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상에 뿌리박은 두 현자의 이야기
    [책소개] 『정신의 진보를 위하여』(달라이 라마, 스테판 에셀/ 돌베개)
        2012년 10월 20일 12: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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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왜 ‘정신’인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돈이 인간의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오늘날, 30여년간 세계를 쥐락펴락했던 신자유주의의 높은 파고는 세계 경제위기 앞에 서서히 잦아들고 있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으며, 이슬람-아랍권 지역에서는 정치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의 물결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올해는 특히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상당수의 나라에서 최고지도자를 새로 선출하는 중대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정치와 경제 부문의 민주화를 동시에 부르짖는 이런 현실은 지금까지의 삶의 방향에 빨간불이 들어와 새로운 신호등이 절실히 필요함을 역설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질과 정신 양축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삶이 그동안 지나치게 물질적 토대 쪽으로만 기울어지다 보니 심각한 후유증을 앓게 된 것이다.
    이에 자본주의의 세계화와 과학의 발전을 통해 물질의 진보를 추구해온 서양과 정신의 보고(寶庫)인 동양을 대표하는 두 인물 스테판 에셀과 달라이 라마가 서로 만나 21세기 인류가 지향해야 할 바는 ‘정신의 진보’라는 점에 완벽히 의기투합하기에 이르렀다.

    달라이 라마와 스테판 에셀, 그 극적인 세기의 만남

    2010년 가을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래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3,500만 부 이상 팔리는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 『분노하라』(한국어판 2011, 돌베개)의 저자 스테판 에셀은 올해 96세(1917년생)로 지팡이도 없이 다니는 정정한 노인이다.

    스테판 에셀 앞에서는 자신이 새파란 젊은이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는 세계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텐진 가쵸)는 에셀보다 열여덟 살 연하인 1935년생으로, 이 두 인물은 큰 나이차 외에도 서양인과 동양인, 세속인과 종교인, 기혼자와 독신자 등등의 많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삶과 인품에 매료되어 이 대담을 계기로 두 손을 굳게 맞잡았다.

    함께 만나기 쉽지 않은 이들이 노구를 이끌고 의기투합할 수 있었던 것은 평생을 인권 수호에 헌신해온 스테판 에셀의 비폭력적 저항정신이 중국의 모진 핍박과 탄압에 비폭력적 투쟁방법을 고수해온 달라이 라마의 정신과 상통하며, 기본적으로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이 핵심인 인권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전 세계가 진정한 평화의 시대, 상호의존과 연민을 바탕으로 한 ‘큰 우리’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신의 진보’를 추구해야만 한다는 문제의식에 뜨겁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 대담은 2011년 8월 프랑스 남부 도시 툴루즈에서 ‘행복의 기술’을 주제로 열린 달라이 라마의 강연에 스테판 에셀이 참석함으로써 첫 윤곽이 그려졌고, 4개월 후인 2011년 12월 프라하에서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의 주도로 열린 동남아시아 인권에 관한 토론회 ‘포럼 2000’을 통해 본격적인 대화가 이루어졌다.

    1박 2일에 걸친 이 대담은 1948년 유엔이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한 날부터 지금까지 과연 새로운 보편적 가치들이 도출되었는가, ‘정신의 진보’가 세계인권선언 제27조에 명시된 ‘과학의 진보’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물음을 비롯해 마음의 과학, 티베트의 분신 사태, 현대 교육의 문제, 비폭력의 가치, 좀더 높은 차원의 민주주의, 유엔의 개혁문제 등을 중심 주제로 삼고 있다.

    두 거목이 말하는 ‘정신의 진보’란?

    스테판 에셀과 달라이 라마가 힘주어 강조하는 ‘정신의 진보’란 결코 뜬구름 잡는 이야기도 아니고 종교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가 흔히 몸과 정신이라고 말할 때의 그 ‘정신’을 이제는 과학/물질의 진보 못지않게 현대 교육체계 속에서 적극 계발하여 전 세계적으로 보다 차원 높은 민주주의(‘정신적 민주주의’)를 구현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류뿐 아니라 자연 전체에 대해서도 사랑, 공감, 연민, 비폭력, 관용 같은 인간적 감수성을 키우고 발휘해야 함을 역설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각국 정부 수반이 아니라 오직 인류의 안녕에만 관심을 두는 신망 있는 인사들로 구성된 ‘현자위원회’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이 대담에서 달라이 라마가 말하는 ‘정신’은 그동안 서양을 굳게 떠받쳐온 ‘이성’의 맥락이 아니라 고대 인도로부터 면면히 이어져온 동양 특유의 ‘마음’을 가리킨다. 동양인에게는 매우 익숙한 단어인 ‘정신수행’, ‘마음공부’와 같은 맥락인 것이다. 스테판 에셀 또한 이 부분에 적극 공감하며 지대한 관심을 표한다. 이제 ‘정신’이란 말은 동서양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말로 그 외연이 확대된 것이다.

    ‘진보’라는 단어 또한 단순히 물질적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 한 몸, 내 가족, 내 나라만을 위하는 이기적이고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모두가 지구에 사는 ‘한 형제’라는 큰 틀에서 더 바람직하고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유독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좌·우파라는 단어를 ‘진보·보수’라는 말이 대체해온 지 오래된 데다 근래 통합진보당 사태 등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진보’라는 단어가 갖는 진정한 함의가 많이 퇴색된 것이 사실이다. 이제 다시금 ‘진보’의 위상을 새로이 정립하고 그 참뜻을 살려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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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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