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베스의 압도적 승리,
민주적 점진적 평화적 사회주의 노선
[기고] 베네수엘라 대선 결과의 배경과 의미
    2012년 10월 09일 05: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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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7일 일요일 베네수엘라 대선이 있었다. 차베스가 54.42%의 득표로 압승했다. 상대 야당후보인 엔리께 까프릴레스는 44.97%를 얻었다.

새로운 헌법 개정 후 2000년에 열린 대선부터 따지면 세 번째 승리이다. 2007년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 선거에서 49%를 얻은 것이 제일 적은 득표였고 1998년 첫 번째 대선에서도 56.2%를 얻었으므로 그 추세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야당과 세계의 자유주의 주류 언론에서는 장기집권 또는 독재라는 비판을 할 것이다. 투표율도 아주 높은데 80.94%였다.

왜 이렇게 차베스에 대한 지지가 높을까? 여러 가지 시각에서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가난한 대중 외에도 상당수 중간계급이 차베스의 ‘민주적, 점진적, 평화적 사회주의’ 노선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회주의’라는 단어의 맥락은 신자유주의 반대를 의미한다.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최근 미국, 유럽, 아랍 등 전 세계에서 1% 대 99%의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사회운동이 거세지만 현실적으로 권력을 쥔 집권세력이 베네수엘라만큼 신자유주의 반대와 극복을 위한 다각도의 전략을 실천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라틴아메리카 전체가 스페인, 영국, 미국으로 이어져 오는 지배와 억압과 차별의 역사에서 진정으로 독립하고자 하는 열망을 대표하는 상징적 아이콘이 차베스라는 점이다. 즉 일국의 정치적 변화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볼리바르, 마르티, 게바라로 이어지는 라틴아메리카 전체의 통합과 진보의 전통을  차베스가 수사적 수준이 아니라 헤게모니적으로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 통합이 중요한 이유는 통합 자체가 아니라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들에 의한 신자유주의 압력을 막기 위한 최적의 대안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1994년에 시작된 마르코스에 의한 치아파스 원주민 운동이 갖고 있는 ‘인터넷 좌파’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그러므로 암환자인 차베스가 두어 차례 쿠바로 수술과 치료를 받으러 갈 때마다 세계의 자유주의 주류 언론들이 차베스 이후의 후계자를 운위하면서 ‘차베스 이후’를 기대(?)했던 것이다.

또 한 가지 위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방파제’라는 의미를 확장하는 해석은 16세기 초부터 시작된 유럽세력(스페인, 포르투갈)에 의한 식민 정복이 근대성과 자본주의 진행의 시작이었고 그 과정의 현 단계 절정이 신자유주의인데, 이를 밑에서부터 깨트리는 혁명이 차베스 혁명이라는 지적이다.

 

이 같은 지적은 1960년대의 종속이론이 주로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엘리트에 의한 지배와 종속과 저발전을 거부하는 담론이었다면, 차베스 혁명은 1990년대의 가난한 대중이 주축이 된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의 경험으로부터 도출되어 자본주의 비판을 ‘근대성’의 철학적, 인식론적 지평으로 넓힌 근대성/(탈)식민성 담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차베스 혁명은 쿠바 혁명보다도 더 중요한 혁명인 것이다. 왜냐하면 쿠바 혁명을 일직선적 필연적(?) 역사의 진보로 인식한다면 차베스 혁명은 일직선적 시간관 자체가 함축하는 근대적, 자유주의적, 시민계급 위주의 민주주의의 주류적 또는 기초적 전제를 다시 재구성하고 재음미하는 다양하고 역동적인 대중에 의한 ‘다른 길’의 민주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차베스를 지지하는 세력을 민중보다는 대중이라고 호명하는 것이 현재의 맥락에 더 맞다. 가난한 베네수엘라 대중의 숙명과도 같은 가난, 교육, 건강, 주택 등의 공공적 ‘요구’를 수용한 사회 정책의 진보는 분명했기 때문이다.

현재 베네수엘라는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높은 대학교육 등록율을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마르크시즘보다는 포퓰리즘 담론과 맥이 닿는 의미에서 반 헤게모니적 ‘문화혁명’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포퓰리즘 맥락을 언급하는 이유도 전통적으로 정치의 객체로 인식되는 대중이 중요한 ‘정치적 주체’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표일 이틀 전 차베스는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혁명임을 강조하고 개방과 대화를 강조했다. 이 같은 유연한 대화의 자세는 새로 들어설 미국 정부에 대해서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가장 큰 문제는 폭력의 증가이다. 가난은 줄어들었지만 2009년 현재 인구 십 만 명당 살인율은 44명에 이른다. 이런 폭력의 원인을 우파와 극우파들은 차베스 정부의 정책 실패로 선전하고 있고, 좌파들은 90년대에 진행된 신자유주의로 인한 사회의 파편적 해체에서 찾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차비스타로 불리는 차베스 진영의 상당수 리더들의 비민주적 인식수준을 지적하는 학자들이 있다. 즉, 차베스와 이들 사이에는 혁명의 의미에 대한 큰 괴리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최근 야당이 지방선거에서 약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필자소개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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