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원의 비상, 가자! 2013 두산
    2013년 03월 29일 02: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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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야탑고 졸업, 경희대를 졸업할 무렵 대부분의 스카우트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해봤자 얼마나 하겠어” 실제로 ‘그’였던 오재원은 이런 평가 때문에 누구보다 눈물을 많이 흘렸고, 한 번 더 베트를 휘둘렀다 잠을 청했다고 알려졌습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선수, 어떻게 보면 우리 서민들의 일상과 비슷하지 않던가요. 무언가 특별해야만 주목받을 수 있고, 무언가 가져야지만 주목받을 수 있는 상황과 비슷하지 않냐는 이야기입니다.

오재원

오재원 선수(사진=두산베어스 홈페이지)

그런 측면에서 오재원은 우리 서민의 삶과 매우 흡사하게 닯아 있습니다. 사실 그리 대단한 레벨의 유격수도 아니었습니다. 두산에서 일찍 지명한 탓에 지명권은 가지고 있었지만, 어차피 그의 포지션에는 경쟁자가 있었기에 당시에 더욱 주목받기는 어려웠으리라 생각합니다. 신고 선수로 왔지만 2005년 골든글러브 수상자 손시헌이라는 벽도 있었습니다. 물론 행운도 존재하면서 지금의 오재원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를 가르쳤던 은사님은 “너무 여려서 사실 프로에 적응하지 못할까봐 걱정했다”는 이야기도 하셨습니다. 그런 오재원이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그의 동료들은 역시 절박함을 이야기합니다.

각설하고 손시헌이 군대로 가게 되면서 일단 유격수가 무조건 필요한 두산은 오재원을 입단시킵니다. 고교 시절 지명 순번은 2차 9라운드, 계약금 5천만원이 그의 첫 사회인으로서 나섰을 때의 프로필입니다. 대기업 연봉자보다 많지 않냐라고 반문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선수들의 커리어 삶이 상대적으로 일반인들보다 짧고, 은퇴 후 업무 자체가 애매하기 때문에 사실 좋은 커리어의 시작이라고만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오재원은 이대수가 부상당하면서 2007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 나서지 못하자 어리버리한 모습으로 그라운드에 발을 내딛습니다. 팀 내에서 허슬러라는 평가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확실히 그 당시에는 그냥 발 좀 빠른 어설픈 어린 선수에 가까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설마 도루왕을 노릴 줄은 몰랐고, 노리더라도 대주자 도루왕이 될 줄 알았던 선수라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노력이 재능을 앞서는 것을 지금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덧 2011년부터 당당히 두산의 주전이 되어 버렸고, 1루수와 2루수를 오가면서 비록 출루율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도루는 1위를 질주한 적도 있습니다. 수비 실력은 KBO에서도 상위권에 속하기에 이릅니다.

때문에 지금 현 두산 내에서 타자 비중을 따지자면, 못 해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든다라는 이야기가 허언같지는 않아 보이더군요. 생각해보니 이 멤버로 작년 두산이 4강 그 이상의 성적을 못 낸 것은 아이러니하긴 하지만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 선수,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가 성공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모습 보여줬으면 합니다. 처음처럼 말이죠.

아래는 오재원의 각오가 실린 이번 시즌 한 일간지의 인터뷰 한 토막입니다. 오재원 선수, 응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두산 베어스 역시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지난 해 부상으로 부진했습니다. 이번 시즌을 위해 지난 시즌이 끝나고 이를 갈았습니다. 제가 살아야 두산이 산다고 주변에서 이야기해주시니 이번 시즌 팀에서 더 많이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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