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의 정치학과 경제학
"너무 믿지는 말라. 칸영화제도, 황금종려상도"
By 문석
    2012년 05월 29일 10: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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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27일(현지시간) 칸영화제에서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아모르>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씨네21]의 문석 편집장이 칸영화제와 관련한 그 이면과 의미에 대해 글을 보내왔다.

 칸영화제가 5월27일 미카엘 하네케의 <아모르>에 황금종려상을 수여하면서 막을 내렸다. 홍상수와 임상수, 한국의 두 ‘상수’는 아쉽게도 상을 받는 데 실패했다. 특히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는 프랑스의 ‘국민배우’급인 이자벨 위페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큰 기대를 모았지만 심사위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상을 받지 못했다고 좋지 않은 영화라는 법은 없다. 이 영화는 곧 개봉하니 꼭 보시기 바란다.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도 빨리 챙겨보시길!).

한국영화에 영광스러운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칸영화제에 관심이 모아진 것을 계기로 칸영화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영화계 밖의 사람들은 한국 뿐 아니라 세계가 왜 칸영화제에 관해 호들갑을 떠는지 의아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우선 이번 글을 통해 칸영화제를 비롯한 세계 영화제와 예술영화의 정치학과 경제학을 살필 것이고 다음 글을 통해서는 칸영화제의 역사를 돌아볼 계획이다.

칸영화제, 세계 최고의 영화제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칸영화제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다. 물론 칸을 비롯해 베를린, 베니스영화제를 ‘세계 3대 영화제’라고 부르긴 하지만 최근 이 말은 그다지 적절하지 않은 상용구가 됐다. 2000년대 이후로는 칸의 독주체제라고 봐도 좋을 만큼 칸과 나머지 두 영화제 사이의 격차는 커졌다. 그 격차는 참여하는 영화의 수준, 게스트의 유명세, 저널리스트의 관심 등 영화제의 모든 부문에서 현저하게 벌어지고 있다.

<아무르>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미카엘 하네케 감독

칸이 독주체제를 굳히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우선 프랑스 리비에라 해안의 손꼽히는 관광도시 칸의 뛰어난 풍광이 있다. 특히 이 영화제가 열리는 5월의 칸은 눈부신 햇살을 자랑해 찾는 이들의 마음을 뺏기에 충분하다(올해는 유난히 폭우와 강풍이 몰아쳐 영화제 분위기를 망쳐놓았다는데 이런 일은 극히 드물다).

반면 베를린영화제가 열리는 2월의 독일을 생각해보라. 대단한 한파는 아니지만 아직 겨울인데다 습한 기운이 장악하고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은 말 그대로 뼛속까지 닿는 한기를 느껴야 한다. 베니스영화제가 열리는 8월말 또는 9월초의 베니스는 환경적으로 좋긴 하다. 하지만 베니스에 닿는 순간부터 사람들을 압박하는 무시무시한 바가지 물가는 이곳의 추억을 망쳐놓기에 딱이다(당신은 종이컵에 담긴 오렌지주스를 1만원에 사먹고 싶은가?)

사실 이런 외부적인 조건이야 별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는 따지고 보면 별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베를린의 겨울은 불쾌하긴 하지만 대도시인 탓에 값싼 숙소가 많고 최근 들어 유럽의 보헤미안들이 몰리는 탓에 즐거운 축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베니스는 물가는 비싸도 르네상스 시대부터 내려오는 역사적 유물과 세계적 관광지의 정취를 자랑한다. 날씨는 좋아도 칸 역시 숙소 구하기가 쉽지 않고 물가가 엄청나게 비싸기는 마찬가지다.

영화제의 핵심은 누가 좋은 영화를 초청하느냐

결국 영화제의 핵심은 영화다. 칸과 다른 영화제의 격차는 결국 초청돼 상영되는 영화에서 비롯된다는 말이다. 전통적으로 정치 사회적인 영화와 제3세계 영화에 각별한 신경을 써왔던 베를린영화제는 최근 들어 갈팡질팡하고 있다. 지난해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라는 탁월한 작품을 내놓긴 했지만 이는 너무 오랜만의 일이었다. 베니스영화제도 예술적 가치가 다분한 영화를 꾸준히 소개해왔지만 지금은 화제성에서나 작품성에나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영화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는 각 영화제 내부의 사정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집행위원장을 잘못 선임했다거나 영화제의 노선을 허투루 잡았다거나 등등. 하지만 두 영화제가 힘을 쓰지 못하는 데는 칸영화제의 독점욕 또한 큰 원인이 됐다.

영화제가 영화를 선정하는 과정은 대략 이렇다. 영화제를 여는 기간을 제외하면 각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들은 전 세계를 돌며 영화를 선정한다. 가장 중요한 공간은 3대 영화제가 아닌 다른 영화제의 장이다. 이들 영화제에서는 새로 등장한 감독을 소개하거나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국가의 영화를 소개하는데 프로그래머들의 타깃은 바로 이런 영화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한 부산영화제가 대표적이다. 해마다 주요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은 부산을 찾아 부산이 발굴한 감독들의 영화를 보고 그들을 만나기도 한다. 한국의 홍상수,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김기덕 감독 뿐 아니라 중국, 타이, 필리핀의 주요 감독들이 칸을 비롯한 해외 영화제에 진출하게 된 것도 부산영화제 덕이다.

또 프로그래머들은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나라를 수시로 찾아 화제작을 살펴보기도 한다. 이들은 한국에도 종종 찾아오는데 영화진흥위원회 등에서 영화를 보기도 하고 관심 가는 감독과 제작자를 직접 만나 영화제 출품을 직접 타진하기도 한다.

영화제의 정치학이 중요한 것도 이 지점이다. 영화제들은 매년 영화들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앞서 말했듯 좋은 영화를 많이 갖춘 영화제가 일류라는 평가를 받기에 프로그래머들은 전 세계를 누비며 영화를 둘러싼 모험을 펼친다. 이들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매년 만들어지는 영화는 한정돼 있고 그중 영화제에서 소개될만한 수준의 영화는 훨씬 더 제한적이다. 이 겁나는 ‘레드 오션’에서 영화제들은 체면 가리지 않고 다툼을 벌인다. 하지만 칸영화제가 힘을 갖게 되면서 경쟁은 칸이 그 중심을 차지하게 됐다. 국내에서 화제가 된 어떤 영화가 있다고 치자. 그 소식을 들은 베를린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이 영화 관계자를 만나 초청의 뜻을 밝힌다. 영화 관계자는 일단 경쟁부문인지를 확인할 것이다.

칸영화제 초청은 영화관계자의 꿈

경쟁부문인지 비경쟁부문인지는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다. 경쟁부문이란 상을 수여받을 수 있는 후보군이기도 하며 이 때문에 해당 영화제의 꽃이요 핵심이다. 사람들이 영화제를 떠올릴 때 상을 가장 먼저 떠올리듯 영화 관계자 또한 마찬가지다. 만약 베를린 프로그래머가 당신에게 경쟁부문 진출을 확약했다고 해서 덥석 그들의 손을 잡아선 안된다. 칸영화제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칸영화제 관계자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인다면 베니스영화제 관계자의 반응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어차피 베를린에서 빨리 공개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고 운만 좋다면 상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칸이 관심을 갖는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일단 영화 관계자는 경쟁부문으로 갈 수 있는지를 타진해볼 것이다. 칸 경쟁부문에 진출한다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정치인이라면 국회의사당이나 청와대행이 궁극의 꿈이듯, 축구선수라면 프리미어 리그 진출이 평생의 염원이듯, 어떤 영화의 경우 ‘칸 경쟁부문 진출’ 그 자체가 존재 의의이기도 하다(그 상세한 이유는 이어지는 영화제의 경제학에서 설명할 것이다).

칸영화제가 열리는 프랑스 칸

칸에 진출한 영화가 포스터에 제목과 비슷한 크기로 칸의 상징인 종려나무와 함께 ‘칸 경쟁부문 진출’이라는 글자를 자랑스럽게 새기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그런데 경쟁부문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된다. 2순위 부문이라 할 수 있는 ‘주목할만한 시선’이나 칸영화제와는 독립적으로 치러지지만 나름의 권위를 인정받는 ‘비평가 주간’이나 ‘감독 주간’에 진출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칸 관계자로부터 듣는다면 전후좌우를 잘 따져봐야 한다. 상대적으로 적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베를린이나 베니스로 가서 수상을 노릴 것인지, 그래도 칸이라는 넓은 장에서 인정을 받은 뒤 칸에서의 다음 기회를 노릴 것인지 말이다.

칸의 독점과 입도선매

칸영화제는 이런 심리를 교묘하게 노린다. 프로그래머들은 전 세계를 돌면서 공수표를 남발한다. 세계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감독이나 뭔가 획기적인 업적을 이루며 새로 떠오른 감독들의 영화를 베를린과 베니스에 뺏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충만한 이들은 구두로 초청을 약속한다. “물론 칸에 돌아가서 후보작들을 놓고 정식으로 선정위원회를 열어봐야 알겠지만”이라는 단서조항을 달긴 하지만 해당되는 영화의 관계자로서는 칸의 달콤한 약속에서 헤어나오기 쉽지 않다.

하지만 모두 예상하다시피 칸이 이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것은 아니다. 매년 경쟁부문에 진출할 수 있는 영화는 스무편 남짓인 탓에 이들은 여러 조건을 따져 초청작을 결정한다. 이 과정이 공개되어있지 않은 탓에 정확히 알 길이야 없지만, 매년 경쟁작으로 언급됐던 영화 중 상당수가 다른 부문으로 배치되거나 다른 영화제로 떠나는 것을 보면 선정 작업 또한 대단히 섬세한 정치적 선택의 연속일 것이다. 국가 또는 대륙별로 배려하는 건 필수적이고 감독의 명성과 업적 또한 고려 요소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스타의 존재 여부다. 수많은 언론의 조명을 끌어 모으기 위해 할리우드 스타들이 캐스팅된 영화를 적극적으로 초청하는 것이 칸의 최근 경향이다.

칸의 이러한 ‘입도선매’식 선정은 많은 비판을 받는다. 특히 베를린과 베니스영화제 관계자들은 공식, 비공식적으로 칸의 행태를 비난한다. 칸의 욕망이 커짐에 따라 점점 세가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영화의 예를 들어보자. 베를린영화제는 1970년대부터 아시아영화에 관심을 보여 왔다. 임권택, 장선우 감독은 이 시기 베를린이 세계에 소개한 대표적 아시아 감독들이다. 베를린이 발굴하고 소개한 덕에 아시아영화는 1990년대 이후 세계 영화계의 중심부로 진입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볼 칸이 아니었다. 칸은 중국,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영화를 채가기 시작했다. 도둑질당한 심정의 베를린은 강력하게 저항했지만 아시아 영화인들은 베를린과의 우정보다는 칸에서의 실속을 선호했다. 베를린의 속이 뒤집어질만도 하다.

베니스영화제도 칸의 팽창에 따라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 칸에서 유명 감독의 화제작을 먼저 채 가니 라인업 짜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최근 들어 베니스는 칸에 맞대응하기 위해 경쟁부문 진출이라는 공수표를 남발하다가 결국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많은 여러 영화인의 원한을 사기도 했다. 물론 칸보다 늦게 열린다는 점이 베니스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칸에서 경쟁 티켓을 받지 못한 감독들이 홧김에 베니스행 곤돌라를 타는 ‘낙수 효과’ 또한 누리기 때문이다.

일부 감독은 이런 영화제의 정치적 관계를 역이용하기도 한다. 2006년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은 자신의 영화 <붉은 길>이 경쟁부문이 아니라 감독 주간 부문에 초청되자 출품을 철회한다고 선언했다. 이에 칸은 급작스레 경쟁부문에 이 영화를 추가했다. 결국 <붉은 길>은 심사위원 대상을 받기까지 했으니 아놀드 감독의 정치력이 칸 집행위원회보다 한수 위였던 셈이다.

영화의 경제학 : 영화로 돈을 버는 메카니즘

감독과 제작자들은 왜 이토록 칸영화제에 목을 메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제의 경제학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영화제용 영화 또는 예술영화 시장의 메커니즘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영화는 상업영화다. 모두 알고 있듯이 상업영화는 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진다. 이들 영화는 상업 영화관에서 일반 대중을 상대로 상영되며 그 성공 여부는 얼마나 돈을 벌어 들였는가로 결정된다. 일단 제작비 이상의 수익을 거둔다면 상업영화는 그 존재 의의를 다한 것이다.

반면 세상에는 돈을 버는 것을 일차적 목적으로 하지 않는 영화들도 존재한다. 여기서는 이들 영화를 편의상 예술영화로 부르겠는데, 사실 그 이름 안에는 수많은 부류의 영화가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예술영화는 감독-작가의 생각을 특정한 영화적 방법론으로 담아내는 것을 가리키지만, 지역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예술영화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예술영화(arthouse film)은 외국영화(foreign film)과 같은 레벨에서 취급되며, 한국에서는 그 내용이 ‘예술적’이지 않더라도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묶어서 ‘다양성 영화’로 부르기도 한다.

아무튼 예술영화가 돈벌이를 그 첫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해서 흥행이 중요치 않은 것은 아니다. 영화라는 예술은 감독 혼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배우와 스탭의 임금을 챙기고 온갖 재료비, 장소 섭외비, 그리고 숙소 비용과 밥값을 따져보면 아무리 적은 회차로 알뜰하게 만든다 해도 제작비는 상당히 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대다수 예술영화의 감독은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 거기서 나오는 수익으로 다음 영화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흥행은 상업영화와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문제는 예술영화는 관객 수가 제한되어 있을 뿐 아니라 상업영화처럼 마케팅 비용을 펑펑 쓸 수 없다는 데서 발생한다. 영화제는 바로 이들 예술영화가 자신의 존재를 가장 잘 알릴 수 있는 공간이다. 예술영화를 이따금이라도 보는 관객들은 유명한 영화제에 진출했다는 사실을 영화의 수준에 대한 간접적인 지표로 간주한다. 사정이 그러할진대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은 가장 좋은 홍보 마케팅 소재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상까지 받게 되면 그 화려한 소문에 이끌린 일반 관객까지 몰릴 수 있으니 예술영화 제작자로서는 이에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 대표적인 경우다. 사실 일반 관객이 소화하기에 만만치 않은 이 영화는 2007년 칸영화제에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은 뒤 ‘칸의 여왕’의 연기를 보기 위한 관객이 몰려 170만 관객 동원이라는 좋은 흥행을 기록했다. ‘영화제 프리미엄’은 예술영화 관객층이 상대적으로 탄탄한 서구에서 더 높은 편이다. 생소한 나라의 생소한 감독의 영화도 영화제 수상작이라는 닻을 달게 되면 보다 수월하게 관객을 상대할 수 있다.

칸영화제 성적에 좌우되는 영화의 ‘가격’

여기에서 칸영화제가 최고 영화제가 된 또 하나의 비결이 등장한다. 그것은 영화제와 함께 열리는 영화마켓이다. 영화마켓이란 말 그대로 영화의 시장이라 할 수 있다. 쉽게 설명하면 영화 수출업자와 수입업자가 만나는 장인 셈이다. 매년 1만명 가까이 몰리는 칸 영화마켓은 11월 미국 LA에서 열리는 아메리칸필름마켓(AFM)과 함께 세계 최대의 영화마켓으로 손꼽힌다. 이 영화마켓에서는 큰 규모의 상업영화도 거래되지만 예술영화 또한 활발하게 거래된다. 그런데 ‘영화제 진출작이냐, 그 영화제가 어떤 영화제냐, 수상은 했냐’ 등등의 변수에 따라 판매가격은 움직인다. 가장 높은 권위를 인정받는 칸영화제의 경쟁작과 수상작이 시장에서도 가장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수백만 달러에 거래되는 것이야 아니지만 예술영화에게 이러한 해외 판매 수익은 생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해보자. 중국이나 이란의 예술영화는 정치적 이유 때문에 국내에서는 개봉도 할 수 없어 아무런 수익을 기대하지 못한다. 이들 감독들이 다음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데 제작비를 조달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면? 한가지 좋은 길이 있다. 서구의 예술영화 전문 배급사에서 투자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영화사가 자선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면 이들은 어떤 근거로 중국과 이란 감독에 투자할까. 답은 자명하다. 서구의 예술영화 관객이 인정하는 기준- 영화제 진출 또는 수상- 에 부합하는가가 가장 쉬운 판단 근거가 아니겠는가?

한국이라고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영화제 진출과 국내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영화사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영화사들은 예술적 기운이 강한 감독들의 영화에는 돈 한푼도 내지 않는다. 대자본으로부터 소외된 홍상수 감독 같은 이가 영화를 만드는 방법은 영화 한편을 만들어 거둔 수익으로 다음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2008년 <잘 알지도 못하면서>이후 홍 감독은 이 같은 방법으로 <하하하> <옥희의 영화> <북촌방향> 그리고 이번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다른 나라에서>를 만들었다(그는 이미 다음 영화를 거의 다 만들어놓았다). 물론 홍 감독의 경우 국내에서의 흥행 수익이 차기작 제작비를 조달할 정도이니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늘 다음 영화를 만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말하는 것은 그런 사정 탓이다.

이처럼 영화마켓마저 배후에 품고 있다는 점은 칸의 대단한 강점이다. 영화 수입업자들이 현장에서 영화를 보고 수상 결과까지 파악한 뒤 거래가 펼쳐진다는 점에서 영화마켓은 칸의 힘을 배가시켜주는 구실을 하고 있다. 베를린영화제도 유로피안필름마켓(EFM)을 갖고 있는데 왜 힘을 받지 못하냐고? 각 시장마다 룰이 있게 마련인데, 영화의 경우 대부분의 거래가 칸과 AFM에서 최종 딜이 이뤄지는 식으로 정착된 탓에 EFM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적다. 시너지가 발생할 여지도 많지 않다는 얘기다.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고, 거기서 상을 받았다고 훌륭한 영화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에 대한 취향과 기호라는 상대성을 논외로 하더라도 영화제가 선택한 어떤 정치적 입장 때문에 경쟁부문에 진입한 함량 절대 미달 작품도 많다. 칸영화제만 봐도 프랑스에서 영향있는 영화사가 판권을 갖고 있는 영화를 ‘끼워 팔기’ 했다거나, 어떤 나라와의 ‘영화적 교류’에 신경써야 했을 것이라거나, 이름값만큼은 무시할 수 없는 감독의 영화라거나, 의심할만한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때로는 심사위원들 사이의 알력 다툼으로, 심사위원장의 사이코 같은 결단으로, 어처구니 없는 영화가 상을 받기도 한다. 그러니 포스터에 박힌 영화제 수상 로고는 어쩌면 장식 이상도 이하도 아닌지 모른다. 분명 어떤 영화를 볼지 선택은 전적으로 당신 몫이다. 영화계에서 10년 넘게 밥을 빌어먹는 사람으로서 하는 말인데 영화제를 너무 믿지 말라. 칸영화제도, 황금종려상도 말이다.

필자소개
문석
중앙일보 기자로 있다고 영화가 좋아서 씨네21로 이직하여 현재 씨네21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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