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에게 변호가 필요없는 사회?
[서평]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폰쉬라크/ 갤리온)
    2012년 10월 27일 01: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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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벌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왜 벌하는 지의 목적도 불분명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사람이 어느 정도 선까지 책임을 가지는지가 문제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개인이 결정한 선택이 그 사람의 자유의지로 인하였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자유의지가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자유의지라는 것이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사실 인간은 애초에 시작부터 그 자신의 의지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원해서 태어난 존재는 아니다. 그것이 신의 섭리가 되었든, 다른 사람의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하였든 누군가 다른 존재에 의해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던져진 환경 또한 자신이 선택할 수 없다. 어느 날 태어나고 보니 자기 자신의 엄마와 아빠를 만난 것일 뿐이다.

인간이 스스로가 태어나는 것과, 태어날 환경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생성되는 자기 자신의 가치관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에게 자기 자신의 어렸을 때 경험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어렸을 때의 경험은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게 문제다.

인간은 어렸을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의 자아를 형성해간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우리는 다양한 경험을 얻게 된다.

그것이 행복한 경험일 수도 있고 무언가 결핍되어 불행하고 힘겨운 경험일 수도 있다. 어렸을 때 행복한 경험만 한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다. 예를 들면 어렸을 때의 모든 욕구가 충족되면 오히려 오만하고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불행하고 결핍된 경험이 안 좋은 것만도 아니다. 불행하고 결핍된 경험을 바탕으로 더 좋은 삶을 추구하기 위하여 발버둥치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어렸을 때의 경험이 행복한가 불행한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방식으로 표출해내는가가 중요하다. 가장 큰 문제는 그러한 태도를 가지는 것 또한 우연적으로 형성된다는 점이다. 스스로가 어떤 경험을 가지더라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소화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어떤 경험이라도 부정적으로 소화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들을 결정하는 것은 그 자신이 단순히 자기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개선해야 할 방향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처음부터 던져진 삶이었다. 자기 자신의 뜻대로 태어난 것도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언제나 이끌려가게 마련이다. 외부의 사건이 주어지고 이에 대해서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고 다시 살아가고, 또 언제나 이끌려 다닌다. 이러한 선택이, 던져진 삶의 선택에서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외부의 사건에 반응하고, 자기 자신의 가치관을 쌓아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모든 인간이 이러한 경험이 스스로 갖추어지고, 자기 자신의 가치관을 가지고 긍지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사람이라면 책임이라는 말을 지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만, 과연 이런 주체성의 기본 조건조차 못 갖추게 한 사람에게 책임이라는 걸 지운다는 것은 잔인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개인이 살인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는 사회, 스스로가 자기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본 조건을 갖춘 사회라면 살인자들에게 이러한 변호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인간은 아직 너무 나약하다.

사회도 인간을 그렇게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사회 구조가 아니다. 아직 많이 멀었다. 그렇기 때문에 살인자 개개인이 살아온 삶을 바라보면 그 사람이 살인을 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살인자가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피해자가 살인자에게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행동들을 보면 또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도 분명 다르게 행동할 수도 있었을텐데라는 생각도 많이 든다.

어렵다. 현재의 법 체계를 부정하려는 것도 아니고, 살인자를 처벌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다만 아쉬울 뿐이다. 이렇게 다양한 살인자의 삶들을 바라보면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서로가 서로에게 비극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된다. 너무 안타깝고 안쓰럽다.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사실 살인을 하는 존재가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는 걸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우리가 해결하고 고민해야 할 것은 살인자가 나오지 않을 존재 양태, 사회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법 체계 안에서 언제나 이러한 안타까움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우선 우리 자신부터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이 올곧게 바로 서서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그리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그렇게 나 자신을 만든 건 무엇으로 인함이었는지.

이러한 고민이 모두 모아져서 사회로 확산될 수 있다면, 그 때는 이 책에서 느껴지는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정말 많은 생각을 주게 하는 책이다

필자소개
연세대 학생, 노수석 생활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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