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생각 : 대선이 끝나고
    2012년 12월 24일 10: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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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올 게 왔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예상대로, 두 명의 주류 보수주의자들 중에서는 최악의 극우주의자가 (주)’대한민국’의 CEO로 뽑히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 (주)’대한민국’을 오늘날 같은 형태로 실질적으로 창립한 군사깡패 출신의 창업주 딸이 집권했다고 해서, 우리가 꼭 다시 한 번 군사 깡패들의 시대로 돌아갈 일도 없을 것입니다.

유신 독재의 시발점은, 1971년 대선에서 박정희가 그 당시로서 매우 급진적으로 보였던 김대중에 대해 느꼈던 위기감이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주)’대한민국’ 대주주들에게 위기감을 줄만한 비주류적 도전자라도 보이나요? 진정한 의미의 진보적 후보라고 할 만한 김소연, 김순자 후보의 성적을 보시면 굳이 답할 필요도 없어집니다.

(주)’대한민국’에서의 정치투쟁이란 결국 “그냥” 신자유주의적 보수와 극단적인 국가주의적 색채까지 가미된 극우 사이의 경쟁구도인데, 그 어느 쪽도 그 대주주들의 입장을 위협할 리가 만무합니다. 그러니까 총선이나 대선 같은 제도들은 위협받을 것 같지 않습니다. 어차피 이 체제의 순조로운 가동에 이 제도들이 또 필요하니까요.

독재가 돌아왔다기보다는 대형 토건 프로젝트와 적당한 안보장사와 上國에 대한 조선시대 이상의 맹종적 태도와 노동자에게만 적용되는 잔혹한 신자유주의적 메카니즘들이 그대로 남아 지속된 것이죠.

“빨갱이 사냥”은 지난 5년에 비해서 과연 심해질는지 그저 두고 볼 일입니다. 그렇게 될 수도 있지만, 또 일면으로는 (주)’대한민국’의 상품을 그래도 사주어야 하는 국외의 민중 등의 감수성이라도 감안해서 아마도 남영동의 고문실은 다시는 부활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사진=인터넷서점 알라딘 블로그)

국가주의, 군사 파시즘의 유산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그냥” 신자유주의적 보수, 즉 문재인 따위들이 과연 왜 패배했을까요?

아주 궁극적 차원에서는, 이는 군사적 파시즘 시대에 대한 우리 민중들의 이중적인 태도와 유관한 듯합니다. 지금으로서야 朴이든 文이든 그저 민생 수사로 신자유주의적 본질을 가리고 있는, 서로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도 않는 정객들이지만, 그들이 기대는 “유산”은 각각 다릅니다.

朴의 상징적 정치자본은 1961-1979년이고, 文은 1998-2008년간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장사합니다. 해고 위협에 떨고, 주택 담보 융자 받아놓고 인제 부동산 버블이 곧 터질 것 같은 데에 대한 공포에 떨고, 돈이 없어서 최고의 학원에 보내지 못한 아들놈이 아무래도 수도권 대학에 못들어갈 것 같아 또 겁에 떠는 우리 선남선녀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과연 어느 시기가 보다 큰 상징적 가치를 보유하나요? 불문가지의 일이라고 봅니다.

1998-2008년의 정권에 비해서는 당연히 (주)’대한민국’의 실질적 창업주는 훨씬 잔혹했습니다. 그러나 일면으로는 그 당시로서는 (주)’대한민국’이 아직도 매출고를 빨리빨리 올려 자산과 고용규모를 빨리빨리 키울 수 있었던 시대이었기에 “시장”은 1998년 이후보다는 그 때에 훨씬 덜 잔인하게 작용했던 것이죠. 이건 꼭 창업주님의 은덕도 아니었습니다.

창업주님이 지금까지 천수를 누리셨다면 분명 최악의 신자유주의자로 환골탈태(?)하여 비정규직을 쥐어짜는 방식으로 그 죽을 놈의 “효율”을 높이려고 애썼을 것입니다. 단, 인력이 태부족하고 임금이 지금의 중국에 비해서도 훨씬 쌌던 시절에 “비정규직 착취”는 아직 무의미했던 것일뿐이죠. 차이는 그것뿐이지만, 이렇게도 많은 선남선녀들이 아직도 창업초기의 좋았던 고용시장이나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었던” 신분상승의 기회들을 다 창업주님의 聖恩이라고 보나 봅니다. 북조선의 형제자매들이 로켓 발사와 같은 “강성대국의 성공”들을 장군님의 은덕으로 보듯이 말입니다. 아, 우리는 정말 그렇게까지 서로 다른가요?

결국 고속성장 시대에 취업이 쉽고 오지의 시골학교 출신도 열심히만 하면 서울대 갈 수 있었던 데에 대한 기억의 힘으로 다카키 관 장사가 노무현 관 장사를 누른 셈이죠. 우리의 주류정치는 관 장사 이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은 좀 아픈 이야기긴 하지만,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죠. 지금대로 가면 그 어떤 미래도 없는, 인제 조금 가다가는 엄청난 경제적 재앙이 올 게 뻔한 나라에서는 남은 게 과거기억뿐입니다.

우리가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우리 미래가 뭘 가져다줄 것인가를 똑바로 감지해서인지 안정한 과거속으로 회귀하려 합니다. 그 유명한 타조처럼, 그냥 머리를 모래 속으로 집어넣으려는 거죠. 그런데 복고풍이 우리 머리들을 지배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경기 냉각화에 따르는 비정규직들의 대량해고도 고질적인 청년실업도 영세업자들의 줄도산도 그냥 그대로 이어지거나 더 속도가 붙을 뿐일 것입니다.

朴 후보의 “민생” 이야기는 결국 MB의 “747공약”과 다르지 않게, 곧 “비과학적인 환상소설”로서의 그 본질을 드러낼 것입니다. 비록 “유신 혈통”이라 하더라도 유신시대처럼 좋았던 고용시장을 朴당선인이 그 무슨 마술봉으로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이 다 노출되면, 민심은 과연 어디로 흘러갈까요?

불길한 예감이지만, 朴의 쉽게 예상되는 “정치사기행위 탄로”는 아마도 당분간은 새로운 “안철수 현상”으로 이어질 듯합니다. 노동정치의 게토화, 분열, 내분도 아주 큰 문제지만, 기본적으로는 아직까지는 “성장”에 익숙해진 (주)’대한민국’ 피고용자들의 절대 다수가 그들이 이 착취공장을 직접 접수하여 ‘노동자 직접 관리’ 방식으로 보다 인간적 환경으로 개조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거의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레드 콤플렉스” 문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는 “성장신화”와의 우리들의 자기 동일화는 근본적 문제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살고” 열심히 경쟁하고 열심히 약자를 짓밟고 열심히 아부하고 열심히 조직생활하고, 잘만 되면 열심히 위로 올라가는 삶의 모드에 깊이 중독돼 있고, 더 이상 어디로도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져도 이 모드를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뼈빠지게 장시간 일해도 그 피로를 술과 마누라 패는 일로 풀고, 아무리 비정규직으로 늘 해고 공포에 떨어도 어떻게든 개인적 네트웨크나 더 살인적인 노동을 수용하려는 태도 등으로 이걸 해결하는, 그런 삶을 떠나서 더이상 그 어떤 지평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다는 아니고 다수가 그렇다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아무리 한국적 자본주의에 완전하게 익숙해져 다른 삶을 보지 못해도, 자본주의의 그 내재된 불안성은 언젠가 우리 삶을 송투리째 다시 뿌리 뽑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 때는 우리는 세계를 다시 인식해야 할 겁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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