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 때 돌아보는 정치영화들(2)
    [영화잡론] ...덜 불행해질 권리를 포기할 이유는 없다
    By 문석
        2012년 12월 11일 01: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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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야흐로 한국은 2012대선의 한 복판에 서 있다. 선거와 정치는 영화의 소재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현실의 대선 시기에 영화로 선거와 정치를 다루었던 작품들에 대해 문석 <씨네21>편집장이 글을 보내왔다. 현실같은 영화, 영화같은 현실이다. 글이 너무 길다. 그래서 3회에 나누어 게재한다. 선거 때 돌아보는 정치영화들(1)을 보시려면 여기를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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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워스/ Bulworth/ 1998/ 감독 워렌 비티/ 출연 워렌 비티, 할리 베리, 숀 애스틴

    <불워스>(Bulworth, 1998)도 조지 클루니처럼 여러 편의 영화를 연출하기도 한 배우 워렌 비티가 감독, 제작, 각본, 주연까지 맡은 영화다. <불워스>는 앞선 영화들처럼 원작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티의 친구이자 한때 민주당원으로서 테네시 주지사를 역임했던 존 제이 후커의 일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후커는 정치와 사업을 병행했는데 완전히 파산해 무일푼 신세가 된 적이 있으며 이 과정에서 온갖 부정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불워스>의 주인공인 제이 빌링턴 불워스(워렌 비티) 또한 한때의 후커처럼 절망에 빠진 사내다. 캘리포니아주 민주당 상원의원인 그는 잘못된 투자로 전재산을 날려먹었고 정치에도 회의를 느끼고 있다. 돈 때문에 억지로 부부관계를 맺고 있는 아내와 아버지를 용돈 주는 기계 정도로 여기는 딸도 그의 절망에 한몫한다. 결국 그는 중대한 결단을 내린다. 자신을 암살하는 킬러를 고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거액의 생명보험금을 아내와 딸에게 안겨줄 수 있을 테니.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자는 자유를 얻는다고 했던가. 이때부터 불워스의 행동은 자유로워진다. 아니, 자유로워도 너무 자유로워져 거의 미친놈으로 보일 지경이다. 눈앞에 닥친 선거를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그가 벌이는 행동은 그가 이전에 해왔던 것과 정반대다.

    흑인들 앞에서는 정치자금도 내지 않고 범죄만 저지르니 흑인들이 무시당한다고 연설하지 않나. 민주당의 전통적인 자금원인 할리우드 관계자들 앞에서는 “당신들이 만드는 영화는 다 쓰레기야”라고 말하지 않나, 유대인들에게는 돈 밖에 모르는 인간들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또 금융, 보험, 대기업처럼 많은 기부금을 내는 집단 앞에서도 욕설을 퍼부어 산통을 깨놓는다.

    <불워스>의 한 장면

    게다가 그는 한술 더 떠 아름다운 흑인 여인 니나(할리 베리)를 좋아하게 되면서 흑인 젊은이들과 어울리게 되고 랩까지 따라하기 시작한다. 그는 랩이라는 수단으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미국 정치를 더럽히고 있는 온갖 집단에 욕설을 퍼붓는다. 강연에서든 후보자 토론회에서든 길거리에서든 그는 랩으로 더러운 세상에 돌직구를 던진다(물론 그의 말이 모두 이성적인 건 아니다).

    <불워스>가 재밌어지는 건 이때부터다. 그의 공격적인 말과 파격적인 행동이 유권자들에게 신선함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 <컴백 홈> 시절의 서태지 패션으로 전국 네트워크 인터뷰에서 욕설 섞인 랩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정치인의 모습에 사람들은 흥미를 갖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 랩의 가사는 “미국이 기회의 나라라고? 버거킹에서 일해 무슨 돈을 벌겠어? 교육이 잘못됐다고는 하지마, 원래 교육이란 없었어. 감옥에 있는 수백만 형제들 돈 몇 푼이 없어 못 나오지. 기회의 균등이 보장된다지만 웃기는 얘기.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눈곱만큼이나 생각할까?” 같은 내용이니 통쾌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이에 따라 캘리포니아의 지역 정치인이었던 그에게 전국적인 관심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가 욕을 퍼붓는데도 로비 단체들은 거액의 기금을 제공하며 유권자들은 그를 아이돌처럼 환영한다.

    불워스는 새로운 정치 방식에 스스로 재미를 느끼게 되고 다시금 의욕을 찾지만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자신을 암살하도록 한 명령을 취소할 수 없어진 것이다. 그는 암살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면서도 즐거운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방방곡곡을 누빈다. 과연 불워스의 정치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 암살의 위험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엄정한 잣대로 본다면 <불워스>의 정치관은 지나치게 순진하다. 정치인이 그동안 누리던 기득권을 버리고 보통 사람, 특히 여기서는 하층 흑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정치를 행한다면 과연 세상이 달라질까. 뭐 그러면 지금보다야 나아지겠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기대까지 하긴 어렵다.

    하지만 약간 너그러운 눈으로 바라봐준다면 <불워스>는 현대 미국 정치판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폭로한다는 점에서 괜찮은 영화다. 무엇보다 <불워스>의 대책없이 막 나가는 무대뽀 정신과 블랙 유머감각은 꽤 성능이 좋다. 또한 <불워스>는 큰 기대를 얻었지만 결국 월스트리트를 비롯한 기득권층에게 커다란 부를 안겨준 클린턴 시대에 대한 골수 민주당원의 이의제기이기도 하다.

    게다가 불워스가 부르는 어떤 랩 가사도 지금 한국에서 다 먹힐만한 설득력있는 이야기다. 물론 한국에선 정치인이 랩을 하느니 힙합가수가 정치를 하는 편이 더 건전해 보이지만.

    * 비밀투표/ Secret Ballot/ 2002/ 감독 바박 파야미/ 출연 시러스 아비디, 골바하 장할리

    대의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확립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기껏해야 19세기 이후로 성립된 이 제도는 민중들의 뜨거운 투쟁 속에서 만들어진 게 사실이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란의 한 오지 마을을 배경으로 한 <비밀투표>는 대의제의 근본 문제를 곱씹게 하는 영화다. 그렇다고 부담가질 필요는 없다. 이 영화는 소박하고 따뜻하고 시종 미소를 머금게 하는 잔잔한 유머로 일관되니까.

    영화는 이란의 자그마한 섬에 상자 하나가 투하되며 시작된다. 이날은 전국적인 투표일로 이 벽촌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이 마을을 경비하고 있는 2명의 군인 중 한명은 중앙에서 파견되는 공무원과 함께 섬마을을 돌며 투표를 받아야 한다.

    일은 시작부터 꼬인다. 투표를 진행하러 온 공무원이 여자라는 게 첫번째 문제다. 이슬람 문화에 젖어있는 군인은 여자와 함께 이런 업무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불만이고 불편이다.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지만 신성한 투표라는 과업은 이뤄내야 하는 상황. 어쩔 수 없이 둘은 자동차를 타고 마을을 돌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도무지 민주주의라는 제도와 친하지 않아 보인다. 어떤 이는 여자들을 왕창 데려와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투표하게 하려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세상은 오로지 신이 관할한다며 투표를 거부하기도 한다. 어떤 여성은 후보들의 사진이 모두 남자라며 감히 보지 못하겠다 하고 어떤 이는 자신의 물건을 사지 않으면 투표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알고 보니 그는 투표권도 없는 외국인이다).

    <비밀투표>의 DVD 표지

    이런 소동 속에서도 투표를 주재하는 여성 공무원은 신념을 갖고 끈기있게 일에 매진한다. 어찌나 열심인지 심지어 고기잡이 나간 배로 찾아가 투표를 받아올 정도다.

    그녀는 거듭 말한다. “투표에 참여해야 세상이 좋아진다”고, “투표를 하면 소들도 건강해지고 마을도 풍요로워진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우리가 보기에도 그들의 삶이 그런 제도적 행위와 큰 연관을 가진 듯 보이지 않는다.

    바박 파야미 감독은 두개의 장면을 후반에 배치함으로써 고민할 여지를 남긴다. 하나는 시집갔다 쫓겨온 소녀의 에피소드다. 시댁에서 소박맞은 이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면 아버지에게 맞아죽을 것이라며 걱정한다. 그토록 열성적이었던 공무원조차 이 소녀에게는 감히 투표하라는 권유를 하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의 문제, 즉 신정이 행해지고 있는 이슬람 국가의 여성 문제를 절감하고 있는 이 소녀(이 소녀는 16세인데, 이란에서는 16세 이상에게 투표권을 부여한단다!)는 스스로 투표하겠다고 말한다.

    또 하나는 두 사람이 탄 지프차가 신호등에 걸리는 장면이다. 사막 한 가운데 덩그러니 세워진 신호등이 빨간 불을 빛내자 군인은 지프를 세운다. 정해진 시간까지 군인 막사로 가야 뭍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공무원은 어이가 없다. 군인은 말한다. “법은 지켜야죠.” 그러자 공무원이 말한다. “여긴 사막 한가운데라고요. 법은 아무 의미도 없어요.” 다시 군인이 말한다. “하루 종일 법에 관해 말한 건 당신이잖아요.”

    이 부조리한 상황은 어쩌면 현대 이란이 겪고 있는 정치적 문제를 은유적으로 비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는 관습과 전통이라는 가치와 정치 제도의 충돌을 의미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밀투표>에서는 자그마한 변화를 위해 선거 제도를 이식하려는 이상과 그러한 제도로부터 벗어난 삶을 영위하려는 현실 사이의 간극이 드러난다. 이 대립을 조화시키거나 특정 입장을 취하지 않는 것은 이 영화의 단점이지만 장점이기도 한다.

    * 스윙 보트/ Swing Vote/ 2008/ 감독 조슈아 마이클 스턴/ 출연 케빈 코스트너, 매들린 캐롤, 폴라 패튼

    <스윙 보트>는 앞서 소개한 영화들에 비해 영화적으로 가장 뒤쳐지는 영화일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나름 의미가 있는 영화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정치/선거영화로는 특이하게도 정치인이 아니라 유권자, 그것도 평균 이하의 유권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기 때문이다.

    문제의 주인공은 뉴멕시코주 텍시코라는 시골에 사는 버드 존슨(케빈 코스트너)이다. 전형적인 화이트 트래시(교육받지 못하고 블루칼라인 백인)인 그는 게으른데다 늘 술에 절어산다. 당연히 정치에 관심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런 그가 대통령 선거인단에 등록한 것은 그보다 정신연령 면에서 훨씬 성숙한 딸 몰리(매들린 캐롤) 때문이다. 모범생인 몰리는 사회 수업의 일환으로 아버지를 선거에 참여시키고 있는 것.

    마침내 투표일이 되자 몰리는 버드에게 꼭 투표할 것을 일깨운다. 그런데 하필 그날 버드는 일하고 있던 양계장에서 해고되고 홧김에 술을 마시느라 투표는 까마득히 잊어버린다. 투표소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던 몰리는 부끄러운 아버지를 대신해 몰래 투표를 시도한다. 그때 관리인의 실수로 전원이 꺼지고 아직 기표되지 않은 몰리, 아니 버드의 투표용지는 투표기계에 끼워지게 된다.

    공교롭게도 선거 결과는 초박빙으로, 버드가 살고 있는 뉴멕시코주의 결과에 따라 승자가 결정되게 된다. 게다가 뉴멕시코주의 결과도 버드의 한 표로 결정되게 생겼다. ‘스윙 보트’(swing vote)란 말 그대로 흔들리는 표심을 의미하며 따라서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표를 의미하는데, 버드는 말 그대로 스윙 보터가 된 셈이다. 열흘 후로 예정된 그의 한 표에 따라 미국의 4년이 결정되니 전국의 언론이 텍시코로 찾아오고 급기야 양당 후보까지 시골마을에서 마지막 선거운동을 펼치게 된다.

    사실 <스윙 보트>의 이야기가 참신한 것은 아니다. 미국의 선거제도가 간접선거인데다 한 주의 승자가 전체 표를 모두 가져가는 방식이다 보니 이미 오래 전부터 비슷한 상상력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나왔던 모양이다. 하지만 제작진은 2004년 대선에서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주장한다. 아들 부시와 존 케리가 맞붙은 그 해 대선에서 실제로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된 플로리다주의 결과 덕분에 부시가 승리하지 않았던가.

    어쨌건 소동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양 후보는 버드의 한 표를 가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버드가 좋아하는 낚시터를 개발할 계획이던 공화당은 갑자기 친 환경 노선을 내세우고 버드가 양계장의 ‘인 소싱’(아웃소싱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공장이 멕시코 등지로 나가는 게 아니라 그곳에서 노동자를 미국으로 수입해 저임금 노동을 시킨다는 것) 문제를 제기하자 모든 인종이 공존하는 정책을 내세웠던 민주당은 갑자기 노선을 선회한다. 양당의 정체성은 버드의 말 한 마디에 따라 조변석개한다. 버드는 현직 대통령인 공화당 후보와 민주당 후보의 각종 자리에 불려다니게 되며 순식간에 전국적 스타로 부상한다.

    <스윙보트>의 영화포스터

    이 아수라장에서 유일하게 총명함을 보여주는 건 몰리다. 순수한 몰리는 아버지에게 쏠리는 관심이 부담스럽지만 어떤 원칙으로 이 난국을 헤쳐가야 하는지를 안다. 버드가 스윙 보터가 되자 미국 전역에 있는 사람들은 버드 앞으로 엄청난 양의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 안에는 그들이 겪는 삶의 고통이 담겨있다. 의료, 실업, 노동, 교육 등 미국인들이 겪고 있는 온갖 문제를 실은 이 편지를 몰리는 읽고 정리한다. 버드는 이 소동을 즐기려고 하고 있지만. 마침내 선거 전날 버드 한 명을 위한 대통령 후보 토론회가 열리게 되면서 버드는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다.

    <스윙 보트>가 바라보는 미국의 정치란 뚜렷한 신념에 근거한 그것이 아니라 오로지 표심의 향배에만 관심을 쏟는 것이다. 또 돈이 된다면, 시청률을 만들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보도할 수 있는 언론 또한 미국의 정치와 사회를 엉망으로 만드는 조력자다.

    게다가 버드로 상징되는 유권자도 투표를 고민하기 보다는 정치권과 언론의 난장터에서 놀아나는 존재로 묘사한다. 그리고 강조한다. 이 카오스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투표가 중요하다고. 그야말로 한 표 한 표가 정말로 소중하다고 말이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정치판이란 그런 곳이다. <프라이머리 컬러스>의 스탠턴처럼 추악한 오입쟁이와 <킹메이커>의 마이어스처럼 교활한 보좌진들과 <왝 더 독>의 브린과 모츠 같은 사기꾼들로 이뤄진 곳 말이다. 정치인이기를 포기함으로써 진짜 정치가가 된 <불워스>의 불워스 같은 이는 정말 드문 그런 곳 말이다. 그렇다고 행복해질 권리, 아니 덜 불행해질 권리를 우리가 포기할 이유는 없다.

    결국 <스윙 보트>가 다소 어설프지만 진심으로 일깨워주듯 우리의 한 표는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무기가 된다. 물론 그렇게 만들어내는 법과 제도, 그리고 시스템이 <비밀투표> 속 사막 위 신호등처럼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우리가 이 모양 이 꼴인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말이다. <계속>

    필자소개
    문석
    중앙일보 기자로 있다고 영화가 좋아서 씨네21로 이직하여 현재 씨네21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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