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규제와 감축....퇴행하나
[에정칼럼]탄소 정치의 재구성: 박근혜, 착한탄소기금 그리고 탄소세
    2013년 04월 12일 09:46 오전

Print Friendly

국내외적으로 탄소 감축의 정책수단을 둘러싼 논란이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당장에는 배출권 거래제가 심상치 않고 탄소세가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먼저 최대의 탄소시장인 유럽연합의 배출권거래제(EU-ETS)를 보자. 지난 2월 26일, 유럽을 포함해 전 세계 100여개의 환경, 사회단체들이 유럽연합 회원국들에게 배출권 거래제를 개선할 것이 아니라 이참에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요구 사항을 담은 서한을 보냈다.

유럽연합이 배출권의 공급과잉으로 탄소 시장의 붕괴를 막을 응급조치로 이산화탄소 9억 톤의 경매를 연기하는(backloading) 회의가 진행되는 시점에 맞춰 의견을 전달한 것이다.

이게 바로 현재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배출권 거래제를 폐기할 때>(Time to scrap the ETS) 캠페인이다.

레:꼬몬(Re:Common), 코너하우스(The Corner House), 다국적기관(Transnational Institute), 탄소거래감시(Carbon Trade Watch), 유럽기업감시(Corporate Europe Observatory), 이들 단체가 주도하는 이 캠페인은 더 이상 회생 불가능한 배출권 거래제를 살리기 위한 땜질식 처방을 멈추고 다른 실효적인 방식을 통해 실질적인 감축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bandicam-2012-01-27-11-37-16-975

국내에서도 2015년에 배출권 거래제가 시행될 예정인데, 가장 큰 탄소시장이 형성된 유럽의 경험에서 어떠한 교훈을 얻지 못하면 그 전철을 따라갈 것이란 비판이 제기된 지 오래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에서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한 내용을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최근에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우려가 되는 점이 있어 우리가 처한 상황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4월 4일, 환경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온실가스 배출량 전망치(BAU)를 8월까지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소극적인 감축목표라는 이유로 환경단체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던 감축 시나리오를 오히려 후퇴시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시민단체 모임인 에너지시민회의가 지적한 대로 전망치 수정은 온실가스 감축정책의 총체적 실패를 의미한다.

최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2010년에 배출된 온실가스가 2009년보다 9.8퍼센트 늘어나 17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박근혜 정부가 현재의 증가 추세를 반영해 배출량 전망치를 더 높게 잡는다면 결국에는 그것을 기준으로 줄이는 감축량마저 부풀리겠다는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윤 장관이 언급했듯이 30퍼센트 감축에 손대지 않는다면 전망치를 늘려 잡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절대량 기준으로 감축목표를 설계하지 않아서 내재된, 수치가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사후적 조작 문제가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 일간지의 사설은 박근혜 정부의 녹색성장 흔적 지우기에 동조해 이렇게 평가한다. “치밀한 검토와 약속 이행 의지 없이 202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배출전망치(BAU)보다 30% 감축하겠다고 국제사회에 공언한 이명박(MB) 정부의 허풍에 박근혜 정부가 8월까지 BAU를 재산정하고 연말까지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을 다시 만들기로 한 것은 사필귀정이다.”(서울신문 사설, 2013년 4년 9일)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은 배출권 거래제와도 관련된다. 4월 9일, 대한상공회의소와 지구환경국회의원포럼이 개최한 ‘기후변화와 산업계의 대응전략’에서 배출권거래제의 시행을 늦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후퇴를 거듭해 원안보다 완화된 상태로 통과된 배출권 거래제의 시행시기를 연기해야 한다는 엄살과 박근혜 정부의 배출량 전망치 부풀리기 시도는 한 지점으로 귀착될 가능성이 크다. 기업에 할당하는 배출권의 양이 늘어나 이미 누더기가 된 배출권거래제의 효과가 무화되는 곳으로.

감축목표와 감축방식 모두가 문제라면 이제라도 진지하게 대안을 찾아야 한다. 감축목표를 낮추려는 시도를 막고 나아가 더 높은 목표를 세우는 데 필요한 공론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동시에 배출권 거래제가 대표적인 감축방식으로 인정되는 현 상황을 바꿔야 한다. 이는 정부부처, 산업계, 노동계, 환경단체 등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전략적으로 선택된 배출권거래제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 탄소세, 배출권 거래제로 각축하던 정책 조합과 제도 경쟁에서 배출권 거래제를 제외한 다른 선택지가 사문화되거나 배제된 현실을 역전시켜야 한다. 상상력을 발휘하면 더 좋은 출발선에서 사회적, 환경적 성과를 바랄 수 있는 선택이 가능하다. ‘목표관리제 강화+탄소세 도입’ 옵션도 여기에 포함된다.

물론 유럽의 배출권 거래제가 3단계에 접어들면서 몇몇 개선책이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 실효성에 여전히 의문이 제기된다.

한편 영국의 샌드백(Sandbag)과 같은 단체는 배출권 거래제를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왕성하게 펼치고 있다. 국내에도 소개된 탄소 파괴(Carbon Destruction)와 같은 시민 실천도 눈여겨볼만 하다. 기업 간에 거래되는 탄소배출 할당량을 사들여 그것을 없애 결과적으로 전체 할당량 자체를 줄여 감축에 기여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이런 아이디어를 수용해 지난 4월 3일 국내에서도 착한탄소기금(준)이 처음으로 탄소배출권을 소각하는 행사를 했다. 배출권 거래제를 활용해 자발적으로 윤리적 소비를 실천하는 사례로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나 배출권거래제 프레임에 갇혀 그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만은 없다.

국내에 탄소시장이 제대로 형성․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배출권 거래제라는 시스템을 개혁해 부작용을 줄이기에는 탄소 파괴의 영향력은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실질적인 성과는 탄소 구매력에 달려있는데 과연 얼마나 가능하겠는가. 시장에 풀릴 할당량을 줄여 탄소 가격을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하고 탄소를 감축하고자 한다면 차라리 탄소세라는 시장 기제를 활용하는 것이 낫다.

온실가스 배출

탄소세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일정한 범위에서의 고정된 탄소 가격을 결정해 경제 활동에 반영해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목표관리제와 같은 규제적 조치가 강화되면 되는 것이다.

탄소세는 주로 유럽에서 시행되고 있는데, 최근 중국과 남아공에서도 고려하고 있다. 또한 미국에서도 지난 2월에 탄소세 법안이 제출되었다. 주요 탄소 배출원을 대상으로 1톤당 20달러를 부과하고 향후 10년간 매년 5.6퍼센트씩 세율을 인상하는 탄소세안이 미국 상원에서 등장한 것이다.

탄소세를 주장하면 빨갱이로 모는 미국 사회에서 어떻게 가능했을까. 공동발의자인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버몬트) 의원은 의회에서 공화당 기후변화 회의론자들과 맞짱 뜨고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는 미국의 탈핵 에너지 전환을 위해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녹색 정치인이다. 자칭 ‘민주 사회주의자’이자 무당파로 오랫동안 의정활동을 해온 독특한 이력까지 떠올리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흥미로운 점은 2007년에 발의했던 기후변화법에서는 배출권 거래제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왜 마음을 바꿨을까. 미국과 유럽의 탄소시장의 문제를 직시하면서 탄소세를 들고 나온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국내에서 탄소세가 제대로 도입될지 장담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 구체적으로 세부안까지 고려된 탄소세가 박근혜 정부가 어떤 식으로 구상할지 예상하기 힘들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탄소세의 세입․세출의 방향과 내용을 잘못 설계하면 탄소 감축 효과도 미비하고 간접세로 인한 역진성 해소에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는 진보적이고 생태적인 탄소세를 구상하는 데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착한 소비도, 착한 기업도 좋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회하지 않고 정면승부를 해야 한다. 보다 긴 호흡을 갖는다면,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탄소세를 ‘구조적 개혁’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지금이 바로 첫 단추를 다시 끼울 때다. 한국의 버니 샌더스를 기대해본다.

<참조> 탄소배출권 시장 =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사고파는 시장. 배출권은 교토의정서상 할당된 감축량을 초과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면 그만큼의 권리를 얻으면서 생긴다. 또 온실가스 감축의무 부담국이 기술 지원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줘도 얻을 수 있다. 온실가스를 할당량만큼 줄이지 못하는 국가(기업)는 거래시장에서 배출권을 사야 한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