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他不二...'남'과 '나'는 하나
    2013년 03월 04일 01: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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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최근 묘사하기 어려운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고, 제가 1991년말부터 알고 지냈던 나탈리야 바실례브나 무클라디 (Наталья Васильевна Мухлади)라는 분이 며칠 전 돌아가셔서 그렇습니다.

고령 (금년은 고희이셨습니다)과 말기의 폐암으로 돌아가셨는데, 그 죽음 앞에서는 세상 만사가 다 다소 무의미해 보이기도 합니다.

참, 나탈리야 바실례브나 무클라디가 과연 누구이었는가를 설명드려야 하는데, 이건 좀 힘듭니다. 그녀에게는 사람을 잡는 그 “사”자가 붙은 직업도 없었고 (실은 사회주의 시절 막노동 경험 이외의 정식 직업 경험도 전무했고) 대학졸업증도 없었습니다.

그녀가 최근 20여년 간 해왔던 일들을, 한국적인 방식으로 설명하자면 아마도 “역술인”이나 “일종의 무속 종사자” 내지 “돌팔이 의사” 비슷한, 다소 어감이 이상한 단어들을 동원해야 합니다. 로서아에서는 이걸 “экстрасенс” (초능력자)라고 부르는데, 대체로 중국에서 말하는 “특이공능” (特異功能)과 통하는 것입니다.

중국 같은 경우에는 모택동 주석 시절 이후부터 서양의학이 미발달된 상태에서 이런 전통적인 치료법이 필요하다고 하여 국가적으로 인정했는데, 로서아 같은 경우에는 국가적 인정은 없고 단 돈이 없는 민간인들에게 많이 이용됩니다. 국내 무속과 같은 전통적인 의례 등이 없고 주로 명상, 즉 “기” 발산을 통한 치료에 집중되는 것입니다.

나탈리야 바실례브나 무클라디가 이와 같은 일로 먹고 살았다고 써야 하지만, 실제로는 “먹고 살았다”는 표현 자체도 부적절합니다. 그녀는 환자들로부터 일푼도 징수하지 않으셨고, 오로지 다소 여유 있는 독지가들의 도움, 즉 보시로만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말년에는 최저노후연금, 한국 돈으로 다달이 약 20만원 정도 받기도 했습니다.

레닌그라드나 모스크바를 가보신 분이라면, 이런 돈으로 거기에서 살 수 없다는 점을 잘 아실 터인데, 수백만 명의 로서아 등 구쏘련 지역 노인들이 이와 같은 “최저연금”으로 그저 죽지 못해서 살아나갑니다.

80-90년대 중국에서 “특이공능”에 대한 수많은 과학적 입증의 시도들이 있었지만, 끝내 입증이 (아직도)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왔습니다. 저 또한 그런 입증이 가능할는지 모르겠고, 나탈리야 바실례브나 무클라디가 실제로 사람들을 치료해주었는지 내지 그들에게 용기와 자신감, ‘나’를 누군가가 배려해준다는 느낌 등을 주어서 그들에게 스스로 재기할 힘을 주었는지 – 즉 심리치료했는지 – 잘 판단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판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치료의 효과입니다. 특히 각종의 갈등에 시달리고 심리적 내지 정신적 고통을 당하고, 어려움에 처하는 많은 사람들은 “초능력자”의 배려심을 실감하고 “지나치게 욕심 내지 말라”, “욕망을 자제하라”, “남의 입장이 돼서 사고해보라”,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 먼저 선의를 보이라” 등의 극히 상식적인 그녀의 조언들을 듣고서는 다시 삶을 살 힘을 얻었고, 저도 그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실은 제게 나탈리야 바실례브나 무클라디가 “초능력자”라기보다는 불가에서 이야기하는 “보살도 실천자”에 더 가까웠습니다. 돈이나 옷 같은 것을 들어오는 대로 다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시간도 재물도 절대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초능력”이야 있든 없든 간에, 이와 같은 삶의 태도는 분명히 진리 실천에 해당됩니다.

제가 힘이 닿으면 언젠가 나탈리야 바실례브나 무클라디의 평전이라도 정리해야 할 정도로 그녀에게 얽힌 의미있는 일과 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제게 특별히 의미 있었던 것은 그녀의 최근 2년간의 삶이었습니다. 그녀는 약 2년 전에 폐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이렇다할 만한 대책도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냥 살았습니다. 매일매일 힘이 줄어들었지만, 5분에 한 번꼴로 걸려오는 전화들을 답하면서 A에게 식이요법의 요지를 알리고 B의 가정 불화를 해결해주고 C의 육아문제 조언해주고… 쉴 사이도 없었습니다. 본인이 죽어가고 있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것이 천명이라고 생각하는 양으로 순천명(順天命)하면서 남들만을 챙겼다는 거죠.

아마도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남들을 챙기는 와중에서 자신이 죽어간다는 생각을 할 틈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차원에서 본다면, 뭔가를 이미 깨달은 사람들이 삶과 죽음을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양쪽이 상대적인 줄 아니까요. 좌우간, 나탈리야 바실례브나 무클라디는 죽기 약 3개월 전까지 계속 사람들을 치료했습니다. 신체적인 고통으로 5분 이상 대화하지도 못했지만요. 이와 같은 태도는, 많은 로서아 서민들이 그녀를 철석같이 믿었던 배경을 다소 설명해줍니다. “초능력”과 무관하게, 인간들이 애타성과 온기, 자신을 망각할 줄 아는 사랑의 맛을 느끼면 바로 찾아오는 것이죠.

개체의 생명은 상대적입니다. 실은 개체적 생명은 그 자체로서는 그다지 의미가 없습니다. 수백년은 물론이고, 아마도 수십년만 지나도 제가 쓴 글들의 99% 이상은 그 시기적 의미를 잃어 그저 지나간 시대의 증인이 될 것이고,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도, 지구가 위치한 태양계도 절대적으로 영구적이지 않습니다. 아주 절대적 차원에서 이야기한다면, 우리 모두가 언젠가 흔적없이 다 깨끗하게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개체는 고립된 상태에서는 이처럼 허무하게도 무의미하지만, 그래도 우리 머리 속에 “나”와 이 별들, 이 태양, 이 나무들, 그리고 이 모든 생명들과의 어떤 무시무종의 “관계성”에 대한 아주 강한 “느낌”이 각인돼 있습니다.

그런 느낌이 있기에 밤하늘에 별들을 응시하고, 그런 느낌이 있기에 맹자 말대로 우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고 하고, 그런 느낌이 있기에 부처님의 5계를 몰라도 본능적으로 살생을 피하려고 합니다. 타자를 죽이는 순간 나 자신을 죽인다는 걸 인간이 다 느끼거든요.

바실리 그로스만

바실리 그로스만(출처:위키피디아)

진정한 사회주의자라고 할 바실리 그로스만 이 – 물론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번역할 생각도 없는 듯한 – 그의 명작 <삶과 운명>에서 이 느낌을 “본능적인 착함”, “본능적인 善”이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는 “본능적인 착함”을 非스딸린적인 사회주의 건설 철학의 기반으로 삼으려 했던 셈이죠.

제가 봐도, 이 생각 이상으로 사회주의의 윤리철학적인 근거를 만들기가 힘들고, 이 “본능적인 착함” 이야기는 결국 佛性에 대한 佛說과도 통합니다.

그러기에 사회주의와 크게 봐서 다를 게 없는 진짜 불교에서는 사찰도 의례도 크게 필요 없다고 봐요. 그냥 “나”라는 존재가 실재하지도 않고 또 언젠가 흔적도 없이 영원히 사라질 것을 뻔히 알면서, “나”를 생각할 틈없이 남들을 챙겼다가 웃으면서 가면 됩니다. 겁없이, 웃으면서 이렇게 갈 수 있다면, 바로 부처가 됐다고 봐야하지 않겠어요?

부처라는 게 뭐 특별한 게 있나요? 잡다한 욕망을 빼고 나와 남이 하나라는 것만을 체득해서 이 진리대로 잘 살 수만 있다면, 이거야말로 부처입니다.

아, 저는 아무래도 불교를 생각하면서 제 심정을 스스로 가라앉히려는 노력을 지금 하는 것 같습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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