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에게 언론자유가 있다고?
        2013년 02월 04일 04: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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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의 머리에 박혀버린 등식 하나 있습니다. “나쁜 전체주의” 정권 밑에서는 언론이 선전선동의 수단에 불과하다면, “좋은 민주주의” (와 자본주의)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여 “국민의 알 권리”를 지켜준다는 등식입니다.

    대다수가 – 언론들을 그다지 신뢰하지도 않으면서도 –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은데, 이 순진한 믿음을 다수가 가지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언론들이 만들어낸 우리 시야가 얼마나 좁은지를 잘 보여주는 듯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예컨대 북조선 주민에 비해서는 바깥세계에 대해 훨씬 더 객관적인 인식을 할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데, 사실 언론들이 만들어놓은 보이지 않는 “우리”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은 크게 봐서는 양쪽은 거의 매한가지입니다.

    실례를 하나 들어볼까요? 약 1년 전에 전동차를 만드는 현대로뎀과 현대상사에 경사가 났습니다. 구주 축구 대회를 앞두고 철도를 현대화하려는 우크라이나로 거의 150량의 차량을 파는 등 고액의 공급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업의 경사는 기업국가 대한민국 모든 구성원들의 경사인지라, “계약 따냈다”는 낭보는 곳곳에서게재됐습니다.(관련 링크)

    거기까지 좋은데, 그 다음에는 문제가 발생됐습니다. 현대로뎀이 공급한 차량들은 우크라이나에서 “국민적 재앙”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국 날씨를 기준으로 해서 제조한 차량들은 영하 40도까지의 대륙성 기후를 당연히 참아내지 못해 줄이어 고장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12월6일-20일간만 해도 현대 차량들은 20차례나 고장나는 등 우크라이나 철도 승객들을 괴롭혔습니다. “잘못된 구매”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증폭돼 정부에 대한 비판은 쇄도했으며(관련 링크) “휸다이” (우크라이나어식 “현대”Hyundai의 발음)는 주민 사이의 최악의 욕이 되고 말았습니다.

    현대로템

    현대로템의 전동차 모습(사진 출처는 http://www.kyivpost.com)

    차량 고장으로 인해서 며칠씩이나 난방이 안들어오는 차에 갇혀 각종 질병에 시달려야 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이해될만하지 않습니까? 이 일이 우크라이나의 최악의 정치적 스캔들로 번지자 급기야 그 대통령이 현대로뎀 차량의 구매를 “오류”라고 자아비판했습니다.(관련 링크)

    우크라이나의 영문 신문들을 보기만 하면 다 쉽게 알 수 있는 일인데, 러시아언론에서도 계속 기사가 나갔습니다.

    그러면, 이 일에 대해서는 국내 매체만 보는 사람은 과연 알 수 있을까요? 글쎄, 저는 열심히 검색해봤는데, 적어도 주요 언론에서는 아무 기사도 없었던 듯했습니다. 보도지침이 없어진 지 이미 25년 이상 지났는데, 현대로뎀과 현대상사에 불리한 기사가 안나오는 이유는? 아주 쉽습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과 같은 좌파자유주의적 언론마저도 거의 기업들의 광고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기업들 중에서는 현대로뎀 등 현대 계열의 기업들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러니까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휸다이”에 치를 떨어도 대한민국의 선량한 남녀들은 이걸 알 권리라고 없습니다. 기업 평판에 문제가 생기면 주식값으로 연결돼 있는데, 언론의 자유라고는 바로 여기까지입니다. 자본주의 세계의 그 어떤 “언론자유”도 주식보유자들의 “돈”을 공연히 건드릴 수가 없다는 것이죠.

    저를 부디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여기에서 꼭 현대로뎀을 “비방”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우크라이나 기후에 맞지도 않은 차량들을 억지 구매한, 실력과 전문성이 없는 우크라이나 정부에게 문제가 있다는 거죠.

    쏘련때만 해도 철도차량을 100% 국산으로 조달할 수 있었는데, 쏘련 망국 이후의 탈산업화의 비참한 결과라고 할 뿐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대한민국)의 일부 “관행”으로 봐서는 그런 규모의 구매라면 아마도 그 뒤에 또 모종의 “다른 거래”도 충분히 있었음직도 하는데, 구 쏘련 영토에서 다시 혁명이 일어난다면 이 일까지 포함해서 “도둑 정권” (cleptocracy)의 관료들의 모든 부정부패와 패악질들은 다 민중의 준엄한 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결국 전문성이 하나도 없는 “도둑 관료”들을 제대로 견제하지도 못하는 우크라이나 민중의 지금으로서의 무능인데, 이 일에 대한 보도가 국내 언론에서 전혀 없었던 것은 우리 “언론 자유”의 진정한 수준을 꽤나 잘 보여줍니다.

    국내 언론들은 (어차피 언제나 교체될 수 있는, 자본의 마름격인) 고급 관료들의 자녀들의 병역비리를 건드려도 되고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마음대로 파서 “다수”의 병적인 관음증을 만족시키면서 확대재생산시켜도 문제 없지만, 자본에 정말로 불리하다 싶은 이야기를 절대 싣지 못합니다.

    지금 다들 까먹었겠지만, 5년전, 2008년에 대우로지스틱스라는 한국 재벌이 마다가스카르에서 130만 헥타르의 농지를 임대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힌 적이 있었습니다.

    130만 헥타르라면 마다가스카르 농지 전체의 약 절반인데, 대우는 이를 임대한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선불금마저도 지급하지 않았고 임대료를 낼 생각은 아예 없었습니다. 임대의 목적은 “우리 나라 식량 안보”라고 밝히고요. 물론 대우에다가 이와 같은 전대미문의 특혜를 (아마도 “공짜” 아닌 방식으로?) 준 마다가스카르의 정권은 곧바로 민중의 유혈반란으로 인해서 퇴진해야 했지만, 마다가스카르에서 “대우 사태”가 벌어졌을 그 당시 국내 언론들은 과연 무슨 보도를 냈던가요?

    경제지와 주요 일간지 경제면에서는 대우의 “성공”을 알렸을 뿐, (일부 외국 언론들과 달리) 비판이라고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관련 링크)

    그 다음에 마다가스카르에서 민중반란이 일어나고 계약 이행은 당연 안됐고 이 일 자체가 망각되고 말았습니다. “국익”, 즉 재벌들의 부당한 돈벌이를 국시로 알고 유일사상으로 아는 대한민국 언론들의 “자유”의 수준은, 이 정도면 다 보이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는 언론 자유의 원칙은 있어도, 그 구체적 실천이라고는 자본주의적 질서 하에서는 사실상 거의 불가능합니다. 일면으로는 국내 언론의 부자유는 우리 선남선녀들의 심리적 안정에 기여한다고도 볼 수 있죠.

    한국 자본들이 밖에 나가서 무슨 일을 하는지, 그리고 바깥에서 그들에게 착취를 당하고 폭력과 폭언을 매일같이 당하는 사람들이 재벌국가 대한민국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우리 국내 대중들이 알았다면 과연 잠을 편안하게 잘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앗을까 싶어요.

    물론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겠습니다. 고공에서 천천히 몸이 망가져가는 현대차 비정규직들의 절망적이다 싶은 외침에 한국인의 다수가 귀를 막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보수화돼가는 사회에서는 연대의식은 점차 말라가고 있는 셈입니다.

    국내 노동자들에 대한 가혹 행위에 본노를 느끼지 않는 사람들은, 과연 국외노동자들의 문제로 의분을 일으키겠습니까? 여러분, 대한민국은 이대로 가면 정말 끔찍한 사회가 될 것 같습니다. 연대감, 타자를 “나”의 연장처럼 느끼려는 의식이 없는 삶은, 아무리 풍족한다 해도 과연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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