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싶지 않겠지만,
이게 다 사실입니다...
[서평] 『안젠데스카』(김종철, 이이다 데쓰나리, 가마나카 히토미/서해문집)
    2012년 12월 01일 04: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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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1일, 전 세계의 눈이 후쿠시마로 집중되었다. 이 거대한 재앙에서 다시 시선을 거두어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어떤 눈들은 분명한 탈핵 계획을 만들어냈고 또 어떤 눈들은 풀뿌리 정치가 뿌리내리기엔 척박하기 짝이 없는 나라에서 녹색당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똑 같은 사고를 보고도 ‘원자력발전소는 미래의 핵심 먹거리입니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닌지, 본문 중에는 이런 표현이 있다 : ‘여러분, 눈이 보이기는 합니까, 귀는 들리나요, 머리는 돌아가고 있습니까?’)

이 책은 그런 여러 눈들 중에서도, 후쿠시마 사고를 아주 가까운 곳에서 보고 그 원인을 찬찬히 되짚어본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옮긴 책이다. 대담과 인터뷰, 강의를 그대로 옮긴 덕분에 무척 쉽게 읽히면서도 한 줄 한 줄 담긴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다. 특히 후쿠시마 사고 직전의 일본의 모습과 지금 한국의 모습이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읽게 될 때면 더욱 마음이 무거워진다.

저자들은 후쿠시마 사태의 발생 원인이 천재지변이 아니라 인재(人災)임을 분명히 한다. 쓰나미 그 자체는 천재지변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작동할 것을 전제로 하는 비상전원이 작동하지 못하게 된 것은 충분한 대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내의 다른 원전에서도 지속적으로 심각한 수준의 사고가 일어나고 있었고 심지어 2007년에는 후쿠시마 사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바다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원전에 화재가 발생하는 일도 있었다. 원전의 안정성에 대한 시민단체 등의 우려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존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카르텔의 비호 아래 별다른 조치 없이 운영되던 일본의 54기의 원전에서는 원인 불명의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마침내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대담에 참여한 두 전문가(환경에너지정책연구소 소장 이이다 데쓰나리,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가마나카 히토미)는 후쿠시마 사고를 있게 한 구조적 원인으로 일본 특유의 관료 문화를 꼽는다. 일본 원전 정책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관료들은 원전의 안전에 대해 형식적이고 관성적인 태도로 일관했으며, 도리어 원전의 고장이나 안전사고를 은폐해 왔다는 것이다.

여기에 개인의 출세나 이익을 위해 원전이 안전하다는 연구만 내놓는 어용학자와 전문가들이 합세하여, 시민들이 ‘전문가의 말이니 믿을 만 하겠지’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일부 시민단체 등의 의견은 무시되어 오는 가운데, 원전의 안전성 문제에 대해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기관들은 서로의 업무 영역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수직적 행정 태도로 일관하여 심지어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난 후에도 전혀 협력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더불어 언론, 미디어 부문에서 진실을 보도하여 여론을 환기해야 할 전문가들 역시 원전에 대해객관적인 비판을 하지 않았다. 이는 일정 지역을 독점하는 전력회사가 대형 언론사의 스폰서가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며, 저널리스트들 스스로도 원전 문제에 대해서는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겠다는 자세로 대세를 따르는 일신주의의 모습을 보여 왔다. 암묵적으로 핵 발전/핵 재처리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 후의 보도에서 원전의 근본 문제가 논해질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원자력발전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안전하다’는 대중적 인식에 기반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이 원전의 ‘안전 신화’를 존재하게 하는 기반이 앞에서 살핀 기관들에서 나온다.

어린아이들의 교과서부터가 친(親)원자력적이어서 원전의 우수성과 안전성을 강조하는 내용만 수록해 원자력발전은 필수불가결하다는 인식을 재생산한다. 더불어 중앙 정부는 막대한 특별 재정을 앞세워 지방자치단체에 원전 건설을 승낙할 것을 종용해 지역 주민들을 친/반(反) 원전파로 갈라 놓는 한편, 원전 이외의 다른 선택지 자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반 시민들에게 알리지 않는다.

원전을 둘러싼 권력의 자세에 있어서, 후쿠시마 사고 직전의 일본과 한국은 많은 부분 쌍둥이 같은 모습을 보인다.

언젠가는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그 순간 아무도 책임지지 못할 거대한 재앙을 불러일으킬 원전에 대해 정부의 가장 높은 사람부터 ‘안전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며 시민단체나 양심적인 학자들의 목소리는 무시해 버린다. 원전에 대한 맹신만 붙든 채 환경에 대한 고려가 없는 에너지 정책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원전이나 송전탑,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이 건설된/될 지역의 환경과 사람들은 큰 고통을 겪어 왔다. 그리고 그들을 고려하지 않는 이 정부의 불통(不通) 자세는 지금의 시민들은 물론, 앞으로 태어나 살아갈 후손들에게까지 10만 년이라는 비현실적인 시간 동안 사라지지 않을 짐을 지워 온 것이다.

탈(脫) 원자력 발전과 자연에너지 활용 비중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전 세계적인 추세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심각한 중앙집권적 발전 방식은 소규모 분산형 발전 방식으로 바뀌어야 하며, 이는 자연/재생에너지를 사용한 발전에 매우 적합한 방식이다. 우리가 딛는 땅, 숨쉬는 공기, 사람과 동식물, 즉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한다면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될 일이다.

세계 각국이 국가적 정책을 바꾸어 가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 등 몇몇 국가들만이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물며 원자력 르네상스를 선도하는 국가가 되겠다며 이 정부가 세운, 해외 곳곳에 원전을 수출하겠다는 당찬 목표는 가히 전지구적 범죄 행위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사람, 그리고 지구와 공존할 수 있는 발전 방식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부족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몇몇 지역을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에너지 자립을 이루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시민을 중심으로 한 이 변화는 수도권에서부터, 동네 반상회에서부터, 그리고 바로 나로부터 확장되어 나가야 한다.

내가 사용하는 전기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환경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폐기물은 어떻게 처리되는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 내가 납부하는 전기 요금이 누구의 주머니로 들어가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원전에서 만든 전기를 사용하고 낸 돈은 거대 전력회사, 나아가 원료를 구입한 해외로 빠져나가 버린다. 대신 풍력, 태양광, 수력 등 지역의 환경을 이용해 얻은 전기를 사용한다면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며, 특히 심각한 고령화. 경기 침체를 함께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전기 사용량 자체를 줄이는 것 역시 환경을 생각하는 일이다. 가정용 전기 제품을 효율이 좋은 것으로 바꾸기만 해도 상당한 양의 전기를 절약할 수 있다. 조금만 노력하면 춥거나 어둡지 않고도 전기를 절약할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가 민주 시민의 힘을 발휘하여 내가 사는 지역, 그리고 국가의 정책을 바꾸는 일에 동참하자. 보다 큰 변화를 일으키자.

문제점도 해결책도 명확하지만, 그럼에도 미심쩍다는 생각, ‘그래도 안전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한다. 쉬운 말로 읽히는 원전 그리고 원전을 둘러싼 힘에 대한 진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는 것을, 원자력 발전에서 벗어나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필자소개
학생. 연세대 노수석생활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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