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만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 불모의 인간성 시대 고발과 치유
        2012년 10월 22일 11: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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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은 1,000여명의 교수 회원들로 구성된 교수단체이다. 87년 창립된 이후 현재까지 사회민주화와 교육개혁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해왔다.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는 민교협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연재하며, 매주 1회 월 또는 화요일에 게재한다. 이 칼럼은 민교협의 홈페이지에도 함께 올라간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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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철학자로 잘 알려진 베르나르 앙리 레비(Bernard-Henri Levy)의 소설 [머리 속의 악마](김병욱 역, 프로메테우스출판사)는, 1984년에 씌어져 바로 그 해에 프랑스 최고의 영예인 공쿠르 상과 메디치 상을 동시에 휩쓴 문제작이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 1980년대 후반에 한 차례 번역되어 소개된 적이 있는데, 최근 새롭게 완역되어 매혹적으로 독자들 앞에 다가오게 되었다.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최근까지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소설가이자 철학자이자 영화 감독이다.

    레비는 자신의 이 같은 다양하기 그지없는 자기 표현 양식들을 통해 파시즘에 대한 강렬한 부정과 인간 자유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 이른바 ‘신철학’을 펼치고 있다. 또한 그는 일관되게 ‘자유’라는 이상을 추구함으로써 프랑스혁명의 이념적 핵심을 현대에 구현했다는 평판과 함께, 프랑스의 대표적인 참여 지식인으로 일컬어지고 있기도 하다.

    그의 첫 장편소설이기도 한 [머리 속의 악마]는 ‘벵자멩’이라는 이름의 한 남자의 생애를 시간적 순서로 짜고 있는, 일종의 전기(傳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줄거리는 나치에 헌신하다가 처형을 당한 아버지를 둔 부르주아 청년 ‘벵자멩’이 아버지의 남루하고 거짓된 생을 알게 된 후 ‘악(惡)’의 화신인 테러리스트로 변모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 스스로 야만성을 발현하게 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그가 만나는 야만성의 여러 양상을 소설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이 소설은 형식상으로 보면, 벵자멩의 유년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제1장 ‘마틸드의 일기’, 양부(養父)와의 대화를 기록한 제2장 ‘장 아저씨와의 대화’, 벵자멩을 사랑하는 연인 마리의 편지 형식을 담은 제3장 ‘마리의 편지’, 벵자멩의 친구이지만 사실은 배신자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변호사 파라디의 기억을 담고 있는 제4장 ‘알랭 파라디의 증언’, 지상에서 사라지기 직전 벵자멩 자신의 술회를 담은 제5장 ‘벵자멩의 고백’ 등의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다섯 개 장에서 서로 다른 다양한 목소리들의 카니발을 보여줌으로써 소설은 매우 다성적(多聲的, polyphonic)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현대인들의 역사적 경험 속에 자리잡고 있는 ‘야만성’에 대한 소설적 증언이자, 첨단의 양식적 실험을 시도한 장편 심리소설이기도 하다.

    [머리 속의 악마]는 한 작가가 ‘벵자멩’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추적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벵자멩의 행적을 찾아나선 작가가 1984년 예루살렘에서 회개하는 40대의 벵자멩을 만날 때까지 수집한 여러 자료들과 증언들이 펼쳐지면서, 벵자멩의 생애는 그 오랜 세월과 더불어 잠겨 있던 모습을 점차 분명하게 드러내게 된다.

    청소년기 직전까지의 벵자멩의 탁월하고 수려한 생은, 어머니 마틸드의 일기 형식을 통해 그 구체적 육체가 드러난다. 그 다음으로 ‘양부’인 장 아저씨와의 대화가 이어지는데, 전쟁 전 벵자멩의 아버지와 가장 친한 사이이기도 했던 장 아저씨는 전쟁 후 마틸드와 결혼한 인물이다. 이때 사실은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사람이 바로 장 아저씨였음이 나중에 벵자멩에게 알려지게 된다.

    그 다음 마리 로젠펠트의 편지에서 작가는 마리의 언어를 통해 벵자멩의 생애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가령 그녀는 1960년대에 소르본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해 파리에 와 벵자멩의 연인이 된 여성으로서 벵자멩의 열정에 감복하여 그에게 헌신하는 여인이다.

    이러한 서사적 흐름을 통해 드러난 벵자멩의 생애는 다음과 같다. 그는 1942년 나치 치하의 프랑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이때 아버지는 페탱 정권의 비호를 받으면서 나치의 첩자 노릇을 하였다. 그런데 그러한 행위가 종전 후 발각되어 아버지는 처형 당한다. 그때까지 온화하고 신앙적인 삶을 살아왔던 어머니는 죽은 남편의 친구이자 레지스탕스 출신으로 고위 관료가 된 남자 장 아저씨와 재혼한다. 장 아저씨는 재혼을 위해 친부의 처형을 은밀히 사주한 장본인이다.

    꿈과 상상을 통해 미화하고 추앙했던 아버지의 실체와 양부의 파렴치함을 동시에 알게 된 벵자멩의 삶은 그 후 서서히 변모하게 된다. 벵자멩은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자신이 속한 부르주아 계층의 악행들을 알게 되면서, 테러리스트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다가 알제리 전쟁 때 민족해방전선 소속의 젊은 여전사 말리카를 알게 되면서 그의 반항적 열정은 정치적 색채를 띠게 된다. 그 후부터 벵자멩은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와 알튀세의 후예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투사의 길을 걷는다. 좌파 프롤레타리아트로서 1968년 5월혁명을 겪고 오베르네 사건과 그 후 펼쳐진 파노라마를 겪은 벵자멩은, 프롤레타리아의 위기를 겪으면서 공장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무심한 노동자들의 눈길 속에서 뭇매를 맞고 더욱 절망한 그는 다마스, 바그다드 등을 거치면서 과격한 테러리스트로 변모하게 되는데, 그를 테러리스트로 살게 한 근원적 힘은 어떤 ‘이념’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무지막지한 ‘증오’였다. 이처럼 열정과 이상에 가득 찼던 한 젊은이가 인간에 대한 증오로 삶을 귀결하게 되는 선 굵은 심리적 서사가 소설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다.

    여러 도시를 옮겨가면서 장대한 스케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1968년 5월혁명 이후 좌파주의에서 테러리즘으로 넘어간 세대의 한 초상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1940년부터 시작된 다양한 지적 조류들과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들이 부침했던 20세기 후반부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의 부침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던, 20세기의 ‘줄리앙 소렐’ 벵자멩은 역사의 폭력성에 의해 서서히 자신의 존재를 지워가게 된다. 소설의 마지막 장은, 40대에 이르러 예루살렘에서 회개하는 벵자멩의 고백적 목소리를 다음과 같이 들려주고 있다.

    이 글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태워 버린다? 찢어 버려? 날려 버린다? 여기 이 테이블 위에 남겨둔 채로 운명에 맡긴다? 어쩌면 또 다른 생각… 마지막 생각 하나… 엉뚱하기는 하지만, 42년 동안 내가 정신을 팔아왔던 코미디에 비한다면 그렇지만도 않은 생각. 한 사람, 단 한 사람, 단 한 사람의 기억력만으로 족하리라는 생각… 머리가 나쁘거나 벙어리일지라도, 한 사람의 머리로 충분하다는 생각… 세상에 대해서, 인간들에게 하기에는… 구원도 아니고 희망도 아니다… 그러나 그저께 그 남자가 나의 여정 속에 발을 들여놓은 것 또한 전적으로 우연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여정을 ‘구원’도 아니고 ‘희망’도 아닌, 단지 뭇 사람들의 폭력성에 의해 무참하게 사라져가는 것으로 소묘하고 있는 주인공의 이 허망한 진술 앞에서, 우리는 20세기 역사가 누구도 고립된 단자로서 살아갈 수 없었던 집체적 야만의 시대임을 끔찍하게 기억하게 된다.

    이러한 [머리 속의 악마]의 전언 밑바닥에는 앙리 레비의 또 다른 에세이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1977)에 잘 나타나 있는 것처럼, 각종 분쟁 지역에서 보여온 그의 행동 철학과 신념이 깊이 스며 있다. 그것은 현대적 야만성을 도저하게 부정하는 것과, 그것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결국 한 몸임을 증언하는 것으로 모아진다. 그래서 우리는 레비의 이 소설을 두고 20세기의 현대적 야만성에 대한 소설적 증언으로 읽게 되는 것이다.

    또한 [머리 속의 악마]의 이러한 세계는 과거 우리 나라에 소개되었던 프랑스 작가 카트린 클레망의 [악마의 창녀]를 적극 환기한다. [악마의 창녀]는 20세기 후반 지적 통찰의 원천이라 할 프랑스 현대 철학을 ‘미네르바의 부엉이’의 시선으로 조망한 이색적 소설이다.

    그 소설 공간에서 다루어지는 시대는 크게 세 마디로 나뉘어진다. 사르트르와 그의 동거인 보부아르의 실존주의가 휩쓸었던 1950년대말까지가 첫째 마디라면,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와 함께 불어닥쳤던 구조주의 열풍이 둘째 마디를 이룬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공저 [안티 오이디푸스]가 개막한 포스트구조주의와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신철학은 거기서 셋째 마디로 규정되고 있다.

    여기서 신철학자 앙리 레비는 모든 전체주의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면서 “파시즘은 어둠 속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빛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라고 외치고 있지 않은가. 레비는 ‘악’에 대한 총체적 투쟁을 호소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클레망이 형상화했던 레비의 육성은, 고스란히[머리 속의 악마] 속에 재현되어 우리에게 가장 종요로운 이성의 자유를 경험케 한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머리 속의 악마]는 격동의 역사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소진한 채, 서서히 사라져간 한 인물의 심리를 정치하게 재현한 장편 심리소설이다. 원래 ‘심리소설’이라는 것이 등장인물의 사고․감정․동기가 이야기 전개상 외적으로 드러나는 행동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작품이라 할 때, 이 작품은 벵자멩의 심리적 추이가 그리는 파문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된다.

    또한 심리소설에서는 인물들의 정서적 반응이나 내면 상태가 외부 사건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하고 외부 사건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하면서 의미심장한 연관을 가진다. 그 점에서 벵자멩의 심리적 상황을 구성해가는 데 초점을 두고 있는 이 소설은, 서사 중심보다는 벵자멩의 심리적 추이에 중심을 두고 읽혀져야 할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1960년대 말 반전․반체제를 기치로 내세웠던 서구의 68세대들은 1970-80년대를 거치며 국제적인 반(反)전체주의, 휴머니즘 운동의 중심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그 가운데 전 독일 총리 슈뢰더는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정을 통해 좌파의 사회 진보 이념을 현실 정치에 적용하는 작업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68세대들의 이념은 반파시즘, 자유주의 속에 녹아들어 우리 세대로 하여금 탄력 있는 이성적 작업을 주문하고 있다.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이 같은 이성적 작업을 예술적․철학적 견지에서 치러내고 있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 상징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프랑스의 유력 저널인 [마리-클레르]지의 피에르 데므롱은 “과거 파시즘의 시대에 사르트르의 [어느 대장의 어린 시절]이 있었다면 테러리즘 시대인 우리 시대에는 이 [머리 속의 악마]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갈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머리 속의 악마]가 우리 시대처럼 야만적 테러리즘과 불모적 인간성이 횡행하는 시대에 대한 고발과 치유의 기록으로 기억될 것으로 믿는 것이다.

    필자소개
    한양대 교수. 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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