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낼 수 없는 꿈, 남원 초록배움터!
    [에정칼럼] 당적 뛰어넘는 모두의 연수원, 대안생태공간으로 다시 세우자
        2012년 12월 13일 01: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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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 수년 전, 국회의원 한 명 없던 한줌 운동권 소수정당 시절부터 수많은 이들의 피땀으로, 눈물로 만들어진 소중한 공간입니다. 배움터는 수많은 전사들에게 기댈 수 있는 언덕이었고, 세상을 뒤집을 힘을 준비할 편안한 휴식처였고,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해방구였으며, 물과 바람과 태양의 나라, 미래를 준비하는 대안의 공간이었습니다. 그토록 소중한 공간이 없어진다고 합니다.”(지리산초록배움터 까페에 놀터지귀 님이 쓴 「총회일정 변경을 요청합니다」 중에서)

    ‘지리산초록배움터’로 간판을 바꿔 달았던 게 벌써 3년 전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남원연수원’이라 부른다. 2001년, 황광우 선생을 주축으로 두동공동체에서 폐교를 구입하여 ‘민주노동당 중앙연수원’의 간판을 달고 출발한 이래, 이곳에는 지난 11년간 진보정당과 그 당원, 지지자들의 순수함과 열정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왔다.

    타워크레인 노조 출정식, 최초의 진보정당 의원당선자 연수도 여기서

    천여 명의 타워크레인 노동조합 조합원들의 출정식이 여기서 열렸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진보정당 국회의원 당선자 연수가 있었던 곳도 여기다. 매년 여름, 진보정당 당원과 지지자들의 아이들이 어린이 캠프에 참여해 자율 노동과 생태의 가치를 배웠다.

    어느 핸가, 해맞이 행사에 왔던 사람들이 소원을 써서 묻어둔 타임캡슐이 공터 어디엔가 묻혀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 전국 각 지역의 지구당, 노동조합, 사회단체들이 교육 공간, 결의를 다지는 공간으로 활용해왔다. 아울러 연수원은 개인, 동호회, 가족단위로도 지친 몸과 마음을 누이고 주변의 섬진강, 지리산을 즐기는 휴식과 힐링의 장소이기도 했다.

    삐까번쩍하지 않아 마음 편안히 머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자연을 닮은 사람들, 자연을 닮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편안함이 더했던 곳이다. 그래서 서울, 경주, 부산 등 그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매년 한두 번 이상은 연수원을 꼭 다녀가는 매니아가 늘었다.

    가난한 진보정당의 연수원이니 임대료조차 밀리기 일쑤였지만, 이곳을 아끼고 사랑한 사람들의 지원과 품앗이가 이어지면서 남한 사회에서 보기 드문 독특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폐교 한구석에 세워져있던 이승복 동상은 어느 해 건설노련 수련회가 열린 뒤 ‘차별철폐’ 머리띠 두른 전태일 동상이 되어있었다.“능력껏 집어넣고 필요한 만큼 꺼내먹자”당원들이 기증한 대형냉장고에 누군가 써 붙인 글귀는 모두가 공감하는 연수원 규율이 되었다.

    이하 사진은 홍양현님 블로그에서(http://blog.daum.net/ohmyfarm01/13755425)

    겨울 명물인 황토방, 여름 명물 원두막도 연수원지기들과 당원들의‘자유로운 노동’으로 만들어졌다. 돈이 없어도 하루 한 시간 노동을 하면 누구나 먹고 자고 머물 수 있었다. 청소도 빨래도 도서관도 운동장 잡초도, 당원들의 손으로 하나씩 그렇게 정리되어 갔다. 남원연수원은 강제하지 않아도 스스로 돌보고 가꾸는 자발적인 헌신, 그리고 땀으로 일구어낸 드라마였다.

    풍력-태양력 발전기, 생태뒷간, 빗물처리시설, … 생태적 삶을 실험하다

    또한 남원연수원은 태양과 바람의 나라를 꿈꿨던 진보정당이 생태적 실천사업으로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한 최초의 공간이기도 했다. 핵발전과 중앙집중식 화석에너지의 문제를 끊임없이 지적했던 조승수 전 의원이 제안하고 당원들이 한푼두푼 모아 폐교 옥상에 10kW 태양광발전기를 만들어 올렸다. 전기안전공사 노동조합에서는 낙뢰를 맞지 않도록 피뢰침을 설치해주고 갔다. 그로써 사람들은 더 이상 차가운 교실바닥에 스티로폼 깔고 떨면서 자지 않아도 되었다. 겨울에도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이 된 것이다.

    본격적으로 생태에너지를 매개로 한 교육․연수․체험의 공간‘지리산초록배움터’로 거듭난 것은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다. 연수원을 만들고 지키고 가꿔온 주축들은 다행히도 진보신당으로 함께 해 연수원을 새롭게 활용하는데 뜻을 모았다. 그렇게 해서 연수원은 재생가능에너지 설비를 중심으로 더욱 생태적인 공간으로 바뀌어갔다.

    진보신당 녹색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당원, 지지자들의 유가환급금을 모아 발전차액지원제도를 활용한 3kW 태양광발전기가 추가로 설치되었다. 풍력 발전기‘바람모아’, 쉐플러 조리기 ‘햇빛아궁이’, 자전거 발전기 ‘힘모아’가 만들어진 것도 이때다. 생태뒷간 ‘거름모아’, 빗물처리시설, 400여 평의 밭이 생생한 교육과 체험의 장이 되었다.

    진보정당 할거의 시대, 초록배움터 해산위기

    그런데 지난 10월 30일 초록배움터 운영위에서 해산이 제안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해산의 가장 큰 이유는 재정의 문제이다. 처음 시작부터 안정적 운영을 위한 토대가 갖춰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초록배움터의 활동과 지향에 공감하는 회원을 늘리고 연대 사업을 확장해 가야할 과제가 있었다.

    그러나 진보신당 내 통합/독자 논쟁이 극에 달했던 2011년 하반기부터 회원이 확대되기 보다는 회비 납부자가 줄었고 활동과 사업 또한 위축되었다. 진보정치, 노동정치를 둘러싼 혼란과 위기와 맞물려 초록배움터를 함께 책임져 가야할 주체들이 더 이상 정치적으로 하나로 묶일 수 없었다.

    민주노동당 분당 당시엔 정치적으로 함께 했던, 그래서 그 공간을 사랑했고 발전시켜 나가고자 했던 사람들이 진보신당에서 통합진보당으로 다시 진보정의당으로 분당되는 과정에서 뿔뿔이 흩어졌다. 또 일부는 녹색당원이, 그리고 누군가는 그 어느 정당에도 속하지 않는 정치적 난민이 되었다.

    11월 30일 해산안을 다루는 회원총회가 개최 되었으나, 총회 위임권과 관련해 논란이 되면서 당장의 처리는 유보되었다. 내년 1월 19일 다시 회원총회를 열어 조직 진로를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해산안과 상근과 일상 활동은 한동안 접고 회원과 회비납부는 유지해 종자돈을 모으자는 발전적 해산안(또는 휴면안)이 제안된 상태다. 해산할 것인가 다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종자돈을 모으기 위해 휴면할 것인가? 두 안 모두 지난 11년 동안의 역사가 담긴 공간을 포기하는 걸 전제 하고 있다. 실력이 안 되면 포기하는 게 맞다.

    끝낼 수 없는 꿈이라면 다시 이어가야

    그러나 그 실력이란 게 진보신당과 진보신당 당원들만의 실력으로 한계지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특정 정당의 연수원이 아니라 진보정치의 흐름과 함께 하는 녹색사회 전환을 실험하는 공간으로 초록배움터를 만들고자 했지만, 진보신당의 틀을 넘어선 확장엔 한계가 있었다. 진보신당만의 공간을 넘어 진보정의당, 통합진보당, 녹색당을 아우르는 공간으로 가져가고자 하는 정치적 협상은 불가능한 기획인 것일까? 감정을 넘어서는‘정치’가 여기서 작동해야 하지 않을까?

    남원연수원 식당의 젓가락들은 제각각이다. 이 사람 저 사람이 가져와 모은 것이라 그러할 게다. 제각각이여서 조금 불편하지만 그래도 밥을 먹는데 지장은 없다. 이탈리아 민중의집엔 당적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민중의집에서 연대하고 함께 가꿔가고 있다고 한다. 그처럼 초록배움터를 매개로 녹색사회 전환을 위한 공동의 실험을 시도해 가자. 석유정점과 기후변화 시대에 녹색사회 전환을 위한 준비와 실천은 작은 정치적 차이보다 더 큰 공통과제이다. 지난 11년의 역사와 성과를 여기서 멈추거나 후퇴할 수 없지 않은가.

    “만인이 자유롭게 일하며 사는 세상” 초록배움터의 명물, 황토방 대들보에 새겨진 글귀다. 그런 세상을 희망하는 자, 대안적 생태사회주의를 꿈꾸는 사람들이 다시 모여 힘을 보태자. 당적을 뛰어넘는 모두의 연수원, 대안 생태 공간으로 이어가 보자.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비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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