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홉스봄을 읽으며, 홉스봄을 추모한다
        2012년 10월 02일 04: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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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홉스봄의 별세, 대가들의 시대가 저물다

    추석을 지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페이스북의 소식들을 주마간산 격으로 보던 중 에릭 홉스봄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향년 95세. 누군가 페북에 썼듯이 그의 죽음은 20세기 ‘대가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또 하나의 징표가 될 듯하다. 굳이 역사학자가 아니더라도 내 나이 때의 마르크스주의 언저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에릭 홉스봄의 저작 한두 권 정도는 읽었을 것이다. 그는 분명 우리 시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스승 가운데 한명이었다.

    내가 90학번으로 대학교에 들어 왔을 때 우리들을 학습시킨 교재들은 마르크스와 레닌 원전 그리고 소련에서 번역된 책들이었다. 우리들은 [공산당 선언], [임금, 가격, 이윤], [임노동과 자본] 등 마르크스의 팜플렛이나 [무엇을 할 것인가], [국가와 혁명] 등의 저작들은 흥미롭게 읽었지만, 소련에서 출간된 작품들은 ‘사회주의의 필연적 승리’와 ‘소련 공산당의 만능’에 사로잡혀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유일하게 진지하게 읽은 소련 교과서는 ‘짜골로프 정치경제학’ 뿐이었다.

    내 개인적으로는, 소련의 교과서가 강요하는 ‘교조주의’나 베른슈타인식 ‘수정주의’에 빠지지 않았던 가장 큰 지적 근원은 국내에 체계적으로 소개된 알튀세르의 작업과 마구잡이로 번역되던 영국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작업 때문이었다. 전자는 주로 윤소영 선생과 과천연구실의 작업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윤소영 선생은 마르크스주의의 일반화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마르크스주의가 경제학 비판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사회적 적대를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더불어 영국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작업은, 집단적으로 평가해서, ‘우리에게 역사란 무엇인가’를 사고하도록 했다. 90년대 중반 한국 사회성격 논쟁이 기이하게 뒤틀리면서 소위 ‘포스트주의’가 만연했다. 각종 ‘포스트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를 경제 결정론, 목적론, 노동자계급의 신화화, 기계론적 유물론, 실증주의 등 온갖 부정적인 담론들과 동일시하며 이를 청산하고자 했다. 그러나 우리(여기서 우리란 누구일까 나 자신도 궁금하다)는 이런 포스트주의의 범람에 크게 흔들리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영국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제공한 역사서 때문이었다.

    영국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의 책을 조금이라도 읽은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가 경제결정론이나 목적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 차렸다. 홉스봄의 유명한 4부작([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극단의 시대], [제국의 시대])도 그렇지만 에드워드 톰슨의 [영국 노동자 계급의 형성](창비, 2000)이나 페리 앤더슨의 [절대주의 국가의 역사](까치, 1993))도 경제 결정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래서 누군가 마르크스주의의 경제결정론 어쩌구 저쩌구 하면 나는 이런 텍스트들이나 읽어보고 떠들라고 조용히 조언했다.

    에릭 홉스봄(사진=가디언)

    내가 홉스봄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원을 준비하던 학부 과정 때였다. 90년대 PD 정파운동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 ‘조직이 깨지면서’ 끈 떨어진 뒤옹박 마냥 룸펜으로 전락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고, 이 때 대략 ‘할 일 없어서’ 선택하던 곳이 대학원이었다. 당시 대학원은 운동적 전망은 만들지 못하고, 그렇다고 주류 사회로 편입되는 것에는 거부감을 느끼던 이들이 선택하던 일종의 도피처였다.

    나는 대학원을 준비하던 친구들, 동아리 후배 몇 명을 데리고 경제사 공부를 조직했다. 이 때 읽은 책이 저 유명한 모리스 돕의 [자본주의 발전연구](동녁, 1995)와 까치 출판사에서 발간된 [자본주의 이행논쟁], 그리고 2차 이행논쟁인 [농업계급구조와 경제발전 : 브레너 논쟁](집문당, 1981)이었다. 당시 우리는 돕과 스위지 논쟁에서 돕이 승리한 것으로 잠정적으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나는 이후 개인적으로 공부를 계속 하면서 관점이 바뀌었다. 왈러스틴과 세계체제론자들(지오바니 아리기, 사미르 아민, 앙드레 군더 프랑크, 아부 르그호드 등)의 작업을 접하면서 지금은 자본주의 이행논쟁에서 스위지의 관점이 옳지 않았나 하고 평가하고 있다. 요즘은 그 확신이 더 커졌다.

    페리 앤더슨의 [고대에서 봉건제로의 이행](창비, 1995)과 [절대왕정 성립의 역사](소나무, 1993)도 이때 읽었다. 그 이후 홉스봄의 저작을 함께 읽었다. 이행론을 공부한 후 자본주의의 역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취지였다. 우리는 당시 발간이 되지 않았던 [제국의 시대]를 제외하고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극단의 시대]를 차례로 읽어 나갔다. 나는 이 세미나로 홉스봄이라는 작가에 흠뻑 빠졌던 기억이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들에서 받았던 큰 감동은 경제결정론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전체사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나는 비록 역사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홉스봄은 우리 세대의 마르크스주의자라면 누구나 한 번 쯤 기억에 담고 싶은 작가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억을 간단하게 언급하는 것이 주제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글은 평생 공산주의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살다간 한명의 선배 공산주의자에 대한 일종의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영국 공산당 역사가 그룹에 대하여

    홉스봄의 저작을 언급하기에 앞서 우리는 당연히 저 유명한 ‘영국 공산당 역사가 그룹’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영국 공산당 역사가 그룹은 20세기 초반 캠브리지의 모리스 돕과 옥스퍼드의 크리스토퍼 힐 등이 주도한 공산당 내 역사가 모임이었다. 1930년대 국제 공산주의 운동은 스탈린주의에 의해 거의 장악되어 있었고, 영국 공산당 역시 이 자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당시 스탈린은 국제 사회주의 운동의 아버지였다. 영국 공산당 역사가 그룹은 비록 공식적으로 스탈린주의에 도전하지 않았지만 당 내부에서 교조주의에 물들지 않고 창조적인 지적 작업을 진행했다.

    이 역사가 그룹에는 앞에서 언급한 모리스 돕 뿐만이 아니라 크리스토퍼 힐, 로드니 힐튼, 에릭 홉스봄, 도로시 톰슨(에드워드 톰슨의 아내), 존 새빌, 빅토르 키어넌, 에드워드 톰슨, 조지 루데 등 이름만 들어도 역사학 분야의 일가를 이룬 거성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에드워드 톰슨은 비정규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는데, 이 때만 해도 그는 문학 전공자로 분류되었다. 이들은 집단적으로 ‘영국 혁명’을 다루면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을 새로운 지평 위에 올려놓았다고 평가된다. 영국 공산당 역사가 그룹에 비교될 수 있는 집단적 역사학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전후 브로델이 이끈 아날학파나 베버리안들의 역사사회학이 아닐까 싶다.

    영국 공산당 역사가 그룹의 집단적 기여는 경제사를 통해 ‘아래로부터의 역사’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이들은 영국 혁명 과정이 단지 부르주아들이 주도한 명예혁명만이 아니라 기층 민중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한 갈등의 공간이었음을 밝힌다. 이들은 부르주아 혁명을 연구하면서 그 속에 담겨진 계급투쟁의 조건, 역할, 진행과정, 헤게모니의 구성 등을 심층적으로 다뤘다. 부르주아 혁명은 단지 부르주아적인 것만이 아니라 유토피아적 열망과 좌절, 상이한 이념과 갈등이 혼재된 계급투쟁의 장이었음을 밝힌다.

    이들의 집단작업은 위로부터의 역사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역사에 관한 가장 매력적인 설명일 뿐만 아니라 구조와 역사라는 마르크스주의에 내재된 고질적인 문제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해법 가운데 하나를 제공했다.

    영국 공산당 역사가 그룹은 1956년을 기점으로 분화한다. 그 이유는 1956년 소련 공산당의 헝가리 침공에 대해 영국 공산당이 소련 공산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공산당 역사가 그룹은 당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비판 세력으로 남게 된다.

    E. P. 톰슨

    당시 영국 공산당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공산당 탈당을 선도한 이들은 ‘다혈질적인 것으로 유명한’ 에드워드 톰슨과 역사가 그룹의 ‘젊은 피’ 존 새빌이었다. 반면 노장이었던 크리스토퍼 힐 등은 당의 입장에 대해 공개적인 문제제기를 하며 당에 남고자 했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힐 등이 중심이 된 문제제기에 대해 당은 공식적으로 소련 공산당의 무오류성을 승인하고 당 내 문제제기는 그저 소수파의 의견으로 취급해버렸다. 그러자 크르스토퍼 힐 등 나머지 지식인들도 대부분 영국 공산당을 탈당한다. 이때 공산당을 탈당한 톰슨과 새빌 등이 영국 신좌파를 주도하는 한 축이 된다. 탈당파 그룹이 발간한 잡지가 [새로운 이성인]이었다.

    특이한 것은 에릭 홉스봄의 행보였다. 그는 공산당에 남았다. 비록 공산당의 입장을 지지하기 보다 탈당한 신좌파들, 역사가 그룹의 활동을 지지했지만 그는 공산당을 버리는 것은 혁명에 복무하는 조직을 버리는 것과 같다고 여겼다.

    그는 최근에 발간된 자서전 [미완의 시대](2007, 민음사)에서 그 이유를, “반파시즘 전선에서 공산주의자가 된 세대는 공산당을 버릴 수 없다.”고 함으로써 자신이 볼세비즘의 전통에 있다는 것을 기꺼이 인정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들으면 정말 열 받을 만한 이야기다. 페리 앤더슨이 [미완의 시대] 서평에서 썼듯이 공산당을 탈당한다고 해서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할 수 없듯이 공산당에 있다고 해서 꼭 공산주의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하튼 홉스봄이 공산당에 남은 것은 두고두고 회자되며, 홉스봄과의 인터뷰만 있다면 누구나 한번쯤 질문하는 주제가 될 만큼 이는 ‘사건’이었다. 그는 1980년대 공산당이 공식적으로 해산하기 바로 전에 탈당한다. 자서전에도 나타나 있지만 그는 평생 신좌파의 도전에 대해 냉소적이었고, 노동자계급의 집단적 힘을 믿었으며, 혁명을 위해 조직이 필요하다는 볼세비키적 신념을 지니고 있었고, 사민주의 좌파들과 굳건히 연대하며 좌파의 대의를 위해 열정적으로 글을 썼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이 마르크스주의가 된 것에 대해 부끄러워 하거나 후회하지 않았다. 비록 공산주의가 꼴사납게 인식되고 마르크스주의가 죽은 개 취급될 때도 그는 꾸준히 자신의 작업을 해 나감으로써 시간의 검증을 견뎌냈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 홉스봄의 ‘역사 4부작’

    이제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극단의 시대]에 대해 말할 차례다. 나는 ‘읽은 지 너무 오래 되어서’ 구체적인 내용을 다루지는 못하겠다. 다만 이 글들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리고 나의 뇌리 속에 남아 있는 흔적을 통해 이 저작들이 내게 미친 영향을 간단히 말하고자 한다.

    [혁명의 시대](한길사, 1998)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지금도 생생한데, 영국 산업혁명을 다루는 장이다. 당시 우리는 산업혁명은 기술적 진보(증기기관의 발명 등)에 의해 이룩된 사건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홉스봄은 그런 관점이 ‘적어도’ 영국 산업혁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단언한다. 왜냐면 과학과 기술의 측면에서 당시 영국은 후진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증기기관을 만든 사람들 대부분은 전문적인 기술자나 과학자가 아니라 숙련 노동자였다는 점이다. 제임스 와트가 대표적이다. 더불어 당시 과학 기술로 따지자면 프랑스가 영국보다 압도적으로 앞서 있었다는 것이다.

    홉스봄은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영국 사회의 사회적 관계와 국제 사회에서 영국이 차지하는 위치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영국에서는 귀족의 권력이 약화되어 있었고, 상업적 활동에 제약이 없었으며, 광범위한 노동층이 형성되어 있었다. 더불어 영국은 제국으로 발돋음 할 수 있는 해군력과 식민지 건설을 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 내부의 사회적 관계가 산업혁명으로 갈 수 있었던 지름길이었고, 기술은 그저 이를 뒷받침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과학 기술이 산업혁명의 중심이 되려면 2차 산업혁명을 기다려야 했다.

    이 세권과 '극단의 시대'를 합쳐 역사4부작이라 부른다

    한 가지 더 재밌는 것은 나폴레옹에 대한 설명이다. 홉스봄은 비록 보나파르트가 이상한 제국적 열망으로 인해 팽창주의와 침략자로 변신했지만 과학에 대한 그의 열정, 국민주의의 표방, 현대적인 법적 개혁 등 수 많은 영역에서 이룩한 성과의 의의를 인정한다. 나폴레옹이 유럽 세계에 자유를 전파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결코 부정해서는 안 되며 그에 비하면 섬나라의 온건주의와 옹졸함은 조소꺼리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나폴레옹 자신은 재능에 의한 출세라는 자유주의의 신화를 대표하는 존재가 되었고, 그의 팽창주의가 스페인 등에서 근대 민족주의의 자각을 이끌어 내는 요소로 작용했다는 점도 잊지 않고 지적한다.

     [자본의 시대](한길사, 1998)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은 하나가 된 세계였다. 증기기관의 발명은 거리를 속도와 시간의 곱으로 정립할 수 있게 했다. 이는 세계를 단일한 공간으로 창조하게 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세계의 어느 곳도 정확한 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80일간의 세계일주]가 의미하는 바다. [자본의 시대]는 철도의 도입이 자본주의와 근대인들의 세계관에 미친 영향을 심층적으로 다룬다. 자동차가 20세기 자본주의의 기관차였다면 철도 산업는 19세기 자본주의의 심장이었다. 거대할 철골덩어리가 광야를 가로지르는 장면은 ‘문명의 승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당대에 인식되었다고 홉스봄은 쓰고 있다. 더불어 철도산업은 19세기 중반의 장기 호황의 토대가 됨으로써 부르주아 사회를 추동하는 동력이 되었던 점도 잘 보여준다.

     부르주아는 세계의 주인이 되었고 노동자계급도 ‘일부는’ 꽤 잘 사는 축에 들게 되었다. 장기 호황은 차티스트 운동으로 급진화 되었던 영국 노동계급을 정치적으로 개량화했으며 부르주아들은 투표권의 부여를 통해 이들 노동계급을 사회 내에 통합하려 했다. 이것이 엥겔스가 제기한 노동귀족이라는 쟁점의 출현 배경이었다. 경제성장으로 자신감을 얻은 부르주아들은 노동자계급의 일부를 체제 내로 포괄하고 이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함으로써 ‘국민으로서의 의무와 자격’을 동시에 부과했던 것이다. 반면 모든 것이 상품이 된 세계는 예술을 타락시켰고, 예술가들을 부적응의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부르주아 체제에 부적응한 예술, 모더니즘이 탄생한 것이다.

    [제국의 시대]는 읽지 않아서 넘어간다. [극단의 시대](까치, 2009)는 까치에서 두 권으로 분책되어 나왔다. [극단의 시대]는 러시아 혁명에서 시작되어 소련의 붕괴로 끝을 맺고 있다. 이 책의 후반부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지만 [상권]이 준 감동은 아직까지 생생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볼세비키가 권력을 ‘주웠다’고 한 표현이었다. 1917년 2월 혁명 이후 러시아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였고, 케렌스키 정부는 갈팡질팡했다. 볼세비키는 가장 잘 훈련된 당조직을 유지하고 있었고 거기다가 무장한 세력(병사 소비에트)도 보유하고 있었다. 러시아 혁명은 ‘역사의 필연적 발전법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지만 볼세비키만이 유일하게 잘 준비된 조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결정적인 국면에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고 서술한다. 이는 어떤 교조적 설명과도 다른 사실 그 자체이다. 땅에 떨어진 권력을 레닌 등의 결단으로 장악하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스페인 내전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오늘날 한국의 좌파 독자들에게 스페인 내전을 보여주는 것은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민음사, 2001), 그리고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랜드 앤 프리덤]이다. 이 텍스트들은 모두 스페인 내전 기간 스탈린주의자들의 범죄를 소상히 밝히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그러나 홉스봄의 견해는 다르다. 당시 스페인 인민전선에 참여한 국제여단은 대부분 공산주의자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소련에서 파견한 사령관과 군대가 내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서술한다. 사회주의자들 내부에 논쟁이 있었고 불미스러운 일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반파시즘에 맞서 싸운 당대 공산주의자들의 연대를 부정하는 것은 또 다른 편향이라는 지적이다. 더불어 소련이 반파시즘 투쟁에서 치른 대가는 공정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탈린주의자들의 범죄만 찾아다니며 공산당의 오류를 증명하려는 이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다.

    전후 복지국가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인다. 오늘날 사민주의자들은 마치 사민주의가 정교한 정책을 실현했기 때문에 큰 성과를 거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책의 정교함이 사민주의의 토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홉스봄의 견해는 다르다. 유럽 사민주의는 두 가지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하나는 전후 자본주의 호황이다. 전후 자본주의가 지속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복지국가가 성립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세력관계로서 러시아혁명과 노동자계급의 급진화를 든다. 러시아 혁명의 결과로 전간기 동안 유럽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노동자계급과 농민계급이 급진화 된다. 중간계급의 급진화는 말할 필요도 없다. 당대 이름깨나 있는 지식인들은 거의 대부분 좌파와 음으로 양으로 결합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르주아는 체제 안정을 위해 노동자계급을 포섭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성립된 것이 전후 복지국가란 주장이다. 홉스봄 식으로 표현하면 러시아 혁명의 가장 큰 성과는 바로 유럽에서의 복지국가가 건립된 것이다.

    이것이은 오늘날 소위 ‘정책’으로서의 복지국가를 주장하는 한국의 사민주의자들과는 엄격하게 구분되는 지점이다.

    오늘날 한국 사민주의자들은 세련된 정책을 만들어 제시하면 복지국가가 성립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왜냐면 현재는 전세계적인 불황국면이라 자본의 압박이 너무나 강하다. 이를 넘어서서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면 그것은 자본의 힘에 대항하는 노동자계급의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오늘날 노동자계급은 급진화되어 있지도 않고 급진적인 이데올로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부르주아지들이 마음씨가 좋아서 복지국가를 제공해 줄 것을 기대해야 하는데, 역사적으로 이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운동의 힘이 부족한 상태에서 ‘좋은 정책’으로 복지국가 만들겠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 점이다.

    오늘날 사민주의자들이 진정으로 복지국가를 원한다면 노동자계급의 힘을 증대시키고 급진적인 이데올로기로 노동자계급을 조직해야 하는 것이다. 이 작업을 등한시한 채 좋은 정책으로 부르주아를 설득하려 든다면 이는 21세기판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될 것이다.

    4부작을 총괄하여 평가할 능력은 내게 없다. 앞에서 지적한 내용들은 내가 읽은 것들 중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장면만을 선별한 것이다. 단 한가지만 언급하고 싶다. 이 책들 어디에서도 경제 환원주의나 목적론을 발견할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가장 조잡한 비판은 마르크스주의가 “역사의 필연적 발전법칙”에 대한 무지몽매한 믿음과 “역사의 주체로서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신화에 물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홉스봄의 저작 어디에도 그런 조잡한 결정론, 신화화된 주체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홉스봄은 경제적 정세, 사회문화적 변동, 과학과 예술의 역사, 국제적 정세와 정치적 격변을 다룬다. 그러나 어디에도 경제결정론이나 총체적 환원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의 각 영역은 독립된 심급으로 다뤄지면서도 상호 연결된 부분으로 전체성을 보여준다. 이것이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지향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겠는데, 비판을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민족주의의 신화, 만들어진 전통

    홉스봄의 전 저작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민족주의에 관한 것이다. 근대 민족주의의 기원은 프랑스 혁명과 함께 진행된 유럽 인민들의 민족화이다. 이 부분은 [혁명의 시대]에 언급되어 있다. 더불어 앞에서 언급한 4부작은 모두 민족주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프랑스 혁명, 19세기 중반의 이탈리아 통일운동, 19세기 후반의 제국주의의 팽창, 20세기 초반의 반식민주의 운동, 2차 대전, 전후 제3세계의 독립은 모두 민족주의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민족주의는 19세기, 20세기에 걸친 가장 큰 이데올로기적 흐름 가운데 하나로 보수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모두를 삼켜버린 괴물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민족주의만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홉스봄의 저작도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창비, 1998)]는 민족주의의 역사를 공부하는데 있어서 최상의 텍스트이다. 이 텍스트가 출판되기 이전에 우리가 주로 읽었던 것은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 :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나남, 2002)이었다. 앤더슨의 책은 놀랍고 생생한 자료가 제공하지만 통사적인 측면에서의 고찰이 부족하고 정치적 의미에 대한 전달이 초보 독자들이 읽기에는 분명하지 않은 단점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홉스봄의 책이 가독성이 높다는 말은 아니다.

    홉스봄은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에서 nation이라는 단어의 기원을 찾는 장면을 보여준다. 영국 왕립사전과 스페인 왕립사전 등을 뒤져보면, 19세기 이전에는 민족을 의미하는 nation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개념이 없었다는 것은 대상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우리가 익숙해 있는 ‘원형 민족주의’는 대부분 근대 역사학의 성과로 구성된 것이다. 민족적 신화, 역사, 문화적 연속성 등은 창조된 기억의 일부이지 역사 그 자체와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더불어 이 책은 민족주의가 어떻게 정치적 팽창, 저항, 대중 동원 수단으로 전락했는가를 제시한다. 우파만이 아니라 좌파조차도 저항적 민족주의, 사회 애국주의 등 민족주의를 동원하여 자신들을 정당화했던 것이다.

    민족주의와 관련하여 더 매력적인 저작은 홉스봄이 공저한 [만들어진 전통](휴먼시스트, 2004)이다. 이 책은 19세기 후반 서구에서 나타난 ‘전통 만들기’를 잘 보여준다. 이 책의 요지는 우리가 흔히들 알고 있는 유구한 전통이라는 것은 대부분 근대에 와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전통이 시간을 지나면서 유구하게 이어져 온 ‘역사적 사실’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다양한 전통 만들기의 기법이 역사적 사례를 통재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천 년을 이어온 영국 왕실의 대관식은 고작 2세기도 안 되었고, 스코틀랜드의 전통의상이라고 알려진 퀼트는 영국 식민지 장교가 스코틀랜드 사람들에게 입혀서 만든 것임이 밝혀진다. 우리가 김치를 오래된 전통 음식이라고 착각하는 것과 동일하다.

    전통 만들기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집단 기억의 창조이다. 대표적인 집단 기억은 국사의 학습이다. 국사란 특정한 방식으로 민족사를 연대기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역사의 연속성’이라는 시각을 시민들에게 주입한다. 어릴 때부터 국사를 공부해 온 대중들은 마치 그 모든 것인 사실인 것처럼 역사를 인식한다. 신라도 민족사고 고구려도 민족사라는 것이다. 더불어 기념비의 건립(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동상의 건축(이순신장군, 세종대왕 동상 등), 기념일의 제정(개천절, 광복절, 삼일절 등)은 모두 역사적 기억을 창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된 것이다.

    역사적 기억의 창조는 사회적 구성원을 단일한 민족으로 통합하고, 내부의 차이를 해소하며, 상상의 공동체를 만드는 작업이다. 때로는 역사의 ‘주적’을 만들어 내부를 통합하기도 한다. 한국사에서 주적은 ‘일본’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만들어진 전통]은 정독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다.

     역사는 상상의 산물이 아닌 객관 사실에 기초한 것이어야

    그의 논문 모음집 [역사론](민음사, 2002)은 20세기 후반의 역사학에 대한 그의 입장을 읽을 수 있는 텍스트이다. 그는 이 저작에서 크게 두 가지를 문제 삼고 있다. 하나는 포스트 모던 역사학이다. 포스트모던 역사학은 역사적 사실과 이야기를 뒤섞음으로써 사료에 기초한 역사서술의 기본적 틀에 도전하고 있었다. 역사란 역사가들이 사실들, 사료들을 잘 조합하여 하나의 관찮은 이야기를 서술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 담론의 핵심적 논지였다. 헤이든 화이트나 리차드 로티류의 ‘반이론’에 물든 일련의 역사학자들이 이와 같은 담론을 지지했다.

    홉스봄은 이와 같은 입장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하며, 역사란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야 하며, 해석이란 사실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한 과정이지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꾸며내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사료에 의한 검증과 사실에 기초한 ‘반박 가능성’을 여전히 옹호한다.

    더 나아가 미시사와 거시사의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홉스봄이 책은 분명 거시적 역사학의 최고봉에 속한다. 한때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기수로 꼽히던 미시사 연구는 거시사에 대한 대안으로서 혹은 거시사의 공백을 매우려는 작업으로 높이 평가받았으며, 더불어 포스트모던 역사학에서 강하게 주장하던 ‘이야기로서의 역사’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곤 했다.

    그러나 정작 미시사의 전위가 된 진즈부르그([고양이 죽이기])나 나탈리 지먼 데이비스([마르텡 게르의 귀향]) 등은 [미시사란 무언인가]를 통해 역사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며, 사료의 중요성은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그들은 거시사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거시사를 통해 정립된 내용들은 미시사가 발전할 수 있는 토대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홉스봄의 작업과 같은 거시사는 미시사를 위한 거시적 기초를 제공하는 셈이다. 더불어 진즈부르그 등은 자신들의 저작이 포스트모던 역사학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는 점도 덧붙인다.

    더불어 홉스봄은 역사학자의 태도에 대해 말한다. 20세기 후반 사회주의의 몰락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민족주의, 분리주의, 인종주의를 탄생시켰으며 국지적 분쟁을 지속시키고 있다. 이런 국지적 분쟁의 한 축은 역사적인 갈등이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민족주의적 편견에 물들어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민족 감정을 확대시키는 수단으로 날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족적 서사를 구성하기 위해 과거를 남용하고 현실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홉스봄은 이를 역사적 범죄라고 주장한다. 민족주의에 물든 신화적 역사학은 극복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또한 포스트 모던 역사학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이른바 정체성의 정치를 위해 역사를 남용하며, 사실과 이야기를 뒤섞어 왜곡하는 자들이 이들 조류라는 것이다.

    그는 영원한 볼세비키였지만 볼세비키전 전략의 현재적 유효성에는 비관적

    내가 언급한 저작들 외에도 홉스봄의 빼어난 저작은 많다. 특히 그의 자서전 [미완의 시대]는 개인의 자서전만이 아니라 20세기의 자서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이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는지, 왜 공산당 당원으로 끝까지 남았는지, 신좌파에 대해 그가 불신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동시대의 자본주의에 대해 그가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 수 있는 텍스트이다. 더불어 [미완의 시대]는 20세기의 시공간을 직접 관통한 관찰자의 평가라는 점에서 당대의 역사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이다.

    21세기에 들어선 홉스봄의 정치적 입장은 대략 좌파 사민주의의 입장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이는 그의 저작 [극단의 시대]와 [미완의 시대]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비록 그는 영원한 볼세비키였지만 볼세비키가 주도하는 방식으로 현실의 역사적 전환이 이뤄질 것 같지는 않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는 공산주의가 패배했지만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인간적인 체제라고는 전혀 믿지 않으며 현재 상태가 지속된다면 자본주의는 더 비참한 체제가 될 것임을 단언한다.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고전적인 의미의 사민주의, 좌파 사민주의적 전략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하며, 마르크스주의자들도 비판적으로 이 입장에 동조해야 한다고 보는 듯하다. 체제 이행을 할 수 없다면 현실을 보다 인간적인 체제로 만드는 데에 동참하는 것을 두고 크게 비난할 것이 못된다고 지적인 듯하다. 물론 그의 유고작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를 읽어봐야 더 정확한 내용을 알 것 같다.

    그가 좌파 사민주의 입장을 지녔다는 것이 오늘날 사민당이나 노동당을 지지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가 보기에 영국 노동당이든 독일 사민당이든 유럽의 주류 사민주의는 좌파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들은 현재의 반동적인 자본주의 체제를 더 비참하게 만드는데 동참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좌파들이 정치적 반대만 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홉스봄은 사회주의자들도 실현 가능한 대안을 두고 우파와 대결해야 하며 설득력 있는 사회주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그의 정치적 전망에 대해 우리가 완전하게 동조하거나 반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의 정세인식은 고려해볼 것이 많다. 자본주의는 경제적으로 붕괴상태로 나아가고 있지만 우파의 힘은 완고하다. 체제의 정당성은 무너졌지만 대중들은 이에 대해 직접적인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다. 체제의 위기와 좌파의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직시한다면 좌파에게 필요한 것은 이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창조적 기획일 것이다. 냉정하게 세계를 보고 이에 기초하되 이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이런 도전은 홉스봄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새로운 실천에 참여하는 세대들의 몫임을 기억하자.

    필자소개
    남종석
    부경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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