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로의 침묵과 나의 회복
        2012년 12월 06일 02: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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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은하씨가 2011년 종로에서 일어났던 성소수자 혐오 범죄의 당사자로서, 그 사건의 전후 과정에 대한 설명과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회복하는 과정에 대해 글을 보내왔다.  한 사건의 우연한 피해자라고 볼 수 없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범죄라는 우리 사회의 위험한 폭력적 경향의 피해자로서, 이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폭력의 피해자가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한 우리의 성찰과 고민꺼리를 제공해주고 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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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건은 마음 속에서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오랜 시간을 들여 정리해낸 이 이야기를 함으로써, 나는 종로 성소수자 혐오범죄 사건을 어떻게 겪었으며 사건의 논의과정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가를 알리고자 한다.

    내가 어떤 일을 겪었는가를 이제라도 이야기하는 이유는 누군가를 질타하고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고립과 배제, 왜곡된 분노 속에서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나를 용서하고 싶다. 나는 이 이야기가 그 동안 가해-피해구도가 성립하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온 사람들의 부족함을 비난하기보다는 어떤 노력이 함께 해야 하는가를 제시하는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

    의도여하를 불문하고 어떻게 아픔이 재생산될 수 있으며, 피해당사자에 대한 섣부른 규정이 왜 위험하며, 사건을 겪은 당사자의 이야기를 왜 경청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고 싶다.

    종로 성소수자 혐오범죄 사건

    작년 할로윈은 올해와는 달리 무척 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칼 바람이 쌩쌩 부는 저녁. 향린교회를 들러 지인에게 선물 받은 옷을 입고 종로3가로 향한 나는 그 날 만난 남자와 함께 천천히 어둔 골목길로 걸어 들어갔다. 이따금씩 가곤 하던 가게에 가고 싶었다.

    컴컴한 골목 맞은 편에서 키가 큰 남자 한 명, 조금 큰 사람 한 명, 마른 사람 한 명 이렇게 셋이 성큼성큼 걸어오는 게 보였다. 어둔 골목길에서 그런 상황에 처하면 대개 겁 먹고 진즉 피하지 않겠냐고 물은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주말 밤의 종로3가는 마음에 드는 사람과 손을 잡고 걷는다는 것 만으로도 날카로운 시선과 폭력에 노출될 수 있는 대낮보다 훨씬 안전했다. 그 사건을 겪기 전까지, 내 세상은 그랬다.

    시작은 “꿍”하는 소리였다. 맞은 편에서 다가온 폭력배 패거리 중 키가 큰 남자가 주먹으로 나와 함께 있던 남자의 눈을 후려쳤다. 불시에 공격 받은 남자는 그대로 쓰러졌다. 포위당한 나는 폭력배 일당의 발길질에 무참히 짓밟혔다. 그 때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른 기억이 아직도 뚜렷하다.

    다행히도 근처에 있던 가게에서 내 비명소리를 듣고 나온 사람들이 있었다. 폭력배 일당은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자 잽싸게 골목길의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일을 겪고 난 이후 몸이 어찌나 욱씬욱씬 아팠는지. 한 달 보름이 넘도록 숨을 쉴 때 마다 왼쪽 갈빗대가 아프더라. 발길질에 짓밟힌 뒤통수와 목이 아파서 한동안 고개를 돌리지도 못 했다. 통증을 느끼는 매 순간 내 의식은 폭력배 일당에게 짓밟힌 그 때 그 골목길로 돌아갔다. 나와 같이 피해를 입은 남자는 한 쪽 눈이 퉁퉁 붓고 새빨간 피멍이 들었다.

    2008년 동성애 혐오로 살해당한 남아공 축구선수이자 인권활동가인 유다 시멜레인. 그녀는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몸 수십군데 칼에 찔린 상태로 사망했다.

    이렇게 끔찍한 사건과 함께 시작된 관계, 난 더 이어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와 결별할 때까지 그의 눈가에 진 피멍은 사라지지 않았다.

    숨 막힌 시간들

    생전 처음 겪는 그 사건에 대한 초기 대응에서 나는 몇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경찰에 피해사실을 알린 건 좋았다. 그런데 트위터에다가 ‘이런 일이 있었으니 다들 조심하세요’라며 글을 올린 것이 첫 번째 실수였다. 그 글이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들의 RT(글 공유)를 거쳐서 삽시간에 퍼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더군다나 사건 맥락과 사실관계와 당사자 입장을 파악하지 않은 채 그 트위터 문구를 이미지 캡쳐해서 기사를 쓴 XX일보 모 기자의 행동은 완전히 내 상식 밖의 것이었다.

    “(게이들은)모조리 총으로 쏴 죽여야 한다.”

    “잘 했다. 더러운 새끼들을 없애버리자.”

    따위 쌍소리가 기사에 댓글로 주렁주렁 달리는 걸 보는 내 가슴에서는 천불이 났다. 그리고 사건이 알려짐과 동시에 나는 너무나 외로웠다. 사건 관련해서 무엇이 옳은가를 이야기하며 격렬하게 논쟁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내 안부조차 궁금해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피해를 입은 내 몸 상태, 마음 상태, 같은 것들 말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도 책임이 있다. 모 성소수자 인권단체에 페이스북을 통해 피해사실을 알렸는데, 어차피 글로 남길 거라면 내가 구체적으로 필요로 하는 도움이 무엇인가를 적었으면 참으로 좋았을 것이다. 주관적인 표현에 기대자면 그 때 난 그럴 정신이 없었다. 또한 ‘성소수자 혐오범죄’라는 사건과 관련해서 내가 어떤 도움을 받길 원한다는 걸 어디에 말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나는 CT 찍을 돈이 없어서 수박 겉 핥는 식으로 동네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약을 타다가 먹었다. 밤거리가 무서워서 가슴이 놀랄 때에도, 의료보험과 관련한 문제에 골머리를 썩힐 때에도, 몸에서 올라오는 통증이 폭행당하던 당시를 떠오르게 해 내 일상을 어지럽힌 순간들 속에도, 나는 혼자였다. 그리고 사건의 논의는 나를 배제한 채 이루어지고 있었다.

    모 단체에서는 구체적인 솔루션은 없고 일단 자기네 단체에 피해사실을 보고하라는 홍보물을 만들어 공유했다. 내가 애초에 도움을 청한 단체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끼리 산발적으로 “헉!”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 논의에서 피해당사자인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은 단순 소외감을 넘어 절망과 충격이었다.

    내가 이로 인해 꽤 오래도록 고통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당시 그 누구도 내가 고통 받는 것을 의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때 그 사건은 한 마디로 ‘식겁’할 만 한 사건이었다. 나의 경우 말고도 몇 가지 피해사례가 더 보고되었는데, 소름 끼치게도 범행의 장소와 패턴과 가해자(폭력배 일당)에 대한 묘사가 상당 부분 일치했다.

    연쇄로 추정되는 성소수자 혐오범죄 사건(당시엔 게이 혐오범죄라고 명명되었다)이 주말 밤 종로 거리에서 벌어졌다는 것은 우리에게 남은 공간에 대한 공격과 침해이기도 했다. 또 혹자는 나에게 그 사건 이야기를 꺼내는 것만으로 내가 무너져 내릴까 겁이 나서 나에게 아무것도 말 하지도 묻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말해두건데 난 그들, 그리고 SNS를 비롯한 인터넷 공간에서 열띤 논쟁을 벌인 사람들에게 나를 대신해 분노할 권리를 양도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내 상태를 묻지 않는 상황 속에서 피해당사자인 내가 제3자로 인해 재기 불능한 이로 취급되는 낙인 찍힘을 당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건 소식을 접한 뭇 사람들이 가해자를 ‘개새끼’라고 본인 속 시원하게 비난하기에 좀 더 편리해진다는 것 외에 거기에 무슨 의의가 있었던 걸까. 뭇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심각한 사건이었다면 왜 피해당사자의 회복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오가지 않은 것이었을까.

    사건을 겪고 1년이라는 시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왜 아무도 피해당사자의 상태를 묻지 않은 것일까.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물론, 뭇 사람들이 나를 ‘무력한 이’라고 규정한 게 아닌지도 모른다. 그저 내가 겪은 사건이 사람들에게 단순 소재거리로 소비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들이 맹목적으로 쏟아내는 분노가 ‘정당한 분노’이기 위해서 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나야말로 가해자들을 검거하고 처벌을 받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이 잡히든 말든 일단 내가 살고 봐야지. 내 몸과 마음에 상처를 벼리고 간 폭력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던 나는 그 외로운 시간이 너무나 힘겨웠다. 서글펐고 무서웠다. 가해자들의 신원 파악이 안 되는 상황도 답답하지만, 이대로라면 사건이 어떻게 종결되든 난 이렇듯 ‘혼자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를 도와주고 사건을 해결해보겠다면서 연락을 한 A활동가에 대해서는 처음엔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사건을 기사화하고 싶어 한 건 XX일보만이 아니었다. ##신문 쪽에서도 기자가 연락을 해 왔다.

    이 때 A활동가는 사건이 무턱대고 기사화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사건을 기사화하지 않을 것을 당부했다. ##신문 기자는 매우 정중하게, 사건을 기사화하지 않겠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바로 다음날 오전에 XX일보에서 낸 기사 덕분에 그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래도 어쨌든 도움이라는 걸 받은 상황인지라 나는 A활동가에게 의지했고 그와 함께했는데, 문제의 논의 과정에서 A활동가는 자기분노를 나에게 여과 없이 드러냈고 그가 제시한 방침에 내가 순종하지 않으려 할 때엔 강압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는 사건의 정보를 초기에 접하고 대응에서 나를 고려하지 않은 다른 활동가들을 모질게 비난했다. 그러면서 다른 활동가들에 대한 A활동가 본인의 판단과 그가 경험적으로 파악한 바를 나에게 마구 쏟아내는 것이다. 고립된 상황에서 그 얘기를 계속 듣고 있자니 안 그래도 길길이 날뛰던 내 분노의 대상은 A활동가가 비난한 이들로 고정되었다.

    그럼에도 나에게 다른 활동가들은 배제의 대상이 아닌 소통의 대상이었다. 내가 겪은 사건은 나만의 사건이 아니었다. 앞서 얘기했듯이 우리가 안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공격과 침해였다.

    페이스북을 통해 당시 사건에 대한 내 견해를 작성했는데, 나에게 전화를 걸은 A활동가는 “내가 전문가니까 내 말에 따라야 한다고 했죠! 내가 당신 친구에요?” 라며 소리를 질렀다. 사건과 관련해서 그가 나름 애썼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서 날 돕겠다고 한 A활동가의 개입은 결과적으로 나에게 가장 큰 아픔을 남겼다.

    애초에 사건을 겪은 것도 억울한데 알고 지내던 다른 활동가들과의 관계가 단절된다는 것은 너무나 끔찍했다. 아무리 초기 대응이 지지부진했다 한들 내가 그들에게 온갖 비난을 쏟아낸 사실이 떠오를 때면, 나는 내가 괴물 같아서 나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고압적인 태도로 전문가를 자임하는 A활동가에게 난 이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피해당사자에게 순종을 강요하는 그의 개입으로 인해 얼마나 숨이 막혔는지 모른다. 그렇게 시간은 나에게 숨 돌릴 틈을 주지 않고 계속 흘렀다.

    종결될 수 없는 사건, 돌이킬 수 없는 선택

    내 분노가 침묵 속에서 폭발하기 시작한 건, 사건이 문헌상으로 종결되면서부터였다.

    “그 사건 미제 처리됐대.”

    “끝?”

    사건이 문헌상에서 종결된다고 해서 그 사건의 억울함을 오롯이 간직한 내가 ‘아 역시 똥 밟은 거였구나’하고 털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건이 가해자들에게 어떤 끔찍한 교훈을 주었을 지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우리는 이런 짓을 해도 안전하구나” 라는 생각으로 또 다른 곳에서 다음 피해자를 물색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 자려고 누웠다가도 이불을 걷어찼다. 동시에, ‘대체 나에게 왜 그랬어?’라는 분노가 가슴을 홀라당 태워먹기 시작했다.

    A활동가에 대해서는 무성한 소문만 들었을 뿐, 애당초 남이 하는 얘기 가지고 그를 판단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 사건’을 통해 처음 만난 이였고 나는 내 경험에 근거해서 A활동가를 판단했다. 하지만 내가 먼저 도움을 청했던 단체와 몇몇 활동가들과는 그래도 알량하게나마 1~2년 알고 지낸 사이였다. 그들이 사건의 줄거리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나를 방치한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가해-피해구도가 성립한다는 점, 사건의 해결과 동시에 피해당사자가 도움 받아야 하는 필요성 등 보다 ‘연쇄(로 추정되는) 성소수자 혐오범죄 사건’이라는 이름이 더 크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난 사건이 미제 처리되었다는 말에, “그렇게 됐군요. 어차피 범인들 검거될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는데요, 뭐.” 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나는 다른 누가 아닌 나에게 너무나 예의가 없었다. 그 상황에서 더 이상 내가 감내할 수 없는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말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나라도 나에게 최선을 다 해야 했건만.

    유럽의 동성애 혐오범죄에 반대하는 촛불집회 장면

    사건이 미제 처리가 되고 또 몇 달이 지났다. 2011년 할로윈의 폭력으로 몸에 든 멍은 차츰 지워졌지만 마음에 든 멍은 시퍼렇게 짙어만 갔다. 혐오범죄 사건의 드러난 피해당사자인 나에게 사건의 줄거리를 물어보는 사람은 최근까지도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내가 어떻게 사는지를 묻지 않았다. 완전히 혼자가 된 나에게 남은 것은, 이제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나에게 현재진행형인 사건과 길길이 날뛰던 괴물 같은 내 모습이었다. 내가 알던 그 누구에게도 내가 왜 그 사건으로부터 해방되지 못 하고 아파하는가를 말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누구를 향해야 할 지 모르는 분노는 결국 나에게로 귀결되었다. 나는 나를 죽이기로 결심했던 그 날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뜨거운 물이 가득 찬 물컵에 렉사프로를 약 60알 풀어 넣고는 휘휘 저을 때의 허무함.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그 역겨우리만치 쓴 맛. 내 몸을 내 뜻대로 가눌 수 없는 공포. 사지를 덜덜 떨면서 응급실에 실려간 나를 비난하며 폐쇄병동에 가두려 했던 젊은 의사의 날카로운 목소리. 응급실에서 겪었던 나의 성과 몸에 대한 침해.

    경청의 힘, 회복의 시작

    응급실에서 깨어난 후. 나는 나에게 ‘사건’이 더는 종로 성소수자 혐오범죄만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깨달았다. 사건의 논의과정에서 내가 겪은 모든 일들이 나에게 ‘사건’으로 남았다. 하지만 나는 A활동가에게도, 다른 활동가들에게도 도움을 구할 수 없었다. 사건의 기억을 혼자서 감당할 수 없었던 나는 믿을 수 있는 지인(활동가)에게 연락을 취했다. 내가 사건과 관련해서 가장 잘 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도 믿고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관계가 남아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지인은 분노와 원한으로 굴절되어 서사의 맥락과 일관성이 없는 내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오롯이 경청했다. 내가 사건을 왜곡해서 바라보지 않도록 사건과 관련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추적했다. 우리는 사건의 이야기를 함께 정리해나갔다. 놀랍게도, 도저히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 말을 입 밖에 꺼내면서부터 나는 천천히 사건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왜 자살시도까지 했는지 스스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진정되었다.

    사람의 이야기를 오롯이 듣는 것과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또는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은혜롭게 배웠다.

    최초 내가 폭행을 당하고서부터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이 이야기를 사람들 앞에서 꺼낼 수 있을 만큼 사건을 정리할 수 있었다. 아마 지인의 경청과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어쩌면 아직까지도 헤매고 있을 지 모른다. 사건을 정리하는 데에 걸린 긴긴 시간은 나로 하여금 사건이 나에게 남긴 것이 결코 상처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수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더 없이 무기력했던 내가 힘을 회복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사람의 마음을 바라보고 삶을 재건하는 소중한 실천에 있어서 풍부한 임상 경험을 가진 활동가이자 내가 힘을 되찾는 데에 큰 도움을 준 책 ‘트라우마’의 저자인 주디스 허먼(2007)에 따르면, 문헌상으로(또는 표면적으로) 사건이 끝나는 것은 결코 피해당사자에게서 그 사건이 ‘종결’되는 것을 담보로 하지 않는다. 한 번 극복했다고 한 이야기라도 언제든 내 삶으로 침입해올 수 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수 차례 무너져 내렸다.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내가 느낀 감정들이 다시 밀려 들어왔다. 그러나 몇 번이고 글을 고쳐 쓰는 수고로움을 감내하면서까지 나는 이 이야기를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폭력의 가해자가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도록 노력하는 과정을 무시하거나 폄하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내가 말 하고 싶은 건, 사건의 피해당사자가 잃어버린 힘을 되찾고 삶을 재건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 역시 함께 해야 한다는 점이다. 폭력의 이유를 찾아가다 보면 우리는 결국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배경을 제공한 구조와 마주한다.

    성소수자 혐오범죄라는 폭력이 가능케 하고 피해당사자인 성소수자로 하여금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적 환경, 폭력의 피해당사자가 너무나 쉽게 무력하게 규정되는 논의의 한계는 폭력을 재생산하는 사슬과 괴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피해당사자의 힘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에도 가해자 처벌 및 비판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분담이 필요하다.

    물론 내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이 개별 사건으로서 가지는 특수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폭력’에 관련한 논의에 있어서 한 번 더, 사건을 겪은 사람을 돌아볼 수 있는 여지를 가졌으면 한다. 모든 실천의 주어는 인간의 행복과 존엄성이니까.

    비수술 MTF 트랜스젠더 강은하(아로)

    필자소개
    2011년 종로 ‘성소수자’ 혐오범죄 사건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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