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위 속에 핀 붉은 동백꽃을 보며,
    장두를 떠올리다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 오경훈의 『제주항』에 대하여
        2013년 01월 21일 12: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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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는 연말, 연시를 고향 제주에서 맞고 싶었다. 방학도 했겠다, 채점도 마쳤다 해서 별다른 부담감 없이 12월 31일 마지막 비행기를 탔다. 서울은 한파로 인해 며칠 시끄러울 때였으나 제주는 상대적으로 퍽 포근했다. 비행기에서 방송으로 들은 바에 따르면 영상 2도라던가. 마중 나온 동생은 그 날씨도 이틀 전부터 갑자기 추워진 것이라 했다.

    날이 밝아 정원을 내다보니 동백꽃이 풍성하게 피어 있다. 역시 제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날씨가 따뜻해서 꽃이 핀 것이겠으나, 하필 그게 동백꽃이니 새삼 그 의미가 각별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제주에서는 동백꽃을 장두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마도 꽃이 질 때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통꽃으로 툭 떨어지는 모양이 효수 당한 장두의 머리를 닮아서 붙여졌을 게다. 생각해 보면 추운 겨울에 맞서 기어코 붉게, 붉게 피어나는 그 기상도 장두를 닮은 바 있다.

    장두를 다룬 내용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는 현기영의 장편소설 『변방의 우짖는 새』(창작과비평사, 1983)를 꼽을 수 있다. 이 소설에서는 1898년의 방성칠의 난, 1901년 이재수의 난이 다뤄지고 있으니 두 명의 장두가 소개된 셈이다. 『변방의 우짖는 새』는 훗날 박광수 감독에 의해 <이재수의 난>(1999)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작품을 새삼스럽게 얘기하는 것보다는, 완성도는 높으나 그에 합당할 만큼 소개되지 않은 작품을 살펴보는 것이 어떨까 싶었다. 제주에 풍성하게 핀 동백꽃을 놓아두고 상경한 후 오경훈의 연작소설집 『제주항』(각, 2005)에 손을 뻗은 까닭은 여기에 있다.

    오경훈의 『제주항』은 퍽 흥미롭다. 소설집을 관통하는 하나의 소재가 제주항이며, 이를 매개로 하여 각 소설들은 변방에 자리한 제주도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다채롭게 펼쳐내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제주항1-객사(客舍)」는 18세기 중엽 제주 목사 겸 방어사로 부임했던 노봉을 다루고 있는데, 노봉은 몸소 돌을 지고 현재 제주항의 기반이 된 산지포구를 축항한 인물이다. 「제주항3-비극의 여객선」은 일제 말기 중국ㆍ미국과의 전쟁에서 결전장으로 빨려 들어갔던 제주의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니까 출륙금지령(出陸禁止令)이 내려졌던 조선시대로부터 국권을 빼앗겼던 식민지시대, 이념 혼란이 극심했던 해방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면모가 이러한 방식으로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이 『제주항』이라는 것이다. 국사(國史)가 아닌 지역사(地域史)의 관점에서 세계사의 소용돌이를 파악해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제주항』은 적지 않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제주항』에서 장두에 관한 내용이 등장하는 소설은「제주항2-모변(謨變)」이다. 시간적인 배경은 이재수의 난이 일어나던 바로 그 즈음. 강화조약(江華條約)이 맺어지고 ‘재조선국 일본어민통상장정’이 발효됨에 따라 일본 어민들이 제주 바다에서 조업을 하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그들이 제주도민에게 주는 피해가 얼마나 컸느냐 하면 산지포구 동쪽 동대머리 언덕에 살던 어가(漁家)들 반이 전라도 경상도로 이사를 가 버렸을 정도였다. 제주목사가 저쪽 관찰사에 서한을 보내 그들을 귀환시켜 주도록 요청하였으나 돌아온 사람은 없었다.”(46쪽) 물론 제주도에 남은 사람들은 당연히 일본 어선의 출어에 반대했을 터이나, 조정은 오히려 일본의 편에 서는 양상이었다. “몇 해 전, 통리아문주사 안길수가 제주도에 왔을 때 조정은 그로 하여금 일본 어선의 출어에 반대하는 제주 어민들을 설득토록 하였다. 그 설득이라는 것은 조선국과 일본국 사이에 합의한 조약은 평등한 것이므로 섬 주민들이 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타이르는 것이었다.”(47쪽)

    제주 어민들이 이를 수긍하지 못했음은 당연하다. “강자와 약자 간에 서로 바다를 개방키로 한 것이 어찌 평등이 되는가. 동력선을 만들지 못하는 조선이 어찌 일본 바다로 나가 조업할 수 있는가.”(47쪽) 근대장비를 앞세운 일본 잠수기선의 해녀 어장 침범과 이에 따른 무분별한 해산물 채취 역시 심각하였다. “제주에 들어와 있는 일본 어선은 48척, 인원은 190명이었어요. 물속에서 송기관으로 숨을 불어내는 일본 머구리들은 한 사람이 생복 40관을 잡는데 물속에서 가쁜 숨을 누르고 버지럭거리는 우리 해녀들은 고작 2관을 잡는 거예요. 왜놈들을 빨리 쓸어버리지 않으면 해산물을 다 잃고 말 겁니다.”(64쪽) 그러니까 당시 제주 어민들은 생존권의 확보 차원에서 심각한 위기의식에 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사건이 터졌다. “해녀들은 반나체로 잠수하였으므로 그녀들의 작업장에 남자들이 접근하는 것은 금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일본 잠수부들은 섬의 풍속을 가소롭게 짓밟으면서 여인들이 있는 곳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녔다.”(46쪽) 그러다가 결국 일본 잠수부들은 해녀를 범하기에 이르렀다. 심각한 사건이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목사 이하 제주 관리들은 일인 머구리들로부터 뇌물을 받아먹으면서 그들을 비호할 따름이다. 장두가 출현하는 것은 바로 이 순간이다.

    “관이란 호렴이나 매기고 중간에서 뜯어내어 법강을 흐리게 하는 곳이 아닙니다. 엄정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제는 백성들이 일어나서 도의를 바로잡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일어서서 법과 기율을 세워야 할 때가 왔습니다.”

    기돌의 얼굴은 낮술을 한잔 걸친 것처럼 붉었다.

    “이 몸이 젊다 해도 어깨너머로 더러 배운 게 있는 즉 감히 주동이 될까 합니다. 소요에 가담한다 해도 모두 일률로 논단되는 것은 아니므로 수뇌가 목을 내놓으면 추종은 중형을 면할 수 있습니다.”

    기돌이 주동이 될 뜻을 미리 밝혀 숨을 삼키고 있는 사나이들에게 안심을 주었다. 황기가 끼었던 사나이들이 굳은 목을 텄다.

    “목을 내놓겠다는 거요? 두렵지 않소?”

    “성질 급해서 앞뒤 안 보고 덤비는 것 아니오?”

    “두렵지 않은 자가 어디 있겠소. 나는 여러 날을 두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두려움과 싸웠습니다. 옛날에는 왜 장두가 많이 나왔을까, 우리들은 너무 미욱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성질 급해서 목을 내놓는 게 아닙니다. 이웃과 맺어진 끈이 질기게 남아 가슴을 아프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마음이 더러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기돌은 감정이 확 퍼져서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힘이 솟는 것 같기도 하였다.

    “이웃이 불행한데 무심할 수 없단 말이지요. 동정심이 밭아버리면 사람도 짐승이나 다름없이 되는 법, 벌써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사소한 것을 얻으려고 앞뒷집 간에 싸움이 일고 시기하고 원망하고. 가난한 집에서는 음식을 놓고 다투기도 한다는 거예요. 정작 미워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49~50쪽)

    기돌의 두 차례에 걸친 거병(擧兵)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다. 민중의 움직임을 감당하지 못하고 등소(等訴) 수준에서 타협해 버린 다른 지도자의 위약함이 첫 번째 실패 이유이며, 천주교 세력의 폭압에 맞서 장두 이재수가 먼저 따로 움직였고, 이에 따라 천주교도의 보호라는 명목 아래 불국(佛國, 프랑스) 군대가 제주에 들어옴으로써 결국 거병의 시점을 놓쳐 버린 것이 두 번째 실패 원인이다. 승패를 떠나서 나는 장두가 출현하는 방식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장두는 민중 가운데서 어느 한 순간 불쑥 고개를 내민다. 그는 자신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스스로 쏟아내기 위하여 장두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의 앞에는 불행한 이웃, 그러니까 깨어져서는 결코 안 될 그러나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한 공동체가 자리하고 있다. 기실 제주도에서 이러한 장두가 툭툭 등장했던 것은 섬 특유의 공동체주의 위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마빈 해리스의 논문 「원시국가의 기원」(『식인과 제왕』, 한길사, 2000)은 ‘장두’라는 존재의 존립 방식을 해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는 ‘시원적’(pristine) 국가와 ‘제2단계의’(secondary) 국가를 구분하고 난 뒤, 시원적 국가의 빅맨에 관하여 설명한다. “인류학자들은 농업생산의 증강을 앞장서서 밀고 나가는 자들을 ‘빅맨’(big man, 왕초ㆍ우두머리 따위의 뜻 – 역자)이라 부르고 있다.(중략) ‘빅맨’은 부지런히 일하며 야심적이고 공공심을 가진 인물로서 자기 친척이나 이웃 사람들을 부추겨 많이 생산한 만큼의 여분 음식을 차려 큰 잔치를 베풀겠다고 약속하여 자기를 위해 일하도록 끌어들이는 자들이다. 잔치가 열리면 자기를 도와주었던 의기양양한 얼굴들에 둘러싸인 빅맨은 산더미 같은 음식과 선물들을 이것 보라는 듯 호기롭게 나누어주되 자기 몫으론 하나도 남기지 않는다.”(116쪽)

    그렇다면 빅맨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위대한 시혜자’(great provider)로서의 명성이다. 그리고 빅맨은 “사람들을 끌어 모아 자기를 위해 일하게 하는 능력 못지않게 사람들을 끌어 모아 자기를 위해 싸우도록 하는 능력으로 유명했다.”(119쪽)

    먼저 각 마을 단위의 공동체가 있고, 마을 단위 공동체의 대표들이 은밀하게 모여 가진 회합에서 장두가 정해지면, 장두의 지휘에 따라 각 공동체에서 봉기에 참여할 장정들의 수를 정하고, 회합에 참여하지 않은 마을 공동체 대표에게도 연락을 넣어서 합류 여부를 파악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은 시원국가의 상을 떠올리게 한다.[선거 때마다 확인하게 되는 “여당도 아니고 야당도 아니고 괸당(친인척의 제주 방언)이 최고”라는 제주의 괸당 문화도 기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빅맨의 존립 방식은 스스로를 비워나가는 양상으로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장두의 존립 방식과 일치한다. 농업ㆍ어업을 주로 하던 시대가 저물면서 이러한 공동체가 거의 해체되었으나, 현재 국가의 지도자가 되겠노라 정치인으로 나서는 이들에게 장두의 덕목을 요구할 수는 없을까. 공동체주의의 어떤 요소들을 복원시켜 자본주의의 균열 지점을 파헤쳐 들어가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는 없을까.

    도저히 질 수 없다고 했던 총선에서 패배했던 민주당은 이번 대선에서도 충격적인 패배를 맛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 보도 내용을 보건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듯하다. 아마 당연한 양상일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스스로를 비우는 방식으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내 권력을 두 손에 쥐고 가능한 모든 것들을 쥐락펴락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민중 가운데서 불쑥 고개를 내민 후보 두 분의 성적표도 퍽이나 초라했다. 민중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무력감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암담한 상황을 맞아 겨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책 속으로 스며들어가 다른 길을 꿈꿔보는 정도. 이번 대선 뒤에 읽은 책은 『제주항』이었다.

    필자소개
    가톨릭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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