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 소비자에서
    탈핵의 당사자와 동맹군으로
        2013년 03월 19일 11: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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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콘크리트 정글에 참신한 콘크리트 건물이 하나 더 늘어날 뿐이야. 핵발전소는 대도시와 잘 어울려.”

    삼척으로 가는 탈핵희망버스 안에서 본 일본 야마카와 하지메 감독의 영화 <도쿄핵발전소(東京原發)>에 나오는 대사다. 도쿄에 핵발전소를 짓자고 주장하는 도지사가 이에 반대하는 행정관료들의 논거를 조목조목 반박한다.

    전기 소비가 계속 늘어나는 대도시의 전기 공급을 위해 지방의 아름다운 자연이 파괴되고, 철탑과 송전선이 경관을 다 망치고, 송전하는 동안 유실되는 비효율을 생각해 도쿄에 짓자는 것. 물론 역설이다. 도쿄 핵발전소 유치를 통해 핵 발전과 에너지 문제를 도쿄 시민들이 자기 문제로 생각하게 하기 위함이다.

    동경핵

    블랙코메디 영화 ‘토코핵발전소’의 한 장면

    작년 초 밀양을 다녀온 후, “핵발전소는 대도시와 잘 어울려”란 말이 가슴 속에 박혀, 대도시에 사는 나를 내내 불편하게 했다. 매서운 추위에 따뜻한 방에서 송전탑과 종탑에서 싸우는 현대차, 쌍용차, 재능 노동자들을 떠올릴 때와는 좀 다른 불편함이다.

    건설 예정된 신고리 5,6호기의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한 고압 송전탑. 그 송전탑 건설 반대 싸움 과정에서 밀양 어르신이 한 분이 분신자살까지 한 불행한 사태가 있었다.

    돌아가신 분도 그렇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불편한 다리로 송전탑 예정부지인 산을 오르내리며 한 겨울에도 산 속에 비닐농성장을 치고 8년째 싸우고 계신다.

    내가 매일 쓰는 전기가 핵 발전으로 만들어져 그들 삶의 터전에 세워진 송전탑을 통해 내게 온다는 것. 그들의 희생 위에 나의 안락함이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편함이다. 핵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한전에서 공급해주는대로 쓰게끔 우리 생활은 구조화되어 있다.

    밀양뿐 아니라 청도 주민들도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싸우고 있다. 또한 부산․경주 시민들은 수명을 다한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 연장 가동에 반대하며 싸우고 있으며, 삼척․영덕 주민들은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막아 나서고 있다. 이미 핵발전소가 들어서 있는 고리, 월성, 영광, 울진 주민들은 잦은 사고에 불안해하며 핵 발전의 문제를 알려내고 있다. 이들은 핵 발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에 맞서 탈핵을 외치는 ‘당사자’들이다.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는 수도권. 서울시민들은 지역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간혹 뉴스로 들으면서도 대부분 남의 일로 여기며, 구조화된 에너지 공급시스템 속에 ‘소비자’로 비껴나 있다.

    인구수 적고 연로한 사람들이 많은 지역 ‘당사자’들만의 싸움으로 과연 한국 사회는 탈핵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바로 이웃 일본의 후쿠시마 사고에도 불구하고 핵 발전을 확대하려는 정부와, 기준치 이하라서 안전하다고 선전하는 소위 전문가 집단, 그들의 강력한 핵 카르텔을 넘어 설 수 있을까?

    매해 늘어나는 대도시의 전력 소비를 눈감고 신규 발전소 건설만을 문제 삼는 것은 논리가 빈약하지 않는가. ‘소비자’이기만 한 수도권 시민들을 ‘당사자’와 ‘동맹군’으로 끌어들이지 않는 한 핵 발전을 확대하고 화석에너지에 의존하는 사회, 경제 시스템을 바꿀 수 없다.

    어떻게 수도권 시민들을 ‘당사자’와 ‘동맹군’으로 모을 수 있을까? 영화 <도쿄핵발전소>의 도지사처럼 서울 여의도에 핵발전소를 짓자고 해야 하나? 그렇게 이슈화해서 서울시민 투표에 붙이는 것? 탈핵․녹색정치 세력 중 허경영 같은 인물(?)은 없으니 이건 일단 넘어가자.

    먼저 방사능의 위험에서 안전한 먹거리를 가지고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 볼 수 있겠다. 통계적으로 어린이와 여자에게 방사능의 영향이 더 크고 강하다. 그러므로 아이들의 학교급식에 일본산 농수산물을 전면 금지시키는 운동을 시작하자.

    이 주장은 탈핵 인기 강사인 동국대 의대 김익중 교수가 탈핵 강의 때 한 말이다. 그는 방사능에 대한 인체 영향 데이터는 히로시마 원폭피해자, 나가사키 피해자, 그리고 체르노빌 피해자 대상이 유일하고 그 연구 결과는 “방사능은 그 피폭량에 비례하여 암을 발생시킨다. 이는 기준치 이하에서도 마찬가지다”로 요약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기준치 이하라서 안전하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학교급식에서 일본산 농수산물 전면금지와 함께 ‘생협’을 통해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먹거리 운동’을 확산하자. 생협 조합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수도권 시민이 적지 않다. 일상에서 핵과 방사능에 대한 위험을 인지하고 확산해 나가는 것. 안전한 먹거리 운동을 통해 도시민들을 반핵 전선의 ‘당사자’로, 탈핵 전선의 ‘동맹군’으로 만들어 가자.

    다음으로 재생가능에너지 생산자들도 ‘동맹군’이 될 수 있다. 핵발전 중심의 정부 정책에 대한 저항과 함께 아래로부터 재생가능에너지 확대를 통해 대안세력을 형성해 나가자.

    독일이 2020년까지 핵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고, 2050년까지는 모든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할 수 있었던 것은 체르노빌 사고 후 독일 내 반핵운동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반대를 넘어 독일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에너지협동조합을 만들거나 시민발전소를 만들어 태양광, 풍력 발전 등의 재생가능에너지를 아래로부터 확산시켰다.

    http://suncoop.tistory.com/13

    사진은 suncoop.tistory.com/13 경남햇빛발전협동조합 블로그

    재생가능에너지 확대는 관련 생산, 기술 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졌고 시민발전 운영자, 에너지협동조합의 조합원들과 함께 이해관계를 가진 세력이 되었다. 그 세력이 핵발전을 지지하는 세력 못지않게 성장함으로써 독일의 탈핵 선언은 가능했던 것이다.

    독일에서 아래로부터 재생가능에너지가 확산된 데에는 발전차액지원제도의 기여가 컸다. 한국도 노무현 정부 때 도입되었으나 이명박 정부 시절, 2012년 폐지되었다. 재생가능에너지 확산에 기여해 온 만큼 폐지 반대와 비판이 있었으나 이해 당사자가 적어 큰 저항이 없었다. 만약 독일 정부가 이 제도를 폐지하려 한다면 시민발전소, 에너지협동조합과 그를 통해 확산되는 태양광, 풍력 등 중소 산업들이 강력한 저항세력이 될 것이다.

    이렇듯 한국이 탈핵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선 후퇴하는 제도에 강력히 저항할 수 있고 보다 나은 제도를 만들도록 목소리 내는 ‘당사자’와 그 ‘동맹군’을 넓혀 가야 한다.

    자기 집 옥상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좋다. 그러나 대도시에 사는 시민 대부분은 공동의 옥상을 공유하는 아파트에 산다. 일반 주택에 사는 사람의 대부분도 전월세 세입자다. 태양과 바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그것을 이용해 전기를 만들 발전소를 지을 땅을 가지지 못한 사람, 그 자본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래서 모여서 함께 시민햇빛발전소, 에너지협동조합 등을 만든다. 이미 안산에 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이 생겼고 안양군포의왕에도 후쿠시마 2주기를 기념해 지난 3월 11일 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창립총회를 열었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을 중심으로 우리동네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부산햇빛발전, 경남햇빛발전협동조합도 준비 중이고 내가 사는 서울 은평구도 4월 에너지협동조합 창립총회를 앞두고 있다.

    대도시의 시민햇빛발전소나 에너지협동조합은 넓은 땅과 많은 돈을 필요로 하는 핵발전이나 화력발전은 짓지 못한다. 그래서 시민발전소 운동은 재생가능에너지와 만난다. 시민들의 한 푼 두 푼 돈을 모아 공공의 공간에 햇빛발전소를 세우고 거기서 만들어진 전기를 팔아 수익을 창출한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건 재생가능에너지 생산시설 설치를 중심에 둔 사업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서울의 학교와 공공건물 옥상에 태양광 발전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법적으로 의무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담당자의 배치나 교육이 이뤄지지 않아 관리되지 않고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정부의 보조금으로 설치한 장식품이나 다름없다.

    협동조합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출자한 조합원들에게 안정적인 배당금을 돌려주기 위해서는 발전이 잘 될 수 있게 관리할 수밖에 없다. 그냥 착한 마음, 신념만으로는 확장성이 낮고 지속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 협동조합 형태로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에 주목하는 것은 사업체로 조합원의 이익이 되고 그 이익 중 일부를 협동조합 정신에 맞게 지역사회로 환원시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현재 발전차액지원제도가 없어져 시민발전소든 에너지협동조합이든 수익을 내긴 쉽지 않다. 그래서 안정될 때까지 배당에 중심을 두기 보다는 조합원이 소속된 가정과 가게, 사무실의 에너지 진단을 바탕으로 절약과 효율화의 에너지 컨설팅 사업을 중심으로 가져가야 한다. 수익에 따른 배당은 없지만 절약된 에너지 비용만큼 경제적 혜택을 보게 만들어야 한다.

    사실 대도시에서 에너지 문제의 핵심은 에너지 효율 개선과 절약이 먼저다. 탈핵, 에너지 전환은 기존에 사용하는 100의 에너지를 60으로 줄이고 그 60을 핵을 비롯한 화석연료가 아닌 재생가능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지금 같은 소비 형태를 유지하면서 재생가능에너지로 다 감당하겠다는 구상은 가능하지 않다.

    그렇지만 시민발전소, 에너지협동조합에 참여한 조합원 가정과 가게에서 아낄 수 있는 전기의 양은 소소할 뿐이다. 전력소비 중 주택용은 20% 이하에 불과하고, 제조업이 전력소비의 절반정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서비스업 분야의 전력소비도 계속 늘어 30%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산업계의 에너지 절약과 효율화가 핵심이다. 산업체계 구조개편의 장기 그림을 그리고 산업계가 에너지 절약과 효율화에 투자하게끔 강제해야 하고 에너지 다소비(多消費) 산업의 비중을 줄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정부 정책의 전환을 압박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 차원에서는 시민발전소, 에너지협동조합의 주도로 공공기관과 공기업의 에너지 소비량을 다달이 공개하고 나아가서 지역의 대형마트, 영화관, 공장의 에너지 소비량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하고 조례 제정을 통해 소비량 증가에 따른 과태료를 부과하는 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유행처럼 퍼지는 협동조합에 에너지 운동도 편승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을 수 있겠다. 협동조합의 한계를 모르지 않는다.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협동조합을 통해 지역에서 핵발전과 에너지 문제에 대한 인식을 넓혀가고 시민들을 탈핵, 에너지 전환의 ‘동맹군’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이 풀뿌리 녹색정치의 내용이 아닐까?

    비판, 저항과 함께 삶의 터전에서 이웃과 손잡고 변화를 조직하고 구체적인 행동을 지역에서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진보정치에 부족했던 건 아닐까?

    에너지는 인간 삶의 필수품으로 에너지 체계에 따라 그 사회 모습도 달라진다. 핵이나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계는 자본 친화적이고 공급 중심이여서 주인을 주인이 아닌 ‘소비자’로 만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에너지 체계가 바뀌면, 그 사회의 모습과 문화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운동은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원. 진보신당 은평당협 공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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