이 상상력이며, 이를 통하여 인간은 해방감을 느낄 수 있고 꿈을 꾸게 된다. 나의 얘기가 아니라 『공기와 꿈』의 시작 부분에 나오는 바슐라르의 진술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기영의 『고향』이나 안상학의 「비나리 윤씨가 전하기를」에는 무거운 현실을 훌쩍 뛰어넘는 상상력이 충분히 들어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보라, 사적 소유를 기반으로 하는 현실의 질서 너머로 내달리고 있지 않은가.

꽃은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 속에 피어있고, 이기영과 안상학의 상상력은 서가에 꽂혀 있는 책 속에 활자로 누워 있다. 그 두 개의 의미를 환기하는 사이, 올해 맞은 나의 봄날은 저물고 있다.

 

필자소개
가톨릭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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