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위기
    [아빠의 현대사 56] 노조채용비리, 북 핵실험, 일심회
        2013년 02월 26일 09:36 오전

    Print Friendly

    “민주노동당이라는 배를 만들어 100km 쯤 가다가 우리는 그 배가 목적지를 달리 하고 있음을 보고 차가운 바다에 뛰어 들었다. 다행히 또 다른 배가 있어 그럭저럭 근처의 섬에 도착했다. 이제는 10,000km 정도 갈 수 있는 배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미 뒤처져 있으니까 그냥 그 배를 가지고 빨리 출발하잔다. 나는 그 배에 탈 수가 없다. 차가운 겨울 바다에 빠져 본 경험이 있는 나는 배를 새로 만들지 않으면 출발할 수가 없다.

    나는 섬에 있는 사람들과 의논하고 싶다. 배의 나무는 어떤 재질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항로를 잡아야 하는지, 선장은 어떤 사람이 가장 노련한지, 배에 탈 사람들이 가져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등 모든 것을 시간을 두고 논의하고 싶다. 그런데 그들은 배를 출발시키면서 섬에 있는 사람들보고 얼른 올라타라고 하는 것 같다. 개중에는 수영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어 이미 출발한 배에 올라타기도 하겠지만 나는 가능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함께 출발하고 싶다.” (2008년 5월 20일 레디앙에 투고한 글 “빨리 가서 뭘 어쩌자고?” 중에서)

    민주노동당이 분열되고 사람들이 [진보신당]이라는 새로운 당을 만들자고 할 때 쓴 글이다. 1997년 대통령선거 후에 삽시도라는 섬에 들어가서 “딱 10년만 더하자”라고 좌절을 극복하고 나온 얘기를 앞에 썼었다. 우연일까? 꼭 10년이 지난 2007년 대통령 선거를 끝내자마자 민주노동당은 분열되고 만다. 다시 돌아보아도 안타까운 일이다. 민주노동당 얘기를 하기 전에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민주노총 얘기를 먼저 하는 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왜 위기는 동시에 오는 걸까? 감당하기 어렵게 말이다.

    민주노총의 위기 : 노조간부의 금품수수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충돌

    “사실관계를 떠나 실업의 고통에 처해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지위의 우월적 신분을 활용해 고용을 담보로 노동조합 일부간부가 부적절한 행위에 관여한 사실에 대하여 국민들에게 통렬히 자성을 표합니다.” 2005년 1월 금속연맹이 발표한 성명서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노조간부들이 생산직을 뽑는 과정에서 돈을 받고, 채용에 관계한 것이 드러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5월에는 현대자동차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노조간부들이 한 명당 수백만원에서 3천만원까지 채용을 대가로 돈을 받은 것이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잇달아 발생한다. 노조 간부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사회적으로 약한 사람의 등을 쳤다면 이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운동의 기본을 망각한 행위다.

    기아자동차입사비리

    더 큰 문제는 노동운동의 기본을 잃은 행위가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관행의 이름으로 많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는 데 있다. 투쟁의 상징이 되어야 할 투쟁 조끼가 권위의 상징으로 되었다는 비난도 심심찮게 들리기도 했다.

    그러더니 2005년 10월에는 민주노총 강승규 수석부위원장 사태가 발생한다.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로부터 수천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경찰에 의해 긴급체포된 것이다. 민주노총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도덕성과 정당성을 가지고 대중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노동운동은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점입가경이라더니 임원진의 총사퇴가 늦어지자 사무처 성원 13명이 집단으로 사표를 내며 항의하는 사태까지 발생한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야 총사퇴와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된다. 스스로 곪아터진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자정능력까지 상실했음을 만천하에 공표한 셈이다.

    하나 더 있다. 2005년 2월과 3월, 두 번에 걸쳐 충격적인 상황이 TV뉴스를 통해 전 국민에게 알려진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장에서 폭력적인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소화기와 신나도 등장했다. ‘사회적 합의주의와 노사정 담합 분쇄를 위한 전국노동자투쟁위원회’라는 임시 조직이 만들어지고, 격렬하게 노무현 정부가 제안한 노사정위원회 참가를 반대한다. 한 언론은 “동지는 간 데 없고, 그 자리에 온갖 욕설과 주먹이 대신했다.”라고 표현한다. 어쩌다가 민주노총이 이렇게까지 나락으로 굴러 떨어진 것일까?

    단상점거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의 단상 점검 모습

    “진지한 토론보다는 표결 처리에 급급했습니다. 조직 내의 의결과정에서 단상점거라는 극단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운동의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 동의될 수 있는 합의지점을 찾아 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민주노조운동은 그동안 많은 이견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합의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가장 중요한 활동의 원칙으로 해왔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지도부의 역할과 자세입니다. 그것이 지도력이라고 봅니다.”라고 양경규 위원장 등 중앙위원 41명이 ‘민주노총 위기상황 해결을 위한 중앙위원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지도력은 발휘되지 않았다. 왜 민주적으로 토론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겨왔던 민주노총이 서로간의 다름을 이유로 폭력을 행사할 정도로 불통이 되어 버렸을까?

    노사정위원회 참여문제

    핵심은 정부가 만든 ‘노사정위원회’라는 기구에 참가할 것인지 말 것 인지에 있었다. 노사정위원회란 노동자와 사용자, 그리고 정부에서 임명한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하도록 만든 기구다. 겉으로 보면 좋은 목적을 가진 기구다. 박근혜 대통령도 노사정위원회를 사회적 대화기구로 하겠다고 한 만큼 너희도 앞으로 신문에서 보게 될 것이다.

    노동자와 자본가는 기본적으로 대립한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가와 임금을 생존조건으로 하는 노동자의 숙명이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노사간 대타협을 종용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는 노사간 대타협을 한 스웨덴이 그랬다.

    “1938년 12월20일 스웨덴 중앙노조(LO), 그리고 경영자총연합회(SAF)의 대표들이 2년 동안 끌어왔던 협상안에 서명하기 위해 마주앉았다. 몇 차례나 협상이 깨질 듯한 위기를 넘기고 노동시장위원회, 임금협상, 노동자해고, 노동쟁의 등 4개 조항을 담은 협상문에 양쪽 대표가 서명했다. 이 극적인 타결이 스웨덴을 갈등사회에서 고도경제성장·복지국가로 재탄생시킨 기폭제가 되었다.”(한겨레신문 2013년 2월 18일 최연혁 교수 칼럼 중에서)

    노사대타협으로 불리는 살트셰바덴 협약의 탄생과정이다. 나도 스웨덴에 가서 그들이 가진 문제의식이 무엇인지를 들었었다. 우리나라의 삼성재벌이라고 할 수 있는 재벌집단인 발렌베리 가문이 지은 그랜드호텔도 방문한다. 노사가 합의서에 서명한 장소로 역사적 상징이 된 건물이다.

    대타협이 있기 몇 해 전 스웨덴 북쪽에서 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이 있었고, 군대가 투입되어 5명이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것이 스웨덴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결국 노사가 대타협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이르게 된 핵심은 당시 정부가 사회민주당 정권이었다는 점이다. 그냥 타협이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말이다.

    사회적으로 힘이 약한 노동자의 편을 들어주는 정권이 아닌 한 사회적 교섭은 의미를 찾기 힘들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 모두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교섭을 얘기했지만 스웨덴 사회민주당과 같은 입장을 가지지 않았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동조합은 안 된다”라는 무노조주의를 자랑삼아 얘기하는 삼성그룹은 발렌베리 가문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무늬만 사회적 합의이고, 대타협이지 실상은 양보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특히 1998년 사회적 합의를 하면서 전교조에 대한 합법성을 인정받는 대신에 정리해고방안을 수용하는 바람에 당시 집행부가 총사퇴해야 했다. 그때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 쇠파이프를 들고 올라 온 조합원들이 있었다, 물론 합리적인 방식으로 해결이 이루어져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민주노총은 그런 중요한 사안에 대해 합리적으로 찬반토론을 하고, 민주적으로 해결하는데 실패했다. 더구나 TV를 통해 폭력적인 대립이 국민들에게 보여 지면서 민주노총은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 잇달아 터진 이런 일들로 인해 민주노총만이 아니라 민주노동당 등 진보세력 전체가 국민들로부터 멀어진다. 그런데 그와 똑같은 모습을 이번에는 민주노동당이 보여준다.

    민주노동당의 위기

    2007년 12월 19일 17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언론들은 48.7%라는 압도적 지지를 받은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이유가 노무현 대통령의 실정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선거운동 내내 이명박후보는 노무현 정권의 실정을 비판한다. 이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권영길 후보가 3번째로 후보가 되어 3.01%인 712,121표를 받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2002년 대통령선거 때의 957,148표보다 훨씬 적은 표를 받았을까? 무슨 일이 있었기에 민주노동당은 거꾸로 가게 되었을까? 그것도 국회의원이 10명이나 활약했는데도 말이다.

    나는 4년동안 중앙당기위원을 한다.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추악한 행위들을 보았던 셈이다. 서서히 하나의 권력이 되어가는 민주노동당을 좌지우지 하기위해 각 정파에서 다양한 편법들을 동원한다. 위장전입, 집단 주소이전, 당비내납, 대리투표 등 보수정당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생긴다.

    지역조직을 장악하기 위해 당원들을 이동시키는 행위는 광범하게 벌어진다. 강남지구당에서는 <다함께>가, 용산과 인천남동갑지구당에서는 <인천연합>이 그랬다. <경기동부연합>은 강동을지구당과 경기도 의정부갑에서 당규에 어긋난 지구당을 만든다. 당비를 대납하는 경우도 있었고, 본인 몰래 당원에 가입시킨 경우도 생긴다. 가족 모두를 동원하기도 한다.

    특히 당 안팎에서 신망을 받던 사람들이 모두 국회의원이 된 이후 당내 권력을 소위 ‘자주파’라는 사람들이 모두 가지면서 심각해진다.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유명해진 자주파의 중심 <경기동부연합>의 2004년 내부 문건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당은 중앙위원회에 자주민주통일 대오의 다수 진출을 실현하였고, 이 힘을 바탕으로 중앙위원회, 대의원대회를 통해 새로운 지도체계의 안정화, 당 운영시스템의 정비과정을 거치고 있다.” “기관지 위원회는 향후 9월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자체의 당원 의식화 기제로서 자유주의적 편집관을 혁파하고 실질적인 당 기관지화 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리고 이 말대로 된다. 기관지위원회의 경우다.

    “기관지사태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진보정치’ 이광호 편집위원장이 사표를 제출했고, ‘이론과 실천’ 최영민 편집장이 뒤이어 사표를 제출했다. 또 진보정치 기자 3명도 사직했다. 중앙위 직속 공식 당기관인 기관지위원회는 이미 당 기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성희 기관지위원장 1인의 자의적이고, 일방적인 사유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당시 해결을 촉구하는 1만 당원 서명운동에 나오는 말이다. 1999년 은수가 태어나던 해 대중들에게 진보적 가치를 전파할 것이라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시작한 ‘진보정치’라는 신문은 이렇게 당내 찌라시로 전락한다. 내가 울산을 떠난 후에도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올라 온 최영민이 거의 혼자서 만들다시피 한 ‘이론과 실천’도 마찬가지였다. 바야흐로 민주노동당은 ‘자주파’라는 민족주의적 색깔을 가진 정파의 독점이 되어 간다. 그에 따라 갈등도 심화된다.

    북한에 대한 태도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처음으로 핵실험을 한다. 당연히 민주노동당으로서는 중앙위원회에서 이에 대한 유감을 나타내는 성명서를 채택하려 했으나 무산된다. 거꾸로 당 정책의 총책임자였던 <경기동부연합>의 이용대라는 사람이 “북한 핵실험은 자위권 발동”이라는 요지의 말을 하여 진보진영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분명히 당 강령에 핵을 반대하는 ‘비핵화’가 규정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얼마 전에도 북한은 3차 핵실험을 한다. 다른 모든 것은 몰라도 핵무기만큼은 한반도 아니 지구 전체에서 없어져야 한다. 그런데 진보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이 수치스럽게도 이에 대해 거꾸로 가는 말을 한 셈이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소위 ‘일심회’라는 국가보안법 사건이다. 사건은 북한 정보원과 정부의 허락을 받지 않고 접촉했다는 것이 요지다. 국가보안법은 사상의 자유를 누르는 악법이므로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으로서 심각했던 문제는 당시 사무부총장이었던 최기영이 당원 300여명의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11가지로 분류해 놓고, 각 인물의 장단점과 성격까지 써 놓은 자료라고 한다. 방북단의 성향을 ‘요주의 인물’ ‘특별한 관리 필요’ 등으로 분석하기도 했단다. 하나의 예만 들어 너희들이 보기에는 어떤지 한번 물어보고 싶다.

    “000 : ‘0전투’, ‘돈키호테’,‘빨간 펜’으로 통한다. 0전투라 함은 전투적 노동운동을 주도하면서 생긴 것으로 주요 사항을 결정할 때 승부사적 기질을 보이고 강하게 패를 던지는 성격을 가졌다. 빨간 펜은 매우 실무적이고 꼼꼼하다는 뜻으로 정치사업보다는 회의자료를 중시하고 이를 기초로 사업을 전개한다는 뜻이다. 실제 수백페이지 회의 자료를 그 전날 밤 새 보고 마침표와 띄어쓰기에 빨간 펜 표시가 수차례 되어 있다. 본인의 성품을 잘 활용하여 예우를 극진히 하고 공손하며 예의바르게 감동을 주면 어떤 합의도 쉽게 결단을 내려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당이 또 다시 발칵 뒤집힌 건 물론이다. 그럼에도 당을 쥐고 있던 자주파는 그에게 국가보안법 피해자라 하여 생활비를 지급하고 있었다. 당비로 말이다. 당원들의 신상정보는 다른 당에게 넘겨주어도 문제가 되는 중대 범죄행위다.

    2008 ¹Î³ë´ç ÀÓ½Ã

    2008년 2월 3일 당대회장에 걸린 일심회 관련자 징계를 반대하는 현수막

    이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당대회 의장 이덕우 변호사조차 “도대체 네 나이가 몇이나? 이렇게 어렵게 만든 공당의 사무부총장으로 진짜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기영은 1997년 대선이후 삼선동 시절을 함께 했던 후배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다. 그렇게 고생한 사람이 민주노동당이 분당되는 사태의 단초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 문제는 이후 민주노동당이 쪼개지느냐 마느냐를 다루는 핵심 쟁점의 하나가 된다. 2008년 2월 3일 열린 민주노동당대회에서 최기영 전 사무부총장과 이정훈 전 중앙위원 등 ‘일심회 관계자 제명 안건’ 등을 담은 당 혁신안이 상정된다. 그러나 자주파 대의원들이 이 안건을 삭제하는 수정동의안을 발의해 출석 대의원 862명 중 553명의 찬성으로 가결시켜 결국 제명안은 무산된다. 상식적인 판단조차도 사라져버린다.

    민주노총은 대중조직이어서 그 어려운 조건에서도 명맥을 이어가지만 정치조직인 민주노동당은 2008년 당대회를 마지막으로 분당의 길로 들어선다.

    필자소개
    이근원
    대학 입학과 동시에 전두환을 만나 인생이 바뀜. 원래는 학교 선생이 소망이었음. 학생운동 이후 용접공으로 안산 반월공단, 서울, 부천, 울산 등에서 노동운동을 함. 당운동으로는 민중당 및 한국사회주의노동당을 경험함. 울산을 마지막으로 운동을 정리할 뻔 하다가 다행히 노동조합운동과 접목. 현재의 공공운수노조(준)의 전신 중의 하나인 전문노련 활동을 통해 공식적인 노동운동에 결합히게 됨. 민주노총 준비위 및 1999년 단병호 위원장 시절 조직실장, 국민승리 21 및 2002년 대통령 선거시 민주노동당 조직위원장 등을 거침. 드물게 노동운동과 당운동을 경험하는 행운을 가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