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 사퇴 이후
    그의 등장과 사퇴가 의미하는 것들
    [탐구, 진보21] 이제 민주화시대 이후 새 시대 준비해야
        2012년 11월 24일 10: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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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상황이 마무리되어야 사태가 보이는 법인가 보다. 안철수가 사퇴하고 나니 2012년 대선은 박근혜와 문재인의 대결로 압축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박정희와 노무현의 대결로 볼지 모르지만 내 생각에는 박정희와 김대중의 대결인 듯 싶다.

    70년대 초반 김대중, 김영삼이 40대 기수론을 내걸고 정치혁신을 주장하고, 자본주의화가 본격화되면서 민주화시대의 서막이 올랐다. 고난에 찬 70년대를 지나 80년대가 되면 민주화세력의 승리가 명확했다.

    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부는 대도시의 중산층과 인텔리들이 보기에 너무 낡은 세력이었다. 불행했던 것은 이 과정이 너무 지루하고 보수적으로 진행된 점이다.

    민주화시대 전체를 상징하는 인물은 김대중일 것이다. 노무현은 김대중이 민주정부를 계승하기 위해 세운 비장의 카드였다. 노무현은 두 가지 상반된 측면을 함께 갖고 있었다.

    하나는 민주정부를 승계했다는 점, 다른 하나는 90년대 중반 이래 청년세대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는 점이다. 긴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후자가 중요했지만 노무현 정부는 전자에 자족했다. 노무현 정부가 삼성과 같은 거대 재벌에 포섭된 것은 시대의 추이를 거슬렀기 때문이다.

    안철수 문재인 후보, 김대중 박정희 전 대통령(왼쪽 위 시계방향)

    역사를 이렇게 개괄한다면 박근혜는 70년대 박정희의 후계자이고 문재인은 김대중의 후계자(노무현)의 분신이다. 노무현 정부가 갖고 있었던 이중적인 요소 중 보수적 측면을 문재인이 대변하고 있었다면 미래적인 요소는 안철수가 대변했다.

    전자의 승리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함께 숙성했던 민주화 세력이 점차 또는 노골적으로 기득권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2.

    02~04년 민주화를 둘러 싼 뒤늦은 대결(탄핵과 대통령 복귀)이 마무리된 후 90년대 한국자본주의의 현대화(?)를 둘러싼 본 게임이 시작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너무 쉽게 대재벌에 포섭되었다. 04년의 여론을 보면 해볼만한 싸움이었다. 전장에서 대장을 잃은 대도시의 청년세대는 자신의 대변자를 잃고 산개되었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제대로 싸워 보지 못하고 패배한 세력은 재기하기 어려운 법이다. 노무현과 함께 새시대를 열었던 당시의 청년세대는 지금도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덕분에 청년세대의 반격은 20대 청년층이 아니라 여고생과 30대 이상의 장년층에 나왔다. 돌이켜 보면 취임한 지 수개월이 안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요구는 한국사회의 주역들이 이명박 정부가 갖고 있는 구세대적 체질을 용납할 수 없음을 잘 보여주었다.

    2011년 8.24(오세훈 사퇴)에서 10.26 서울시장 선거 그리고 4.11 총선에 이르는 과정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후보가 공유한 보수적. 복고적 체질에 대한 청,중년세대의 반격과 반동을 잘 보여준다.

    위 과정에서 20~30대와 40대, 50대 이상 등 세대로 정치세력에 대한 선호가 확연히 엇갈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일한 맥락에서 도시와 농촌)

    4.11 이후의 과정은 8.24~10.26에서 반이명박, 반박근혜의 입장에서 연대했던 두 세력의 균열을 보여준다. 문재인의 승리는 청년세대가 충분히 자신의 입장과 지향을 정치무대에서 관철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3.

    음악평론가 이영미의 분석에 따르면 87년 6월항쟁을 예고했던 사건 중 하나가 ‘광주출정가’였다. 광주에서의 양민 학살을 한탄하고 탄식했던 음울한 정조의 비가가 사라지고 광주출정가와 같은 굳센 어조의 노래가 등장한 것은 이제 군부와 정면으로 싸울만한 세력이 성장했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박근혜의 미래는 어둡다. 20대 이하에서 박근혜는 세종대왕의 부인쯤 되는 옛날 사람이다. ‘도가니’, ‘26년’, ‘추적자’, ‘남영동’, ‘두개의 문’ 등의 영화나 다큐 등이 흥행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잔인했던 과거를 정면에서 응시할 수 있는 관점과 세력이 등장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광주출정가가 6월항쟁을 예고했다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벌어진 고문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독재정권의 완전한 종말이 가까웠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유신치하에서 청년세대를 보낸 사람들이 이제 50대 중반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의 주역이 되었다. 그들이 겪었던 치떨리는 과거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정당하지만 그것을 심지어 고문까지를 정면에서 응시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것은 이미 승패가 끝났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현실에서 존재했던 것은 박근혜의 집권에 따른 역사의 역진이 아니라 박근혜로 대표되는 구시대의 근본적인 청산인가 보수적인 청산인가의 기로였다.

    40~50대의 과도한 공포감 그리고 그 이면에 어른거렸던 기득권이 결국 안철수를 주저 앉혔다. 덕분에 민주화의 완성은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라 보수적이고 점진적인 방향으로 길을 틀었다.

    4.

    안철수는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자본주의가 현대화. 첨단화되는 과정의 산물이다. 이 과정에서 02년 정몽준-07년 이명박과 문국현 등의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안철수는 그들과 다른 길을 걸었다. 돌이켜 보면 안철수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듯 중도적 포지션을 취할 수 있었다. 그랬다면 민주통합당에게 유리한 단일화 프레임에 걸리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안철수는 고비고비에서 자신이 박근혜, 이명박 등 독재 정권의 잔재들과 다름을 명확히 했다. 안철수는 출마를 준비하면서 김근태의 빈소를 찾고 5.18 묘소에 헌화함으로써 그는 자신이 정몽준-이명박과 같은 단순한 기업가가 아니라 민주화 시대의 유산을 계승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최종적인 단일화 국면에서 이해찬이 사퇴하면서 안철수에게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정신과 유산을 계승할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민주통합당과 문재인 지지자들이 비슷한 어조의 비판들을 많이 한다.

    이것은 안철수에 대한 공정한 비판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중도 포지션을 취할 수 있음에도 굳이 김근태를 통해 자신이 딛고 서고자 하는 역사적 뿌리를 명확히 했다.

    도대체 역사를 계승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부산상고 출신의 깡 촌놈이 서울 법대 출신이 드글드글한 주류 질서에 혈혈단신으로 맞서 싸운 자랑스러운 역사와 그것을 계승했다고 하는 민주통합당인가? 아니면 서울 의대 출신의 유망한 기업가가 50대 중년의 나이에 뒤늦게 5.18 묘소에 헌화하며 가늠할 수 없는 미래에 도전하는 것인가?

    김대중은 80이 넘은 나이에 저항할 수 없다면 벽에 소리라도 지르라고 부르짖었고, 노무현은 자신의 몸을 던져 철벽과 같은 보수반동의 아성에 저항했다.

    안철수와 문재인의 피말리는 마지막 국면에서 당신들은 왜 그렇게 안철수에게 가혹했는가? 그리고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대해 왜 그렇게 관대했는가?

    그것은 김대중과 노무현이 걸었던 길이 아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언술적으로 되뇌이는 것과 그것을 계승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역사는 언제나 현재와 미래를 설계하는 자들이 재해석하고 창조하는 것이지 창고속의 박제된 동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

    5.

    안철수의 사퇴로 위대했던 민주화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이 과정에서 쌓아 올렸던 숱한 신화와 전설, 고통과 좌절, 억울한 죽음과 분노는 그것대로 묻어 두자. 안철수-문재인의 피말리는 단일화 게임에서 민주화 시대의 낡은 편린들이 충돌하며 경합했던 것도 이해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 민주통합당과 문재인 지지세력은 이제 자신들만의 힘으로 박근혜와 싸워야 한다. 애초에 민주통합당과 문재인은 박근혜의 상대가 아니었다. 문재인-정세균-손학규 등이 경합했던 민주당의 경선은 욕설이 난무하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고만고만한 그들만의 리그였다. 당신들이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안철수가 출현하고 박근혜를 충분히 주변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2012년 대선에서 당신들은 거대한 세력을 가진 조연이었다. 따라서 누구를 탓하기 전에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열정과 혼을 쏟아 부어 대선에서 이겨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단일화 과정에서 보였던 어설픈 과잉 감정 따위나 민주통합당이나 그들 지지자가 보여준 뻔히 보이는 정치 플레이는 그만 보았으면 한다. (물론 나는 투표장에 나가 문재인을 찍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을 할 마음은 없다)

    만약 당신이 안철수를 지지했다면 새로운 미래를 시작하자. 모범생으로 자라 평생 누구한테 욕 한번 해본 적 없을 것 같은 50대 중반의 아저씨는 할 일을 다 했다. 돌이켜 보면 정치란 것을 한번도 해본 일 없는 50대의 의사.교수.기업가에게 민주통합당을 상대할 노련함(이게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을 기대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

    이제는 안철수와 함께 새로운 미래를 가자. 안철수와 함께 종언을 고한 민주화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미래를 시작하자.

    필자소개
    민경우
    전 범민련 사무처장이었고, 현재는 의견공동체 ‘대안과 미래’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서울 금천지역에서 ‘교육생협’을 지향하면서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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